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 Knight In A Ruined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102)
폭발의 기세에 눌려 잠시 멈칫했던 기사들.
잠시 후, 그들은 위협이 되지 않는 공격에 움츠러들었음에 더욱 분노하며 기승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체 있는 공격은 몸을 상처입히지만, 실체 없는 위협에 움츠러드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기에.
그때, 늙은 기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멈추게!”
“왜?”
모루가 옆에서 성마른 태도로 물었다.
“저놈들이 다시 함정을 작동시키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이대로 들어가도 되겠······.”
“지금 그걸 생각할 때인가!”
라슈카가 그치고는 드물게,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 태도에 늙은 기사가 잠시 입을 다물자, 라슈카는 다급히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함정을 다시 작동시키기 전에 잡으면 돼! 이렇게 거대한 유적의 함정이 간단히 꺼지고 켜질 리가 있나!”
근거라고는 없지만, 얼핏 듣기에 논리적인 말이었다.
이를 깊게 생각해보기도 전, 그가 설명을 이었다.
“거기다 어쩌면, 놈들을 잡으면 유적을 다루는 비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아까 그놈이 문을 여는 것 못 봤나! 함정을 멈추는 건 또 어떻고!”
마지막 말이 결정적이었다.
유적을 다루는 비법이라는 엄청난 보상이 다른 기사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탐욕이라는 열매를 낳았다.
그들 역시 조금 전 그 광경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손을 얹고 있었을 뿐인데 저절로 문이 열리는 그 모습은, 마치 유적의 주인과도 같지 않았던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아직도 수백 수천 개의 유적이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이 유적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을까?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쫓아!”
“우리는 이쪽으로 가서 옆을 막는다!”
“좋아! 우리는 계속 직진한다!”
그들은 행여나 아르센 일행이 다른 길로 돌아오는 것을 막고자 두 갈래로 갈라져 추적을 시작했다.
* * *
“후욱, 훅.”
바즈칼은 호랑이를 재촉하며 뒤를 보았다.
이리저리 꼬인 통로를 달리는 아르센, 그리고 옆에서 달리고 있는 마룬.
그 바로 뒤에서는 몇몇 기사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라슈카가 있었다.
“형님!”
“알아!”
아르센은 달리는 상태를 유지하며 허리를 틀어 투창을 던졌다. 이번에는 일반 투창으로.
라슈카는 의외로 제법 실력이 있는지, 들고 있던 방패로 능숙하게 투창을 튕겨냈다.
투창 공격으로 재미를 보기 어려우리라 판단한 아르센은 다시 몸을 돌려 진의 속도를 올렸다.
“반격해! 도망가게 두지 마!”
라슈카의 외침이 들리고, 곧바로 뒤쪽에서 투창이 날아왔다.
보통 진을 몰며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마침 아르센이 자나크와 싸우며 얻은 유물의 기능이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기에 딱 적합했다.
그가 얻은 물건은, 투사체 공격을 감지하는 팔찌였으니.
팔찌가 부르르 떨리며, 아르센에게 공격이 온다는 사실을, 그리고 공격의 목표가 어디일지를 알렸다.
덕분에 아르센은 앞을 보고 진을 모는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날아오는 투창을 쳐낼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투창까지 쳐내자 뒤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미친 새끼!”
“저게 도대체 뭐야?”
실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멋진 기예였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쳐낼 수는 없었다.
이는 마치 눈을 감고 소리에 의지해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체력적으로는 괜찮을지언정 심력 소모가 장난 아니었던 탓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계속해서 진을 몰아 달리던 아르센에게, 귀걸이를 통해 목소리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엘로이즈가 초조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대답해, 대답해, 대답해, 대답해······.] [들려.] [대답······여긴 다 도착했어! 어디야? 다치진 않았고?] [거의 다 왔어. 잠시······.]그때, 다시 뒤에서 투창이 날아들었다.
엘로이즈와 대화하는 중에 이것까지 쳐내기에는 집중력이 부족했기에, 아르센은 어쩔 수 없이 진을 옆으로 몰아 공격을 피했다.
그 틈을 타서, 달려온 모루가 망치를 내려찍었다.
“죽엇!”
아르센은 두 손으로 도끼를 들어, 내려찍는 망치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둘러 그 궤도를 비틀었다.
