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우아.”
문희성의 손을 잡고 들어선 집안.
눈앞에 드라마 안에서나 보던 광경이 펼쳐졌다.
신발장을 지나 복도에 들어서자 문희성의 키보다 큰 것 같은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는 훌륭해 보이는 그림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하하, 신기하니?”
“우웅!”
과거, 내 어머니였던 공작 부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가꾸던 살롱의 현대 버전 같았다.
생화와 각종 보석으로 호화스럽게 꾸며진 실내는 아니었지만, 새하얀 대리석으로 마감된 복도는 그것만으로도 멋졌다.
매우 훌륭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자의 미적 감각을 인정했다.
역시, 연기도 잘하는 사람은 이런 쪽에도 뛰어나기 마련이지.
그리고 길고 긴 복도를 지나 드러난 거실.
나는 그 가운데 서서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게 무어냐!
저것도 TV란 말인가!
우리 집에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TV가 거실 벽에 떡하니 걸려 있었다.
내가 헤 입을 벌리고 침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자 문희성이 리모컨을 쥐여주었다.
“TV 좋아하니?”
“우웅! 조아요!”
나는 당장에 리모컨을···.
아니, 이 집은 리모컨도 왜 이리 커.
작은 두 손으로 다 잡히지 않아서 볼록 튀어나온 배에다 리모컨 끄트머리를 얹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팟.
“우아아!”
진짜 크다.
마침 TV에는 내가 요새 좋아하는 드라마의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 보던 것과 10배는 차이 나는 배우들의 얼굴 크기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건 혁명이다!
내가 눈을 빛내고 서 있자 문희성이 나를 번쩍 들어 소파에 앉혀주었다.
오호, 이건 또 극단장실에 있는 소파와는 다른 편안함이군.
나는 냉큼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드라마를 시청했다.
빠르게 적응한 내 모습을 보고 문희성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뭐라도 준비해줄게, 시우야.”
“우웅!”
나는 드라마에 폭 빠져 대충 대답하고 커다란 TV를 바라보았다.
아, 사고 싶다.
하지만 저 TV는 우리 아버지가 치킨을 또 몇 마리를 팔아야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분명 아버지가 슬퍼하리라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속으로 삼키기로 했다.
달그락.
“시우는 차를 좋아한다고 했나?”
“우웅! 티, 조아요.”
센스 있군.
나는 간단한 과자와 청포도.
그 곁에 곁들여진 카모마일 티를 보고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방긋방긋 웃으며 쿠키를 하나 집어 아삭 깨물었다.
“우아······.”
이건 또 천상의 맛이다.
꿀을 묻힌 건포도를 좋아하던 내 입맛이 요즘 새로운 맛을 너무 많이 접하고 있었다.
이리 부드러운 맛의 초콜릿이라니.
나는 꿀꺽 쿠키를 삼키고 열심히 나머지도 아삭아삭 베어 먹었다.
“맛있니?”
“우웅! 마시써요!”
“그래, 다행이다.”
문희성은 잘 먹는 나를 보고 웃으며 자신의 몫으로 가져온 커피를 홀짝였다.
참, 이 시대 사람들은 저 커피라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나는 삼촌이 저 커피를 너무 많이 먹고 집안을 유령처럼 돌아다니던 것이 떠올라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것보다 티가 훨씬 향도 좋고 맛도 좋은데 말이지.
후룩.
후후 불어서 티를 한 모금 마셨다.
좋은 향이군.
그런데 초콜릿이랑 먹으면 티의 향이 너무 가려져서 아쉬웠다.
그래도 나름대로 향을 음미하고 있는데 문희성이 말을 걸어왔다.
“그럼 연기 이야기를 해볼까?”
“움, 조아요! 그럼 나부터.”
“오, 그럴래?”
문희성은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늘 이 집에 오면서 벼르던 것이 있단 말이지.
“저번에 말 안 해줘써요. 로미오 어뜨케 생각하고 했는지.”
내 말에 문희성은 생각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내가 나중에 이야기해주기로 했지?”
“우웅!”
“음, 그래. 나보고 어떤 로미오를 하고 싶었냐고 했나?”
