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41
51화 탈출 (1) >
갑찬을 비롯한 사내들이 하염없이 동굴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한 심경으로 그들은 반쯤 자포자기했다.
내공을 쓸 수 없다고는 하나 일곱 명의 장정들이 들어가 세 명만 살아남을 만큼 그 괴물은 너무 강했다.
아무리 무공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 불안한 예감이 깨졌다.
-저벅저벅!
동굴을 울리는 소리에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누구 할 것 없이 동굴로 뛰어갔다.
동굴에서 물기에 젖은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왼쪽 눈을 감고서 외팔 사내를 안고서 당당히 걸어오는 그는 바로 소운휘였다.
“소 공!”
“저, 정말로 성공했어!”
“둘 다 살아 돌아오다니!”
모두가 그 순간만큼은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 * *
사흘이 지났다.
사화초라 불린 약초를 찧고 달여서 마시게 한지 나흘 째.
확실히 약초는 효과가 있었다.
사화초는 심장을 다스리는 약초라고 하였다.
첫날에는 미세하게 오던 경련이 사라지고 이틀째에는 보랏빛이었던 피부색이 다시 살색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외조부 비월검객 하성운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내공과 선천진기를 회복한 나는 주기적으로 외조부 하성운에게 기운을 주입하여 몸이 회복하도록 신경을 썼다.
‘살아나셔야 합니다.’
나는 그가 살아나길 간절히 기원했다.
누이 동생인 소영영을 제외하고 남은 핏줄이었다.
그를 죽게 할 수 없었다.
주위에 인기척이 없는지 재차 확인한 나는 중단전을 개방했다.
그러자 심장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며 그와 동시에 왼쪽 눈이 간지러웠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
소담검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중단전을 개방하게 되면 왼쪽 눈동자가 금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다.
이를 숨기기 위해 계속 왼쪽 눈을 감고 있어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진기를 불어넣기 위해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나서야 눈의 색이 평소에는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런 걸까?
글쎄.
나도 궁금하다.
금안의 사내가 내 가슴의 혈들을 타통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만 할뿐이었다.
-참 괴이한 눈이로군. 그걸로 보면 정말 기운의 흐름이 보이나?
혈마검의 물음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대체 왜 이런 걸까에 대한 고민만 했었다.
그러다 외조부의 호전을 위해 선천진기를 불어넣으려고 중단전을 개방하면서 알게 되었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달랐다.
왼쪽 눈으로 보면 사람의 몸에 흐르는 기운들이 정확하게 보였다.
기운들은 일종의 빛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내공은 흰빛.
선천진기는 푸른빛.
이걸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도 심장 부근에 원기라 불리는 선천전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조부의 심장에도 선천진기가 존재했다.
나와 다른 점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할 정도로 그 양이 미미했다.
-스르르르!
등을 통해서 주입하는 선천진기가 혈을 따라서 움직였다.
내 왼쪽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신기하네. 그 말은 어떤 사람이든 그 눈으로 상대의 운기 경로를 볼 수 있다는 말이지 않느냐.
그렇네.
생각해보니 그렇게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운휘. 잘만 활용하면 굉장한 능력인 것 같다!
남천철검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의 말대로 상대의 운기 경로를 알게 된다는 것은 어떤 초식을 쓸지 예측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게 실제로 가능할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가서 확인해보면 되지.
‘……함부로 쓸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왜?
왜긴 왜겠나.
혈마화를 하는 것 이상으로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괜히 섣불리 금안을 드러냈다가는 나 역시도 그 자와 엮여버릴 수도 있었다.
-아!
기밀로 하고 있었지만 무림 연맹의 장로급 이상의 인사들이 금안의 사내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내가 금안을 드러낸다면 무슨 사달이 벌어지겠는가.
함부로 드러낼 수 없는 능력인 것이다.
-곤란하게 되었네. 그럼 중단전을 쓸 때는 한쪽 눈을 감아야겠네?
그래야 할 판국이다.
-쯧쯧. 웃기네. 힘이 있어도 숨겨야 한다는 게.
혈마검이 혀를 찼다.
녀석은 놀려댔지만 중단전도 그렇고 혈마화도 그렇고, 함부로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석실에 갇혔을 때, 환골탈태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서 선천진기보다도 내공이 진일보했다는 점이었다.
