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1
12화 대결 (3)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해악천.
보완된 검법을 펼치리라고는 그 역시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나 역시도 숨겨진 한수로 가지고 있어야 했으니까.
-표정 봐봐. 무서워지는데.
소담검의 말처럼 놀라는 것도 잠시였고, 해악천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져가고 있었다.
험악해진 인상만으로 사람 하나 잡을 기세다.
-네 생각대로 통했을까?
글쎄. 안 통하면 곤란해지는데.
스치듯이 머릿속에서 석 달 전이 떠올랐다.
석 달 전 이른 새벽.
-촤촤촤촤촤!
해악천이 눈앞에서 비급서에 있는 성명검법의 검초를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남천검객이 보완하기 전의 일곱 초식이다.
권사인 그가 이렇게 검초를 능숙하게 펼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비급서를 많이 분석했다는 거겠지.
소담검의 말이 맞았다.
어지간히 분석하지 않고는 이렇게 능숙하게 검초를 펼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 승부심이 대단하기는 했다.
적을 이기기 위해 적의 무공마저 훔쳐서 배운다는 것은 말이다.
미친 늙은이.
검식도 하루에 한 번씩 딱 사흘을 보여줬다.
그나마 검식의 경우는 보완전과 보완후가 완전히 똑같기에 도움이 되긴 했다.
그런데 검식을 조화시키는 초식을 고작 세 번만 보여주고 익히라고? 나를 뛰어난 인재로 여기는 것일까?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 늙은이에게 있어서 대리 복수전을 위한 일회성 존재였다.
구태여 필요이상으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소리다.
-야야. 참아. 어차피 붙어 있는 것보다 낫잖아.
소담검의 말이 맞았다.
오히려 본인의 제자나 다름없는 쌍둥이들한테 신경 쓰게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지 않으면 보완된 검초를 익히기 힘들 것이다.
[그럼 보여준 것을 잘 상기토록 해라.]남천철검을 돌려준 해악천은 동굴을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마자 남천철검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쾌하다. 찝찝하다. 검병을 닦아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검병을 만지는 것을 그리도 좋아하는 녀석이지만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그것을 개의치 않고서 남천철검이 내게 말했다.
-오랜만에 보완전의 검초를 직접 펼치게 되니 알 것 같다.
‘무엇을?’
-보완전의 검초는 매 초식마다 검식의 경로에 몇 가지 허점이 드러난다. 그 자가 비급서를 훔치지 않았다면 전 주인도 이것을 보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남천검객에게 있어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나를 믿어라. 운휘. 전 주인은 검초를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초식의 변화를 더 가미함으로서 성명검법을 더욱 진화시켰다.
자신감에 넘치는 녀석의 말을 들으니 듬직했다.
남천철검의 말대로 진화된 성명검법을 보게 되면 해악천은 경악을 할 것이다.
그렇게나 꺾고 싶어 했던 남천검객이 더 검법을 발전시켰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진화된 검법을 사용하면 저 미친 늙은이가 그냥 놀라기만 할까?’
-아! 맞네. 너 의심할 수도 있겠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이제 막 검법을 배웠는데 검초를 보완한 것도 모자라 더욱 진화시킨다?
천재라 불리는 무공의 대종사들이나 가능할까?
나 같은 범인이 그 정도 역량을 보인다면 의구심마저 가지게 될 것이다.
죽은 남천검객이 살아 돌아오거나 뛰어남 검객이 돕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런데 보완된 검초가 아니면 너 무조건 질걸. 눈을 감고도 펼칠 수 있을 만큼 검법을 달달 외웠는데, 그 약점도 모르겠어?
소담검이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요새 농담만 할 줄 아나 싶었는데 판단이 좋았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진화된 검초를 보이고서 승리를 하게 되면 추궁을 당하게 될 것이고, 패배를 하면 다시 혈고를 먹고 평생 하급 무사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군. 그렇다면 운휘 이건 어떤가?
‘응?’
-전 주인이 검법을 진화시킨 정도가 추궁을 당할 일이라면, 약점을 보완한 수준의 검초를 보여주는 게 어떤가?
‘약점을 보완한 수준의 검초?’
-그래. 확실히 네 말대로 검초를 더욱 진화시킨다는 건 전 주인처럼 검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야 가능한 일이다. 막 검초를 터득한 너는 무리다.
은근히 전 주인이랑 비교하네.
