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4
아카데미 담당 일진 14화
마법의 발전은 로체트 왕국의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무공의 보급은 그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중에서도 장안시티는 신도시답게 높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주상복합은 기본이고 초고층 빌딩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나중에 할아버지랑 저런 곳에 살면 좋겠어.’
빌딩 숲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교학처 직원이 말해줬던 부동산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군, 큰 동상이 보이는 공원 옆 1층 부동산.’
들어와 보니 안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물건도 별로 없었다. 아담한 크기의 책상과 소파, 그리고 턱이 두 겹인 공인중개사만 있을 뿐.
“어서 오세요!”
“네.”
후덕한 인상의 공인중개사, 겔만은 종이컵에 달곰한 핫초코를 타서 내밀고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아카데미 주변, 오늘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아카데미 주변 말씀이시죠? 월세인가요? 매매인가요?”
“상관없습니다.”
그 말에 씨익- 함박웃음을 지은 공인중개사가 손을 들어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버튼을 클릭하자 수십 개의 매물 사진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학생이신가 보네요?”
“네.”
“그럼 이 집들이 좋을 것 같은데…….”
겔만이 보여준 세 개의 집들은 저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웅장한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첫 번째 집입니다.”
“네.”
첫 번째 집은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집이었는데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운치 있는 광경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집이요.”
“네.”
두 번째 집은 담장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 철옹성 같은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
마지막은 보기만 해도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는 멋들어진 저택이었다. 하지만 벽면을 꽤 오래 내버려 뒀는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벽면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관리가 잘 돼 보이는군.’
“마지막 집이 괜찮네요.”
백일진의 호의적인 반응을 본 겔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이 집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18년간 아무도 살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 소문 덕분에 경매에서 싼값에 매입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아무도 안 사간다는 것.
아니, 단 한 명 사러 온 사람이 있긴 했다.
자신이 아카데미의 학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찌나 짠돌이던지 시세의 1/10을 부르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멀쩡한 집에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10년 넘게 이 집을 보유하고 있던 겔만은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관리 마법을 유지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해 이젠 팔아도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더 가지고 있다가는 손해를 볼 정도야…….’
이번에도 내심 포기하는 마음으로 매물 사진을 끼워 넣어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눈앞에 부유해 보이는 -세상 물정도 모를 것같이 생긴- 학생은 이 집에 관심이 있어 보였으니.
‘이 학생은 지금 이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
학생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겔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 경력의 감이 말해준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싸게 주더라도 이 집을 빨리 처분해야 한다.’
겔만은 눈앞에 손님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세라, 재빠르게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에 뛰어난 마법사 부부가 살았던 집으로 내부는 아직도 관리 마법이 상시 가동되고 있고, 또…….”
겔만의 말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어느새 그의 양 입가에는 흰색 거품 같은 것이 껴 있었다.
“흠흠.”
장장 20분 동안 이어지는 겔만의 말이 슬슬 지겨워진 백일진은 낮게 헛기침을 하며 태블릿 속 사진을 가리켰다.
“설명은 그만하면 됐고, 직접 볼 수 있나요.”
“네. 당연하죠! 지금 바로 모실까요? 제 차로 이동하시죠.”
“네.”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으려던 백일진은 신발을 신고 차에 타는 겔만의 모습을 보고 행동을 멈췄다.
‘차에 탈 때 신발은 신고 타는 건가.’
첫 번째 집은 아카데미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집 안도 아늑하고 분위기도 고요한 것이 나름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 향기도 좋군.’
백일진은 손으로 집 곳곳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무 특유의 거친 촉감이 그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꽤 괜찮네요.”
“하하, 확실히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라 운치가 있죠. 그럼 두 번째 집도 보러 가시죠.”
두 번째 집은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웅장했다. 문제는 아카데미에서 거리가 꽤 멀었다.
“음…… 이 집은 좀 멀리 있네요.”
“하하, 좀 그렇죠? 그래도 다음 집은 아카데미에서 도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집입니다.”
마지막 집은 정말로 아카데미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주변 분위기도 고요했다.
운치 있는 분위기와 아카데미까지의 통학 시간까지 생각한 백일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주변의 집은 구하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세월을 고스란히 맞은 흰색 외벽은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집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정원을 대충 훑어보니 겔만이 말했던 대로 실제로 관리 마법이 돌아가는 중인지 잡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백일진에게 겔만이 다가왔다.
“마음에 드세요?”
“구석 쪽도 둘러보겠습니다.”
마저 구석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뭔가 오묘한 기운이 백일진의 주변을 감돌았다. 그 간질거리는 기운은 부드러운 손길처럼 백일진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쿵쿵-
그 기운에 이끌린 백일진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뭐지?’
