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형, 저거 절대 안 끝나니까 그냥 신경 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버지와 삼촌의 대결을 보고 있는 남연수에게 복숭아 한 조각을 찍어서 건넸다.
저걸 듣고 있는 시간에 복숭아를 한 조각이라도 더 먹는 게 생산적이었다.
“으응, ……근데 시우야.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저게 다 뭐야?”
“엉? 아아, 저거 구경해볼래?”
“뭔데……?”
“나 얼마 전에 사인회 했을 때 받은 선물들이야. 거기서 먹을 거는 소속사 식구들이랑 나눠 먹고 저건 먹는 거 아닌 것들.”
나는 남연수의 물음에 신이 나서 선물 꾸러미들 앞으로 다가갔다.
선물이라는 말에 남연수도 뭐가 있는 거냐고 신기해했다.
“와, 이거 요즘 구하기 힘들다던데!”
“그치. 엄청 귀엽다. 형은 이거 써봐.”
“와아, 이왕 온 거 둘이서 같이 입어 보렴.”
어느새 복숭아를 다 먹은 어머니도 이쪽으로 합류했다.
저쪽은 아직도 물복과 딱복을 가지고 싸우는 중이었다.
“그럴까? 형이 하늘색 입어.”
“그래!”
우리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팬이 선물해준 커플 잠옷을 나눠 입고 머리띠도 하나씩 찾아서 썼다.
“어머, 너무 귀엽다. 여기 좀 봐보렴.”
어머니는 어느새 카메라를 가져와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셨다.
나는 익숙하게 포즈를 잡으며 어머니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으앗, 사진을 엄청 찍으시는데?”
“응? 이 정도는 일상 아냐?”
“……시우 네가 화보를 왜 그렇게 잘 찍었는지 알겠어.”
나는 어색해하는 남연수와 함께 거실 곳곳에서 선물로 받은 모자며, 선글라스며 다 번갈아 착용하며 포즈를 바꿨다.
“이것도 입어 볼까? 나는 다람쥐.”
“어어? 나는……?”
“형은 코알라로 해.”
그중에는 동물 잠옷도 있어서 중간에 복장도 바꿨다.
“다 됐다. 연수한테도 나중에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히히, 시우랑 찍은 사진이네.”
남연수는 이렇게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게 될 줄 몰랐다면서 약간 지친 기색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진을 보내준다니까 얼굴이 밝아졌다.
“어떤 걸 보내줄까나.”
어머니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사진을 고르는 동안, 남연수는 가득 쌓인 선물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 팔을 쭉쭉 잡아당겼다.
“시우야! 이거 봐. 나도 이거 있는데. 우리 커플 책가방이네. 이거 들 거지? 응? 응?”
“어어, 번갈아 가면서 가끔 들게.”
사실 남태룡과 이희준이 사준 책가방도 별로 안 써서 새 거이긴 했지만.
남연수가 저렇게 좋아하니 가끔 들어줘야겠다.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남연수는 다른 선물도 기웃거렸다.
옷을 고르느라 선물이 파헤쳐져 있어서 나는 옆에서 차곡차곡 선물을 정리했다.
어, 이건…….
그러다가 선물 더미에서 남성팬이 건네주었던 시나리오를 발견했다.
제목은 .
이름이… 임수호랬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나리오를 따로 챙겼다.
***
남연수가 돌아가고 깨끗하게 씻은 후, 시나리오를 챙겨 방에 엎드렸다.
“이걸 까먹고 있었네.”
나는 별 기대 없이 팔랑 표지를 넘겼다.
일단 첫 장에 등장하는 배경부터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판타지 도입부였다.
조금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여태까지 흥행한 적도 없고 흥행할 거라 생각지도 않는 판타지 장르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제목이 이라니.
“흐음.”
그러고 보니 이 시나리오를 건넨 임수호는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말이지.
어쩌다 이런 올드한 제목을 생각해낸 걸까.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색안경을 끼지 말자고 다짐해봐도 이미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에잇, 일단 끝까지 읽어보자.
나는 기대 없이 죽죽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는 내 눈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뒤로 몇 시간.
늦은 밤이 되도록 내 방 불은 꺼지지 않았다.
“…….”
순식간에 시나리오를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천천히 시나리오를 처음처럼 다시 덮었다.
끝까지 다 읽었건만, 꿈속인 듯 기분이 몽롱했다.
이런 것을 여운이라고 하는 건가.
신선한 충격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풀썩 누워 시나리오를 곱씹어보았다.
시나리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지금.
꼭… 천장에서 눈송이가 내릴 것만 같았다.
***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놀라셨죠?”
서울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카페.
거기서도 구석진 자리에서 기다리던 내가 내 맞은편에 앉는 임수호에게 말했다.
20대 중반이라고 생각들만큼 젊고 훈훈한 외모의 임수호는 실제로 27살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장편 영화 감독 도전이라니. 대단하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영광입니다. 설마, 시우 군한테 정말 연락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임수호는 내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어제 시나리오를 다 읽은 뒤에, 오늘 바로 시나리오에 적혀 있던 번호로 연락을 했다.
임수호를 만난 나는 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왜요, 읽고 연락 달라고 하셨잖아요.”
“하, 하하…….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정말로 연락을 준 건 시우 군이 처음이거든요. 사실…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드렸지만, 연락을 처음 받아봐서요.”
“아, 진짜요?”
의외라는 듯 흘러나온 내 말에 임수호가 고개를 떨어질 듯이 세차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네.
