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32
48화 삼대 금지 (2) >
‘기회?’
사마착의 입에서 나온 기회라는 말에 나는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적어도 이런 장소가 아니라면 오히려 솔깃했을 거다.
나는 미심쩍은 생각에 사마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전음으로 언질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말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사마착이 그녀에게 뭔가 조치를 취한 듯 했다.
-점혈법으로 혈도를 짚어서 전음을 못할걸.
예상대로였다.
나는 녀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뭔가 들은 게 있어?’
-아니.
-듣지 못했다.
-네놈만 뚝 떨궈놓고 말하는 걸 무슨 수로 듣나.
한 명, 아니 한 검만 이야기해라.
셋이 동시에 이야기하면 정신없으니까.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내가 듣지 못하도록 했다라.
‘시험인가?’
-시험?
사마착은 내게 기회를 준다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단순히 그녀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게 아니라, 뭔가 숨겨진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가 관건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있는데, 사마착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게 두 가지 기회를 줄 것이다. 그것을 하고 하지 않고는 네 자유다.”
“……제 자유라하심은?”
“말 그대로다 네놈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기회를 잡겠다면 응하는 것이고 아니면 포기해도 좋다.”
포기해도 좋다고?
의아해하는데 사마착이 말했다.
“단 그리 된다면 내 딸 아이와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될 거다. 네놈 역시도 목숨을 걸고 맹세해야 한다.”
아……
역시 대가가 있었다.
포기하면 사마영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사마영이 어째서 저런 표정으로 쳐다보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사마착은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선뜻 포기한다면 사마영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니 말이다.
“기회를 잡겠느냐? 아니면 포기하겠느냐?”
어떤 시험인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괜찮겠어? 호락호락하게 딸을 만나게 해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겠지.
하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사마착의 의도대로 되는 거다.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호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찌 포기하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사마착이 웃음기가 사라졌다.
뭔가 아쉬운 눈빛이었다.
반면 사마영은 내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에 기뻤는지 입술이 실룩거리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넘긴 건가.’
적어도 사마영을 좋아한다는 각오는 보여준 것 같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문제는 다음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사방에서 밀려들어오는 폭포수가 빨려 들어가는 이 구멍.
구멍만 봐도 온몸에 오한이 돋을 정도였다.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 보여서 마치 나락과도 같았다.
“배짱이 없진 않구나. 좋다.”
그 말과 함께 사마착이 뒷짐을 지던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허리춤에 끼워져 있던 혈마검이 저절로 움직여서 빠져나왔다.
-어엇?
그렇게 빠져나온 혈마검이 사마착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검을 쥐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미 사마착의 손은 검병을 쥐고 있었다.
혈마검 녀석이 분명 난리칠 것이다.
-감히 누가 멋대로 이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혈관을 전부 터뜨려 줄 테…..응?
‘!?’
뭐지?
혈마검이 열을 내가며 뭔가를 하는 듯 한데, 사마착은 멀쩡했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평범한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데 오히려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마착이 아닌 혈마검이었다.
-허억!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리며 혈마검의 검신이 파르르 떨려왔다.
사마착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요검이로군.”
“……괜찮으신 겁니까?”
“요검 따위가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았더냐?”
-끄으으! 인간 놈이…어억!
사마착이 공력을 가할수록 혈마검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제대로 천적을 만난 것이었다.
-세상에……완전 멋진데.
소담검이 혀를 내둘렀다.
혈마검의 기가 한 풀 꺾인 것에 기뻐하는 듯 했다.
그런데 정말 대단했다.
육혈성 혈수마녀 한백하조차 검을 쥐고서 견디지 못했다.
초인이라 불리는 영역에 이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격이 다를 줄이야.
사마착이 아무렇지 않게 혈마검을 그네 다리 밑의 계곡물로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그러자 날카로운 예기로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이내 급류로 거칠게 내려오던 계곡물의 일부가 일순간이나마 갈라졌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예기로 이런 기예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달리 초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파르르르!
혈마검이 요동을 치며 검신을 떨었다.
사마착이 혀를 찼다.
“쯧쯧. 검심이 이리 강해서야 좋은 검이 아니로군. 이런 검의 힘에 의존하면 네놈한테도 그리 득이 되지 못할 게다.”
-탱그랑!
사마착이 혈마검을 손에서 놓았다.
