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며칠 뒤, 나는 제작사 그림의 대표실에 앉아 있었다.
김화진이 아직 올 사람이 더 있다고 해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내 입맛이 어디까지 소문이 난 건지, 김화진이 카모마일 차를 내줘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마주 앉아 있는 김화진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차피 들을 이야기이기에 재촉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저씨도 오셨네요?”
나와 함께 의 주연배우를 맡고 있는 문희성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희성씨도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제가 너무 늦었나요?”
“아니에요. 제가 일찍 온 거예요.”
문희성과 내가 나란히 앉자, 김화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두 분이 제 앞에 이렇게 나란히 앉아 계시니 꼭 영화 한 편 보고 있는 것 같네요.”
“곧 보게 되실 거잖아요. 에서.”
“그건 그렇지.”
쉽게 말을 못 꺼내고 말을 고르는 김화진의 모습에 나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 때문에 주연 배우인 우리 두 사람을 불러 모은 것 같지는 않다.
“음…… 이제 곧 촬영이 재개되기 전에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문희성도 김화진의 긴장을 눈치채고 말했다.
생각보다… 안 좋은 소식인가?
얼핏 김화진의 얼굴에 스치는 근심의 빛을 발견하고 내가 미간을 좁혔다.
“대표님.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음, 아직 올 사람이 한 명 더 있거든. 그 사람까지 오면 이야기하자.”
“……네.”
문희성이 끝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 셋은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대표실에서 조용히 마지막 손님을 기다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미묘하게 대표실을 감돈 지 얼마나 되었을까.
불안한 마음에 미약하게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 감독님?”
대표실로 다급히 들어온 것은 장진홍이었다.
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매고 있던 넥타이를 살짝 풀며 장진홍이 숨을 골랐다.
아는 체를 하는 나와 문희성을 발견하고 어색하게 웃는 장진홍의 모습을 보고 나는 문희성을 쳐다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의아하면서도 무언가 불안하다.
“이것 참, 제가 두 분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진홍은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에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장 감독님이 여긴 어쩐 일로…….”
“후, 문희성씨 죄송합니다. 제가 한숨 돌리고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얼른 앉으시죠.”
김화진이 자신의 옆 소파를 가리켰다.
자리에 앉은 장진홍 앞에 새 찻잔이 놓이고, 김화진이 그 잔을 채워주었다.
장진홍은 미지근한 차를 단숨에 마시고 나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
그 한숨소리가 그저 숨을 돌리는 것치고는 퍽 무겁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장진홍이 운을 떼었다.
“실은…… 제가 고백할 게 있습니다.”
뭐지?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지?
잠시 김화진과 시선을 교환한 장진홍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촬영을 쉬게 된 게, 촬영장 이슈 때문이 아닙니다.”
그 말에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경직되어 가는 입꼬리가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겨우 말을 끝맺었다.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본 장진홍이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이어 말했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하다. 시우야.”
“감독님……!”
“…스승님. 노 감독님이 다시 쓰러지셨다.”
“……!”
“무슨,”
나와 문희성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장진홍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침통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안 좋으셔.”
“……하.”
나는 더 들을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바로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갈 거예요. 어디 병원이에요?”
“시우야.”
장진홍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문희성이 침착하게 붙잡았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장 감독님이 우리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니겠니.”
“……하지만,”
내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반박하려고 하자, 장진홍이 빠르게 말했다.
“안 돼.”
“네?”
“……중환자실이라, 면회가 안 된다. 나도 보지는 못했어. 지난 며칠 동안.”
그렇게 말하는 장진홍은 아까보다 더욱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듯 앉았다.
모든 것이 내 탓 같았다.
“무리하신 거죠?”
“……시우야.”
내가 노백찬에게 마지막으로 영화를 찍자고 하지 않았나.
다름 아닌 내가.
“제가, 제가 가봐야 해요. 할아버지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내 말에 장진홍이 고개를 저었다.
“어쩜 너는……. 그래도 안 된다.”
“왜요…! 아무리 장 감독님이 그러셔도, 저는…!”
“스승님 전언이다.”
“……!”
노백찬의 말이라는 소리에 멈칫했다.
“스승님께서 그러셨다. 혹시라도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네가 그 말을 할 거라고. 어쩜 이렇게 서로를 잘 아는지.”
“……할아버지가요?”
“그래. 그런데 네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꼭 그렇게 전하라고 하셨어.”
최선을 다하라고?
감독 혼자서 영화를 찍을 수 없듯이.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이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리예요.”
속상한 마음에 다소 날카롭게 말이 나가버렸다.
“지금, 지금……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제일 중요한 감독이 촬영을 못 하게 됐는데, 배우로서 뭘 최선을 다하냐고요.”
