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90
190. 기적 II
서정우는 이병훈을 번쩍 들고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이병훈의 옷을 벗기고 욕실 바닥에 엎어놓은 후에 따로 챙겨온 장비를 꺼냈다.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는 30센티미터쯤 되는 길이에 여러 개의 관절로 이루어진 장비다. 핵심 부품은 광물형 몬스터에서 추출한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장비의 양옆에는 몸에 감을 수 있는 고정장치도 달려 있었다.
“내가 쓰던 상태 그대로네.”
각성자 특수부대에서 제대한 후에는 이 장비를 쓸 일이 없었다.
그는 제대 후에도 생존자를 구출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가 구출하는 건 대부분 일반인 생존자다. 일반인이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이 장치가 필요할 정도로 다치면, 보통은 구출하러 가기도 전에 죽는다.
그가 이병훈의 등을 확인했다. 허리와 등 사이에 수술 자국이 몇 개 보였다.
‘이건 이미 다 아물어서 레드 포션의 영향을 안 받겠어. 딱 좋은 상태야.’
이병훈에게 주사한 수면제만으로는 지금부터 생기는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
그는 강력한 국소마취제를 이병훈의 척추에 주사했다. 그 마취제에도 몬스터 추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 후에 회복 장치를 이병훈의 등에 붙였다.
성공하려면 척추뼈의 크기에 맞춰 만들어진 각각의 모듈을 정확한 위치에 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조준이 빗나가면 엉뚱한 부분을 회복시키게 된다.
서정우는 손으로 뼈를 만져가며 장비의 위치를 조정했다. 실수한다고 해서 이병훈이 죽는 건 아니지만, 그 실수를 복구하려면 레드 포션을 한 병 더 써야 한다.
“난 이 느낌이 참 싫더라.”
서정우가 척추를 따라 장착한 여러 개의 모듈을 손으로 콱콱 눌렀다. 그가 누를 때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작은 송곳이 여러 개 튀어나와 척추에 박혔다.
장치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지만, 여기는 욕실이다. 흔적을 지울 방법이 많다.
서정우가 장치의 상태를 확인했다.
‘빗나간 거 없이 잘 박혔네.’
레드 포션의 회복력은 유한하다.
팔이 잘려도 레드 포션을 그 자리에서 사용하면 도로 붙일 수 있다. 그런데 팔다리가 다 잘려나간 상태라면 한 병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문제는 레드 포션은 연속해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스킬처럼 레드 포션도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다.
그래서 손상된 척추를 치료할 때는 상처를 정확한 위치에 치료가 가능한 만큼만 내야 한다.
서정우가 레드 포션을 장비에 넣었다.
곧바로 레드 포션이 바늘처럼 가느다란 관을 타고 새로 상처 낸 곳에 정확히 주입됐다.
레드 포션은 다른 상처에 사용해도 몸 전체에 영향을 끼치지만,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라면 상처에 정확히 사용하는 게 좋다.
순식간에 포션 병이 텅 비었다.
서정우가 말했다.
“오랜만이라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 * *
이수현은 밤늦게 퇴근했다. 그녀가 이병훈의 침실 문을 열었다.
이병훈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수현이 그 옆에 서서 이병훈을 내려다보았다.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밤은 잘 주무시네. 다행이다.”
* * *
이튿날 아침에 이병훈이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아쉬움 가득한 한숨이 나왔다.
“후우. 꿈이었나?”
철가면을 만난 건 기억하지만, 눈을 떠보니 평소 아침처럼 침대에 누워 있다.
“꿈에 철가면이 나와서 다시 걷게 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얼마나 걷는 걸 원했으면 그런 꿈을 다 꾼 거지? 이거 창피해서 애들에게 말도 못 하겠어.”
척추가 마비된 사람이 휠체어에 혼자 타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그는 현관 안쪽에 외부인을 두지 않은 지 꽤 됐다.
대신에 그가 쓰는 휠체어에는 혼자 탈 수 있게 도와주는 첨단 보조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그는 휠체어를 조작하기 위해 침대 옆의 리모컨을 향해 팔을 뻗었다. 평소보다 리모컨이 쉽게 잡혔다.
“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몸쪽으로 돌렸다.
그는 지금 상체를 조금 일으키고 있다.