검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래 쥘수록 공력을 소모해서 그런 듯 했다.
-젠장! 망할 인간!
혈마검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그때 사마착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심장 부근을 콕하고 짚었다.
“특이한 운기법을 익혔더구나. 벽을 넘지도 못한 녀석이 원기를 이렇게나 단련하다니 말이야.”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내 심장, 즉 중단전에 있는 선천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인가?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사마착이 내게 말했다.
“모를 거라 생각했느냐?”
“……느껴지시는 겁니까?”
“원기를 이리 단련했는데 모를 리가 있겠느냐.”
이걸로 확실해졌다.
사마착은 선천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경지에 이르면 선천진기마저도 알아차릴 수도 있는 건가?
사마착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정기신의 정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녀석이 원기만 이리 쌓아서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불균형한 상태로는 절대 벽은커녕 지금의 한계도 뛰어넘지 못할 게다.”
“네?”
의아해하는데 사마착이 갑자기 내 옷의 목덜미를 덥썩 잡았다.
“선배님?”
목덜미를 잡고서 들어올린 사마착이 그네 다리의 아래쪽으로 내 얼굴이 향하도록 했다.
심연처럼 보이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포수.
얼핏 눈동자를 굴려서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곳이 어딘 줄 아느냐?”
“……모릅니다.”
“지금은 멸문했지만 한때 이곳은 어떤 한 무가의 성지라 불렸던 곳이다.”
‘성지?’
이런 곳이 성지라고?
뭔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그네 다리까지 만들어놓은 곳을 보면 분명 사람이 오간 흔적이 있는 곳인 것만은 확실했다.
사마착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나 그 무가가 멸망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을 나라에서 쓰게 되었지.”
“무슨 용도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감옥이다.”
…….이건 굉장히 납득이 가는 말이다.
무저갱과 같은 저곳에 빠지면 무림인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거다.
폭포를 무슨 수로 거슬러 올라온단 말인가.
-이 괴물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 위도 뛰어다니던데.
물 위를 뛰었다고?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사마착이 구멍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외부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곳이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다. 이곳은 봉림곡이다.”
“보…..봉림곡?”
그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었다.
-왜 놀라는 거야?
소담검의 물음에 나는 기가 차다는 듯이 답했다.
‘……삼대 금지 중 하나야.’
-삼대 금지? 그게 뭐야?
중원 무림에는 여러 전설들과 설화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삼대 금지(三代 禁地)이다.
말 그대로 들어서서는 안 되는 세 가지 장소를 의미했다.
-여기가 그 중 하나란 말이야?
‘……그래.’
오래 전부터 금지라 불렸던 악인곡과 파곡야와 달리 봉림곡의 악명은 금상제의 무림 박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봉림곡(封林谷)은 이름을 풀이하면 숲을 가둔 계곡이란 말이지만, 실상 림(林)은 무림을 의미한다.
-무림인들을 가두는 곳이란 말이야?
그래.
그런 용도로 사용된 곳이라 들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그 당시에 이곳에 갇혔었다.
그저 감옥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소문에는 이곳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무림인들은 거의 전무하다고 들었다.
애초에 평범한 감옥처럼 살려서 내보내려고 이용한 곳도 아니었다.
-지금도 가두고 있는 거야?
그때가 수백 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이 그네 다리를 보면 수백 년 전의 것으로 보기에는 보수가 잘 되어 있었다.
그 말은 현재도 쓰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슥!
다시 나를 들어 올려서 내려놓은 사마착이 말했다.
“네놈이 얼마나 내 딸과 함께 하고 싶은지 그 의지를 보도록 하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설마 여기 들어가서 탈출하라는 그런 말씀이신지?”
“온전한 몸으로 들어가도 나오지 못하는데, 네 실력에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그 순간,
-파파파파팍!
사마착이 빠른 손놀림으로 내 몸에 타격을 가했다.
팔과 다리 부근에 손이 닿자, 혈에 박혀 있던 장침이 내공에 의해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부위와 달리 척추 쪽을 조심스럽게 손을 대더니, 작은 침 하나를 뽑아냈다.
-두드득!
침 여덟 개가 뽑히자 근육이 풀리면서 굳어 있던 몸이 움직였다.
갑갑했는데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게…..’
단전의 내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심장, 즉 중단전에 있는 선천진기마저도 뭔가에 막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술법을 부렸는지 알 수 없었다.