그 시나리오를 읽고 연락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니.
아, 다들 잊고서 안 읽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면 장르의 벽에 부딪혀 처음부터 읽을 생각이 없었다든가.
“음, 제가 임수호 씨를 만나자고 한 건…… 예상하신 대로 제가 임수호 씨가 주신 대본을 읽어봤어요. 그리고 판타지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대본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헉……! 그, 그런…….”
내 말에 임수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두 손을 꽉 모아쥐었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한테 거절당했나 보다.
완성도도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던데…….
왜 이 수작을 아무도 못 알아본 건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걸 저에게 주신 건, 캐스팅 제안 맞나요?”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임수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와, 진짜 영광이에요. 재밌겠다.”
내가 잘되었다며 박수를 치자, 기뻐하던 임수호의 얼굴이 흐려졌다.
“사실…… 제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네……?”
“캐스팅과 투자를 맡아주겠다는 제작사가 있었는데, 캐스팅도 되지 않고 결국에는 엎어졌거든요.”
“아…….”
하긴, 이 시나리오는 초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이미 제작을 하려고 시도한 곳이 있었나 보다.
나는 참담한 표정을 하고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임수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애초에 거기가 큰 제작사도 아니었지만, 믿고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말하는 임수호의 표정에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라?
이미 다 포기한 듯이 한숨을 푹푹 쉬는 임수호를 보고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상하네.
내가 왜 괜히 본인에게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나는 방긋 웃으면서 임수호에게 말했다.
“있잖아요. 수호 형.”
“혀, 형!”
사인지에 써줬던 것처럼 내가 형이라고 저를 부르자 임수호가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얼굴이 약간 상기된 것이…… 음, 역시 내 찐팬이 맞군.
“그래도 앞으로 다시 투자사 찾는 게 좀 쉬워지지 않을까요?”
“네……? 그게 무슨,”
아직도 영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두 눈을 꿈뻑거리는 임수호를 보고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주연 배우가 캐스팅 됐잖아요. ‘한시우’라는 이름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내 마지막 말에 임수호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다.
***
“후우…….”
임수호는 떨리는 손을 재차 고쳐 쥐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자신은 그저 집 근처에 평소 좋아하던 배우인 한시우의 팬사인회가 열린다기에 찾아갔던 것뿐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시우에게서 사인을 받고, 혹시나 싶은 심정으로 시나리오를 건넸다.
무슨 일이냐며 웃는 한시우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는 손이 얼마나 벌벌 떨렸는지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록 제작사와 아직 불안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만일 자신의 시나리오가 정말 영화가 된다면 한시우가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를 연기해줬으면 했으니까.
그런데 한시우에게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일단 거기서부터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집에서 하릴없이 기사를 체크하던 임수호는 한시우라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나간 카페에서 임수호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무려 자신의 시나리오가 재미가 있단다.
그리고,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기꺼이 주연 배우로 출연하고 싶단다.
이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고 했던 수년간 이런 말을 들은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작은 제작사지만 임수호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여 준 곳도 흥행에 있어서는 점점 회의적으로 변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평가를 받는 자신의 작품이었으니.
솔직히 연락이 안 올 거라고 생각하며 건넨 것이다.
임수호는 학력이라고는 고졸인데다 군대를 제대한 뒤 제대로 된 경력도 없었다.
조연출로 여러 감독 밑에서 구르고 또 굴렀지만, 선뜻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독을 만나지는 못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또 고쳤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랴.
성격까지 소심하고 내성적이니, 모두가 그런 자신을 다 무시하기 바빴다.
심지어 원래 제작을 맡아주기로 했던 제작사도 갑질을 하며 받아준 곳이었다.
그런데, 한시우는 그런 자신의 극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다른 건 물어보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작품만 보고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모든 건 무시한 채로 오로지 내 작품을 보고서 신뢰를 준 것이다.
이것만큼 감독에게 힘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해줬어도 좋았을 것이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고.
재밌는 작품이었다고.
그런데 한시우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주연 배우를 맡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한시우’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맡겨줬다.
그러니…… 더 이상 겁먹지 말고 이 이름에 걸맞는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행색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임수호의 마음만은 어제와 크게 달랐다.
낡은 백팩의 끈을 손으로 꽉 쥐고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그리고 로봇같이 힘찬 발걸음으로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임수호가 들어간 건물의 맨 꼭대기에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문화 제작사인 의 이름이.
***
“시우야…… 진짜 이걸 하겠다고?”
“네. 저 이거 하고 싶어요. 다른 거 말고요.”
바다 엔터테인먼트 회의실에서 나와 김민석 팀장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내 말에 김민석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내가 꽤나 단호하게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둘 사이에는 임수호의 시나리오가 놓여 있었다.
이라고 적힌 시나리오는 꽤나 많이 넘겨봐서인지 조금 너덜거리고 있었다.
“하아, 시우야. 원래 공승조 감독님의 오디션에 나가기로 했잖아. 그 오디션이 벌써 다음 주야.”
“하지만, 저는 공 감독님 오디션 캐릭터보다 여기 나오는 이 주인공 캐릭터가 더 끌려요. 지금 읽어보실래요?”
“……읽어봤어. 어제 미리 보내줬으니까.”
“어때요. 매력적이죠?”
나는 난감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김민석 팀장을 보며 씨익 웃었다.
노백찬이 보았다면 또 무슨 사고를 칠 거냐고 물었을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