이럴 리가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허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난 일 년간 그런 상태였다.
“어어?”
그가 몸을 일으켰다. 허리 근육이 약해져 단번에 일어나지는 못했지만, 상체를 세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어어?”
어젯밤에 철가면을 만났던 때가 다시 생각났다. 그때 철가면이 했던 말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 한숨 자고 일어나면 신세계가 열릴 겁니다.
이제야 그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숨이 거칠어졌다.
“허억! 허억!”
바짝 긴장하며 다리를 들어보았다. 다리가 움직였다.
“허어억!”
이쯤 되면 현실을 안 믿을 수가 없다.
그가 조심스럽게 침대 옆으로 다리를 내밀었다. 발끝에 바닥이 닿았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다리의 근육이 예전보다 줄어있었지만, 그의 몸에 맞춰 만든 전자동 물리치료기를 그동안 꾸준히 사용한 덕분에 일어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가 창문을 돌아보았다. 커튼이 닫혀 있었다. 커튼 제어 리모컨을 찾아 버튼을 눌렀다. 커튼이 좌우로 부드럽게 열렸다.
이병훈이 창가로 걸어갔다. 일 년 만에 걷는 걸음인데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창가에 서서 밖을 보았다. 넓은 정원에서 개 두 마리와 놀고 있는 딸이 보였다.
그는 전에는 그 모습을 휠체어에 앉아서 보았다. 그런데 이제 두 다리로 서서 보고 있다.
“이 눈높이에서 이 모습을 볼 날이 다시 올 줄이야….”
개 한 마리가 이병훈을 돌아보고 꼬리를 열심히 흔들면서 짖었다.
“컹컹!”
다른 녀석은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수현이 개들을 불렀다.
“얘들이 왜 이래? 야. 앉아! 앉으래도? 왜….”
그때서야 이병훈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었다. 눈만 동그래졌다.
“아빠?”
이병훈이 예전처럼 서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봐도 이병훈이다.
이수현이 갑자기 현관을 향해 달려갔다.
이병훈이 돌아섰다.
“꿈이 아니야. 다시 일어섰어. 이건….”
그가 아는 현대 의학으로는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될 수가 없다.
“기적이야.”
그의 시선이 탁자 위로 향했다. 그곳에 메모지가 한 장 있었다.
[비밀 꼭 지키시고, 잔금도 잊지 마시고.]잔금이라는 글을 보자 어젯밤에 철가면이 질문했던 다른 말도 생각났다.
– 다시 예전처럼 걸을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그때 이병훈은 확실히 대답했다.
– 철가면이 위험하다는 기사는 많이 봤지만, 설마 사기꾼일 줄이야.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십억, 아니, 백억이라도 내지.
이병훈은 크게 당황했다.
“어? 잠깐. 백억?”
너무 크게 불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 * *
이수현은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방금 본 모습이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서 계셨어! 내가 미쳤나? 헛것이 보이나?’
그녀가 이병훈의 침실 문을 벌컥 열렸다.
“아빠!”
이병훈이 이수현을 돌아보았다.
“수현아!”
이수현은 다시 얼음이 되었다. 그 자리에 서서 이병훈을 보기만 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건 이수현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 지금….”
의사들은 이병훈이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시 설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이병훈이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지.”
“어, 어떻게….”
이병훈은 쪽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비밀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면, 말을 맞춰줄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냥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없다.
‘수현이에게는 말해도 되겠지. 생각이 깊은 아이니까.’
아들도 생각했다.
‘성우는 입이 싼 녀석이라서 당장 자랑하고 다니겠지. 성우에게는 일단 숨기자.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 녀석이니까 숨기긴 쉽겠네.’
아들에게도 숨기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다.
“수현아. 일단 말을 좀 맞춰야겠다. 그동안 비밀리에 치료받은 거로 하자. 관련 업무는 네가 혼자 처리한 거로 하고.”
이수현은 당황했다. 이게 왜 비밀로 할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
이병훈이 서정우가 남긴 메모지를 들었다.
“사실은 말이다.”
* * *
이병훈은 온종일 흥분해서 지냈다.
허리와 다리의 근육이 약해져서 아직 뛰는 건 어렵지만, 집안에서 걷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었다.
