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74
아카데미 담당 일진 74화
단계홍의 말을 들은 학생들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내려앉았다.
차라리 쪽지시험을 보고 말지 학생회장이랑 대결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 교수님 진심입니까?”
“지대학 선배랑 어떻게 대결을 해요!”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학생회장이랑 대결해서 인정을 받으라니 너무하세요!”
“이건 훈련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실력 차이가 적당히 나야 훈련이라도 되는 거지, 이것은 숫제 아이와 어른의 대결이다.
물론, 이 바닥에서 몇십 년을 구른 단계홍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단 일 초.”
“……?”
“학생회장의 공격을 단 일 초식만 버티면 실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하겠다.”
“아…….”
“그리고 버티지 못하더라도 대응을 하는 모습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겠다.”
학생들은 가만히 멈추고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일 초식이면 반격까지 할 수 있겠는데.’
‘삼 초식도 아니고 일 초식이면 공격 한 번 피하기만 해도 되잖아.’
‘난 방어에는 자신 있으니까. 막아야겠다.’
각자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은 달랐지만, 한 가지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공통으로 관통했다.
그건 바로 ‘일 초식이면 할 만한데?’라는 것.
단계홍은 그들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늘게 몸을 떨며 웃음 지었다.
“켈켈- 이제 불만 있는 놈 없지? 전부 옷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나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단계홍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뒤따라 지대학이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아, 근데 단 교수님은 왜 맨날 수업할 때 연무장에서만 하는 거야. 강당이 훨씬 깔끔하고 시원하고 좋은데.”
“교수님 앞에서 그렇게 말해봐.”
“그나저나 지대학 선배의 무공을 볼 수 있다니 기대된다!”
“그 무공이 우리 낯짝을 향하니까 문제지.”
홈베이스에서 옷을 전부 갈아입은 모용석은 구멍이 나 있는 백일진의 체육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진, 체육복이 찢어져 있는데?”
백일진은 별 상관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짓고, 체육복의 찢어진 부분을 몇 번 어루만졌다.
“어차피 수업 때만 입으면 되니까 괜찮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연무장으로 나가니 체육복을 입은 1학년 특임반 학생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후- 떨린다.”
“그러게…….”
마이크를 잡은 단계홍이 먼저 유급생들이 몰려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유급생 놈들이 먼저 해야겠지? 나설 사람은 손을 들도록.”
당연히 가장 먼저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빨리 안 나오면 내가 호명하도록 하겠다.”
“자, 잠시만요.”
유급생들은 저들끼리 숙덕숙덕 얘기하기 시작했다.
“네가 나가.”
“아니, 네가 나가.”
“그냥 가위바위보 하자.”
잠시 후, 똥 씹은 표정을 한 크리스가 자신의 주먹을 내려치고는 터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지대학은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지대학의 얼굴을 본 여학생들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와, 일진이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데? 안 그래?”
“뭐래, 나는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스타일 안 좋아해. 어깨 넓고 옷발도 잘 받고 얼굴까지 잘생긴 일진이가 낫지.”
“난 둘 다 좋아…….”
단계홍은 크리스와 지대학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에 걸린 호각을 불었다.
삐이익-
호각이 울림과 동시에 크리스가 네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광채가 크리스의 주위에 반투명한 구체를 만들어냈다.
“매직 실드.”
“오- 매직 실드 좋은 마법이지.”
지대학은 뒷짐을 지고 크리스의 매직 실드가 완전히 구체의 형상을 띨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들어갈게.”
“네, 넵!”
싱긋 웃은 지대학은 살랑- 손을 휘둘렀다. 매우 가벼워 보이는 손짓이었다.
휘이잉-
그의 손이 일으킨 작은 바람은 삽시간에 폭풍이 되어 매직 쉴드 위로 휘몰아쳤다.
“와-”
“역시 학생회장…….”
“이것이 검룡이라 불리는 사람의 무공인가.”
무공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손동작이었지만, 위력만큼은 상승무공과 다름없었다.
쨍그랑-
폭풍이 닿은 순간 크리스의 실드가 깨졌다. 동시에 연무장 바닥에 모래들이 자욱하게 피어올라 학생들의 시야를 가렸다.
“뭐야, 안 보여!”
“어떻게 된 거지?”