근데 맞는 말이다.
남천검객이 달리 차기 중원팔대고수라 불린 것이 아니다.
-상대가 해악천 본인이라면 보완한 검초로는 상대하기 힘들겠지만, 네 상대는 그가 아니지 않은가?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
‘그래. 맞아!’
해악천에게 성명검법의 허점을 배운다고 해도 쌍둥이의 수준이라면 보완된 검법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녀석들이 당황하게 되면 역으로 허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송좌백은 약점이 보완된 검초식 만으로 상대하는 게 가능했다.
이제 해악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었다.
-크게 추궁하긴 힘들 거다. 검초를 펼칠 때 일부 검식에 허점을 그대로 남겨둔 네 판단은 옳았다.
남천철검의 말대로 완벽하게 보완된 검초를 펼치지 않았다.
가령 2초식 잠합공검의 보완된 검식이 16식 중에 5식이라면 큰 약점이 되지 않을 만한 2식을 그대로 내버려뒀다.
할 거면 철저하게 속여야 했다.
‘의심은 피하겠지?’
-네 초식에 어색한 점은 없었다.
‘다행이네. 남천 네 판단이 옳았어.’
남천철검이 세 초식에 집중하게 했던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초식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완숙해지지 않는다면 속이는데 실패할 수도 있었다.
사기도 그것에 통달해야 가능하듯이 말이다.
‘사기극이 통할지는 곧 알겠지.’
이미 승부는 났다.
송좌백이 계속 도망치는 시점에서 대결은 내 승리였다.
심판이나 다름없는 저 미친 늙은이의 판단에 달렸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거다.
내가 예측을 깨고서 자신의 전인을 이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던 해악천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흥! 승부는 끝이다. 멈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송좌백이 승부를 불복했다.
그러더니 경신법을 펼치며 도망치던 것을 멈췄다.
해악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운휘 쟤 뭐하는 거냐?
송좌백이 갑자기 거칠게 상의를 찢으며 탈의했다.
도망을 포기한 것치고는 괴의한 행동이었다.
숨겨둔 한 수가 있는 것일까?
“흐아아압!”
녀석이 기합을 넣으며 전신의 근육에 힘을 주자 변화가 생겨났다.
피부색이 진해지며 옅은 구릿빛을 띠었다.
‘뭐야?’
-운휘! 저건 기기괴괴의 진혈금체다! 거리를 벌려라!
-팟!
남천철검의 경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송좌백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신형을 뻗어왔다.
원래도 뛰어난 경신법으로 빨랐는데, 더 속도가 올랐다.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좁혀오는데, 거리를 벌리기가 힘들었다.
‘칫!’
피하기는 글렀다.
나는 아껴두고 있던 성명검법의 제 1초식인 호아세검(虎牙勢劍)을 펼쳤다.
여기서 승부수를 둬야 했다.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패도적인 기세의 권초를 펼쳤다.
-파파파파파파팍!
맹렬한 검세를 가진 호아세검의 검초와 패도적인 녀석의 권초가 부딪치자, 파공음과 함께 발밑에 있던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만큼 초식 대결은 격렬하기 짝이 없었다.
역시나 권초가 보완되기 전의 호아세검의 허점을 노렸다.
소용없어.
나는 녀석의 권초를 피해서 절묘하게 가슴의 정중앙을 노렸다.
피할 수밖에 없을 걸.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
녀석이 검을 피하지 않았다.
‘돌았나?’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여기서 검을 억지로 거두게 되면 운용하던 기운이 역류하기 때문에 내가 위험하다.
게다가 역으로 반격 당할 수도 있다.
‘승부를 보자 이거지.’
목숨을 걸 만큼 녀석도 승부에 진지했다.
그렇다면 부응할 수밖에 없다.
검이 거의 닿기 일보 직전에 녀석이 몸을 틀었다.
-푹!
“끄윽!”
가슴이 아닌 어깨부위로 검 끝이 들어갔다.
그런데 파고든 검이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팍!
그 순간 송좌백이 철검의 검신을 움켜잡았다.
놀라웠다.
말 그대로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술이었다.
“내 승리다!”
녀석이 검신을 잡은 상태로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다급히 왼손을 들어 올려 녀석의 주먹을 막았다.
-우득!
“억!”
맨손으로 막은 녀석의 주먹이 쇳덩이 같아서 왼손바닥의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너무 아팠지만 여기서 손을 빼면 진다.
