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0
12화 대결 (2)
“후우.”
입김이 나올 만큼 공기가 차갑다.
-뽀득!
산봉우리 정상에 도착해 눈이 쌓인 바닥을 밟자 발목까지 들어갔다.
하늘 아래 사방이 탁 트인 설경의 대결이라.
말로만 들으면 운치가 있겠지만 지금 내 눈에는 오직 저들만 보였다.
팔짱을 끼고 있는 거구의 야인 해악천과 그 뒤에 나란히 서있는 쌍둥이 형제.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전의가 가득 했다.
-좀 닮아가는 것 같지 않아?
소담검의 말처럼 석 달 사이에 송좌백과 송우현의 덩치가 꽤 커졌다.
그러다보니 녀석들은 작은 해악천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람해져 있었다.
뭐 해악천과 비교하면 여전히 소인이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크다.
쌍둥이는 이제 옷의 색깔이나 말투로 구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구분하기 쉬워졌다.
-쟤는 오늘따라 참….
소담검이 말한 쟤는 동생 송우현이다.
매끌매끌한 머리가 햇빛에 반사해 보는 내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녀석은 정수리 탈모에서 완전한 대머리로 거듭났다.
덕분에 인상이 강렬해져서 어리숙한 모습이 덜 해보이긴 했다.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클클, 질 준비는 됐느냐?”
보자마자 해악천이 도발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얕은 도발에는 안 넘어간다.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 말에 송좌백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냥 항복하고 주군이라고 외치는 게 어때?”
“자신만만하네?”
“당연하지. 너와 나는 이제 격이 다르거든.”
이 정도로 자신만만하다는 것은 승리를 확신할 만큼 성과를 얻었단 거겠지?
그때 송좌백의 뒤통수를 해악천이 후려 갈겼다.
-빡!
“흥! 누구 마음대로 항복이니 뭐니 지껄이는 게냐. 이 대결은 무조건 끝까지 해야 한다.”
송좌백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대결의 진짜 목적을 모를 테니 그럴 만도 했다.
해악천에게 있어서 이 대결은 먼 옛날의 수모를 되갚기 위한 대리전이었다.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과거의 적수를 후대로 하여금 꺾게 만들어…
-정신 승리 하려는 거지.
이놈 재치 보소.
뭐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현재 자신의 무공이 남천검객의 무공보다 우위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니 말이다.
-이제 조용히 해라. 소담. 전의가 식으면 대결에 지장이 된다.
-…….쳇.
남천철검의 그 말에 소담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녀석도 이 대결의 중요성을 알기에 더 이상 재잘거리지 않았다.
“누구와 겨루면 되는 것입니까?”
처음에는 하도 쌍둥이라고 통칭해 불러서 설마 이대일로 겨루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었다.
송좌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연히 나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인 송우현은 강해졌어도 어리숙한 면이 없지 않아 대결에 맞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인상이라면 상대가 먼저 겁을 먹을 수도 있다.
“어르신. 약조는 지키시겠지요?”
“클클, 그건 네놈이 이겼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절대로 진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계속 뭔가 비장의 수를 두고 있는 것 마냥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서서히 긴장이 되었다.
‘이런 걸로 허세를 부릴 인간은 아니니까.’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나와 송좌백이 서로 거리를 두고서 마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해악천과 송우현은 우리에게서 15장(丈) 정도 물러났다.
서로 준비가 끝나자 해악천이 소리쳤다.
“시작해라!”
송좌백이 기수식을 취했다.
녀석이 양팔을 걷자 철로 만든 팔목 보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윤기가 나는 것이 단순한 보호대가 아닌 듯 했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녀석이 말했다.
“너는 검을 쓰는데 나만 맨손이면 되겠냐?”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기껏해야 녹이 슨 철검이고 너는 꽤 좋아 보인다.”
-녹이 슨 검이라니 난…..
-조용히 해. 방해 된다.
-………
내 말에 울컥했는지 남천철검이 입을 열었다가 소담검한테 한 소리 먹었다.
아까 전에 조용히 하라했던 것을 복수하고야 마는 소담검이다.
송좌백에 웃으면서 말했다.
“별 거 아니야. 어르신께서 소싯적에 쓰셨다고 하더라.”
“소싯적?”
그럼 보통 물건이 아니잖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놓고서 무슨 공평함은 공평함이야.
저 노인네가 내게 해준 거라고는 명륜선공의 운공법을 알려준 것과 검초를 보름 정도 봐준 게 다였다.
하긴 남천검객을 이기려고 비급서까지 훔치는 인간한테서 뭘 기대하겠나.
-척!
남천철검을 빼든 내가 성명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녀석도 권법의 자세를 취했다.
기기괴괴 해악천의 독문무공은 현철진권(玄鐵進拳)이라 하여 금강불괴처럼 신체를 극도로 발전시켜, 권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 들었다.
물론 이건 해악천이 대결의 공평함을 위해 알려주는 것이라 하였다.
‘그럴 거면 초식도 전부 알려주던가.’
정작 본인은 성명검법의 비급서를 해체하듯이 분석했을 거면서 말이다.
송좌백과 나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허실을 찾았다.
확실히 녀석도 죽어라고 연마했는지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때였다.
“내가 먼저 간다!”
-팟!
눈발이 튀기며 송좌백이 거친 야생마처럼 달려왔다.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먼저 달려든다면 나야 검객으로서 거리의 장점을 이용해야지.
-슉!
송좌백의 미간을 향해 교묘하게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송좌백이 두 팔을 교차하면서 팔목의 철 보호대로 검을 튕겨내며 밀어냈다.
-차아아앙!
“헛?”
