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5
5화
‘비상철또 777’
이상한 이름이군.
삼촌의 한쪽 손을 잡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극단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러서인지 디자인은 나쁘지 않았다.
“시우야, 원래 네가 얌전하기는 하다만. 여기는 삼촌이 사활을 건 곳이거든? 진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았지?”
“웅.”
“진짜, 진짜야?”
“빠리 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삼촌이 발걸음을 그제야 옮긴다.
무슨 일인지 맞잡은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이, 진짜 사활을 건 일이긴 한가 보다.
“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뭐라 뭐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삼촌이···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삼쭌, 삼쭌!”
“어?”
“어디 가?”
“어디긴 삼촌 일하러 간다니까 시우야.”
“아니! 연기하는 거, 여기 아냐. 쩌기 넓은 데.”
극장이란 무릇 야외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넓게 펼쳐진 곳이거늘.
왜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간단 말인가.
극장에 간다더니 이거 혹시 순 거짓말하는 거 아냐?
이런 놈을 믿고 따라가도 될지 미심쩍게 쳐다보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삼촌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시우야. 내가 지금 한시가 급하거든? 지금 겨우 생긴 기회인데. 삼촌이 얼른 가야 해. 빨리 가자? 응?”
“이익, 이거 노아라! 아냐, 이거 아냐!”
결국 버둥거리는 나를 들쳐 업은 삼촌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끝까지 버둥거렸지만, 계단 밑에 펼쳐진 넓은 공간을 보고는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삼촌이 앉혀준 의자에 앉아 멀뚱멀뚱 주변을 살폈다.
엄청나게 넓은 거실이군.
지하 밑에 이토록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나저나, 극장에 간다더니 여긴 어디지?
무대 같아 보이는 곳은 없는데.
잠깐··· 음? 저건 소품인가?
유심히 구석진 곳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조카라고?”
“네. 죄송합니다. 오늘 누나가 저한테 애를 맡기고 나가는 바람에···. 진짜 얌전한 아이거든요? 오늘 구경만 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좀······.”
“흐음, 너 연습할 때는 다른 애들이 보고 있지 뭐. 빨리 연습부터 시작하지.”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자가 이곳의 책임자인가?
삼촌이 뭐라고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신기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커다란 검은 박스들이 구석에 쌓여 있었다.
저건 또 뭐 하는 물건인가 싶어서 다가가 만져보았다.
무슨 박스에 망사를 씌워놨담.
이 밖에도 보면대로 보이는 커다란 장비들을 지나, 연극 할 때 쓰이는 소품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발견했다.
낡은 듯한 의자와 테이블, 너저분해 보이는 식탁보를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뒷짐을 지고 슬슬 앞으로 전진하는데 이마에 뭐가 콩 받혔다.
“아야!”
“아가야, 거기는 벽이야! 거울이라서 몰랐나?”
“이모, 여기 어디?”
한동안 매일 같이 어머니의 초대 손님이 왔을 때 배웠다.
연상의 여자들은 ‘이모’라고 불러야 한다고.
“응? 여긴 우리 극단 연습실인데. 와······. 너,”
“뭐야뭐야?”
그나저나 거울?
이게 다 거울이라고?
“와, 무슨 애기 미모가.”
“너무 귀여운데? 아가야, 이름이 뭐야?”
나에게 다가온 낯선 이들이 뭐라 말을 붙였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이 커다란 게 다 거울이란 말인가?
사방이 트여 있기에 연습실이 끝도 없이 넓은 줄로만 알았건만.
“그런데 웬 애가 여기 있어?”
“동욱이가 데려왔대. 조카라는데?”
“동욱이? 아, 오늘부터 대타로 들어온댔지. 아니, 민석이 걔는 갑자기 교통사고가 날 게 뭐람.”
“몸은 괜찮다잖아. 동욱이가 운이 좋지. 그 배역 대사가 긴 건 아니지만 꽤 눈에 띄잖아.”
나는 손을 들어 사방에 둘러싸인 거울을 만져보았다.
잘난 내 얼굴이 그대로 비추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인 듯했다.
실로 굉장한 기술이로고.
이리 깨끗하고 커다란 거울이 다 있다니.
이 정도 물건이면 값이 꽤나 나갈 터인데.
이토록 비싼 거울을 이렇게 사방에 깔아놓다니 제법 큰 극단인 모양이었다.
‘오스카가 이걸 보면 뒤집어지겠군.’
나는 거울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 노아 바텐베르크가 9살이던 때였다.
공작 부인이신 어머니에게 초대장이 하나 도착했다.
