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목소리가 갈라지려는 걸 겨우 이겨내고 물었다.
프리덤 극단의 창립자가 왜 황금가면을 위했느냐고.
내 질문에 로엘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전해져 내려오지 않네요. 창립자와 그분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겠죠? 저희는 그냥 이 이름이 황금가면을 위한 거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그렇군.
역시나 황금가면의 정체나 신분, 그 배경에 대해서는 바이올렛이 언급한 적이 없는 모양이다.
그가 몰래 오스카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는 것 역시.
끝까지 비밀을 지켜준 그녀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말없이 떠난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이러나저러나 가슴 벅차는 일임은 틀림없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로엘.”
“천만에요. 저희야말로 영광이었어요.”
모든 촬영을 마치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는 로엘과 인사를 주고받다가 불쑥 그녀에게 제안했다.
“로엘, 나중에 또 여기에 오고 싶은데 이메일 주소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이런, 시우. 물론이죠. 오히려 저희 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지경인걸요.”
나는 소녀처럼 기뻐하는 로엘과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프리덤 극장에서 나오자 어느새 굵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연말 기분도 낼 겸 거리 이곳저곳은 아직도 크리스마스 시즌처럼 치장된 상태였다.
우리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가 김산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제 우리는 뭐해요?”
“또 하고 싶은 거 하면 돼요?”
우리의 질문에 김산호는 씨익 웃으며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건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멋들어진 멘트와 함께 남연수에게 봉투를 건네자, 내가 옆에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크리스마스 이미 지났잖아요.”
내 말에 스태프들은 모두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봉투를 받아든 남연수의 외침에 곧 웃음이 그쳤지만.
“우와! 우리 정말 여기에 가요?!”
김산호의 깜짝 선물은 공연 티켓이었다.
그것도 원래 남연수가 가고 싶다고 동그라미를 친 극장의 저녁 공연 티켓.
나는 이럴 거면 왜 가위바위보를 했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김산호는 프리덤 극장도 갔으니 된 거 아니냐고 받아쳤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보하는 미덕이라도 보여줄걸.
거참, 연장자 입장이 말이 아니었다.
뾰로통한 얼굴로 남연수를 따라다녔더니, 김산호와 남연수가 삐친 거냐며 놀려댔다.
아, 아니라고!
***
영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나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북적북적한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 새삼 일행이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때는 하루라도 빨리 제시카와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와 어머니, 삼촌하고만 들어왔는데.
한국에 돌아갈 때는 남연수와 그의 매니저, 그리고 열 명이나 되는 제작진들과 돌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행이 배, 아니 몇 배나 된 나의 감상은.
한 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서둘러 공항으로 오느라 아침도 못 먹은 터라, 공항에서 간단하게 도넛을 사서 우물거리는 중이었다.
탑승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제작진들이 부쳐야 할 짐이 많아 수화물 처리가 오래 걸린다는 말에 겸사겸사 공항에 함께 도착해 있었다.
“시우야, 아쉽지 않아?”
어머니가 내게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건네주시며 물었다.
나는 꼴깍꼴깍 우유를 들이켠 후,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아니, 얼른 돌아가서 아빠 보고 싶어.”
내 말에 퍽 감동스러웠는지 어머니가 날 꼭 껴안아 주셨다.
집에 가서 퇴근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그가 가져올 치킨을 함께 뜯으며 TV를 보고 싶었다.
항상 보고 싶은 방송이 있어도 나와 함께 내가 보는 드라마에 집중해주는 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비상철또 777의 삼촌들.
커다란 TV와 함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문희성.
한국에 가면 찾아갈 사람이 참 많았다.
전생에서는 이토록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없었는데 신기했다.
항상 바텐베르크 성은 빨리 돌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곳.
그곳에 머물 때는 항상 완벽해야 하는 곳.
이런 식의 강박관념이 있어서 그런지 한 번도 먼저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과거 내 고향은 런던이었지만, 뒤숭숭한 기억만 가득하긴 했다.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났을 때의 환희나, 글로브 극장에서 처음 연극을 보았을 때 느낀 해방감 같은 기억도 있지만.
프리덤 극장으로 탈바꿈한 오스카 극장에서는 달콤쌉싸름한 일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한국의 집에는 나를 반기는 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가.
단연 영국보다 내 팬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고.
동료나 친구들, 가족들처럼 좋은 사람들이 한국에 가득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저기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줄 기념선물이 들어있었다.
다들 분명 좋아하겠지?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도넛을 마저 먹었다.
***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집으로 곧장 향했다.
아버지와 눈물의 상봉을 하고 눈물 젖은 치킨을 뜯었다.
느글거리는 영국의 튀김에 질릴 대로 질린 우리지만, 오랜만에 먹는 아버지의 치킨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개운함마저 느끼며 열심히 치킨을 먹었다.
닭에 양념 된 적당히 칼칼한 풍미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어머니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무려 나에게 콜라를 500ml나 허용하셨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는 곤히 잠에 들었다.
오늘만큼은 항상 내가 청하는 어머니의 자장가마저 필요하지 않았다.
새벽에 도착했기에 나는 정신없이 잠들어서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사실 내가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특별히 가게에 안 나가시기로 한 아버지가 살살 부드럽게 흔드는 손길에 일어난 것이다.
“시우야, 시우야? 이제 일어나야지. 오후가 되려고 한다.”
“으웅, 더 잘고야…….”
평소답지 않게 잠투정까지 해버렸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여정이 이 작은 몸에 꽤나 큰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넘게 호텔에서 지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아늑한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힘들긴 했다.