기감을 끌어올린 그가 기운의 근원을 찾아보려 했으나 이미 자취를 감춰 버렸다.
‘착각이었나.’
쿵쿵-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예의 그 기운이 다시 한번 백일진의 심장을 자극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길게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순간, 알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할아버지와 살았던 레어에서나 느낄 법한 그런 감각이랄까.
‘아니.’
그보다는 데칸트의 결계 마법 내에서 본 그 거대한 눈, 마치 그 눈에서 느껴지던 기운과 흡사했다.
백일진이 차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겔만에게 다가갔다.
“겔만 씨, 이 집에 뭔가 있나요? 무슨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네?”
그 말을 들은 겔만이 호들갑을 떨면서 켁켁- 거리더니 담배를 끄고 달려왔다. 뒤뚱뒤뚱 움직이는 모습이 꽤 우스웠지만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어쩌지, 말을 해? 말아?’
겔만은 집을 빨리 팔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로 백일진을 속여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신뢰가 중요한 공인중개사로서 고객에게 사기를 칠 수는 없는 법.
“사실, 이 집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저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꿀꺽- 겔만의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백일진은 동공이 흔들리는 겔만을 뒤로하고 마저 저택을 돌아다녔다.
집안 곳곳을 둘러볼수록 낯선 익숙함은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백일진은 이 집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밖으로 나온 백일진이 고개를 돌려 저택 전체를 시야에 담았다.
‘위치도 그렇고 외관과 크기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나무로 만들어진 첫 번째 집과 고민이 됐지만, 이미 백일진의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묘하게 느껴지는 기시감도 그렇고 외관도, 위치도 좋아.’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느껴지는 친숙함이 그의 소유욕을 이끌었다.
‘저 사람이 말한 귀신인지 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백일진은 의자에 앉아 땀을 닦고 있는 겔만에게 다가가 집을 가리켰다.
“이 집, 얼마죠?”
“네? 아 이 저택은 어디 보자…….”
그 말을 듣고 씰룩이는 입가를 겨우 진정시킨 겔만은 뒤뚱뒤뚱 다가와 뭔가를 계산하는 척 태블릿을 두드렸다.
“원래는 중개수수료 포함 4억 5천3백만 골이지만, 학생이기도 하고 3억 5천만 골만 받겠습니다.”
3억 5천이면 마진은 전혀 못 챙기는 -오히려 손해인- 금액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귀신이 나온다고 말했음에도 구매하겠다는 학생한테 고마운 마음이 생길 정도.
백일진도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지만, 겔만이 제시한 금액이 매우 저렴하다는 건 알았다. 어느새 아공간에서 카드를 꺼낸 백일진이 겔만에게 말했다.
“살게요. 바로 입주할 수 있는 거죠?”
“네? 아, 네 맞습니다! 서류부터 가져올게요.”
겔만은 서류를 찾기 위해 뒤뚱거리며 차로 달려갔다.
“귀신 같은 건 정말 신경도 안 쓰는 건가……. 보기와 달리 엄청 쿨한 타입이네.”
조수석을 한참 뒤적거리던 겔만은 허둥지둥 서류와 펜을 꺼내왔다.
그것들을 건네받은 백일진은 계약서를 한 번 훑더니 적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적어가던 백일진의 펜 끝이 멈칫했다.
‘인적 사항……?’
그에게는 이름을 제외하고 딱히 적을 만한 인적 사항이 없었다. 주소도 그렇고 자금 출처도 그랬다.
잠깐 고민하던 백일진은 뭔가를 생각해 내고는 마저 서류를 적어갔다.
‘대충 황보세가 출신이라고 적어야겠군.’
인적 사항을 전부 적은 백일진은 완료된 서류를 겔만에게 넘겼다.
계약서를 받아 훑어보던 겔만은 ‘호오- 황보세가’라고 중얼거리더니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태블릿에 계좌번호를 띄우고 보여줬다.
원래는 받아야 할 문서들이 더 많았지만, ‘황보세가’라고 쓰여 있는 인적 사항을 본 겔만은 그런 건 그냥 넘기기로 했다.
세상에 어떤 간 큰 사람이 감히 오대세가인 황보세가의 이름을 들먹일 수 있겠는가.
“이제 여기 계좌번호로 금액만 이체하시면, 오늘부터 바로 입주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백일진은 저번에 만들었던 카드에 내공을 담았다. 밝은 빛과 동시에 카드 위에 입체적인 창이 뜨면서 잔액이 표시되었다.
[예금 잔액 – 736,864,057G]“3억 5천만 골 이체. 계좌번호 마탑은행 1509-09516 겔만.”
[겔만님의 계좌로 350,000,000G 이체 확인하시겠습니까.]“확인.”
띠링- 소리와 함께 겔만의 카드가 빛이 났다.