의도치 않게 서로의 검과 손을 잡은 채로 둘 다 공력 대결로 이어졌다.
-파르르르르!
‘빌어먹을!’
일류고수에 육박하는 녀석의 공력 때문에 내 몸이 밀려나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운휘!
이대로는 안 되는 건가.
역시……
그때였다.
-주르르륵!
송좌백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공력으로 우위에 점하고 있는 왜 이 녀석이 피를 흘리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팍!
“헛?”
“억?”
교착하고 있던 우리 둘의 몸이 양쪽으로 떨어졌다.
공력 대결 중이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내상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우리를 떼어낸 자는 역시 해악천이었다.
‘괴물 같은 늙은이.’
그냥 떼어내도 되는데 우리 둘 다 해악천의 우악스러운 손에 목덜미가 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이러면 누가 이긴 거지?
해악천이 송좌백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누가 네놈더러 그것을 쓰라고 했지?”
“어, 어르신!”
“아직 네놈의 수준으로는 진혈금체는 무리라고 했을 텐데. 망아지 같은 녀석.”
-팍!
해악천이 녀석을 내팽개치듯이 저쪽 편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진 녀석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헉헉……”
구릿빛을 띠던 피부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그치듯이 뭐라고 해놓고는 녀석을 쳐다보는 해악천의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무섭게 인상을 굳힌 해악천이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본좌가 준 비급서대로 검식을 펼치지 않은 게냐?”
역시나 질문은 그것이었다.
해악천의 기세에 억눌려서 두려웠지만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뭐?”
“어르신께서는 비급서의 검법을 능숙하게 펼치실 수 있을 만큼 잘 압니다.”
험악했던 해악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그럼 분명히 검초의 경로나 허점마저 잘 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 그래서 검식을 바꿨다?”
“……그렇습니다.”
해악천이 물었다.
“누가 네놈에게 훈수를 해준 적이 있느냐?”
역시나 검식이 바뀐 것을 의심했다.
“아무에게도 제 검법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가 어찌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어르신의 영역에 누가 함부로 출입할 수 있습니까?”
해악천이 눈을 마주친 채 매섭게 노려보았다.
겁을 줘서 거짓말인지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소용없다.
첩자로 가장 먼저 배운 게 타인을 속이더라도 표정이나 눈빛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노려보던 해악천이 입을 열었다.
“흥! 하긴 네놈 수준으로는 그게 한계지. 본좌에게는 여전히 허점이 보인다.”
당연하지.
그러라고 남겨놓은 허점이었다.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이십 년이나 남천검객의 경험을 가진 남천철검의 조언이 담긴 검초였다.
“당연히 어르신 정도로 뛰어난 절세고수이시라면 그러시겠죠.”
“입에 바른 소리를 치워라.”
“한데 그거 아십니까?”
“뭐?”
“어르신께서는 제게 이 검법을 익혀서 대리로 겨루게 했지요.”
“어쩌란 것이냐?”
“한데 어르신조차 허점을 잘 아는 검법을 원래의 주인이 지금껏 보완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뒀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더욱 발전시켰지 않겠습니까?”
‘!!!’
그 말을 듣자 해악천의 표정이 바뀌었다.
눈빛까지 흔들리는 게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탁!
“아?”
해악천이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면서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해악천의 얼굴에 불길해진 나는 조용히 뒷걸음을 쳤다.
한참을 그러던 해악천이 갑자기 괴성을 질러가며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남처어어어어어언!!!”
-쾅!
굉음 소리와 함께 한순간이나마 주변의 지축이 떨리며 쌓여 있던 눈발이 위로 솟구치며 흩날렸다.
엄청난 공력이었다.
주변 4장 내에 쌓여 있던 눈이 흩날리며 사라질 정도였다.
진각을 밟은 바닥에 균열이 갈라져 있었다.
‘진짜 괴물이야.’
혀를 내두를 만큼 너무 강했다.
분노를 한껏 토해낸 해악천이 거칠게 쉭쉭 거리다가 이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허탈감이 묻어나 있었다.
“후우.”
하지만 기기괴괴라는 별호가 어울릴 만큼 다시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해악천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은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무효다.”
하!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평생 남천검객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어졌나보다.
“보셨으면 아실 텐데요. 끝까지 했으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저기서 동생인 송우현의 부축을 받고 있는 송좌백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조금만 버텼어도 송좌백은 목숨까지 위험했다.
