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1)
하지만 예상치 못한 주인공의 활약으로 빌런은 퇴치되고, 히로인은 남성공포증에서 구원받고, 주인공 하렘 멤버가 1명 추가되고.
뭐, 그런 왕도물 같은 전개.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여기, 최심부로 향하는 문이에요!”
매드 해터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했으니까.
눈앞에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것과 같은 석문이 보인다.
세례의 성소 최심부.
기프트를 부여하는 유물, ‘세례의 관’이 있는 목적지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
콰광!
올리비아가 석문을 난폭하게 부순다.
흙먼지 사이로 최심부 내부가 보인다.
광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한 석실.
중앙에 괴물이 한 마리 있다.
전신이 초록빛 불꽃으로 휩싸인, 곰보다 더 큰 체구를 지닌 거대한 검은 개.
[경고. 전방에 강력한 적대 이계종이 감지됩니다.]듀랜달의 알림음을 듣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위험해 보이는 보스몹.
올리비아가 낮게 중얼거린다.
“제타 랭크 이계종 헬하운드······.”
이래서 설명충이 있는 게 편해.
“이번만큼은 당신도 함께 싸워야 할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제 책임을 저버리겠다는 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서 전위에서 당신을 지키려고 노력하겠지만 어디까지나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면······.”
올리비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듀랜달을 손에 잡는다.
“알고 있어.”
그녀의 눈동자가 커진다.
나는 멍청하지 않다.
어떤 보스몹이 나오건, 결국 나까지 전투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가능성 정도는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어떤 놈이 나올 줄 몰라서 문제였지만, 헬 하운드라면.
상대할 만하다.
“그러니까 앞에서 몸빵이나 제대로 대고 있어.”
“다다당신은 꼭 말을 그렇게 얄밉게 해야 하나요!”
올리비아가 소리치던 그때.
[아우우우우우우우!!]헬하운드의 하울링이 최심부를 울린다.
한 발짝 뒤로 빠지며 올리비아에게 말한다.
“온다. 조심해.”
“······알겠어요.”
올리비아가 플랑베르주를 들어 올린다.
화르륵.
검신에 마력의 불길이 옮겨붙는다.
[크르르르르르! 컹! 컹!]헬하운드가 짖으며 돌진한다.
쿵, 쿵!
거구의 이계종이 달리자 지축이 울린다.
[캬아아아아아!!]헬하운드가 초록빛 불길이 휘감긴 거대한 앞발로 올리비아를 후려친다.
콰광!
폭음이 울린다.
“크윽!”
올리비아가 숨소리를 내뱉는다.
백금색 불길에 휩싸인 그녀의 플랑베르주가 헬하운드의 앞발에 맞서고 있다.
“이깟 이계종 따위······.”
올리비아가 이를 악물며 플랑베르주를 휘두른다.
그녀의 기프트, 염화능력이 발현된다.
허공에 백금빛 화염구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개까지 생성되더니 곧바로 헬하운드의 눈에 직격한다.
콰광.
폭음이 울린다.
[캬아아아아아아!!]헬하운드가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른다.
시야가 차단된 헬하운드가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붕, 부웅!
섬뜩한 파공성과 초록 불꽃의 궤적이 허공을 수놓는다.
올리비아는 헬하운드의 앞발을 한 치 차이로 전부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면서 지속적으로 참격을 날려 헬하운드를 공격한다.
하지만 헬하운드도 올리비아도 모두 화염 속성 보유자.
같은 속성이라 데미지가 반감되는 만큼 유효타를 넣기 힘들 터.
‘이제 슬슬 갈 시간이로군.’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한다.
[비행 모드 전환.]푸슉.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등에서 부스터가 튀어 나온다.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천장 근처까지 도달하자 저 아래에서 올리비아와 헬하운드가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인다.
폭음이 울리고 불꽃이 튀고 섬광이 번쩍인다.
지축이 울리고 공기가 달아오른 게 느껴진다.
