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15)
“존경하는 김덕성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부담스러워 죽겠네. 무슨 조폭도 아니고.
90도 폴더인사를 받으면서 레드카펫 끝에 도달한 내가 만난 사람은.
“안녕하세요! 김덕성님! 또 뵙네요! 유세라예요!”
코토리 베이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K-아이돌, 유세라였다.
“넌 왜 여기 있냐?”
“김덕성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김덕성 팬클럽의 총회장으로서, 제가 덕성님을 보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내 말에 뻔뻔하게 웃으며 답하는 유세라.
연예인 하려면 저 정도 철판은 깔아야 하나.
할말이 없다.
잠깐 침묵이 흐르자, 유세라가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싫으세요?”
“아니.”
싫은 것까지는 아닌데.
얘는 인기 아이돌이라면서 스케줄도 없나?
내 말을 들은 유세라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그녀가 웃는다.
“좋아요. 그럼 우선 재단 업무 보고부터 할게요. 그날 이후 김덕성 재단의 정기 후원자가 하루 만에 오백만 명가량 늘어났어요.”
하루 만에 500만 명?
그럼 지금 재단 정기 후원자가 1600만 명이라는 소리야?
일개 재단 후원자 규모가 그 정도라니. 나라가 망할 징조가 틀림없다.
“그리고 서울 피해 복구 성금 모금도 성황리에 잘 진행되고 있어요. 각계각층의 다양한 국민 여러분과 뜻있는 기업가분들이 쾌척한 성금이 하루 만에 1500억 원을 돌파했답니다.”
피해 복구 성금이 1500억 원 돌파?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너무 말도 안 되는 금액 단위에 현실감이 없어진다.
“그게 무슨······.”
“사실입니다. 김덕성님.”
내 귓가에 한서진이 속삭인다.
하루 만에 백억원 모금이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
“모인 성금은 김덕성님의 이름으로 이재민 지원 및 피해 복구 작업에 사용될 예정이에요. 최대한 투명하게 집행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주먹을 불끈 쥐는 유세라.
“앞으로 김덕성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재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요. 그리고 오늘 일정 말인데요.”
오늘 일정이라고 해봤자 여기는 리조트.
겨울이면 스키를 탔겠지만, 지금은 여름이니 기껏해야 워터파크에서 물놀이하는 게 전부겠지.
리조트이니만큼 당연히 골프장도 있겠지만, 골프장은커녕 골프 연습장, 스크린 골프도 못 해본 나에게는 생소한 스포츠니까 제외해야 한다.
해변가 리조트면 라노벨 여름 에피소드처럼 프라이빗 비치인지 뭔지에 갔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오늘은 계곡에 갈 예정이에요!”
유세라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계곡?
“웬 계곡?”
리조트까지 와놓고 또 계곡을 간다고?
그럴 거면 그냥 계곡 근처 펜션을 빌리던가 왜 굳이 리조트로 오라고 한 거지?
동선 낭비, 시간 낭비 아닌가?
머릿속에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던 그때.
“네! 계곡이요! 리조트 부지 일부를 활용, 전국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총동원해서 김덕성님의 취향에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전용 계곡을 조성했답니다!”
유세라의 입에서 내 상상을 초월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너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머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리조트 안에 돈 퍼붓고 공사해서 계곡을 만들어놨다, 이 말이지? 우리가 피서 가는 그 계곡?”
확인을 위해 다시 묻는다.
“네! 맞아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유세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프라이빗 비치도 아니고 프라이빗 계곡이라니.
아니 그걸 왜 돈 들여서 공사해서 굳이 만드냐고.
세상에 이렇게 비효율적인 돈지랄은 처음 본다.
차라리 계곡 근처 펜션을 매입하는 편이 비용적인 면에서도 좀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이건 완전히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워터파크 정도를 생각했던 내 비루한 상상력이 부끄러워진다.
“계곡 조성 공사는 삼정그룹, 로테그룹을 포함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합동으로 진행했으며, 공사 비용 역시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충당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한서진이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 빌어먹을 돈지랄에 내 돈 안 쓴 건 좋은데, 대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라니까 꼭 정경유착에 환장한 부패 정치인 같은 뉘앙스잖아.
아니 차라리 정경유착이 낫지, K웹소설이나 K드라마에서 심심하면 단골 악역으로 나오는 재벌 양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를 찬양하는 걸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살 수가 없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일까.
“피서 장소로는 바다보다 계곡을 선호하는 김덕성님의 취향에 딱 맞는 장소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만한 한서진의 말투.
바다보다는 계곡이 좋기는 한데, 그런 첩보는 또 어디서 입수한 건지 모르겠다.
“그럼 계곡으로 모실게요!”
유세라의 미소와 함께 나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정체불명의 ‘프라이빗 계곡’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완전 강력한 경쟁자
김덕성 리조트.
한서진 개인실.