검 끝이 떨리면서 강한 반탄력에 의해 내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타타타탁!
놀라하는 나에게 녀석이 틈을 주지 않고 속공을 해왔다.
“하압!”
나는 녀석을 막기 위해 찌르기가 아니라 여러 방위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번번이 녀석의 보호대에 막혀 밀려났다.
‘주먹이 쇳덩이 같다.’
확실히 보통 철 보호대도 아니었고, 녀석의 공력은 석 달 전과는 천양지차였다.
이 정도로 강해진다면 슬슬 의심해 볼만 했다.
“너 혹시 영약 같은 거 먹었냐?”
“무슨 소리!”
송좌백이 내 물음에 강하게 부정했다.
아닌 것 치고는 눈동자가 꽤 많이 떨리고 있었다.
하여간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차차차차차창!
찔리기라도 했는지 더욱 격하게 공격해왔다.
-운휘! 거리를 둬라. 이 정도라면 내공만큼은 일류고수에 육박할 정도다.
직접 부딪치고 있는 남천철검이 조언을 해줬다.
‘일류고수?’
얼마나 좋은 영약을 먹였기에 일류고수에 육박할 정도야?
그럼 거의 20년 수준에 이르는 내공이다.
혹시 허구한 날 두드려 팬게 화풀이가 아니라 추궁과혈(推宮過穴)을 한 건가.
‘칫. 떨어져야겠다.’
-팟!
남천철검의 말대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신형을 날렸다.
그럴수록 녀석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보법을 펼치며 따라붙었다.
‘큭!’
확실히 무공 이상으로 경신법이 너무 뛰어났다.
거리를 벌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떨어질 때마다 가까이 붙어서 내 몸에 권을 퍼부었는데, 아무래도 해악천이 제대로 조언을 해준 모양이다.
‘앗!’
그때 녀석의 주먹이 가슴 정중앙에 꽂히려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젖혔다.
그리고는 물구나무를 서듯이 돌면서 거리를 벌렸다.
“하!”
송좌백이 이건 예측하지 못했는지 놀라했다.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안 맞으려고 하다보니까 나온 임기응변이었다.
“유연하네!”
놀란 것도 잠시였고 녀석이 내게 일권을 날렸다.
소림사의 백보신권을 연상케 하듯이 녀석의 주먹을 뻗은 신형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창!
철검의 면으로 이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몸이 또 다시 뒤로 밀려났다.
“안 놓친다!”
송좌백이 다시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짜증나네.’
남천철검이 내게 말했다.
-권이 검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게 기본 전법이다. 물론 네 검식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절묘하다.
해악천이 얼마나 성명검법을 연구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긴 남천검객이 행방불명된 15년 동안 절치부심으로 갈고 닦았을 테니, 이 권법은 해악천의 한(恨)이 서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키킥!”
나를 밀어붙이는 것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입 꼬리가 찢어진다. 찢어져.
“언제까지 막고 피하기만 할 참이냐? 초식이라도 펼쳐보지 그래!”
녀석이 나를 도발했다.
아마도 검식이 아닌 초식의 완벽한 파훼법을 숙지했으리라.
그렇지 않고는 저런 눈빛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
그럼 사양하지 않는다.
검병을 잡고 있는 내 손놀림이 매서워지려 했다.
그때 녀석이 씨익 하고 웃으며 권초를 펼쳤다.
“기다렸다!”
속사포처럼 날아오는 녀석의 권초.
흡사 눈앞에서 수십 개의 주먹이 날아오는 듯 했다.
-차차차차차창!
나는 빠르게 철검의 검신으로 녀석의 권을 막아냈다.
내 신형이 권력에 의해서 계속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주군이라 부를 준비해라!”
녀석이 승리를 확신했는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꿈 깨.”
“뭐?”
그 순간 밀려나던 내 몸이 활처럼 뒤로 휘어졌다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헉!”
성명검법 제 2초식 잠합공검(潛蛤公劍).
숨죽였던 기세를 폭발적으로 일으키며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반격의 검초다.
다 죽어가던 검세가 미친 듯이 밀려오자 녀석이 다급히 공세를 방어로 바꿨다.
-차차차차차창!
“큭! 이, 이게 뭐야?”
녀석이 당혹스러워했다.
당연할 거다.
해악천에게 들었던 초식과는 확연하게 다를 테니 말이다.
이건 그때 그 성명검법이 아니거든.
“이익!”
공세를 막아내던 녀석이 다른 초식으로 반전을 꾀해보려고 했다.
녀석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검세를 막기보다 더 강한 권초로 밀어붙이려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예상했다.
‘네가 맹렬한 기세로 나온다면.’
성명검법 제 3초식 비추형검(泌鰍形劍).
부드러운 버들가지처럼 회전하는 녀석의 기세에 몸을 맡기며, 나는 편승하듯이 녀석에게로 검초를 날렸다.
“헉!”
휘어지듯이 유려하게 권초를 뚫고서 들어오는 검초에 녀석이 화들짝 놀라했다.
버들가지처럼 유순하던 철검이 날카롭게 녀석의 가슴을 찌르려하자,
“젠장!”
-타타타타타탁!
송좌백이 결국 보법을 펼치며 거리를 벌렸다.
내가 따라잡기 위해 신형을 날리자, 보법이 아니라 경신법까지 펼치며 거리를 더욱 벌리려고 했다.
“계속 도망칠 거냐?”
나의 도발에도 녀석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의 시선이 도망치는 내내, 눈치를 보듯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해악천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이쿠.’
해악천의 표정이 가관도 아니었다.
그 역시도 내가 단점이 보완된 성명검법을 펼치자 당혹스러운 듯 했다.
판이 뒤집히니까 어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