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32)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맹세한다.
그 말을 도저히 내뱉을 수 없다.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아뇨, 맹세할 수 없어요.”
그녀의 입에서 일본어가 흘러나온다.
“황녀님?”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 추기경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올리비아가 양손을 아래로 내린 채, 주먹을 불끈 쥐면서 눈을 감으며 일본어로 소리친다.
“저, 구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믿고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김덕성!”
그녀의 말이 예배당 전체에 메아리친 순간.
콰광!
천장에서 폭음이 터진다.
푸쉬시식.
그와 함께 뿌연 연막탄이 터지면서 하얀 연기가 예배당을 자욱하게 뒤덮는다.
툭.
구멍 뚫린 천장에서 검은 인영이 하나 떨어진다.
“당신······!”
올리비아의 얼굴이 펴진다.
믿는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솔직히 무리였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언약의 맹세를 거부하고 그를 부른 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와줬다.
자신의 부름에 응해줬다.
약속대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올리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 순간.
“에리링 등장이야★”
연기가 걷히며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는 니시자와 에리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본 올리비아의 얼굴이 빨개진다.
일본에 있어야 할 니시자와 에리가 대체 왜 여기에?
아니 무엇보다 그녀가 와준 건 고맙지만, 기대하던 사람은 아니다.
그녀를 그로 착각한 자신이 부끄럽다.
“으으으으으으······. 가, 가가갑자기 뭐, 뭐뭐뭐뭐뭔가요?! 니시자와 양?!”
올리비아가 진지한 분위기도 잊은 채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친 그때.
에리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황녀님, 위를 봐!”
“위······. 요?”
“주인님이 오고 있어!”
주인님이라고?
눈을 뜬 올리비아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툭.
누군가 바닥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하여간, 누가 츤데레 공주님 아니랄까 봐 말은 지지리게 안 들어요. 아무튼, 야.”
익숙한 구시렁대는 목소리가 올리비아의 귓가에 들린다.
그녀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올리비아.”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양아치처럼 생긴 소년.
김덕성이 있었다.
“구하러 왔다. 약속대로.”
뿌연 안개 속에서, 올리비아의 진짜 왕자님이 웃었다.
감히 누구를 건드려
원래 계획은 대통령이 녹취록을 먼저 폭로하면, 다음에 내가 벨라의 인도를 받아 성당에 진입해서 약혼자 배틀을 벌이는 것.
분명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올리비아가 나를 부르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올리비아가 약혼식을 앞두고 우는 모습, 올리비아 옆에 다른 놈이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내 감정이 놀랄 정도로 요동쳤다.
원작에서는 없던 광경.
그러나 다른 라노벨에서는 수없이 본, 클리셰적인 장면.
하지만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 내 마음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벨라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주인님의 주인님. 지금 진입하시겠습니까?]초상병기 네트워크를 통해 들려온 벨라의 질문.
[파트너,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 소녀가 너를 부르고 있다고. 네가 진정한 남자라면 소녀의 부름에 응해야지, 안 그래? 가자.]뒤이어 들려온 흑태자의 말.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 말 없이 천장에 서 있었다.
분노를 참고 있었다.
나는 이를 부서질 듯 갈고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냉정해야 한다.
“주인님. 안 내려가?”
침착해야 한다.
녹취록을 폭로한 뒤에 내려가야 한다.
계획대로 그렇게.
“좋아. 그럼 에리링이 먼저 내려갈게! 벨라 씨! 폭탄 터뜨려줘!”
하지만 내 계획은 에리로 인해 어긋났다.
콰광!
폭탄과 연막탄이 터지고, 부서진 천장으로 에리가 내려간다.
[파트너,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가야 하지 않겠어?]흑태자의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
‘어쩔 수 없군. 하여간,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다니까.’
정말 이건 어쩔 수 없는 사고다.
[파트너, 입가에 미소는 좀 지우고 그런 말 하지?]흑태자의 말을 무시하고는 혀를 차면서 나는 곧바로 강하했다.
