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연기는 금방 끝났고, 문희성이 작은 박수를 보내주며 말했다.
“방금 TV에 나온 거 따라 한 거야?”
“우웅! 마자요. 저 드라마에서 누나 되게 슬퍼 보여서.”
마침 문희성네 거실 TV에서 나온 드라마의 장면을 한번 따라 해봤다.
이미 집에서 한 번 본 회차였기에 내용은 알고 있었다.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애처로이 울고 있는 여주인공.
그녀는 가슴 절절한 눈물 연기를 선보이며 한밤중에 공원을 가로지른다.
물론 이 다음에 남자주인공이 기사처럼 짜잔-! 하고 나타나 여주인공을 달래주기는 하지만.
내가 연기한 부분은 이 눈물 연기 부분이었다.
내가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연기였다고 생각했건만······.
이게 한 번 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한번 볼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문희성의 말에 쪼르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방금 문희성이 찍어준 내 연기 영상을 봤다.
그런데, 어라?
나는 방금 내가 펼친 연기를 확인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내가 표현하길 원했던 감정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눈물은 내가 생각했던 타이밍에 적절하게 떨어졌다.
고개와 손을 움직이는 속도나 각도도 내가 생각한 그 모습이었고.
문제는··· 생각보다 슬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지? 뭐가 문제지?
처음으로 화면을 통해 내 연기를 생생하게 지켜보고 나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거울을 보고 연기할 때와는 사뭇 다른 내 연기 말이다.
사실 ‘황금 가면’이라 칭송받았던 나의 명성은 다 헛것이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고 평가할 자격조차도 내게 없는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하던 와중, 문희성의 담백한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카메라를 의식했구나, 시우야.”
“으식······?”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똑같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해도 카메라가 앞에 있는 것과 없는 건 배우들에게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지. 방금 연기를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하지 않았니?”
“오······ 이상해써요. 뭔가··· 이 녀석이 나를 째려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손을 뻗어 카메라의 눈 부분을 툭툭 두드렸다.
“맞아. 많은 배우들이 그 증상을 겪어. 이건 카메라의 렌즈라고 해. 까맣고 동그란 이 렌즈를 무서워하는 배우도 있어. 나도 처음 연극판에서 벗어나 영화 촬영할 때 이 앞에 서면 몸이 굳어버리더라니깐?”
“진짜요?”
그 문희성이 연기를 하며 몸이 굳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방금 내 연기를 보고 받은 충격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 이게 지금까지 시우 네가 하던 연기와 영상 연기의 차이다. 오디션 영상을 잘 찍기 위해서는 이걸 극복해야만 하고.”
“헤에······.”
새로운 문물이라고 신기해하기만 했는데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수백 명의 시선을 받으며 연기할 때도 겪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요리조리 카메라를 뜯어보자 문희성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시우가 어색해한 이유를 찾아볼까? 연극 연기는 관객들을 마주 보고 하니까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지?”
“우웅! 사람드리 조아하는지 시러하는지 슬퍼하는지 보여요.”
“그래, 그걸 배우들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지. 그런데 이 앞에서 하면?”
오호라.
그거군.
나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관객의 눈과 카메라의 눈, 렌즈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었다.
“몰라요.”
카메라는 리액션이 없다.
마치 거울도 아닌 시멘트벽을 보고 연기하는 기분.
“그럼 왜 카메라를 두고 연기하는 거예요? 관객도 없고, 감정 짜깁기도 해야 하고.”
카메라 앞에서의 첫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괜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대 연기에선 배우가 표현한 게 관객들에게 매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건 알지? 그날 컨디션이나 무대 상황 같은 게 매일 다르니까.”
“우웅, 마자요.”
아주 지당한 말이라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게 무대극의 묘미라지만, 동시에 억울한 점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안 그래도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표정 연기에 한계가 있었는데, 내 연기력에 기복이 있다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평론가들도 더러 있었고 말이다.
“반대로 카메라는 그럴 위험성이 적어지지.”
문희성은 웃으면서 카메라를 살짝 들어 올렸다.
“한정된 장면 딱 하나만 TV로 나가니까, 매번 시우가 원하는 감정을 똑같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어.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녜. 그건 조아요.”
관객에 따라 반응이 다른 건 연극도 마찬가지기에 토를 달 게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걸 살펴보자.”
문희성이 내 연기가 담긴 영상을 다시 재생하더니, 한 부분에서 정지했다.
“이게 왜요?”
“여기 보면 시우 네 얼굴에 그림자가 졌지.”
“웅, 조금 어두어요.”
“카메라를 단 한 명의 관객이라고 생각해봐. 대신, 그 관객은 한 번도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사람인 건지. 무대에서처럼 시우 네가 움직이는 대로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줄 수 없는.”
“고개를 돌릴 수 없는 관객······.”
처음 생각해보는 개념이었다.
“그럼 그 특별한 관객이 잘 볼 수 있도록 많은 걸 고려해야겠지?”
허, 참.
왠지 모르게 약간 억울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배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관객의 구미에 맞아야 좋은 연기를 펼쳤다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희성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이거······ 쉬운 작업은 아니구나.
그리고 또 한 가지.
카메라, 그리고 그게 담는 영상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무대와 영상.
확실히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각각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귀족들은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은 뭐든지 쉽게 생각하는 습성.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평민들의 고뇌는 가벼운 것이고, 하찮은 것이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노아였던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어떻게 그들의 고충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리 쉽다고 단정 짓는 것인가.
물론, 나 역시 그들의 고충을 잘 알지 못한다.