지금 하단전의 내공은 초절정 초입에 이르렀다.
중단전의 힘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과 비슷한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봐야 제대로 된 깨달음이 없이는 그게 한계일 거다.
혈마검이 아픈 곳을 꼬집었다.
녀석의 말대로 기연을 얻어서 내공이나 선천진기가 진일보 했지만 깨달음을 얻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런지 혈마화를 해도 그때 배 위에서 펼쳤던 역량을 끌어낼 수 없었다.
마치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무(武)라는 것은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광범위해지는 것 같다.
외조부에게 진기를 불어넣는 것을 마쳤을 때였다.
-그런데 운휘야.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그 금안의 남자가 순식간에 손이 자랐잖아.
‘너 설마….’
-너도 반쪽뿐인 금안이라고 해도 그 남자랑 같은 체질이 되었다면 한 번 시험해보는 게 어때? 될 수도 있잖아.
‘…….손이라도 잘라보라는 거냐?’
-실패하면 큰일 나겠지?
본인 손이 아니라고 무서운 소리를 해대네.
황당해하고 있는데 혈마검이 말했다.
-그냥 가벼운 상처 같은 걸 내도 알 수 있지 않나?
가벼운 상처라…..
나는 억지로 내 몸에 상처 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쫄았지?
‘아니거든.’
-겁쟁이.
하여간 놀려대는 건 일가견이 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소담검을 뽑아서 손바닥에 살짝 그어보았다.
손바닥이 따끔하다.
금안의 사내가 회복 능력이 빠르다고 나 역시도 가능할까?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엇?’
손바닥에서 개미가 기어가는 것처럼 간질거리는 느낌이 나더니, 이내 핏줄이 스멀거리며 올라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일 만큼 상처가 나아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솔직히 반신반의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상처가 이 정도로 빨리 나을 줄은 몰랐다.
-그 남자보다는 느린 것 같은데.
-음.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데. 인간.
녀석들의 말대로 상처가 낫는 게 확연하게 보였지만 금안의 남자만큼은 아니었다.
그 자는 거의 괴물이라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속도로 나았지만 나는 천천히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도 충분히 괴물 같다. 운휘.
남천철검의 말대로 보통 사람과 비교한다면 충분히 괴물이라 불릴 만큼 경이로운 회복 속도인 것은 확실했다.
혈마화도 그렇고 회복 속도까지 점점 인간을 벗어나는 것 같다.
‘내 회복 속도를 이 두 사람한테 주고 싶네.’
나는 외조부 하성운의 맞은 편에 누워 있는 외팔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공동을 탈출하자마자 탈진해서 정신을 잃었다.
지금까지 깨지 못하고 있었다.
뜨거운 물로 상처부위를 계속 소독하고 그가 챙겨온 다른 약초들을 붙여서 이만큼 버티고 있지만 위중하기 짝이 없었다.
‘버틸 수 있을까?’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힘들 것 같은데.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다.
무공을 회복하고 나서 동굴을 헤집으며 출구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곳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연사로 몸을 고정하고서 격류에 몸을 던져보았다.
그런데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혈마검이 내게 말했다.
-인간. 어차피 운기도 되는데, 호흡을 조절해서 버틴다면 나갈 수 있지 않나?
‘……나만 버틸 수 있잖아.’
외조부도 그렇고 외팔의 사내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애초에 단전이 파훼되어서 운기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무공이 강해진다고 해도 극한의 자연환경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외조부를 위해서 목숨을 건 사내였다.
한 달이 다 될 동안 사마착을 마냥 기다리기에는 그가 언제 숨을 거둘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해하고 있을 때였다.
“얘야.”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외조부 하성운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외조부!”
나는 그에게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언제 깨어날까 오매불망으로 기다렸는데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십니까?”
“쿨럭쿨럭.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구나. 노부가 아직 살아있다니?”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 나서 충격으로 쓰러진 그였다.
당연히 그 이후의 일들을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그때의 일들과 약초가 있는 공동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고민하다가 한 쪽 눈이 금안이 된 것은 숨겼다.
“강부. 이 못난 놈.”
외조부가 머리를 들어 올리며 누워 있는 외팔의 사내를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이 강부였나 보다.