런던 최고의 극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글로브 극장’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항상 성으로 배우들을 초청하던 어머니가 그날은 웬일인지 그 초대에 응하셨다.
그리고 나와 둘째 형을 데리고 런던 시내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
휘황찬란한 빛 아래 펼쳐진 극장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바텐베르크 가의 파티장보다 더욱 호화롭게 꾸며진 것만 같은 야외극장.
생화가 무대 위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무대에는 횃불이 커다랗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곳곳에 촛불이 놓여 있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건만, 그곳은 다른 세상인 것처럼 환했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내 운명을 깨달았다.
그날 ‘글로브 극장’에 오른 극은 셰익스피어의 .
심지어 처음으로 이 위대한 극이 공개되던 날이었다.
따분하기만 했던 역사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글씨 몇 줄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등장인물.
그들이 한마디 말을 뱉을 때마다.
호흡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가 내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았다.
한 장면이 끝을 맺을 때마다 나는 뱉은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를 어린 나이에 나는 그들과 함께 나 홀로 호흡을 맞췄다.
나중에야 그들이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배우라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 어린 나는 그들이 실제 이야기 속 사람들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배우가 될 거야, 올리버.’
그날 이후로 나는 유일한 친우인 나의 하인, 올리버에게 틈만 나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올리버는 내가 그럴 때마다 솜씨 좋게 내 입을 틀어막아 버렸지만.
‘한 번만 더 그런 소리를 입 밖에 꺼내시면, 제가 경을 칩니다. 도련님.’
‘으붑, 읍! 푸하, 어디 더러운 손으로 바텐베르크 공자에게 손을 대, 올리버?’
‘그럼 제가 도련님 세숫물을 어디 한 번 빼돌려 볼까요? 조찬 시간에 세수도 하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한번 내려가 보시죠.’
‘이익.’
노아 바텐베르크는 조용한 아이였다.
물론, 대외적으로.
나는 진정한 친우인 올리버 앞에서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은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다.
다만, 바텐베르크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살았을 뿐.
숨죽이고 살던 나는 ‘글로브 극장’에 다녀온 뒤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체감했다.
‘이게 내 길이야. 내가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길.’
하지만, 내가 연극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종종 어머니의 회랑에 나가 초청한 배우들이 공연하는 연극을 훔쳐보는 것 외에는 전무할 정도로.
대신 나는 따분한 공부를 하다가 틈틈이 극본을 끄적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
항상 말만 그랬지 성에 갇혀있다시피 생활하는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16세가 되던 해.
내가 쓴 극본을 빼돌린 올리버가 그것을 오스카 피트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말이다.
‘도련님! 큰일 났어요!’
‘왜, 또 무슨 일이야. 메리 하녀장의 치마가 홀라당 타버리기라도 했어?’
내 심드렁한 반응을 비웃기라도 한 듯 올리버는 제가 더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
‘오스카 극단장한테 연락이 왔다고요!’
‘······뭐?’
‘오스카 극단이요! 요즘 부흥하는 챔벌린 극단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 극단. 거기 극단장이 도련님의 극본을 보고 본인을 만나고 싶어 한답니다.’
‘말도 안 돼······.’
그렇게 나는 그날 밤, 홀린 듯이 창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했고.
런던 시내로 나가 오스카 극단에 들어갔다.
‘오, 이분이 그 천재적인 극본의 주인공이신가?’
극단장 오스카 피트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자자, 연습 시작합시다. 민석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대에 못 서게 되었다는 건 다들 알지? 대신 동욱이가 단역1을 맡게 되었다. 첫공까지 아직 한 달 남았으니 호흡 맞춰보자고. 다들 박수!”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저자가 연출인가 보군.
아까 삼촌과 뭐라 이야기를 나누던 이가 큰 소리를 냈다.
“와, 지동욱 첫 공연이네!”
“잘해보자!”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자리를 잡아가는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콩닥콩닥.
이 조그만 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려진 뒤로 이토록 생생한 연기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동양의 연극은 어떨까.
400년이 지났으니 방식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이미 이 문화권의 이야기가 꽤나 흥미롭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기에 기대가 더욱 컸다.
“조명 인.”
연습이 시작되고 나는 집중해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호오라, 저기서 저런 식으로.
-······!
서쪽이 객석이라는 설정인가 보군.
-······!
저 배우는 발성이 제법이야.
-······!
여배우들도 이리 연기를 잘하는데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말 많던 호사가들에게 저들의 연기를 좀 보여주고 싶군.
