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터벅, 터벅.
나와 삼촌은 이국적인 모습의 골목길을 가로질러 걷는 중이었다.
조이수의 전화를 받고서 일주일 후, 우리는 영국 거리에 있었다.
어차피 당장 하고 있던 촬영도 없었기에 나와 삼촌은 급한 스케줄만 정리하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연은 내일 보러 가기로 했다.
남은 시간 동안 뭘 할까? 묻는 삼촌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런던 지도에서 한 곳을 가리켰다.
“와, 꽤 머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여기는 아직 주택가니까. 과거에 영지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성으로 가야 하니까 조금 더 가야지.”
우리의 목적지는 바텐베르크 고성.
한국에서 미리 찾아보니 다행히 고성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바텐베르크의 지도는 전부터 자주 들여다봤었다.
지도에서 영국의 위치와 지형이 변하지 않았기에 절로 바텐베르크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랫동안 영국 굴지의 대공작가로 군림한 바텐베르크이기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었건만.
호텔에서 이리로 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묻자, 고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는 길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해서 우리 둘은 택시에서 내려 시내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지명의 도시를 가자고 한 것이기에 삼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삼촌에게는 영화의 촬영지라 한번 와보고 싶다는 말로 둘러대고 고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의 주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수백 수천 번을 돌아갔던 길을 잊을 수 있나.
긴장되는 마음으로 달라진 골목을 걸으며 바텐베르크 고성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근두근.
마지막 상가를 지나면, 곧 눈앞에 바텐베르크 성의 부지가 펼쳐질 것이다.
“으, 관리가 되어 있기는 한 거 같은데…….”
시내를 벗어나서 고성으로 가는 오솔길.
예전의 기억 그대로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넓은 부지.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저 그리울 뿐인데, 삼촌은 아닌가 보다.
허허벌판을 보고 삼촌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마 이 끝에 진짜 뭐가 있나 싶은 거겠지.
고성으로 가는 길목에는 바텐베르크의 소유지인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었기에 고성의 모습이 지금 바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노아였을 당시, 런던에서 바텐베르크 성까지 마차로 1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으니.
우리 둘이 걸어서 가려고 한다면 조금 오래 걸릴 것 같기는 했다.
미리 삼촌에게 말을 해둔 덕에 우리 두 사람은 걷기 편한 복장으로 바텐베르크 성을 보러 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것도 잠시, 아까와는 다르게 어떤 건물 하나도 보이지 않는 풍경에 삼촌이 내게 물었다.
“무슨 영화에 나왔다고 시우야?”
“옛날 영화라서 삼촌은 잘 모른다니까?”
사실 바텐베르크 영지가 정말 영화에 나왔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냥 대충 둘러대려고 한 말이지.
그걸 꼬치꼬치 캐묻는 삼촌의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여기서 둘러댄 말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된다.
“허어, 이놈 봐라. 내가 이래 봬도 예전에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마! 들으면 알아!”
“흐응…….”
가슴을 쫙 펴고 하는 삼촌의 말에 흐린 눈으로 삼촌을 돌아보았다.
내가 알기로 삼촌은 배우 지망생이었어도 영화보다는 연극 극본을 더 많이 봤다.
TV를 끼고 살 때도 영화를 별로 즐겨 보는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오히려 나랑 드라마를 봤으면 많이 봤지.
“뭐야, 그 불신의 눈초리는? 그리고 너 내 여친이 누군지 잊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배우 강수정이라고, 강수정! 수정 씨랑 내가 영화를 얼마나 많이 보는데.”
큰일이다.
나에게 들킨 이후로 이렇게 둘만 있게 되면 삼촌이 강수정 이야기를 너무 한다.
지금까지 도대체 어떻게 참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데이트 때는 뭘 했고, 뭘 받았고 하는 자랑을 쉴새 없이 늘어놓는다.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수정 씨네 집에 놀러 가서 본 그 영화가 참 재밌었다? 그거 보면서 마신 샴페인이 어디 거랬지. 유럽 쪽이었는데. 하여튼 그걸 내가 오면 먹으려고 수정 씨가 차게 해둬서 그거 마시면서 봤는데 치즈도 진짜 맛있고…….”
비밀 연애였어서 누구한테 말할 일이 없었다나?
커플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싶지는 않아서 매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중이다.
어찌 됐든 이 성이 어느 영화에 나왔는지에 대해서 삼촌의 흥미는 다 식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부지런히 걸어서 숲을 통과했다.
그러자 저 멀리 바텐베르크의 첨탑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야트막한 언덕을 넘었다.
그러자 파앗- 눈 앞에 펼쳐지는 바텐베르크 성지.
“오오! 진짜 성이 있잖아?”
옆에서 삼촌이 커다란 성을 보고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달라진 주변과는 다르게 홀로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나는 신이 난 삼촌과 함께 조심스레 문화재 같은 고성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이렇게 막 들어가도 되는 건가? 입장료는?”
“그런 거 없나 봐.”
삼촌에게 잠시 조용히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우리 둘은 바텐베르크 성 부지 안을 돌아다녔다.
고성의 곳곳에서 어린 시절, 노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저 복도는 내가 어린 시절 뛰어다니다 넘어진 곳이네.
저 테라스에서는 하녀장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곳이었다.
마당에서는 이제 우거지게 자란 관목 사이로 처음으로 개구멍을 팠던 곳도 보였다.
부지 곳곳에서 여러 가지 추억이 깃든 곳이 태반이었다.