외조부가 하성운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강부도 그렇고 너도 어찌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게야.”
“혈육을 살리기 위한 일에 위험의 경중을 어찌 따지겠습니까?”
하성운이 눈물을 글썽였다.
“녀석아. 네가 그러다 어떻게 되기라도 한다면 노부는 죽어서도 네 어미를 볼 낯이 없어진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서 다짐하듯이 말했다.
“외조부를 두고 먼저 갈 생각은 없습니다.”
“…….네가 못난 할애비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감동에 겨워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쇼. 꿋꿋하게 살아남으셔야 외손녀도 볼 것 아닙니까?”
“외손녀?”
“여동생이 있습니다.”
친아버지가 다르기는 했지만 영영이에게도 외조부였다.
하성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령이가 재혼을 한 게냐?”
‘아……’
외조부의 입장에서는 꽤 놀랄 만한 일일 것이다.
비월영종은 무쌍성에서 축출되었다.
도망친 어머니에게 또 다른 자식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살았었는지 많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재…..혼이라면 재혼이죠.”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부 말해주었다.
그 동안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이다.
이를 들은 외조부의 표정이 어둡다 못해서 착잡함으로 번져나갔다.
“하아. 그 아이가 그렇게 살다 갔다니…..너희 남매를 볼 낯이 없구나. 이 모든 게 노부의 업이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쇼.”
자책하고 슬퍼하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어머니가 행복했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말할 수 있지만, 내게 유일한 어른에게 자식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착잡한 얼굴을 하던 외조부 하성운이 나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아니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아오다 이곳까지 왔을지 잘 알겠구나.”
외조부 하성운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외조부. 누워 계십….”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성운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매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미의 정도 모르고 자랐을 너희를 생각하니 이 할애비의 가슴이 찢어진다. 너무 찢어져서 파이는 것만 같구나.”
“외조부…..”
속이 울컥 올라온다.
나를 꽉 껴안던 외조부가 몸을 떼고서 두 팔을 잡고 말했다.
“불쌍한 녀석. 어떻게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이냐?”
외조부의 물음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어머니에 관한 것보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하는 게 더욱 복잡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외조부가 말했다.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것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월악검 그 악독한 작자의 손에 붙잡혀서 내려왔다면 별 이유 같지 않은 것이겠지.”
‘어……음.’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동굴 사람들은 내가 그저 월악검 사마착의 손에 붙잡혀서 이곳에 갇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외조부 역시도 그렇게 알고 있는 듯 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야겠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외조부 하성운이 먼저 입을 뗐다.
“네 애비가 너를 알고 있다면 이곳에 빠졌을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구나.”
“제 아버지요?”
그 말에 외조부가 탄식을 내뱉으며 답했다.
“네 친부가 누군지 모르고 자랐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가 비월영종이라면 친부가 누군지 궁금했었다.
외조부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네 친부가 지금과 같은 확고한 위치였다면 네 어미나 너도 이렇게 모진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비월영종이 무쌍성에서 축출될 당시 확고한 위치가 아니었다는 건가.
무쌍성의 일원이라고는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외조부…….제 친부도 무쌍성의 일원입니까?”
“그렇단다.”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으십니까?”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가 떨려왔다.
사실 어머니가 비월영종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된 후로 친부라는 자도 원망스럽게 느껴졌었다. 그가 무쌍성의 일원이라면 어머니를 끝까지 보호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외조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마음을 잘 알겠구나. 하나 네 친부 역시도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게다. 이미 본 종은 혈교의 후예로 낙인이 찍혀있었기에 누구도 보호할 수 없었단다.”
“……그래도 원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군요.”
“그 심경 충분히 이해한다.”
외조부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네 친부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수야 있겠느냐. 네 애비의 이름은 진성백. 당대 풍영팔류종의 종주이다.”
‘!!!’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그러는 거야?
소담검의 그 말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친부가 무쌍성의 일원일 거라고는 예측했었다.
그런데 풍영팔류종의 종주라고?
-답답해.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놀라는 거야?
‘무정풍신 진성백…..팔대고수의 일인이야.’
-뭐어!
놀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무정풍신 진성백의 미래가 문제였다.
그는 머지 않아 죽고서 바뀌게 될 팔대고수의 일인 중 한 사람이다.
끝
ⓒ 한중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