흥미롭게 공연을 직관하는데 한 배우가 중앙에 섰다.
“당신 정말 웃겨요. 꼭 개그맨 같네요.”
그리고, 매번 삼촌의 작은방에서 흘러나오던 문제의 대사가 나왔다.
나는 바싹 상체를 기울였다.
“칭찬입니까?”
어딘가 뻣뻣하게 굳은 삼촌이 드디어 처음으로 이 연습실에서 입을 뗐다.
인형도 저거보다는 낫겠군.
나는 혀를 끌끌 차며 팔짱을 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짧은 대사라는 점이었다.
아마 저것보다 더 긴 대사가 주어졌다면 저 형편없는 연기가 그대로 들통났을 것이다.
“비방으로 들리던가요?”
실로 엄청난 집중력이다.
저 목각인형을 상대로 저리 침착하게 연기를 이어나가다니.
나는 상대 배우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나마 저 배우 덕분에 삼촌의 연기가 묻히는군.
어느새 나는 그들이 연습하는 연습실 중앙에 꽤나 가까워져 있었다.
공연에 몰입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온 탓이었다.
크흠, 방해가 돼서는 안 되지.
나는 뒷짐을 지고 짐짓 관심이 없는 척 연습실을 휘 둘러보며 거리를 벌렸다.
한동안 흥미진진하게 연극 연습을 지켜볼 때였다.
곧 나는 와락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압빠! 가지마! 압빠아아!”
새로운 배우가 등장해 몸을 낮추고 혀 짧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린아이 역할인가 보군.
저 모습을 보아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다.
공연에서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어린 배역을 연기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
문제는, 너무 과장된 연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점이다.
‘저렇게 사고가 일차원적이라니.’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뒷짐을 지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까지 했다.
저 배우의 어린아이 연기는 익살스러웠다.
맞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들은 익살스럽고 방방 뛰는 존재이니.
다만, 저 배우의 연기는 너무 과장되어 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모든 대사와 행동에 익살스러움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어린아이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을 감추려고 저렇게 시종일관 과장된 액션을 보이다니.
해당 배우의 연기는 극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일관적이었다.
심지어 슬픈 장면에서조차 그러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경악했다.
400년이 지나 배우들의 실력도 발전할 줄 알았건만.
내가 전생에 만났던 천재 배우들이 보면 졸도할 것만 같은 실력이었다.
“잠깐 쉬었다 갑시다.”
연출가의 말에 삼촌이 땀범벅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한 게 뭐가 있다고 땀이 저리 났는지, 쯧쯧.
“시우야. 무대 구경 갈까?”
“무대?”
그래도 심성이 나쁜 놈은 아니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삼촌을 졸랑졸랑 따라 연습실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무거운 문이 열리자 쿰쿰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으.”
“하하, 지하라서 그래. 조금만 참자?”
“눼.”
코를 막아서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
이 냄새에 비하면 작은방에서 나는 먼지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군.
나는 코를 막은 채로 삼촌을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 오스카······. 그 양반이 이 광경을 보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텐데.’
항상 비가 오면 제대로 공연을 못 올린다고 투덜대던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훌륭한 실내 극장이었다.
높이 솟은 무대는 물론이거니와 그 앞에 촘촘히 놓인 작은 소파 자리는 귀부인들의 살롱에 놓인 것마냥 제법 훌륭했다.
그런데 규모는 상당히 작군.
과거, 내 방처럼 들락거리던 야외극장이 너무 컸던 탓일까.
이곳 극장은 상당히 단출한 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삼촌은 무대에 올라 뿌듯한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한 달 뒤면 내가 여기 선단 말이지.”
“익, 이익. 끄응!”
“헉. 시우야. 내가 잡아줄게.”
짧은 다리로 무대에 오르려던 나를 삼촌이 올려주었다.
빨리 좀 잡을 것이지.
탁탁.
눈앞에 펼쳐진 널따란 객석.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두 주먹을 꼬옥 쥐었다.
바라마지 않던 무대에 선 나는 삼촌을 휙 돌아보았다.
이거,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였나?
삼촌의 바지춤을 부여잡고 와락 외쳤다.
“압빠! 가지마! 압빠!”
쩌렁쩌렁하게 극장 안을 울리는 나의 목소리.
크으, 이거지.
연기가 이래야지.
드디어 아까 그 대사가 만족스럽게 들렸다.
아까부터 이렇게 시원하게 뱉어내고 싶은 걸 참느라 혼쭐이 났다.
꽤나 만족스럽게 나온 대사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뭐 하는 거야?”
뒤에서 서슬 퍼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