이를 악문다.
쿵, 쿵, 쿵, 쿵.
마력로가 달아오르며 마력을 뽑아낸다.
듀랜달이 마력을 탐욕스럽게 흡수한다. 칼날이 흔들린다. 검은 마력이 검신에 덧씌워진다.
어빌리티를 사용한다.
[동기화] [흑태자 라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지잉.
머리가 울린다. 심장이 불에 데인 듯 뜨겁게 달아오른다.
흑태자의 재능과 경험이 전신과 뇌리에 폭력적으로 각인된다.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다.
시야가 붉게 물든다.
이마를 찡그린다.
머리가 빌어먹게 아프다.
“······할 만하군.”
그래도 참을 만하다.
처음 동기화를 사용했을 때보다는 나아졌다.
‘설정집에 나왔던 헬하운드의 약점은 척추.’
헬하운드는 원작에서 꽤 자주 출연했던 이계종.
당연히 약점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헬하운드도 멍청한 건 아니라서 약점인 척추는 특유의 초록빛 마력 불꽃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 위력은 무심코 약점을 노리던 영웅의 마력장을 전부 소모시켜 나가떨어지게 만들 수준.
원래라면 C랭크에 불과한 김덕성의 힘으로는 노리는 게 불가능한 약점이다.
하지만, 듀랜달이 있다면 다르다.
듀랜달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전승으로 유명한 마검.
초상병기 듀랜달에도 전설에 걸맞는 어빌리티가 탑재되어 있다.
[금강불괴]동기화에 이은 두 번째 어빌리티를 발현한다.
듀랜달의 전설, 부서지지 않는 절대 방어력을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어빌리티.
두근, 두근.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낸 탓인지 시야가 일그러진다.
칼자루를 쥔다.
흑태자의 재능이 공격루트를 알려주고, 흑태자의 경험이 검로를 그린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부스터를 역으로 가동한다.
급강하를 시작한다. 주변 풍경이 빠르게 변한다.
시야를 고정한다.
목표는 척추.
파츠츠츠츳!!
듀랜달의 칼날에 응집된 검은 마력이 스파크를 튀긴다.
입 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난다.
입가에 피가 흐른다.
“좀 뒈져 이 시발!”
욕을 내뱉으며 불꽃이 보호하고 있는 놈의 등허리, 척추 부근에 정확히 칼날을 꽂는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약점을 직격당한 헬하운드가 끔찍한 괴성을 지른다.
초록빛 불꽃이 나를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며 타오른다.
시야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다.
내 몸을 보호하는 마력장이 순식간에 닳아 사라진다.
[금강불괴]지잉.
어빌리티가 발현되며 흑색 마력광이 전신을 휘감는다.
초록 불꽃의 반격은 끝났다.
“뒈지라고!”
욕을 내뱉으며 놈의 척추에 꽂힌 듀랜달에 마력을 계속해서 주입한다.
심장 소리가 울린다.
파츳! 파츠츳!
내가 주입한 흑색 마력이 헬하운드의 체내를 휘젓던 그때.
콰광.
놈의 체내에서 폭음이 울린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그와 함께 헬하운드의 몸이 경직된다.
시야를 가득 메우던 초록 불꽃이 빠르게 사그라든다.
놈이 죽었다는 신호다.
“김덕성 씨!”
귓가에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우리가 해냈어요! 해냈다고요!”
이 시발, 정신 잃으면 안 되는데.
아직 메인 디쉬가 남아 있다.
고개를 흔든다.
일단 마력을 하마처럼 쳐먹는 빌어쳐먹을 전투 모드부터 해제해야 한다.
[듀랜달 오프라인]전투 모드를 해제한다.
전신 장갑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어빌리티가 사라지자 온몸에 탈력감이 몰려든다.
힘이······. 빠진다······.
“으으으으······.”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헬하운드 시체 위에서 미끄러진다.
이대로 떨어지면 다칠 텐데.