“오, 완료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개인 지장만 찍어주시면 나머지 등록 절차는 제가 마무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장을 찍던 백일진의 단전이 쿡쿡- 아려왔다. 하늘을 바라보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벌써 운기를 할 시간이 됐나.’
겔만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는 백일진을 보고, 무슨 일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닙니다.”
대답과 달리 백일진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단전부터 시작된 진통은 이윽고 심장, 머리로 번져갔다. 안색이 점점 창백하게 가라앉았고. 왼쪽 다리는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버린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 몸을 다잡고 낮게 심호흡을 하니 약간은 진정이 됐다.
‘으윽.’
그러나 고통은 곧바로 다시 시작되었다. 어느새 그의 상의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후, 얼른 이 사람을 보내고 운기조식을 해야겠어…….’
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겔만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씰룩씰룩 몸까지 흔드는 모습이 매우 신나 보였다.
“아, 참 그리고 옵션으로 침대와 소파, 식탁을 넣어 드렸으니 가마제품(家魔製品) -가정에서 사용하는 마정석을 이용한 제품- 만 구매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뒷마당은 관리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수다쟁이 겔만이 계속해서 뭔가를 더 설명하려 했지만, 백일진은 그런 겔만의 말을 끊었다.
“……네, 피곤해서 이제 좀 쉬고 싶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동산이 필요하시면 또 저를 찾아주세요.”
“네.”
그 후로도 겔만은 바로 가지 않고 열 번도 넘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를 닮아 뚱뚱한 차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만 남긴 채.
* * *
저택 내부로 들어오니 안쪽도 관리 마법이 착실히 돌아가는지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리 마법도 냄새까지는 처리하지 못하는 듯 퀴퀴한 냄새가 그의 코를 들쑤셨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려던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정말로 단전이 찢어질 것 같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운기조식은 백일진의 기억의 시작부터 언제나 그와 함께였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을 때, 터져 버릴 것 같을 때, 미쳐 버릴 것 같을 때까지.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이미 운기를 끝마치고 일어날 시간인데도 백일진은 가부좌를 풀지 않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평소라면 제대로 통제가 되어 대주천을 해야 할 내공들이 앙탈을 부리듯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
턱에 맺힌 땀 한 방울이 톡-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후우…….’
부욱-
순간, 배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전의 한 곳이 찢겨 나간 것. 곧바로 찢긴 혈도를 통해 내공이 줄줄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새어 나간 내공은 피를 타고 몸 안을 빙빙 돌다가 결국 심장에 있는 마력회로를 타고 들어갔다.
‘으윽…….’
거대한 고통이 백일진을 찾아왔다.
찢어져 버린 단전도 문제였지만, 그 기운을 제어하지 못하는 마력회로가 더 문제였다. 통제를 잃은 기운들은 이내 폭주하기 시작했다.
‘흐으…….’
백일진은 마력회로에 빨려 들어간 기운들을 급하게 단전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기세를 탄 기운은 통제되지 않고 그대로 쭉 뻗어 나갔다.
일종의 주화입마(走火入魔)였다.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기운과 내공, 그리고 마력회로의 마력이 뭉쳐 날뛰었다. 그의 전신 곳곳 우글거리는 푸른 혈관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덜덜덜-
점점 거세지는 반동 탓에 그의 몸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으윽.”
과호흡 상태가 된 그가 몸에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동시에 신체 내무에서 툭- 툭- 소리가 들려왔다.
백명학의 금제가 풀리고 있던 것.
“하아…….”
세맥을 막아놨던 금제가 풀리자마자, 내부에 잠자던 기운들이 그의 몸을 휩쓸었다.
이내,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살갗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전부 벗겨졌고, 그 위를 흑색 비늘이 덮기 시작했다.
살짝 뜨여진 눈에 보이는 동공은 날카로운 칼눈처럼 세로로 길어져 있었다.
크르르-
순식간에 넓어진 육감이 주변에 있는 모든 기운을 탐닉하듯 핥아댔다. 졸지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그의 두뇌는 터질 것처럼 가열됐다.
마침내 그의 몸은 빵빵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터지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때.
웬지모를 익숙하고 친숙한 기운이 주변을 빠르게 백일진을 감쌌다. 그 기운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백일진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전신 구석을 어루만지던 잿빛 기운은 부드럽게 온몸을 덮었고, 그 순간 부풀었던 몸이 가라앉았다. 뜨겁게 달구어진 뇌도 제 온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후우…….’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고통이 멎어감과 동시에 사라진 줄 알았던 백명학의 기운이 다시 몸을 금제했고 비늘 위에 다시 새살이 돋아났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감았던 눈이 뜨였다.
번뜩-
그 순간, 그의 눈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