그걸 알기에 이 늙은이가 중간에 개입해서 멈추게 한 거다.
“모르는 일이다.”
끝까지 치졸하게 나오시겠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이제 이판사판이다.
“…….정말 과하시군요.”
“무엇이 말이냐?”
“솔직히 이 승부가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저는 반쪽짜리 심법에다 어르신의 무공을 전수 받은 저 녀석은 제 검법의 약점까지 알고 있고, 영약까지 먹고 내공도 강했습니다. 심지어 팔목에 진귀한 보호대까지 주셨죠.”
“……..”
해악천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듯이 퍼부었다.
어차피 저 늙은이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나를 죽이려 든다면 답이 없는 승부였다.
“이 상황에서 제가 뭘 어찌 한단 말입니까? 처음부터 제가 패배하도록 짜놓은 판에서 이겨도 인정조차 하지 않으면 그냥 죽으란 겁니까? 제가 어르신의 장기말입니까?”
점점 해악천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마당에 나도 화풀이라도 하자.
“공정하게 했다면 저 녀석이 제 상대가 되었을 것 같습니까? 적어도 내공이나 보호대 같은 것만 주지 않았어도 더 승부가 빨리….”
바로 그때였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얼굴이 붉어지던 해악천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순간 이 자가 화를 못 참아서 실성했나 싶었다.
그런데 한참을 웃어대던 해악천이 갑자기 송좌백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물었다.
“본좌가 네녀석에게 영약을 줬더냐?”
다 죽어가던 얼굴을 하고 있던 녀석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저녁마다 먹었던 그 작은 환단 같은 것들이 영약 아니었습니까?”
“크하하하하하핫. 그게 영약이라고? 멍청한 놈. 본좌에게 그리 많은 영약이 있었다면 뭣하러 네놈에게 줬겠느냐.”
“네?”
송좌백뿐만이 아니라 나 또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웃겼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던 해악천이 말했다.
“본좌가 여태껏 후인을 기르지도 않다가 왜 저놈들에게 무공을 전수해준 것 같으냐?”
“…..?”
“저 녀석들이 진혈금체를 익히기에 타고난 육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저 망아지 놈들은 몸에 흐르는 피가 여타의 인간들보다 순환이 빠르지. 애초부터 내공이 빨리 쌓이는 체질이란 게다.”
그 말에 송좌백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넷? 그, 그럼 그 단환들은?”
“진혈금체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네놈들 수준에서 피가 빨리 흐르는 것은 독이 된다. 그렇기에 연마를 하는 내내 타혈법이나 단환으로 조절시켜줘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명하기 딱 십상이지.”
이런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영약을 먹였다고 생각했더니, 특수한 체질일 거라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해악천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리고 무기? 네놈이 가진 그 검이 뭔 줄 알고 지껄이는 게냐?”
“녹이 슨….”
“녹이 슬었다 뿐이지. 그 철검은 한철(寒鐵)이 섞여서 어지간한 검들보다는 좋은 명검이다.”
-흠…..저 자가 간만에 바른 말을 하는군.
남천철검이 동의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저 손목의 보호대와 비교하는 말을 할 때 발끈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걸 쓰면서 보호대가 그리 못마땅하더냐?”
“……..”
하지만 이 두 가지야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불리했던 건 변함없다.
그런데 해악천의 입에서 예상지 못한 말이 나왔다.
“뭐, 그럼에도 네놈이 불리했던 것은 사실이긴 하지. 클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자가 자신의 입으로 그것을 인정했다.
해악천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건방진 네놈의 말처럼 애초에 이 승부는 무조건 본좌가 이기기 위한 판이다. 네놈은 그것을 위한 장기말이지.”
이젠 대놓고 장기말이라고 하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다는 건가.
“그런데도 당돌하게 지금껏 본좌를 속여서 승부에서 이길 뻔했다.”
이길 뻔한 게 아니라 이기는 승부다.
동의하지 않는 듯 인상을 굳히고 있는 내게 해악천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약조는 취소다.”
끝까지 치졸한 인간이다.
여섯 달 간의 고생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결국 일회용 장기말이군요.”
“그 일회용 장기말을 본좌의 제자로 거두겠다.”
‘…….!?’
지금 이 미친 늙은이가 뭐라고 한 거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