일행들이 머무는 최고급 스위트룸만큼은 아니지만, 꽤 넓은 방 내부.
한서진이 그곳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수첩에 펜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체크하고 있었다.
“수영복은 이 정도면 되겠고, 오늘 일정 안내는······.”
침대 위에는 민무늬 경영 수영복이 널브러져 있는 상태.
한서진은 수영복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소꿉친구인 유세라처럼 꾸미는 데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오로지 성웅 김덕성,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과분한 욕심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서진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그분의 옆에 설 수 없다.
영원히 그림자일 운명이다.
그래서 한서진은 외모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전신 거울 앞에서 한서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일정을 체크했다.
그때.
끼익.
문이 열린다.
“우리 서진이 뭐해?”
덥석.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으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유세라?”
한서진이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유세라가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위에 비치 가디건을 걸친 유세라의 모습이 전신 거울에 비친다.
“난 준비 끝났거든. 그래서 우리 서진이 뭐 하나 보러 왔는데. 이거 설마 네가 입을 수영복이라고 고른 거야?”
유세라의 시선이 침대 위에 있는 수영복을 향한다.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한서진의 눈동자가 유세라를 향한다.
“이런 걸 입으려고 했었어? 우리 서진이, 그러면 안 되는데.”
유세라가 배시시 웃으면서 수영복을 치운다.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한서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수영복에 별 신경 안 쓰는 그녀로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한서진의 얼굴을 본 유세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서진아, 너는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무신경한 부분은 좀 고쳐야겠어.”
유세라의 말에 한서진의 얼굴에 서린 의아함이 더 짙어진다.
“예전도 그렇고. 대체 뭐가 무신경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그녀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역 헌터 시절에도 패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유세라가 속으로 혀를 찬다.
저런 수영복으로는 김덕성님의 마음에 들 수 없다.
때마침 그분께서 거유를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참이었다.
한서진의 가슴도 결코 작은 편은 아니고 오히려 C컵 정도로 꽤 큰 편이지만, 기본이 D컵 이상인 그분 주변의 여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분의 눈길을 끌고, 장기적으로는 그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더더욱 과감한 수영복 패션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자신도 그분의 하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건 덤이었고.
김덕성님과 그녀를 이어주려는 자신의 깊은 속뜻도 모르는 친구가 유세라는 야속했다.
“넌 그게 문제야. 서진아. 저런 수영복을 입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옷걸이가 아까워. 안 되겠어. 따라 와.”
덥석.
유세라가 한서진의 손목을 잡고 드레스룸으로 향한다.
쾅.
드레스룸 문이 닫힌다.
“오, 이거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아니 이건 너무 부끄러운 것 같은데······.”
“어허, 나 유세라야. 패션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잔말 말고 입어.”
닫힌 문 너머로 한서진과 유세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김덕성 일행이 계곡에 도착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
배정받은 개인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유지, 이시하라와 함께 마침내 프라이빗 계곡에 도착했다.
내 복장은 평범했다.
사각형 하의 수영복에 하얀색 비치 후드.
여름 학교 때와 별반 달라진 것 없는 복장이다.
“여기가 형님의 프라이빗 계곡······.”
선글라스를 끼고,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이시하라가 이마에 손을 대면서 탄성을 터뜨린다.
“대단해, 김.”
“저도 프라이빗 비치는 많이 가 봤지만, 이런 데는 처음 봄다.”
옆에서 유지와 이시하라가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인다.
그러고 보니 이시하라 이 자식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설정이었지.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나도 처음 본다.”
이시하라와 유지의 탄성에 나는 한숨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리조트 내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계곡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물놀이해도 괜찮을 정도로 적당히 넓고 깊은 계곡에 흐르는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
계곡답게 바위와 울창한 나무는 물론, 팔각지붕이 인상적인 커다란 정자까지 지어져 있다.
캠핑장으로 보이는 곳에는 그릴과 삼겹살은 물론, 글램핑에나 쓰일 법한 고급 대형 텐트가 쳐져 있다.
기껏 리조트 와서 다시 야영하면 대체 무슨 소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쓸데없이 잘 만들었어.’
전국의 전문가를 총동원하고 대기업이 공사비용을 댔다더니 아주 진짜 계곡을 리조트 부지에 창조해놨다.
창의적인 돈지랄에 어이가 없을 정도.
“우와, 시원해.”
벌써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유지.
“쿠로사와! 여기 가재도 있어!”
옆에서는 이시하라가 손으로 가재를 잡아 들어 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가재?
인공 계곡에다가 수생생물까지 풀어놓은 거야?
이쯤 되면 어이가 없는 걸 넘어 감탄이 나온다.
나는 유지와 이시하라가 노는 꼴을 외면하면서 계곡가 자갈밭 그늘에 앉았다.
무더운 한여름이기는 하지만 그늘에 있으니 제법 견딜 만하다.
‘얘네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지금 계곡에 도착한 건 나를 포함한 남자들뿐.