굉음이 울리고, 모루가 신음을 흘리며 진을 뒤로 물렸다.
아르센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이 저릿거리는 것이, 행여나 도끼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상대의 힘이 아르센보다도 명백히 위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아르센의 얼굴이 슬쩍 찌푸려졌다.
그때, 옆에 있던 바즈칼이 호랑이를 몰아 모루의 옆으로 접근해 옆구리를 찔렀다.
“이거나 먹어, 새꺄!”
“큭!”
모루는 생각 외로 맥없이 옆구리를 찔리더니,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한 걸음 물러섰다.
깊이 찔린 것은 아닌지 잠시 옆구리를 감싸 쥐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르센에게는 큰 정보가 되었다.
‘반사신경은 둔해!’
모루의 힘은 아르센조차 압도할 정도였지만, 그에 비해 움직임이나 반응은 놀랍도록 느렸다. 평범한 기사 기준에서도.
혹시 상대가 정수를 취한 고위 기사가 아닌가 잠시 의심했지만, 아마도 근력이 강해지는 특기를 가졌을 뿐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하여 안심한 것도 잠시, 아르센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마룬과 바즈칼이 잠시 아르센을 돕고자 걸음을 멈춘 사이, 상대는 이미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따라온 것은 기사 여섯 명, 그리고 병사 십여 명 정도, 나머지는 보이지 않았다.
마룬 역시 백병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어서인지, 활을 진에 건 뒤 미늘창을 빼들었다.
“너희가 전부냐?”
“그럴 리가. 이미 이 유적은 우리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개미 새끼 하나도 못 빠져나가게 포위 중이지.”
그렇게 대답한 뒤, 라슈카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기분은 어떤가? 다른 사람이 알랑거릴 땐 재밌었나? 어린 나이에 힘이 좀 강하니까 세상이 다 네 것 같았지? 응?”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증오가 느껴지는 이죽거림.
아르센은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르센이 대답하지 않자 시시해졌는지, 라슈카가 조금 맥빠진 어조로 말했다.
“항복하는 게 어때? 이 유적은 그렇게 갈림길이 많지 않아. 구조상 도망갈 곳은 없어. 순순히 협조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그 역시 아르센이 진심으로 항복하리라 믿지는 않는 듯했고, 그냥 혹시나 일이 쉽게 해결될까 싶어서 던져보는 듯했다.
이는 사실 틀린 생각이 아니어서, 아마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더라도 아르센은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상, 저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아르센 일행 중 그 누구도 살려보낼 수 없을 테니.
“포위망이라면, 다른 놈들도 전부 다 들어온 모양이군?”
“그건 왜······.”
상대의 대답을 기다려줄 필요는 없었다.
아르센은 바로 옆에 선 마룬과 바즈칼에게 작게 속삭였다.
“바로 뒤로 돌파합니다. 마룬 경. 제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바즈칼, 너도.”
그렇게 지시한 후, 아르센은 작게 중얼거렸다.
“함정 작동.”
-명령 확인. 함정 기능을 다시 가동합니다.-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유적 안에 지옥이 열렸다.
유적 전체로 퍼지는 은은한 울림.
상대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감정이 어린 순간, 아르센은 곧장 기승수를 뒤로 돌렸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새도 없이, 아르센의 도끼가 포위망을 구성하던 기사 한 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에이, 빌어먹을 놈들. 얼마나 도망가는 거야? 그래 봐야 유적 끝에서 포위당할 텐데.”
기사, 라티가 투덜대며 열심히 자신의 진을 몰아 달렸다.
그들은 아르센 일행을 쫓는 패거리 중 퇴로를 막는 패거리에 속해, 다소 외진 길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옆에서 함께 달리던 그의 의형제이자 동료, 로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조금만 힘내자구. 그놈들 장비 차린 거 못 봤어?”
“봤지. 일개 병사들까지 전부 유물을 두른 거.”
상대가 가지고 있던 전리품, 그리고 그들의 무장 상태까지 직접 보았던 만큼, 이들 범죄자 패거리는 머리끝까지 탐욕이 차오른 상태였다.
아르센 일행이 세상 끝까지 도망가더라도 잡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힘차게 달리던 도중, 로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위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군, 놈들은 도대체 이곳의 함정을 어떻게 끈 걸까?”