연막이 자욱하게 깔린 노트르담 대성당 예배당.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발견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있는 백금발 미소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하여간, 누가 츤데레 아니랄까 봐 말은 지지리게 안 들어요. 아무튼, 야.”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이며 듀랜달에 손을 얹는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올리비아.”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커진다.
“구하러 왔다. 약속대로.”
내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으으으으으······.”
그녀가 입술을 깨문다.
“정말,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변태, 파렴치한, 우주 제일 둔탱이! 김덕성!!”
올리비아가 눈물을 뿌리며 내 품에 뛰어든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얼떨결에 품에 안는다.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당신이, 당신이 믿으라고 해서 계속 쭉······. 믿고······. 기다리고······. 그렇게······.”
올리비아의 입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파트너, 레이디가 울 때는 얌전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훌륭한 신사로서의 매너라고.]‘네가 안 말해도 하려고 했어.’
[오, 파트너. 웬일로 그렇게 남자답게. 다시 봤는데.]조용히 손을 뻗어 올리비아의 백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정말, 바보, 멍청이······.”
올리비아가 어깨를 떨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내 가슴을 두드린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제 왔잖아.”
“해삼! 멍게! 말미잘!”
올리비아가 투닥거리며 울먹거린다.
[파트너, 이럴 때는 괜히 튕기지 말고 그만 울라고 하면서 눈물을 닦아주는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의 조언이 울린다.
아무 말 없이 올리비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흑, 히끅······.”
올리비아가 울음을 서서히 그친다.
다행이네.
그녀가 슬슬 진정되는 기세가 보이자, 나는 그녀를 조용히 떼어놓으려고 했다.
“······싫어요.”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따, 따딱히 당신 품에 좋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면서 품에 파고든다.
어차피 더 말해봤자 내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올리비아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는다.
“바보.”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는다.
그 모습을 본 에리가 볼을 부풀리면서 말한다.
“에리링. 황녀님이 엄청 질투나지만 오늘 하루만은 봐줄게.”
툭, 투둑.
뒤이어 나와 지붕 위에서 같이 대기하던 애들이 떨어진다.
린, 카스미 선배, 아리스, 마코토, 유지와 이시하라.
나를 따라 프랑스로 온 슈오우 생도들이다.
“후배 군은 나쁜 남자야. 소녀의 순정을 이용해서 나를 프랑스까지 불러놓고 다른 여자와의 진한 애정 표현을 보여주다니, 역시 후배 군은 검은 귀축이구나.”
나를 본 카스미 선배가 샐쭉한 표정으로 칭얼댄다.
“큿······. 나도······. 안기고 싶다만, 오늘 하루만큼은 참겠다. 보나파르트. 다음은 없다. 알겠나?”
척.
뒤이어 가슴에 손을 올린 시노자키 린이 소리친다.
“주군. 나도 이번 일 끝나면 안아주는 거지? 그렇지?”
“······공공 장소에서 애정표현이라니······. 불건전합니다. 김덕성 군. 보나파르트 양.”
소심한 목소리의 마코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붉히며 학생회장 완장을 만지작대는 아리스까지.
모두 떨어진 순간, 연막탄이 터뜨린 하얀 연기도 걷힌다.
지붕에 뚫린 구멍에서 내려온 햇살이 우리 일행을 비춘다.
“너, 너, 너······.”
윌리엄이 영어로 나를 삿대질하며 중얼거린다.
“김덕성, 네가 대체 왜 여기에······.”
빙의 전 김덕성이 일본어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놓은 탓에, 프랑스어는 몰라도 영어는 현지인 수준으로 프리토킹과 스피킹이 가능하다.
윌리엄의 삿대질과 함께 예배당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다.
프랑스 황제 내외와 영국 국왕 내외와 그 가족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경악, 공포가 뒤섞인 표정.
[숙부랑 숙모도 오랜만이구만.]머릿속에서 흑태자의 아련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올리비아와 흑태자는 사촌 관계.
따라서 올리비아의 부모는 흑태자에게 숙부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설정집에 있던 흑태자의 배경 설정이 떠오른다.