여자들은 아직이다.
수영복 준비가 그렇게 오래 걸리나.
[파트너, 레이디는 원래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 느긋하게 기다려.]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김없이 레이디 운운하는 흑태자.
내가 말을 말지.
흑태자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던 그때.
[어, 파트너. 저기 레이디들이 오는 거 같은데?]흑태자가 머릿속에서 중얼거린다.
시선을 돌린다.
거기에는 그녀가 있었다.
“덕성 오빠만의 초 귀여운 슈퍼☆여동생 하루 등장! 브이!”
쿠로사와 하루.
그녀가 빨간 비키니 위에 검정 비치 가디건을 입은 채 내 품으로 뛰어든다.
“덕성 오빠, 하루는 오빠가 초 보고 싶었어. 오빠도 초 귀여운 하루가 보고 싶었지? 막이래. 니시시시.”
자연스럽게 품에 안긴 하루가 요망하게 웃으면서 내 귓가에 속삭인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얘는 너무 저돌적이라서 문제다.
원작에서 이 정도로 저돌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대체 뭐가 문제지.
당황한 내가 품에 달라붙는 하루를 떼네려고 한 순간.
“으으으으! 에리링. 더는 못 참아. 아무리 후배라도 용서 못 해! 주인님한테서 떨어져!”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에리다.
시선을 돌리자 그녀의 주황색 트윈테일이 보인다.
그리고 가타카나로 에리링이라고 쓰인 스쿨미즈도.
아니 왜 스쿨미즈야?
“어쩔티비. 저쩔 냉장고. 에베베베벱. 메롱롱롱롱롱. 은하 제일 미소녀 에리링 언니. 설마 하루 질투하는 거야? 적극적인 히로인 포지션을 완전 강력한 경쟁자인 초 귀여운 갸루 여동생 하루한테 빼앗길 것 같아서?”
내 품에 얼굴을 대며 눈을 가늘게 뜨는 하루.
그녀가 요망하게 웃는다.
“니시시시. 그래서 에리링 언니, 스쿨미즈도 입은 거구나? 덕성 오빠한테 애교부리려고. 그런데 아쉽게 됐네. 이번 계곡은 초 귀여운 하루의 독무대가 될 예정이거든.”
하루의 말에 얼굴이 더 빨개지는 에리.
그녀가 볼을 부풀린다.
“으으으으! 에리링 기분 나빠! 그리고 에리링이라고 부르지마! 에리링은 주인님 전용 애칭이니까! 당장 떨어져! 이 소악마!”
“이번만큼은 니시자와의 말에 동감한다. 거기 불여시, 지금 당장 덕성한테서 떨어져라.”
불쑥.
옆에서 린이 튀어나온다.
린 역시 여름 학교와는 다르게 비키니가 아닌 경영 수영복을 입은 상태.
노출은 적어졌지만, 워낙 독보적인 가슴과 몸매를 자랑하는 린답게 몸에 착 달라붙는 경영 수영복이 오히려 더 자극적인 모습이었다.
“맞아요! 떨어져요. 후배 군의 후배 양!”
“지이이이이이······.”
그 뒤로 나타나는 카스미 선배와 마코토.
둘 다 비키니 차림이었는데, 마코토의 커다란 가슴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니시시시. 그쪽이 마코삐 언니지? 하루, 지토메라는 거 처음 봐. 효과음 입으로 소리 내는 거 초 귀엽고 완전 웃겨.”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하루.
그 모습을 본 마코토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 그런······. 웃기다니······.”
마코토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이제 깨달은 건가?
평범한 사람은 의성어를 입으로 소리 안 낸다고.
“마코삐, 괜찮아. 괜찮아.”
시무룩해진 마코토를 끌어안고 토닥이는 에리.
그녀가 하루를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쿠로사와! 우리 마코삐 괴롭히지 마!”
“딱히 놀릴 의도는 없었는데, 미안해 마코삐 언니. 그렇지만 하루 초 웃겼는걸. 니시시시.”
입을 가리고 웃던 하루가 에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쿠로사와라니. 오빠랑 호칭 같은 거 완전 기분 나빠. 그러니까 언니들도 그냥 하루라고 불러. 특별히 허락해주는 거니까 초 감사하는 거 잊지 말구.”
“하, 하루······. 어떻게······.”
하루의 말에 뜬금없이 충격을 받은 유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근처 모래밭에 쭈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는 유지.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리액션이다.
“쿠로사와. 너무 상심하지 마. 사오리도 저러니까, 여동생이라는 생물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내가 알던 하루가 아니야······.”
옆에서 위로해주는 이시하라와 중얼대는 유지.
개판이 따로 없다.
“니시시시. 덕성 오빠. 역시 여기에 정상인은 덕성 오빠랑 하루 둘뿐이지? 하루한테 막 설레고 그러지? 막이래. 니시시시.”
하루가 귓가에 헛소리를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