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15
아카데미 담당 일진 115화
“후우…….”
무릎을 짚은 백일진은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귀에서 삐이이- 하는 이명이 들려왔으나,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겼나?’
다행히 비그리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긴 것 같았다. 짧게 심호흡을 반복한 그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비그리만큼은 아니지만, 같이 비무대 위로 낙하한 백일진도 몸이 성하지는 않았던 것.
“아프군.”
비그리의 몸으로 충격을 완충한 상반신은 그나마 멀쩡했지만, 그대로 땅에 틀어박힌 무릎은 박살이 났는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발목도 돌아간 것 같았다.
‘운이 없었으면 같이 기절할 뻔했어.’
다행히 비그리가 쓰러지니 사용할 수 없었던 기운들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그의 상처들이 자연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후우.
‘잘 있었나.’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시커먼 어둠 속에 혼자 떠다니는 기분이었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군. 오백 년 이상을 살았지만 두 번째로 최악의 경험이야.
‘첫 번째는?’
-네 놈이 바디 체인지를 했을 때의 땟국물 냄새지.
‘…….’
-그나저나 타인의 기운 자체를 없애 버린다니 정말 신기한 능력이군. 마치 천마기와 비슷한 능력이야.
천마기는 타인의 기운을 강제로 조종할 수 있는 기운. 비그리의 기공안도 타인의 기운을 강제로 묶어두는 능력이니 넓은 틀에서 보자면 얼추 비슷했다.
-위험한 녀석이야. 특히 너 같은 녀석에겐 더욱더.
‘…….’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천마검의 의견에 공감했다. 만약 외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니.
백일진은 다시 몸을 일으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비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비무대 위에는 황보철수를 위시한 특임반의 친구들이 올라와 있었다.
“일진! 축하해!”
“역시 일진이야.”
“축하해.”
어느새 뇌리에서 불량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진 관객들도 백일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백일진! 백일진! 백일진! 백일진! 백일진!”
언철진은 스케줄이 많아 먼저 가버린 데이크 대신 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백일진 승리. 이로써 동아리전은 중앙 동아리 연합의 승리다.”
그렇게 말하고 심판대 위에서 내려오던 언철진의 눈에 깨져 버린 비무대가 보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잠시간 그것을 바라봤다.
‘비무대가 깨져?’
비무대는 교수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티팩트다.
내공을 담아 때린다 하더라도 쉽게 깨지지 않는 게 정상. 하지만 비그리의 주위 바닥은 작은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 * *
중앙 동아리 연합의 대기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와, 아까 봤지? 백일진이 진하월 딱 두 대 때리고 잡는 거.”
“그것보다 비그리 선배와 싸울 때가 진짜 압도적이었어요.”
“그것도 그렇지. 와, 백일진은 취업 걱정은 없겠네.”
“부럽다.”
중앙 동아리의 인원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떠들던 것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번 동아리전의 주인공 백일진이 서 있었다.
“야, 백일진!”
“엘리아?”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온 것은 엘리아였다.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배고프면 먹든가. 너 돼지잖아.”
“갑자기?”
“……먹기 싫으면 말든가.”
백일진은 엘리아가 내민 투박하게 생긴 빵을 바라봤다.
‘감자……빵?’
저번에 탄 맛 가득한 감자빵과 달리 이번에 만든 감자빵은 충분히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먹을게.”
백일진은 감자빵을 받아 들고 와삭- 베어 물었다. 특유의 감자 냄새와 쫄깃한 식감이 그의 입안에서 탱고를 추듯 돌아다녔다.
“맛있군.”
“정말? 하, 다음에 또 만들어달라고 하면 곤란한데.”
백일진의 칭찬을 들은 엘리아는 만개하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매번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면 빵을 만들다가 데여 버린 손가락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때,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스툴에 발을 걸치고 있던 제갈무혁이 엘리아에게 핀잔을 줬다.
“야, 엘리아. 이제 곧 뒤풀이 파티 할 건데 무슨 빵을 줘. 파티 음식 못 먹으면 어쩌려고.”
“제갈무혁? 넌 뭔데.”
“뭔데라니? 나도 이 동아리…….”
“왜 갑자기 나타나서 파티할 때만 슥- 끼려고 그러는데? 눈치껏 빠져.”
“……어?”
“눈치껏 행동하라고. 그리고 말 좀 걸지 말아줄래? 너랑 말 섞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
엘리아의 성격을 몰랐던 제갈무혁은 신랄한 그녀의 독설에 저도 모르게 스툴에서 발을 내렸다.
모용석은 그런 제갈무혁을 이해한다는 듯 다가가서 등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혁, 엘리아가 겉보기엔 귀엽고 여리여리해 보여도 말로는 이기기 힘들어.”
“…….”
어느새 다가온 남궁종수도 모용석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왜 괜히 깐족거리다가 욕을 먹냐?”
“내가 쟤 성격이 저럴 줄 알았냐?”
“쯧, 엘리아는 장미다. 장미는 가시가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법이지.”
“갑자기 얜 또 뭐래.”
감자빵을 다 먹은 백일진의 눈꺼풀이 나른하게 감겨왔다.
‘피곤하군.’
-그야 당연하지. 중간고사 임무부터 시작해서 요동에 살루를 찾아간 데다가, 돌아오자마자 수련을 하고, 또 그 뒤에 바로 동아리전을 펼쳤으니. 안 피곤하면 이상하지.
‘그런가.’
-신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피로는 다르다. 아마 신체는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쌓인 것들은 엄청날 것이다.
‘그래, 조금 쉬어야겠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은 일어나기 전 잠시 눈을 감고는 숨을 골랐다.
