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12)
김덕성을 도와 서울과 한국을 구한 그녀들의 여론이 긍정 일변도로 뒤집힌 것이다.
한미 게이트-빌런 상호방위조약 때문에 한국 방위를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주한미군 영웅들과는 달리 그녀들은 한국을 도울 의무도 이유도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기꺼이 서울 전투에 참전했으며, 거기에 대해서 어떤 외교적 물질적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대가를 요구할 만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국내 여론이 그녀들에 대해 호의를 보이는 걸 넘어 김덕성보다는 못하지만 광신에 가까운 열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갈드컵 역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특정 계층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경기도의 한 노인정.
뉴스를 보며 바둑을 두던 할아버지들의 시야에 올리비아의 영상이 들어온다.
“허, 참 저 아가씨가 참으로 곱구만. 말하는 것도 참하고, 저번에 보니까 김치도 잘 담그더만.”
“아무렴. 역시 김덕성님 각시로는 저 공주님이 최고지! 허허. 서양사람이긴 해도 다른 처자들보다 더 싹싹하고 말이야. 게다가 뭐시냐 프랑스 황실에서도 구호물자를 보냈다고 하지 않나.”
바둑을 두던 할아버지들이 허허 웃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용실.
옹기종기 모여 파마를 하던 아주머니들이 뉴스를 보며 떠들고 있었다.
“어머, 역시 시노자키 린이라는 저 여자애가 김덕성님 아내로 제일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요?”
“정말 이상적인 며느리감이에요. 기사에서는 꿈이 현모양처라고 자주 말했다죠? 요즘 아이답지 않게 아주 싹싹해요.”
“아버지가 일본 영웅 협회장이라지 않아요? 안 그래도 이번에 일본 영웅 협회에서 복구 자금을 무상 지원했다는데······.”
미용실에서 쑥덕대는 아주머니들!
여고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에리 영상 봤어?”
“완전 대박. 걸크러쉬 쩌는데.”
“역시 김덕성님한테는 에리 언니가 제일 어울리지 않아?”
“마코토 언니도 완전 대박 멋있었어.”
니시자와 에리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던 여고생이 떠들고 있다.
[시노자키 테마주 불러준다. 현성 길드, 대선 길드 이거 두개가 일본 영웅 협회 협력 길드주임 ㅋㅋ 협회장 딸 시노자키 린님이 앞으로 정실 될 테니까 지금 탑승해라 ㅋㅋ] [대선 길드 주식 떡상 실화냐 ㅋㅋㅋㅋ 앞으로 시노자키님만 믿고 간다 ㅋㅋㅋ] [SHL정공 이건 무슨 개잡주인데 갑자기 떡상함??? 그냥 개 듣보 좆소기업 아님? ㅋㅋㅋ] [- 아직도 모르냐? 그거 사장이 프랑스 방계 황족이랑 미국에서 같은 학교 다녔다잖아 ㅋㅋㅋ 올리비아님 테마주임 ㅋㅋㅋ]주식 시장에서는 히로인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기업 주식이 테마주로 묶이면서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히로인 갈드컵이 국민 스포츠가 되는 순간이었다.
*
일이 전부 마무리된 후.
쓰러진 유지는 병원으로 후송됐고, 쿠사나기는 다시 유지의 검으로 돌아갔다.
하루의 신병은 일시적으로 한국 헌터 협회 측이 일시적으로 인수했다.
그리고 나는 유지와 하루를 제외한 일행을 이끌고 집으로 복귀했다.
빙의가 풀렸다고는 해도 일단은 빌런이었던 몸이니 누군가 하루의 신원을 보증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협회에 억류되어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비를 열심히 한 건지 모르겠지만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아방궁 같은 내 집은 멀쩡했다.
“······하루를 빼내야 하는데, 어쩌지.”
이대로 계속 억류되어 있으면 곤란하다.
그러려고 풀어준 게 아닌데.
한국에서 내 위상이랑 별개로 하루를 빼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신원 보증과 복잡한 정식 절차가 필요한데, 절차야 내 권위로 무시하더라도 신원 보증 쪽은 난감하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하루는 아무 접점이 없었으니, 신원 보증을 할 방법이 없다.