“그러게 말이야.”
그들 역시 과거 이 명성 높은 유적을 한번 기웃거린 적이 있었지만, 입구의 가벼운 함정 몇 개에 다친 뒤 기겁하고 도망간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놈들 잡으면 어떻게 이걸 껐는지도 알아봐야······.”
말하던 도중, 유적 전체가 기묘하게 울기 시작했다.
작지만 깊은 공명이 땅과 기승수를 통해 그들에게까지 전해졌기에, 추격자들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누구도 멈출 것을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이것이 동물이라면 타고나는 생존 본능에 의한 것임을 깨닫는 이는 없었다.
“뭐지, 이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 조심해야······.”
로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들은 울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곧장 알 수 있게 되었다.
곧바로 비극이 시작되었기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 있던 벽이 열리며 그 안에서 검붉은 액체가 쏘아졌다.
바로 그 옆에 서 있던 병사 세 명이 이를 뒤집어썼는데, 액체는 병사들의 몸에 붙자마자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손으로 불을 털어내려 애썼지만, 이는 물을 손으로 잘라내겠다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는 행위였다.
이 점성 있는 액체는 떼어지기는커녕 끈적하게 그들의 몸에 달라붙었고, 오히려 자신을 털어내려는 손에도 옮겨붙으며 그 위세를 더했다.
잠시 후 불이 꺼졌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기이할 정도로 새하얗게 물든 잿더미뿐이었다.
무지한 현대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불타는 물’은 뼈조차 남기지 않고 태우는 그 악성(惡性)으로 고대로부터 악명이 높았다.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다른 병사들에게도 악마의 손길이 여지없이 찾아왔다.
우선 병사 한 명의 기승수가 밟고 있던 바닥이 발의 크기에 맞춰 사라지며 발목을 삼켰는데, 발이 빠지자마자 칼날이 회전하여 안에 들어온 발목을 잘라냈다.
당연히 한쪽 발이 잘려 나간 기승수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병사 역시 기승수에서 떨어졌다.
넘어진 병사는 잠시 허리를 쥐고 신음한 뒤 자연스럽게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천장에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준비가 된 수십 개의 금속 송곳들이었다.
그는 곧장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경고의 의미가 담긴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지목당해 수줍음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곧바로 그 송곳이 쏘아져 병사의 입을 다물게 했다.
목을 찢고 척추까지 부순 탓에, 비명은 목 안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맴돌다 사라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를 따라갈 길동무는 많았다.
천장에서 튀어나온 송곳은 한 개가 아니어서, 병사의 주위에 있던 동료들 역시 송곳의 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끄아아아아악—-!”
“제발 살려-!”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는 무기와 방패로 이를 쳐내려 했지만, 송곳은 그 재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와 관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덕분에, 송곳은 마치 짚더미를 뚫듯 방패와 갑옷을 뚫으며 병사들의 몸을 유린했다.
모든 송곳이 떨어진 후,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어지고 턱과 배에 구멍이 난 병사 하나가 그들 중 가장 멀쩡한 사람이 되었다.
그 외에는 살아있는 자가 없었던 탓이다.
“애아이(대장님)······!”
박살 난 턱으로 처절히 외치며, 라티를 향해 사지 중 마지막으로 남은 왼손을 내미는 병사.
그 움직임으로 생존을 감지했는지 송곳이 하나 더 떨어지며 비참한 생을 마무리해 주었다.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꾹 감은 라티는, 이내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함정과 함정 사이, 안전지대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여기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온갖 함정의 소리는, 이 사태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었기에.
결국 그는 가장 의지가 되는 의형제, 로크를 불렀다.
“어떻게 하지, 로크?”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로크?”
라티는 재빨리 로크가 있을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미친······!”
라티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의형제는, 송곳이 떨어지는 동안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망가고자 진을 몰았던 모양이었다.
이미 그를 공격했던 무언가는 다시 벽 안으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로크의 몸도 그가 타고 있던 진도 열 조각 이상으로 분리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죽어 남긴 교훈은,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는 라티 역시 똑같은 꼴이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제발.”
이제 혼자 살아남은 라티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제발, 아무나 나 좀 살려줘······!”
라티는 철이 든 이래 처음으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와 같은 일은 유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괴물이 일어나, 침입자를 잡아먹기 시작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