“녜. 왜 그런 슬픈 로미오를 해써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안 그래써요. 줄리엣이 죽은 후에 로미오는 그 전만큼 슬프지 않아써요. 맞죠?”
내 말에 문희성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문희성이 어떻게 로미오 연기를 준비하면서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셰익스피어는 사회사상을 객관적인 태도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극작가들보다 장면 변화를 다양하게 가지고 가는 걸 좋아했다.
그만큼 연출하기에 품이 들어가기에 싫어하는 극단장들도 많았지만, 셰익스피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구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있는 성격에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많은 팬들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비판하면서, 종내에는 그의 연극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만큼 많은 고충에 시달려야 했다.
‘아니, 노아! 어제 올린 로미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봐, 이미 그렇게 화가 나서 물으면 내가 어찌 대답을 한단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종종 화가 나서 내게 의견을 묻곤 했다.
그가 객관적으로 인물을 그려낸 만큼, 그 객관성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배우들도 많았던 것이다.
기존의 스토리에 벗어나지 않는 인물의 재해석, 재창조는 셰익스피어의 기쁨 중 하나였다.
다만, 그것을 너무 벗어나 극을 망쳐버릴 때가 종종 있어서 그렇지.
‘후, 아냐. 어제 그 로미오는 다시 생각해보면 칼을 맞기 충분해.’
‘또 다른 영감이 떠오른 얼굴인걸?’
‘그럼 노아. 자네도 다음에는 내 극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런 지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극작가는 자네 한 명뿐일걸.’
내 툴툴거림에 셰익스피어는 호탕하게 웃고 또 극을 쓰러 사라지곤 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해석은 조금씩 달랐고, 그건 다시금 셰익스피어의 영감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리처드 버비지를 연상케 한 문희성의 연기.
그는 어디서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받았을까.
나는 그것이 몹시도 궁금해 어제부터 오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순발력, 때문일까.”
“우웅?”
오랜 시간 끝에 열린 문희성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아리송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문희성이 부연했다.
“내게 연기적인 영감을 주는 것은 순발력인 것 같은데.”
“순발력?”
도통 유추할 수 없는 대답에 나는 척, 짧은 팔로 팔짱을 끼고 골몰했다.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생각해봐도 뭐라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내가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이고 있자, 문희성이 다시 잘 생각하다가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이걸 누구한테 설명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좋아. 아마 이게 답이 될 것 같다. 난 현장에서 대본을 잘 보지 않거든.”
“우웅? 대본을요? 왜여?”
대본을 보지 않는다니?
극본이란 배우에게 있어 생명과 같은 것이지 않나?
나는 경악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서 문희성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유일한 지침서인 대본을 보지 않는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럴 때가 있거든. 대본을 너무 파고들다 보면 대본에 대한 객관화가 떨어지는 걸 느껴.”
“아.”
객관화를 헤친다, 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한번 극본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그 캐릭터의 정서와 형태를 잡았으니. 그 뒤로는 보지 않는 거지. 글로 쓰여 있는 캐릭터에 너무 깊이 몰입하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순간이 와버려. 그럼 나 혼자만 아는 캐릭터가 되어버리고 말지.”
“마자요. 관객들은 몰라요.”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배우도 결국 사람이다.
그들이 하는 말은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관객은 끝까지 저 배우가 뭐라고 하는지 기대하고 궁금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맞아.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되는 거다. 하하, 너랑 이야기하니까 나도 이해가 쉬운 것 같네.”
“우웅. 그래서 공연이 시작! 대면 그다음부터는 순발력으로 하는 고에요?”
“맞아. 바로 그거다. 그래서 아마 시우 네가 느낀 것처럼 슬픈 로미오가 끝까지 나오지 않은 걸 수도 있지.”
흐음, 내가 너무 문희성에게만 집중했나 보다.
집에 가면 그 로미오가 담긴 비디오를 한 번 더 봐야겠다.
상대역인 줄리엣이 어떤 연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그때 상황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줄리엣을 연기하던 배우에게 맞춰서 나온 연기이지 않을까. 인간이 변칙적인 것처럼. 인간에 불과한 배우 역시 언제든지 공연 중에 변하고 말 테니. 음, 시우 네겐 너무 어려운 얘기일까?”