유일한 가족인 유지는 정신을 잃었고, 린이 있긴 하지만 협회장인 이치로라면 모를까 그녀 혼자로서는 별 도움이 안 될 확률이 높다.
내가 하루를 빼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그건 이 몸한테 맡기거라. 꼬마야.”
끼익.
방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고개를 들자 그녀가 보인다.
하얀 머리와 빨간 눈을 지니고, 검은색 고스로리 드레스를 입은 미소녀.
이사장, 요시자키 세이라와 그녀 뒤에 선 늘씬한 은발 미소녀.
사이온지 아리스였다.
“쿠로사와 하루의 문제는 이 몸이 해결해주도록 하지.”
촤르륵.
세이라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검은 레이스 부채를 펼친다.
그녀 뒤에 서 있는 아리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면서 얼굴을 살짝 붉힌다.
요시자키 세이라.
그리고 사이온지 아리스.
두 사람이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라노벨 주인공
세이라를 보고 나서야 떠올랐다.
그녀를 부른 사람이 나라는 걸.
세이라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위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세이라가 여기 온 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리스까지 부른 기억은 없는데? 왜 같이 온 거지?’
하지만 내가 부른 건 이사장 혼자뿐이다.
아리스를 부른 기억은 없다.
싫다는 건 아닌데 조금 당황스럽다.
[파트너. 눈치 빠르면서 모르는 척하기야?]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태자의 대답이 들려온다.
내가 한심하다는 목소리.
흑태자에게 뭐라 말하려던 그때.
“어떠냐. 이 몸을 믿고 맡겨주지 않겠느냐? 꼬마야.”
살랑살랑.
세이라가 부채를 흔들면서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요염한 척 웃는다.
[누님······.]흑태자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저 주책도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기는 무슨. 하나도 안 반갑다.
제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 예. 뭐······. 그렇게 하십쇼. 이사장님.”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거나 세이라가 먼저 도와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게 한국 헌터물이었다면 여기서 불꽃 튀는 협상 장면을 찍어야 했을 텐데.
상냥한 라노벨 세상이 이런 면에서는 참 좋다.
머리 아프게 논리로 설득할 필요 없이 그냥 무지성 감성팔이로 다 해결되니까 말이다.
감정 과잉 만세다.
“이 몸을 신용해줘서 고맙구나, 꼬마야. 두고 보거라. 이 몸의 위엄을 실감하게 해주겠다!”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세이라.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팔랑팔랑.
손에 들고 있는 레이스 부채를 휘젓는 세이라.
[누님, 파이팅입니다······.]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딱 봐도 기분 좋아 보이는 세이라.
지금이 타이밍이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헌터 협회로 하루 구하러 가시죠. 이사장님.”
기분 좋아 보이는 이사장을 이렇게 조금 자극해주면.
“그래, 좋다. 이 몸의 실력을 보여주도록 하지! 꼬마는 미리 감탄할 준비 하도록!”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세이라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웃는다.
바로 저렇게 움직인다.
“그럼 꼬마야, 아리스. 이 몸은 이만 잠시 하루를 데리러 다녀오겠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세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든다.
탁.
방문이 닫힌다.
*
김덕성의 방을 나온 세이라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후후후후······.”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 나온다.
세이라가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콩닥, 콩닥.
철없는 소녀처럼 두근두근 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이 몸이 꼬마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세이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가 주변을 황급히 둘러본다.
다행히 넓은 대청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촤르륵.
세이라가 펼쳐진 부채로 붉어진 얼굴을 가린다.
“이 몸도 참······.”
쿵쾅쿵쾅.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린다.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그가 믿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감정의 격류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뛴다.
“······주책을 부리고 말았구나.”
어른답지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앞에만 서면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던 순간이.
처음에는 분명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 터인데.
그와 닮았다.
지켜주고 싶다.
그 정도였을 텐데, 이제는 떼고 싶어도 뗄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가 마음속에서 커져 버렸다.
소중해져 버렸다.
“읏······.”
세이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어깨가 처진다.
세이라도 알고 있었다.
본인 행동이 주책으로 보일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아무리 외형이 어리다고 해도, 진짜 청춘인 다른 소녀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애써 멀리해왔다.
‘이 몸한테는 그럴 자격도 없는 것을······.’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옆에 설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애써 부정해왔다.
‘이 이상 빠지면 안 된다······.’