그러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나서려던 순간, 어느새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던 황보철수와 마주쳤다.
“일진, 어디가?”
“잠시 피곤해서.”
“아…… 자러 갈 거야?”
“응.”
황보철수는 휴식을 취하러 간다는 백일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어나면 오라고 파티 장소만을 말해주고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저기서 자면 되겠군.”
밖으로 나온 백일진은 선도부실 근처에 있는 팔각정에 몸을 뉘었다.
“날씨 좋군.”
10여 분 정도 잠을 청했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는 눈을 떴다.
“백일진.”
“선도부장……님?”
언철진을 발견하고 상체를 급하게 일으킨 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많이 피곤했나 보군.”
“조금요.”
“여기는 선도부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아,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진 없지. 하하.”
언철진은 다른 후배들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봐, 백일진.”
백일진은 살짝 고개를 돌려 언철진을 바라봤다.
“네.”
“너 혹시 선도부에 들어올 생각은 없…….”
“철진아. 우리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그때,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언철진의 말을 막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학생회장 지대학이 서 있었다.
“지대학? 네가 왜 여기에…….”
“아직 백일진은 선도부에 들어갈 나이도 안 된다고.”
“나이 제한 따위는 없애 버리면 그만이다.”
“그래?”
그렇게 말한 지대학은 씨익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학생회도 나이 제한을 없애면 되겠네?”
“뭐?”
“그렇잖아. 선도부도 하는데 학생회라고 못 할 거 뭐 있겠어.”
그렇게 그들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둘은 한 치도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럼 백일진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먼저 백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지대학이 학생회에 들어오면 받을 수 있는 특권이나 이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학생회에 들어오게 되면 얻는 이점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학생회는 기본적으로 상점을 받고 시작해. 그러므로 지각 같은 거로 벌점 받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그리고 학생회는 일단 제복부터가 다르지.”
확실히 지대학의 제복은 금색 수실이 걸려 있는 고급스러운 모양이었다.
“네 칙칙한 회색 필기 전형 교복 따위는 입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어디와는 달리 아름다운 여학우들도 잔뜩 있으니 아름다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고.”
남궁종수가 들었으면 혹할 만한 제안이었지만, 백일진의 흥미는 전혀 유발하지 못하는 조건이었다.
다음은 언철진의 차례였다.
“흥, 상점은 선도부도 똑같이 받는다. 그리고 학생회의 제복은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선도부는 완장을 차고 다니면 된다. 그리고 여자? 선도부에는 여자는 별로 없지만, 네 근육을 더욱 조각해 줄 멋진 선배들이 넘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시 멈추고 숨을 들이쉰 언철진이 말을 이었다.
“네가 익힌 스틸 바디빌딩에 어울리는 검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스틸 바디빌딩……?”
“그래.”
백일진은 고개를 까딱이며 의아함을 표했다.
“그건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네가 수련장에서 무식하게 수련을 하는 바람에 선도부에 찾아온 인원이 한둘이 아니다. 그때 직접 가서 봤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근육만을 키우는 외공은 스틸 바디빌딩 말고는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스틸 바디빌딩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시냐는 의미였습니다.”
“당연히 알지.”
언철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스틸 바디빌딩은 내 스승인 밀리 하인스 님의 가문 비전이니까.”
“밀리 하인스……?”
“그래, 지금은 작은 골동품 가게를 하고 계시지.”
순간, 백일진은 자신이 스틸 바디빌딩을 구매했었던 골동품 가게 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태산 같은 풍채에 손가락 몇 개가 없는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었기에 그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람 이름이 밀리 하인스였군.’
그런데 사실 그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물건을 사고판 관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언철진이 그 사람과 특별한 친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리고 스틸 바디빌딩에 어울리는 검법, 그것도 내공을 사용하기 전이라면 혹할 만한 제안이었으나 이제 와서는 쓸모가 없었다.
“저는 두 곳 다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단호한 백일진의 말에 지대학과 언철진은 어안이 벙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둘 다 들어가기 싫다고?”
“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백일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 * *
언철진과 지대학을 뒤로하고 나온 백일진은 아까 황보철수가 말했던 뒤풀이 장소의 이름을 떠올렸다.
‘장소가 반딧불이 회관이라고 했나?’
-굳이 가야 하나?
‘그것도 그래.’
뒤풀이 파티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모여서 술을 먹는 게 전부일 터.
친한 사람들만 있다면 가겠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모여 있는 단순한 술자리에는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축제 구경이나 해야겠군.’
평소 그는 여유롭게 천천히 주변 경치를 보며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산에서 내려온 것이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건만, 새로운 것은 계속해서 나타났기 때문.
하물며 이런 대규모의 축제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걷는 게 싫어질 것 같군.’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여유는커녕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인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었다.
‘존스는 왜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거지?’
이런 귀찮음을 동반해야 한다면 그는 인기 따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또 그를 알아본 누군가 그에게 달려왔다.
“저, 혹시 백일진 학생 아니세요?”
“맞는데…….”
“혹시 사인 하나만…….”
“싫습니다.”
“와, 거절하는 것도 존X 카리스마 있어.”
“…….”
아무리 거절을 해도 주변에 사람이 몰리자, 피하듯 자리를 빠져나온 백일진은 어쩔 수 없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걸었다.
“후, 이제 좀 살겠군.”
그러던 중, 저 멀리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색색 나뭇잎 모양의 조명이 보였다.
라이트 마법을 이용한 네온사인 조형물은 오색의 빛깔을 뽐내며 그의 시선을 빼앗았다.
-오,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나도.’
그렇게 한참을 눈에 담고 있을 때.
와락-
누군가 뒤로 다가와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달콤한 로즈마리 향을 풍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