문희성은 신나서 길게 이야기하더니 퍼뜩 정신을 차렸다.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냐. 아라요. 마자요. 인간은 변하니까.”
“······그래. 맞지.”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문희성이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러나 싶었지만, 그보다 방금 문희성과의 대화로 떠오른 것이 있었다.
과거 셰익스피어와 나눈 대화.
셰익스피어는 입이 닳도록 강조하곤 했다.
대중적인 극을 만들고자 했던 그에게 객관적인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우웅. 아라따.”
“뭘?”
“아조씨 연기 자연스러운 이유요. 몬가 이러케 슬쩍 넘어가고 그러눈데 자연스럽고 재미써요.”
“하하, 시우야 그거 칭찬이지?”
“우웅, 당연하죠.”
그의 연기를 보다 보면 능글맞으면서도 자연스럽다.
이 캐릭터에게 맞나? 싶지만 오바스럽지 않기에 문희성만의 연기를 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렇군.
그게 순발력에서 나오는 거였다.
다음에 공연할 때면 나도 오르기 직전에 대본을 보지 말아볼까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순발력 하니까 시우 네 애드립이 생각나네.”
“내 꼬?”
“그래. 정체되어 있지 않았으니 가능한 연기였어.”
그렇게 말하는 문희성의 눈은 마치 소년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얼굴을 확인하고 활짝 웃었다.
셰익스피어와 이야기를 나눌 때나 느끼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아조씨, 세이뜨피어 아라요?”
“세이뜨······? 뭐, 뭐라고?”
“아휴, William Shakespeare!”
“어?! 셰익스피어? 그런데··· 시우야 발음이 왜 이렇게 좋,”
“TV 마니 봐서 그래요. 하여간, 아라요?”
나는 문희성이 무언가 더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얼른 그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TV가 교육에 도움이 되는구나······.”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했다.
“떼이뜨 책 읽으묜 막 머리가 뜨거워요. 그리고 행복해.”
“하하. 시우도 그걸 느껴? 셰익스피어 글을 읽으면 뇌의 특정 부위가 활발해지며 열이 오르는 연구 결과가 있······. 잠깐, 시우야. 너 정말 다섯 살 맞니?”
재차 묻는 문희성의 말에 참았던 한숨이 나왔다.
“휴으, 마자요. 다섯 쨜!”
“그, 그래.”
어쩐지.
셰익스피어가 나랑 대화하면 열이 오른다던데.
과거 둘 다 이틀 밤을 새워서 대화해도 어쩐지 멀쩡하더라니.
현대에는 그걸 연구한 결과까지 있다니.
매번 느끼지만, 그의 명성은 현대에 와서 말도 안 되게 거대해진 듯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나는 멍한 얼굴을 한 문희성의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구럼 또 연기 얘기해요.”
“어, 어. 그래.”
그 뒤로 나는 오랜만에 셰익스피어를 만난 양, 문희성과 뜨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머리에 열이 쏠리는 것처럼.
***
“하아,”
“하······.”
커다란 회의실.
그 안에 둘러앉아 있는 많은 인원들 모두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화문 문화센터’.
그 속에 자리한 대회의실에 미국에서 건너온 외국인이 반.
또 한국인이 반이었다.
이들은 미국 애니메이션 원작 ‘RUN’의 한국 버전 극 제작 기획을 위해 모였다.
무려 삼천 석 규모의 극장에서 올라가는 대형극인 만큼, 이 자리에 모인 면면이 각각 미국, 한국 연극계에서 알아주는 프로들이었다.
그런 대단한 이들이 지금 가진 공통점은, 모두 먹구름이 낀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는 것.
그러다 자신의 머리를 북북 긁던 한 스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공개 오디션을 개최하는 게 어떨까요? 그럼 논란이 가실 거 같은데. 연령 제한은······.”
손을 든 스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Audition······?”
목소리의 주인공은 푹 숙였던 고개를 든 금발 머리의 외국인 여성.
이 대형극의 총책임자이자, 브로드웨이가 낳은 최고의 연출가 제시카 브라운의 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