낮에는 정원도 걸었다. 대낮에 밖을 걷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깨달았다.
“이 평범하게 좋은 걸 다시는 못 누릴 줄 알았는데.”
개 두 마리도 주인이 걷는 걸 보고 신나서 주변을 뛰어다녔다.
“너희들도 좋냐? 나도 좋다.”
* * *
서정우는 그날 밤에 철가면을 쓴 채로 이병훈의 집에 침입했다. CCTV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지만, 공간 분석 스킬을 사용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추가된 카메라는 없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이병훈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병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늘 다시 오실 줄 알았습니다.”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하루 사이에 태도가 너무 바뀌십니다? 진짜 면을 못 본 사람에게는 말을 까신다더니?”
이병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그거야…. 어젯밤엔 제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진짜 도와주러 오신 줄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는데 안 믿으셨지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이렇게 쉽게…. CCTV도 있고 개들도 있는데.”
CCTV는 3차원 공간 분석 스킬을 사용해 간단히 피했다.
이 집 개들은 경비견이 아니라 리트리버인데, 두 마리 다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침입자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사업 노하우를 물으시네?”
“아. 죄송합니다. 신세계교의 비전 기술이겠지요.”
서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네?”
“혹시 교주님이십니까?”
‘이 아저씨가 미쳤나?’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신세계교라니?”
이병훈도 당황했다.
“아, 아닙니까? 하지만 쪽지에 신세계가 열릴 거라고….”
“꽤 합리적인 분이라고 들었는데 왜 사이비 종교를 믿으실까?”
이병훈에게 누군가 찾아와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신흥 종교가 나타났다고 하면, 그는 코웃음을 칠 사람이다.
그런데 그 기적을 직접 경험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그의 몸에 실제로 일어났다.
서정우는 이병훈을 욕실에서 치료한 후에 흘러나온 피를 깨끗이 씻어서 제거했다. 루미놀을 이용하면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눈으로 봐서는 표가 나지 않는다.
이병훈의 등에 야전 긴급 척추 회복 장치를 사용했을 때 생긴 상처는 레드 포션을 썼을 때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이병훈은 서정우가 어떤 방법으로 치료했는지 모른다. 거울에 등을 비춰봤지만, 이전에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 생긴 흉터만 보였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하룻밤 사이에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다리에 힘은 좀 없지만 걸을 수도 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기적과 신세계라는 단어를 결합했더니 신성한 힘을 실제로 쓸 수 있는 특별한 종교라는 결론이 나왔다. 평소에는 그따위 건 믿지 않지만, 기적을 경험한 충격이 너무 커서 판단이 흐려졌다.
거기다 그 나름대로 논리를 세웠다. 그런 강력한 치유 능력이 하급 신관에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철가면이 신세계교의 교주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철가면은 그걸 헛소리라고 했다. 이병훈도 철가면이 그를 또라이 보듯이 본다는 걸 눈치챘다.
“신세계교가… 아닙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럼 이 기적은….”
“과학이죠. 아주아주아주 특수한 약을 사용했습니다. 굉장히 귀하고, 합성도 불가능합니다. 그걸 썼습니다.”
“그렇게 귀한 약입니까?”
레드 포션이 귀하긴 하다.
“상상 이상으로 귀합니다. 자세한 건 알려고 하지 마시죠. 중요한 건, 이제 걸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요.”
서정우가 손가락으로 철가면을 톡톡 쳤다.
“나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을 테지요? 추적해봐야 내가 누군지 못 찾습니다. 그리고 난 추적당하는 걸 아주아주 싫어합니다.”
이병훈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은혜도 모르는 놈은 아닙니다.”
“비밀 꼭 지켜야 합니다.”
“그동안 비밀리에 치료를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진실은 아들도 모르게 하겠습니다. 다만….”
이병훈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면 제 딸은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혼자 치료받으러 다녔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럼 따님 한 명만 허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 권병철에게 부탁해 이병훈이 어떤 사람인지 대놓고 조사했다.
권병철은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비밀은 지킬 것 같고.’
어차피 이병훈은 철가면의 정체를 모른다.
서정우가 철가면을 쓴 채로 씩 웃었다.
“그럼 이제 잔금 이야기를 합시다.”
“어… 잔금이….”
“백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