탁탁.
세이라가 양손으로 뺨을 두드린다.
‘이 이상은 주책이야. 정신 차려야 한다.’
어려도 한참 어린 생도에게 연심이라니.
주책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자격도 없다.
꿈틀거리는 연심을 애써 억누르는 세이라의 뺨이 떨린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으으······.”
그래도 그의 곁에 머무르고 싶다.
그를 지켜주고 싶다.
무인도 때처럼 그가 상처 입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일은 잘되셨습니까?”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김덕성 사저 한옥 별채 앞마당에 정장 미녀가 나타난다.
한서진이었다.
그녀의 단정한 회색 머리가 저녁노을을 받아 반짝인다.
“아, 물론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세이라가 황급히 부채로 얼굴 표정을 가린다.
어쨌거나 자신은 파이브 크라운즈의 일원이자 슈오우 영웅 학원의 이사장.
이런 약한 모습을 함부로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다.
“제 안내와 조언이 이사장님께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한서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세이라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렇다.
세이라가 서울 한복판 김덕성 사저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하루 빼내기 협력 이야기를 때맞춰 꺼낼 수 있었던 건 전부 한서진의 조언과 안내 덕분.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세이라의 흔들리는 핏빛 눈동자를 응시한다.
‘동요하고 있군.’
그녀의 냉철한 두뇌가 세이라의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세이라가 아직도 나이 차이, 입장 차이 때문에 애써 연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한서진은 간파하고 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지속적으로 세이라를 자극해서 하렘 멤버로 포섭하는 것.
거기에 더해 이번에 새로 합류한 ‘쿠로사와 하루’ 역시 세이라의 권력을 이용해 신원을 복구한 뒤에 신규 하렘 멤버로 영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렘 계획의 기획자이자 실행자인 그녀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그건 고맙구나.”
세이라의 핏빛 눈동자가 한서진을 향한다.
“헌터 협회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사장님. 저를 따르시길.”
한서진이 등을 돌리고 세이라가 그녀 뒤를 따른다.
지고 있는 저녁 해가 두 여자를 비춘다.
*
탁.
세이라가 방문을 닫고 나간 뒤.
방 안에는 나와 아리스, 둘만 남았다
내 방이라고는 하지만, 호텔 스위트룸 뺨칠 정도로 쓸데없이 넓은 공간이라 그런지 아리스와 함께 있다고 해서 그다지 공간이 좁거나 하지는 않았다.
“······.”
진짜 문제는 어색한 분위기.
둘만 남게 되자, 아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님 응접용 의자에 앉아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대고 있었다.
학생회장보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소심한 아싸 같은 느낌.
저 모습이 아리스의 원래 성격에 가깝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원래 아리스는 소심한 시골 소녀였으니까.
그것도 고향에서조차 촌스럽다고 따돌림당하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리스라면 최애캐였던만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원래 아싸였던 아리스라고 해도 지금 모습은 정도가 좀 심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살짝 걱정되기 시작한다.
“사이온지 선배.”
“김덕성 군······? 불렀습니까?”
내가 부름에 아리스가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나를 바라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그건······.”
내 질문을 들은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런 건 없습······.”
아리스가 고개를 젓는다.
굳이 최애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지금의 아리스가 고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말 못 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본인 딴에는 학생회장이니까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사고방식과 지나친 책임감 때문일 거다.
끝까지 혼자 끙끙 앓는 저 성격이 곧 다가올 2학기 첫 이벤트, 문화제 에피소드의 구원 포인트이기도 하고.
“무슨 고민인데 그럽니까? 말해보십쇼. 이제 와서 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대수라고. 어차피 사이온지 선배랑 나랑은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리스의 고민은 중요했다.
아무리 원작이 의미 없어졌다지만, 아직 아리스 관련 에피소드는 어떤 형태로건 나온 적 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아리스의 얼굴은 제법 심각해 보였다.
마치 원작에서 본인의 정체를 들킨 모습처럼.
설마 내가 한국에서 구르는 동안 원작보다 훨씬 일찍 아리스가 시골소녀라는 비밀이 알려진 건 아니겠지?
그러면 좀 골치 아파지는데.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그 순간.
“······정말, 김덕성 군한테는 뭘 숨기질 못하겠군요.”
아리스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