점차 힘이 빠져서 웅얼거리며 말을 맺은 나를 장진홍이 잠자코 쳐다보았다.
축 처져서 소파에 앉은 나를 지켜보던 장진홍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 부탁하신 것도 있지. 스승님이 그러셨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게 촬영을 부탁한다고.”
“……!”
“장 감독님한테요?”
“네. 이번 영화 들어가기 전에 단단히 부탁을 하신 내용입니다.”
문희성마저 놀라서 되물었다.
나는 멍하니 노백찬의 말을 전하는 장진홍의 입만 쳐다보았다.
자신의 몸이기에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노백찬은 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될 수도 있으니, 이번 작품을 어떻게 마쳐야 할지.
이미 알고 다 계획한 것이라는 게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저도 그 이야기는 같이 들었습니다. 증인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되어드리죠.”
“…믿지 못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장진홍 감독이 노백찬의 수제자라는 건 영화계에서 알만한 인물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투자 문제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일단 그림 제작사가 제일 큰 투자처이기도 하지만, 다른 투자자들도 장진홍 감독님으로 대체될 상황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계신 상태거든요. 다들 안 일어나기만을 바란 일입니다만…….”
“그렇군요.”
그 말에 노백찬의 의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라는 이 영화를 무사히 마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
이미 투자자들까지 다 설득한 후라는 걸 알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제가 제작사 대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저 역시 그분의 오래된 동료로서 이 영화가 꼭 무사히 완성되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네.”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대답하는 나를 잠시 바라본 김화진이 덧붙였다.
“시우군, 그게 그분을 위한 겁니다.”
“…….”
김화진의 명확한 말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김화진의 말이 맞았다.
이토록 앞을 내다보고 다 대비를 해두고 계획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노백찬에게 중요했다는 방증이었으니까.
아마 영화 제작을 중단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거겠지.
중단할 바에는 시작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러니 두 분께 오늘은 제가 협력을 부탁드리려고 한 겁니다. 스승님의 용태도 전해야 하지만, 저희 모두… 스승님을 위해서라도 다 같이 힘을 합쳐 이 영화를 완성 시켜 보자고요.”
“…….”
장진홍의 말에 지난 몇 달간 열심히도 읽었던 의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남긴 노백찬의 흔적.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더라도 남은 우리들은 그의 업적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게 노백찬의 바람이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우리의 바람일 테니까.
“스승님께 저도 미리 말은 듣긴 했지만, 이런 일이 안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벌어지고 말았죠. 저도 힘들지만, 노 감독님의 그 마지막 말과 표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며칠 잠자리가 사납더라고요. ……노 감독님의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결국 들 만큼.”
“장 감독님도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문희성이 그나마 장진홍을 위로했다.
그의 말에 장진홍이 고개를 저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니 두 분께 제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멍하니 장진홍 감독을 바라보았다.
믿어달라니, 나는… 장진홍 감독을 못 믿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제 의심이 조금 티가 났습니까.”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문희성도 희미하게 미소를 걸치며 말했다.
“이거 참. 제가 문 배우님 얼굴을 읽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이게 연륜이 쌓인다는 것일까요.”
“그런 것까지 노 감독님을 따라가시나 봅니다.”
별로 즐겁지는 않지만 애써 웃음 짓는 두 사람을 살피며 깨달았다.
어른들이 나서서 애써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구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굳어가려는 머리를 최대한 돌리려 했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노백찬은 모든 걸 알았다.
자신의 상태가 나빠지면 내가 스스로를 탓할 것이라는 걸.
그걸 예상하셨기에, 그리고 원하지 않았기에 당부까지 남겼다.
그에게 부정적인 모습만 남겨주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던 나는 점차 빠르게 뛰던 심장이 잦아드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 심지도 단단해졌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다.
빠르게 영화를 완성시켜야 했다.
최소한 그가 가기 전에 이 영화를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를 위한 길일 테니.
“감독님.”
“어, 시우야.”
“저희 빨리 촬영해요.”
아까와는 다르게 담담한 표정으로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장진홍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사정을 생각해줄 여유 따위 내게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요.”
“……그래. 그러자.”
이내 곧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달았다는 듯 장진홍도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김화진이 최대한 빠르게 모든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말해주었다.
“감사해요.”
일 분 일 초가 급했다.
시간이 더 지나가 버리기 전에. 이 영화를 반드시 완성시켜야 했다.
촬영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길고 긴 후작업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내일이라도 세트장 쓸 수 있도록 조치하마.”
“네.”
“스태프들에게 연락도 돌려야겠군요.”
“저는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됩니다.”
슬픔도 잠시, 대표실의 모두가 활기를 띠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