그렇게 추억을 회상하면서 거닐다, 내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내가 성 뒤편으로 가면서 계속 두리번거리자, 황량해진 넓은 정원을 구경하던 삼촌이 내 뒤로 따라붙었다.
“뭐 찾는 거라도 있는 거야? 시우야. 시우야!”
내가 성 뒤로 슥 들어가 버리자, 삼촌이 당황해서 나를 부르며 쫓아왔다.
“도대체 뭘 찾는 데 그래. 여기 네가 찾는 촬영지가 맞긴 맞아?”
코너를 돌아 나를 발견한 삼촌이 흠칫 놀라서 멈춰 섰다.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성 뒤편에 마련된 바텐베르크의 묘지터였다.
“으…… 찜찜하게 왜 묘지 앞에서 서성여.”
“…….”
“야, 야… 시우야. 왜 대답이 없어? 진짜 뭐가 보이는 건 아니지?”
삼촌은 대답이 없는 나 대신, 관리가 되지 않아 삭막해 보이는 묘지를 머뭇머뭇 둘러보았다.
“여기도 가족장처럼 다 묻어놓은 거야? 묘지들이다 모여 있네.”
“그런가 봐.”
“와, 이게 다 귀족들의 묘라는 거지? 신기하다.”
“……그 당시에도 다 모이도록 했었지.”
나는 삼촌의 말에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씁쓸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삼촌이 오기 전부터 바텐베르크의 귀족들이 모여있는 이 묘지를 열심히 살폈지만.
노아 바텐베르크, 나의 묘는 없었다.
나는 힘없이 꼭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탁 풀었다.
그래, 무엇을 바랐나.
인생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것을.
살아생전, 가족 취급을 받지 못했으니, 죽어서도 가족은 아닌 거라는 건가.
내가 멍하니 묘지터를 바라보고 있자, 삼촌이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읽어 내려갔다.
요 몇 년 사이에 삼촌의 영어 실력이 조금 늘었기에 읽을 수 있나 보다.
“바텐베르크가…… 이곳에 잠들다. 바텐베르크? 이게 여기 귀족 이름인가? 멋지네.”
삼촌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오지 말 걸 그랬나.
조금은 후회가 된다.
“시우 네가 찾던 게 이 사람들 묘지야? 확실히……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긴 하네. 우리나라 산소하고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니까.”
삼촌은 내가 조용히 묘지만 바라보고 서 있자, 옆에서 혼자 추측을 하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그러더니 성 뒤쪽에 위치한 낮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사람이 있어……!”
“…….”
삼촌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정원사처럼 편한 옷을 차려입은 남성 한 명이 산길에서 고성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우, 우리 보고 왜 들어왔냐고 하는 건 아니겠지?”
“…….”
“야, 야. 시우야! 한시우! 에이씨……. 얘 왜 이래? 내가 가서 저 위에는 뭐가 있냐고 물어볼까?”
그래도 내가 대답이 없자, 삼촌은 답답한지 나와 내려오는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이, 익스큐즈미……!”
상당히 답답했던 건지, 이제는 회화에 자신감이 좀 붙은 삼촌이 산에서 내려온 사람에게 다가갔다.
삼촌은 바디랭귀지를 섞어 내려온 남자에게 뭐라뭐라 물었다.
나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눈앞의 묘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버지, 휴고 바텐베르크 공작 각하의 묘와.
어머니, 제인 바텐베르크 공작 부인의 묘가 나란히 세워진 것을.
그 외에도 형님들의 묘가 줄지어 있었다.
누이들은 시집을 간 모양이다.
바텐베르크가 묘지에 묻히지 않은 걸 보아하니.
잘, 있었느냐는 인사조차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았다.
지금까지 잘 지냈다고 믿었건만, 내가 잘 지내고 있었던 게 맞는지 순간 확신이 사라져버려서.
이들에게 당당히 나는 잘 살아 있다고.
그때 못 이룬 꿈도 이루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싶은데.
내 자리가 없는 내 옛 가족들의 흔적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잠시 그들의 묘를 보다가 체념하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아, 더 있어요. 저기에도 우리가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묘가 하나.”
이곳은 문화재는 아니기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아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답한 게 들린 것이다.
나는 ‘묘’가 하나 더 있다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산길에서 내려왔다는 얼굴을 뒤늦게 바라보고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어…….”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 어린 얼굴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우야! 저기 묘가 더……. 어? 시우야?”
“…….”
“너, 너 오늘 왜 그래! 그새 영어를 까먹은 거야? 나 이제 더는 못하겠는데.”
울상인 삼촌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나는 나지막하게 남자에게 물었다.
저 얼굴을 보고서 어떻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겠는가.
“당신……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음?”
동양인의 어린아이에게서 흘러나온 격식을 갖춘 영국 발음.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듯 앳된 얼굴에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살짝 놀란 듯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무표정한 표정에도 순간 당황함이 드러났을 정도였다.
“이, 이 사람이 네가 찾던 사람이야?”
삼촌은 비록 한국말로 말했지만 내가 남자를 가리키는 태도에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 영국 아이가 내가 찾던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삼촌에게 대답을 해주기 전에 나는 급한 마음에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만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소개를 먼저 건넸다.
너무 당황해서 기본적인 예의도 잊어버리고 말다니.
“저는…… 한국에서 온 한시우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먼저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하자 남자는 고민하다가 이내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데이브 스미스.”
“……!”
자신이 전생에 알던 남자와 너무나 똑같은 얼굴.
그리고 그와 같은 성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