“네 몸에 박아놓은 서른여섯 개 중에서 고작 여덟 개의 침만 뽑았을 뿐이다. 내공, 원기는 일절 사용할 수 없을 게다.”
“그, 그 말씀은?”
“그 상태로 한 달 동안 봉림곡에서 버텨라.”
‘!!!’
이런 미친.
순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 했다.
내공과 선천진기를 쓰지 못하는 상태로 봉림곡에서 한 달을 버티라니.
무방비로 무저갱에 들어가라는 것이지 않나.
그때 사마영이 소리쳤다.
“너무해요! 내공을 봉하고서 여길 들어가라는 건 공자더러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잖아요! 이게 무슨 시험이라는 거에요!”
“불평하지 말 거라. 너 역시도 기회를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기회를 달라고 했지! 사지로 몰라고 한 적은 없어요!”
사마영이 악을 쓰고 대들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다.
그녀가 어떻게든 사마착의 이 말도 안 되는 시험을 바꿔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마착의 완고함은 그녀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하거라. 고작 이곳에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 빠진 녀석이라면 이 애비도 인정할 생각이 없느니라.”
“그럼 차라리 내공의 금제라도 풀어주세요.”
“기회를 주지 말라고 하지 그러느냐.”
“사위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죽어도 좋다는 거에요? 이 시험 저는 납득할 수 없어요. 차라리 다른 기회를 주세요!”
“그렇다면 이 애비를 꺾어라. 애비보다 강한 남자라면 인정하겠다.”
‘……..’
할 말이 없었다.
팔대 고수 사대 악인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괴물을 꺾으라고?
이건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아무 말을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자 사마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맨몸으로 던지려는 것도 참았느니라. 검 한 자루와 단검 하나면 생존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은 갖췄다.”
남천철검과 소담검을 말하는 건가?
-휴.
-어우.
사마착의 그 말에 두 녀석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나는!
혈마검의 욕설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때 사마영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해요.”
“하면 포기하거라. 이 애비랑 평생 같이 살자꾸나.”
“싫어요! 제가 평생 노처녀로 살다가 늙어죽어도 좋단 말이에요?”
“…….후우.”
사마착이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이내 말했다.
“애비는 분명 이야기했느니라. 한 달이다. 이 녀석이 한 달만 버티면 너희가 만나든 만나지 않든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부녀가 서로 물러섬이 없었다.
울먹거리는 사마영을 바라보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서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이 주신 기회를 달게 받겠습니다.”
“공자님!”
“그 약조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마영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빙그레 웃어 보이며 이내 몸을 돌렸다.
사마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마세요! 공자님. 이건 정말 아니에요. 그럴거면 차라리 제가 포….”
“소저. 괜찮아요. 기다려주세요.”
이 시험을 버텨내야만 사마착의 인정도 받고 사마영을 얻을 수 있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야! 너 진짜로 할 거야?
그럼 별 수 있나.
그나마 너희들이 함께 하는 게 위로가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앞으로 내달렸다.
“잠깐! 안 돼요! 안 된다고요! 공자니이이임!”
그녀의 외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지만, 이를 참아가며 억지로 그네 다리 밑으로 몸을 던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솨아아아!
사방에서 밀려드는 폭포 물이 튀며 앞이 물안개로 가려졌다.
그때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휘 위를 봐라.
이에 낙하하며 몸을 억지로 뒤집었는데,
‘!!!’
사마영이 내 뒤를 따라서 뛰어내렸다.
‘이런 미친!’
같이 뛰어내리면 어쩌자고.
“사마 소저!”
내 외침 소리가 폭포 소리에 묻혔다.
그런데 그 위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바로 사마착이었다.
곧바로 그 뒤를 따라온 사마착이 그녀를 강제로 붙잡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경공 실력으로 폭포수의 물을 박차며 다시 위로 올라가려했다.
그녀가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어쩌자고….’
그나마 곧바로 붙잡혀서 다행이었다.
그때 사마영이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휙!
그건 바로 혈마검이었다.
공력이 실려 있었기에 혈마검은 아래로 떨어지는 내게로 정확하게 날아왔다.
‘아!’
그녀가 뛰어내린 진짜 목적은 혈마검을 내게 주는 것이었나 보다.
혈관이 폭주해서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런 짓을 하다니 뭔가 마음이 짠하다.