내 잠투정에 푸스스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오늘 의상 보러 가기로 한 날인데? 안 갈 거야?”
“……!”
나는 그 이야기에 바로 벌떡 일어났다.
눈곱이 그대로 붙어있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휘저었다.
얼른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하, 얼른 준비하고 나가자. 엄마도 이제 일어났어.”
“우웅!”
나는 까치집을 하고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욕실로 향했다.
말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서 나는 의욕 넘치게 옷을 껴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내일모레에 있을 연기대상에 입고 갈 옷을 맞추러 의상실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원래 그냥 백화점 같은 곳에 가보려고 했는데, 김상철이 먼저 아역 배우들이 곧잘 가는 곳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아이들이 정장이나 턱시도 같은 옷은 잘 입지 않으니, 시중에 나가면 생각보다 종류가 너무 적을 거라고 말이다.
“몇 시 예약이지?”
“두 시. 아직 여유 조금 있어. 당신 준비 끝나고 바로 나가자.”
어머니 역시 평소와 다르게 허둥지둥 준비를 마치셨다.
나와 함께 영국에 머무셨으니 여독이 아직 안 풀리셨을 테지.
삼촌 역시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드러누워 하품을 늘어지도록 하고 있었다.
나는 삭삭 커다란 빗으로 머리를 한번 빗어 넘기고 나서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나 준비 완료!”
***
우리 네 식구는 김상철이 미리 예약해 놓은 의상실로 향했다.
김상철이 설명하길 연예인들을 위한 셀렉션 숍이라고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한시우가 미리 가겠다고 전해뒀으니 내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준비해놨을 거라 했다.
김상철은 내 옷 수치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미리 이를 가게 측에 알려주었다니 사이즈 때문에 헤맬 일도 적을 거란다.
고급진 외관을 하고 있는 의상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휑한 내부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어머. 드디어 우리 샵에 시우 군이 왔어!”
“꺄, 너무 귀엽다.”
“우리 다 엄청난 시우 군 팬이에요. 오늘 휴가인 막내도 휴가 반납하고 출근했을 정도라니까?”
이들 무리 중 최고참, 이곳의 원장으로 보이는 디자이너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맞게 된 격한 환영 인사에 방긋 웃으며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시우입니다.”
그러자 꺄악 소리와 함께 귀엽다는 소리가 휘몰아쳤다.
훗, 오늘도 아주 성공적인 스타트였다.
“그럼 이쪽 행거에 걸린 옷부터 한번 살펴볼까요?”
“네.”
“옷은 다 턱시도 종류인가요?”
“네.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고, 아무래도 나이대가 어리다 보니 검은색 말고도 다양한 컬러를 준비해봤어요.”
“키즈 라인 턱시도가 얼마 나오지 않아서 저희가 진짜 있는 물건을 죄다 쓸어온 거예요.”
직원들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행거를 삭삭 넘기며 내게 옷을 보여주었다.
노멀한 검정 턱시도부터 흰색 턱시도, 남색, 체크, 핑크까지 있었다.
체크가 들어간 턱시도는 조금 더 다양한 색상을 조합해 컬러풀하기도 했다.
나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종류에 조금 질려버렸다.
턱시도에 이렇게 변주를 줬을 줄이야.
“시우야, 이건 어때?”
“나는 이게 제일 나은 거 같은데?”
삼촌과 아버지도 얼른 나서서 한 벌씩 집어 들었다.
“어머, 아버님. 안목이 뛰어나시네요. 그거랑 비슷한 건데 이것도 괜찮거든요.”
“어, 이게 더 나은가?”
아버지는 그러다가 직원에게 잡혀 두 개를 놓고 고민까지 하셨다.
“엄마는 이게 제일 멋있을 거 같은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가족들이 모두 나서서 한 가지씩 제일 마음에 드는 골라 내게 내밀었다.
모든 옷걸이를 받아든 나는 조용히 탈의실로 향했다.
일단 입어봐야 옷 태를 알겠지.
“와아, 시우야 너무 멋있어!”
내가 탈의실에서 나오자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찍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는 애초에 이러려고 따라오신 것도 있었다.
원장도 사진 정도는 찍어가도 된다고 했고.
물론 다른 곳에 유포하지 말라는 소리를 덧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아버지는 소장 용도이기에 하나 마나 한 경고였다.
내 모습을 보고 직원들도 하나같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것도 좋은데, 이것도 좋은데요?”
“시우 군, 이번 해에 무조건 상 탈 거잖아요. 무대 위에서는 이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아, 당연하지. 저도 선인장 진짜 열심히 봤거든요. 시우 군 안 주면 상을 누굴 줘.”
벌써부터 연기대상이 시작이라도 한 듯 직원들은 내 수상을 확신했다.
이거 연수 형이 들으면 눈물 한 바가지는 쏟아내겠구만.
내가 속으로 남연수를 떠올리기 무섭게 다른 직원이 남연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왜, 같은 작품 연수 군도 유력 후보긴 하잖아요.”
“그러네. 둘 중 한 명이 되겠죠?”
“그럼 우리가 수상자에 걸맞는 옷을 최대한 잘 골라드려야겠네요!”
남연수의 이름을 언급은 하지만, 이미 수상자는 나라는 듯이 입을 모아 말하는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옷 여러 벌을 입어보았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 중에서 날 만족시키는 옷은 단 한 벌도 없다.
이거 안 되겠군.
“모두 Nope! 제가 한번 골라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