원작 설정에서는 30년 전, 대재해 당시 보나파르트 황실도 이계종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고, 흑태자 본인도 전대 프랑스 황제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이명처럼 원래 태자였던 라울은 당시 황위 계승권자 1순위였지만 복수를 위해 제위 계승을 포기하고, 대신 검을 들어 가족의 원수인 이계종 토벌에 나섰다, 정도가 설정집에 적힌 그의 배경 설정.
하지만 올리비아도, 흑태자도.
아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인물도 단순한 라이트 노벨 캐릭터가 아니다.
살아 숨 쉬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한 명의 사람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단역으로 나왔던 프랑스 황제가 내가 손짓하며 뭐라고 한다.
[네놈들은 누구냐? 혹시 소련의 간첩이냐?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지금 즉시 저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라! 라고 하네, 파트너.]머릿속의 흑태자가 친절하게 프랑스어를 번역해준다.
하긴 저들 입장에서는 국가 행사 도중 난입한 테러리스트처럼 보이겠지.
“후배 군. 다음은 어쩔 거야?”
카스미 선배가 내게 묻는다.
“김. 나는 네 지시만 따를게.”
유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찬 일본도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무엇이든 명령해다오. 김덕성. 네 지시라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자신이 있다.”
내 뒤에서 비장한 각오로 입술을 깨무는 시노자키 린.
“주군. 나는 주군의 검이야. 주군이 명령하면 뭐든지 베어낼게. 그러니까 명령만 내려줘.”
슈숙.
내 앞에서 와키자시를 뽑아내며 주변을 경계하는 마코토.
“형님. 뭐든 시켜주십쇼. 뭐든 하겠습니다.”
총을 뽑아 주변을 겨냥하는 이시하라.
“주인님은 에리링이 지킬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이.”
사슬낫을 들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어질어질한 멘트를 내뱉는 에리까지.
모두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
하여간, 누가 라노벨 세계 아니랄까 봐.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치고 있는 와중에도 친절하게 기다려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의 적의어린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다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제1세계 자유진영의 안녕과 결속을 위해 마련된 국혼 행사를 이렇게 망치다니, 이게 한국과 일본의 공식 입장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나? 김덕성.”
윌리엄이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는다.
“······아니, 검은 귀축.”
윌리엄의 말을 들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왜 웃는 거지?”
전형적인 라노벨 악당 대사를 내뱉는 윌리엄.
“아니, 누가 누구더러 배신자라고 하는 건지,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래.”
윌리엄이 알아듣기 친절하게 영어로 답해준다.
“그게 무슨 망발······.”
“대통령님.”
대통령을 부른다.
“불렀나, 김덕성 군.”
“트시죠.”
긴 말 필요 없다.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한다.
“알겠네.”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이 뭔가 지시한 순간.
예배당 스피커에서 예의 그 녹취록이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가레스.] [예, 윌리엄 전하.] [혁명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 군의 포섭은?] [물론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윌리엄 전하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점점 전하 쪽으로 줄을 대는 장성과 유력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크크크크, 그래. 유약한 데다 영웅도 아닌 더글러스 따위는 왕의 자리에 걸맞지 않지. 이 ‘용살의 왕자’ 윌리엄이야 말로 버킹엄 궁의 주인이 될 남자란 말이다!]녹취록을 들은 하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특히 녹취록의 당사자인 영국 국왕 내외와 더글러스 왕세자의 표정은 가관.
윌리엄의 표정 역시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다.
항상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의 전속 시종, 가레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맞습니다. 전하.] [그 약은, 언제 도착하지? 이제 슬슬 약효가 다 떨어져가. 이대로라면 내 진짜 실력이 들통나고야 만다고. 그 약이 있어야 아스칼론이 말을 들어쳐먹는단 말이다. 빌어먹을 칼 같으니.] [내일 도착할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소서. 전하.]뚝.
녹취록이 끊긴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모함입니다! 전부 조작입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형님 전하!”
곧바로 구구절절 억울한 연기를 하며 변명을 시도하는 윌리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