“조금 기다려 봐, 너만 안 보이냐?”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고 시야가 천천히 드러났을 때, 쓰러졌을 것만 같았던 크리스가 우뚝 서 있었다.
“서 있다!”
“와, 크리스, 어떻게 서 있지?”
“버틴 건가?”
“으이그, 바보들아. 학생회장이 검도 안 꺼냈잖아.”
먼지구름 사이로 크리스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의 체육복은 넝마가 되어 있었으며 온몸에는 수많은 자상이 생겨 있었지만, 큰 외상은 없었다.
“일 초식. 끝났습니다.”
단계홍은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 크리스를 훑었다.
“……크리스, B+.”
짝짝짝- 짝짝-
학생들이 일어나서 크리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지대학도 가볍게 손뼉을 치며 크리스를 축하했다.
‘너무 살살했나.’
지대학은 뭉쳐 있는 유급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다음 차례로는 원진이 나섰다. 지대학은 원진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원진 오랜만이네?”
“지 선배도 오랜만입니다.”
“바로 들어갈게?”
“그러시지요.”
지대학은 크리스를 상대했을 때와 달리 검을 꺼내 들었다.
스르릉-
순간, 지대학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것을 본 원진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쉽지 않겠군.’
타앗-
제자리에서 사라진 지대학이 원진의 바로 앞에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부터 시작된 기세는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연무장 주위까지 퍼져 나갔다.
구경하던 학생들의 체육복 자락이 펄럭였다. 몇몇은 눈에 모래바람이 들어가 눈물을 닦아냈다.
“크윽-”
“검풍을 이렇게…….”
원진도 손에 내공을 담고는 검풍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아미타불-”
콰앙-
나름 회심의 일권을 내질렀지만, 결국 검풍의 압력을 버티지 못한 원진의 몸은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더니 연무장 단상 계단에 처박혔다.
“와…….”
“…….”
“원진, A.”
크리스 때보다 무공을 강하게 펼친 것을 감안해서인지, 원진은 일 초식을 버티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점수와 관계없이 학생들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지대학이 강하다지만 상대는 1, 2학년을 통틀어서도 상위 랭커인 원진이다.
그런 원진이 일격도 버티지 못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살포시 털어낸 지대학은 검 끝으로 지태경을 지목했다.
“다음.”
작게 심호흡을 한 지태경이 묵묵히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스르릉-
지태경은 인사 대신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엔 푸르스름한 기가 미약하게 맺혀 있었다.
“와, 검기다.”
“태경이가 언제부터 검기를 사용했지?”
“몰라, 백일진이랑 사건 있고 나서부터, 맨날 수련한다고 그러던데…….”
삐익- 호각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지태경은 지대학을 노리고 비호처럼 달려들었다.
‘선공으로 주도권을 뺏어온다!’
하지만 지태경의 공격은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애먼 허공을 가른 지태경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지?’
마법이라도 사용한 듯 지대학의 몸이 허공으로 스며들었기 때문.
‘마법인가?’
지대학도 특임반 출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다. 마법진도 없었을뿐더러, 아무리 지대학이라도 이런 고위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순간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공동의 장문인이 해주었던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태경아, 다음으로 청성의 무공은 바람처럼 천변만화(千變萬化)한 특성이 있으니, 청성의 인물을 상대할 때는 눈이 아닌 기의 흐름으로 파악을 해야 할 것이다.’
지태경은 과감하게 눈을 감았다.
‘눈이 아니라…… 기의 흐름으로.’
학생들은 뜬금없이 눈을 감는 지태경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지태경 쟤, 뭐 하는 거지?”
“포기했나?”
눈을 감고 기감에 집중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쪽이다.’
지대학의 위치를 포착한 지태경은 숨도 쉬지 않고 달려들며 검을 사선으로 들어 올렸다.
채앵-
방향은 맞출 수 있었으나, 검을 놓치고 말았다. 허공으로 날아간 지태경의 검이 떨어지며 땅바닥을 굴렀다.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 든 지태경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일 초식 끝났습니다.”
설마 자신의 위치가 파악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지대학은 놀란 눈으로 지태경을 쳐다봤다.
‘지태경이 이 정도의 실력이었던가?’
단계홍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태경 A+.”
그 이후로 예자원, 토마스 등 다른 유급생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들 모두 전부 일 초식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쯧, 유급생 중에는 원진, 지태경 말고는 A 이상을 받은 녀석이 없구만.”