-그럴 줄 알고 참았다.
혈마검이 내게 봐줬다는 식으로 말했다.
멀리서 사마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내 몸이 점점 이 어두컴컴한 구멍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들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슈우우우우!
어둡고 폭포수가 튀면서 생겨난 물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무저갱 그 자체였다.
최대한 몸을 수직으로 만들었다.
폭포가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 밑에 물이 고여 있거나 흐른다는 소리다.
내공이나 선천진기를 쓸 수 있는 온전한 상태로 떨어져도 충격이 꽤 클 텐데, 몸 전체로 수면에 부딪치면 크게 다칠 것이다.
-밑이 보인다!
충격을 버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이윽고 발 끝이 물에 닿았다.
-풍덩!
수면을 뚫고 들어가며 충격이 발 끝을 따라서 위로 빠르게 올라왔다.
다행히 예전에 계곡에 떨어졌던 경험 덕분에 미리 준비해서 그런지 전처럼 몸이 부서질 것 같거나 그러진 않았다.
애초에 외공도 부단히 단련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푸!”
밑으로 쑤욱하고 들어갔다가 발버둥을 치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생겨난 물살에 몸이 저절로 어딘가로 쏠리기 시작했다.
-우리 놓치면 안 되는 거 알지.
-꽉 잡아라. 운휘.
-아으! 역대 혈마들 중에서 이 몸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건 네놈이 처음이다.
귀하게 살았네. 좋은 경험했다고 쳐라.
나라고 이딴 곳에 오고 싶었겠나.
그나저나 앞이 너무 안 보인다.
계속 앞으로 쏠려서 내려가고 있는데,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선천진기로 안력에 집중한다면 뭐라도 보이겠는데.
-우린 보인다! 운휘 더 앞으로 가면 머리를 내밀 위가 없다.
남천철검이 내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물이 또 다른 구멍 같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젠장!’
여기서 또 다시 어딘가로 떠내려간다고?
만약 저 통로가 깊기라도 한다면 나는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을 수도 있다.
-우측으로 헤엄쳐! 우측 부근에 땅이 있어.
소담검의 외침에 나는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억지로 물살을 헤치며 헤엄쳤다.
격류에 몸이 쏠리면서도 조금씩 옆으로 몸이 가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서둘러!
알고 있다고.
물살이 거세서 어려운 것뿐이라고.
-다 왔다!
-손 뻗어서 뭐라도 쥐어!
녀석들의 보챔에 나는 최대한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돌덩이 같은 무언가가 잡혔다.
왼손에 쥐고 있던 혈마검을 앞으로 던진 후에 왼손으로 튀어나온 돌덩이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물살에 떠내려가던 상반신이 위로 올라와졌다.
다리를 올리자마자 몸을 옆으로 굴렀다.
녀석들의 말대로 땅이 있었다.
“헉….헉…헉!”
-같이 수장되는 줄 알았다.
-내 말이.
-……젠장. 그때 그 백련하라는 계집 아이를 이 몸의 부하로 인정해줄 걸 그랬다.
말하는 거 봐라. 새삼 후회되나 보지.
그나저나 진짜 힘들다.
내공이나 선천진기 없이도 회귀 전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몸 안에 박혀 있는 이것들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누워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나는 손을 더듬어 혈마검을 잡고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둠에 익숙 되어도 빛이 한 점 없어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소리 들리지?’
-들린다. 저쪽 동굴에서 들리는 것 같다.
‘동굴?’
여기에 다른 동굴이 있는 건가?
그런데 앞 쪽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란 불빛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횃불이었다.
정말로 동굴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횃불을 든 누더기 차림의 수염과 머리가 덥수룩한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
‘사람이 있었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횃불을 비추며 나를 발견한 세 명의 남자가 동시에 뭔가를 외쳤다.
“신입이다!”
“옷!”
“무기다!”
‘!?’
뭔가 반가워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세 명의 남자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돌도끼를 비롯해 돌을 갈아 만든 창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어째서 사마착이 내게 남천철검이나 단검을 가지고 봉림곡 안에 들어가게 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아보라는 것이었나.
‘후우.’
한데 사마착도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내게는 중단전과 하단전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나는 상단전의 염(念)을 일으켰다.
그 순간 오른손등의 일곱 개의 북두칠성 점 중 하나인 천권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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