하지만 몸에 힘이 빠져서······.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때.
“후후.”
이제는 익숙해진 아가씨 웃음소리와 함께, 따스한 감촉이 팔다리에 느껴진다.
고개를 든다.
올리비아가 보인다.
그녀가 헬하운드의 시체 위에서 떨어지는 나를 공주님 안기로 받아든 것이다.
“이 무슨 ㅆ······.”
라이트 노벨 같은 전개야.
하지만 팔다리에 힘이 없어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오려던 그때.
“······수고했어요. 당신.”
올리비아가 내게 속삭인다.
고개를 힘겹게 저으며 눈을 감는다.
그래, 잠깐이라면······.
얄미워
“이 무슨 ㅆ······.”
한국어로 힘없이 중얼거리던 김덕성이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의 고개가 젖혀진다.
의식을 잃은 것이다.
“하여튼, 말이나 못하면······.”
올리비아가 입술을 삐죽인다.
한국어를 배운 지 아직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뱉으려던 단어가 어떤 뜻인지는 알고 있다.
김덕성과의 첫 대면.
그때 그가 말한 한국어가 어떤 뜻인지 궁금했기에, 가장 먼저 사전에서 뜻을 찾아본 탓이다.
“어떻게 고귀한 프랑스의 황녀인 저한테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게 시정잡배나 할 법한 욕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보나파르트 황실의 금지옥엽이자, 흑태자의 유언 때문에 그의 후계자 취급을 받는 그녀였다.
그런 말과는 인연이 없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제 잘못 때문이지만요. 그래도 너무했어요.”
올리비아가 항의하듯 볼을 부풀린다.
그녀가 공주님 안기로 품에 안고 있던 김덕성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는 주변을 살핀다.
유적 최심부는 축축하고 어둡다.
습기가 방울져 떨어지는 천장, 딱딱하고 차갑고 울퉁불퉁한 바닥, 으스스한 공기는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는 결코 호의적인 환경이 아니다.
“으으······!”
올리비아의 뺨이 상기된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린다.
올리비아에게는 김덕성을 보좌할 의무가 있다.
이런 환경에 그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이이건 어, 어디까지나 전속 시녀의 의무니까요!”
얼굴이 붉어진 올리비아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허벅지에 그를 눕힌다.
일명 무릎베개라 불리는 행위.
괜히 부끄러워진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있는 김덕성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변태, 파렴치한······.”
괜히 심술을 부리면서 그의 뺨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하지만 김덕성은 깨어나지 않는다.
분명 아까 일격에 힘을 전부 소모했기 때문이리라.
올리비아가 손가락을 튕긴다.
화륵.
그녀의 기프트가 발현되며 허공에 백금빛 불덩이가 나타난다.
김덕성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올리비아는 불덩이의 온도와 위치를 세심하게 조절해 그의 곁에 배치한다.
조치를 끝낸 올리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저 혼자서도 충분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겠지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전력을 소모해서 그녀를 도와 이계종을 쓰러뜨렸다.
“당신의 모국에서 알려준 정보······. 라고 하셨죠?”
의식을 잃은 김덕성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는다.
올리비아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다.
유적의 잠재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현역 영웅도 아닌 일개 C랭크 영웅 후보생이 혼자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김덕성의 모국, 대한민국에서는 그에게 유적 정보를 굳이 알려줬다.
‘그건 호의로 포장된 명령이나 다름없어요.’
유적을 공략할 수 있는 건 영웅뿐.
그리고 약소국 한국에 영웅이라고는 오직 그밖에 없다.
김덕성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그래서다.
그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하네요. 당신이 처한 상황도, 당신의 조국도.”
그녀의 머릿속에 예전에 열람했던 김덕성의 신상 정보가 스쳐 지나간다.
천애고아 출신, 친구 하나 없던 고독한 삶, 갑자기 쏟아진 전 국가적 기대, 낯선 일본 땅으로의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