단계홍은 유급생들의 처참한 결과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유급생들은 뭐라고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신입생들의 차례였다.
신입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지대학은 한 학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다음.”
지대학의 눈빛을 받은 백일진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보철수는 걱정을 가득 담은 눈을 하고 백일진을 쳐다봤다. 옆에 있는 황보수정, 엘리아, 설하윤, 하이린도 마찬가지였다.
“이, 일진, 가장 먼저 해도 괜찮겠어?”
“괜찮다.”
“잘하고 와라.”
“응.”
단계홍은 제자리에 일어서는 백일진을 보고 눈을 빛냈다.
‘백일진인가……. 이 녀석은 얼마나 할지 기대가 되는군.’
백일진은 단계홍이 가리키는 자리로 몸을 옮겼다.
“백일진, 지대학. 마주 보고 서도록.”
“네.”
지대학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백일진도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포권을 취했다.
“그쪽이 백삼진 학생?”
“백일진입니다.”
“아…… 내가 이름을 잘 못 외워서. 하하, 이해 좀 해줘.”
“네.”
이름을 우습게 불렀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지대학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소문이랑 달리 쉽게 흥분하는 성격은 아니군.’
백일진은 흥분을 하지 않았지만, 천마검은 달랐다.
-저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자식, 웃기는 놈일세. 너도 빨리 지소학이라고 해버려.
‘됐다.’
-저건 너를 놀리는 거다.
백일진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이름을 몰랐던 것이든, 단순히 놀리려고 저렇게 말하는 것이든 굳이 이런 사소한 것으로 기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먼저 들어갈게.”
“네.”
검을 들기 전의 지대학은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바람 같았다면, 검을 든 지대학은 모든 것을 부수고 집어삼키는 해일 같았다.
‘사람이 달라진 기분이군.’
그 변화를 직접 마주한 백일진은 놀랐다는 듯 입가를 살짝 오므렸다.
-너도 어서 검을 들어라.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인 백일진도 스르릉- 소리와 함께 천마검을 뽑았다.
삐익-
지대학의 신형이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순간 백일진의 주위로 수백 개의 길고 검은 실이 생겨났다.
‘뭐지?’
-검사(劍絲)를 이렇게 사용한다고?
검사란 검기의 상위 단계로 검기를 가늘게 실처럼 뽑아내는 것이었다. 당연히 검기를 자유롭게 다루지 못한다면 검사를 뽑아낼 수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지대학은 검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경지라는 것.
-조심해라! 닿으면 잘린다.
천마검이 급하게 경고했지만, 이미 왼쪽 허벅지가 줄에 닿은 상황이었다.
“윽.”
허벅지에서 울컥하며 솟구쳐 나온 피는 그의 체육복을 적셨다.
-다행히 아예 잘려 나가진 않았군.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허벅지의 감각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직도 수백 개의 검은 실선이 아가리를 열고 있는 뱀처럼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으니.
“이걸 일 초식이라고 할 수 있나.”
-엄밀히 따지면 일 초식은 아니지.
무심하게 자신을 감싼 검사를 지켜보던 백일진은 천마검을 우악스럽게 휘어잡았다.
-야! 살살 다뤄라.
백일진의 근육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사아아-
찰나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황금빛 오러 기둥이 그의 검에 모여들었다.
내공으로 오러를 흩날리지 않게 붙잡고 천마검을 오러로 뒤덮으니, 이내 검기와 비슷한 모양새의 오러 소드가 만들어졌다.
마법 전형 학생들은 처음 보는 노란색 기운을 보고 감탄의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 노란색 검기다.”
“백일진도 검기를 쓴다고?”
“근데, 저거 오러 아니야?”
“어, 그러네. 정말 오러 같은데?”
오러를 전부 끌어모은 백일진은 추진을 얻기 위해 살짝 무릎을 굽혔다. 감각이 없어진 왼쪽 허벅지가 거슬렸지만, 동작을 멈추지는 않았다.
완벽하게 자세를 잡은 그는 검은 실선의 정중앙을 향해 달려나갔다. 체육복 밑단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피가 그의 걸음마다 흔적을 남겼다.
‘전부 잘라낸다.’
옥청혜검(玉淸慧劍) 제1식(第一式) 용시호행(龍視虎行).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당의 절기가 그의 손에서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