안 겪어봤으니 당연한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래서 오스카 극단에서의 3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때 평생 깰 편견은 다 깼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깨어질 것이 남아 있었다니.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본 지금, 나는 깨달았다.
카메라 연기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는 것을.
하마터면 또 고고한 귀족 흉내를 낼 뻔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보지도 않고서 그런 연기는 가짜라고 속단해버렸다.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명배우라고 생각됐던 이들의 연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배우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해보께요.”
하지만 못할 건 없지.
연기력 자체는 자신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서 눈을 부라렸다.
각오하시지, 이제 쉽게 안 본다!
***
마음을 고쳐먹은 이후 여러 차례 다양한 연기로 자유연기를 촬영했다.
“아니, 다시 한번 찍어볼까? 프레임 중심에서 멀어져서 밸런스가 안 맞아.”
두 번.
“다시, 지금 감정이 덜 잡히고 급하게 들어간 것 같다.”
세 번.
“이 부분은 좋았다.”
문희성은 힘들다는 기색도 없이 내 촬영을 도와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맨 처음 찍었던 비련의 여주인공 연기보다 훨씬 좋은 게 나왔다.
“우아. 잘해써요.”
“하하, 그래. 이제 처음 그 어색함은 많이 줄었네. 그런데 시우야. 실은 오늘처럼 항상 카메라가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란다.”
“우웅?”
“그게······. 아니다. 오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준 것 같네. 지금은 일단 오디션용 영상에 집중할까? 이 카메라는 고정된 시선이니까.”
“녜!”
문희성의 말에 힘차게 대답한 나는 도도도 소파로 달려갔다.
몸도 풀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위해 어떤 자유연기를 선보일지 생각할 차례였다.
생각에 앞서 우선 RUN의 스토리 개요를 집어 들었다.
개요를 보며 골똘히 생각 중인 내게 문희성이 말을 걸어왔다.
“시우야, 이 작품 원작 봤니?”
“아니요?”
“그래? 그럼 그걸 먼저 같이 볼까?”
문희성은 내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TV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벽을 한쪽으로 밀어낸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만 해도 저 액션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벽이 옆으로 밀어내는 게 신기했을 뿐더러, 그 벽 안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 전부 영화 테이프와 DVD였으니 말이다.
“여기 있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문희성이 DVD 하나를 끄집어냈다.
역시나 ‘RUN’도 보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이걸 한번 보고 생각하자고.”
불을 끄고 쿠키와 카모마일차까지 준비한 뒤 영화를 재생했다.
‘RUN’이라고 적힌 커다란 타이틀이 큰 화면을 가득 채웠고, 이내 영화가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쿠션을 끌어안고 애니메이션을 집중해서 감상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두 살 무렵부터 봐왔기에 이제 이질감은 없다.
“훌쩍.”
감동적이다······.
‘RUN’은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로 인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였다.
집 안의 세상만 알던 할머니가, 어쩌다 둘만 같이 살게 된 손자를 통해 모르던 요즘 세상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행복을 되찾는 따듯한 이야기였다.
“히잉, 슬퍼요.”
“그렇지? 다시 봐도 잘 만든 작품이네.”
애니매이션 속 손자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명확했다.
순수하고 발랄한 아이.
늙은 노인이 낡은 관습을 버리도록 만들어 주고, 젊음을 되찾게 만들어 줄 에너지를 가진 아이였다.
영상 속 어린 손자는 완벽하게 그 역할을 해냈다.
“흐움.”
원작을 보니 어떤 자유연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빠르게 정리됐다.
비련의 여주인공은 이번 RUN이라는 작품 속 손자랑 너무 동떨어졌기에 탈락.
그다음에 한 영수 역시 너무 처절하고 울기만 해서 탈락.
순수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뭐가 있을까.
훌찌럭.
다시 한번 삐져나온 콧물을 대충 닦아내고 ‘RUN’의 특정 장면만이 담긴 오디션용 대본을 집어 들었다.
손자의 대사를 다시 한번 보면서 이 아이는 어떤 아이였을까 상상했다.
음?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아이의 엄마는 아빠 때문에 도망갔고, 아빠는 음악을 한다며 허구한 날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
결국 아이는 음악을 하러 떠난다는 아빠 때문에 아빠의 엄마, 친할머니에게 맡겨진다.
그럼 이 아이는 할머니가 마냥 좋기만 할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꼈겠지.
자신을 돌봐줄 유일한 할머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아마 끊임없이 아빠를 원망했을 것이다.
불안감에 떨며 할머니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도 아빠처럼 결국 나를 버리면 어쩌지?
자신이 미운 짓을 하면 내쳐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감 속에서 살다, 결국 할머니는 아빠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영상 속 이 손자는 처음부터 곧바로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것만 같았으니까.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의 한계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연출 의도가 있는 것일까?
일단 난 배우로서 내가 해석한 걸 보여줘야 한다.
새로운 해석과 함께 한참을 생각했다.
“아조씨.”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 한 독백이 없다.
“응? 왜 그러니, 시우야.”
내가 생각을 정리하길 가만히 기다려 주던 그는 얼른 대답해왔다.
“호옥시······. 자유연기 자작극으로 해도 대요?”
“······자, 자작극?”
좀처럼 당황할 줄 모르는 문희성이 두 눈을 끔뻑일 뿐 이어지는 대답이 없었다.
“대요, 안 대요?”
“되, 되긴 할 거다. 확인 한번 해보는 게 좋겠지만.”
결국 내가 다시 한번 묻고서야 답을 해준다.
아무튼, 가능할 거라 이거지.
그렇다면.
“종이··· 종이랑 연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