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60)
#358
책임의 시간
휴대폰을 켜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건.
[NATO “한국이 이길 줄 몰랐다” 미국과 유럽이 부러워하고 일본이 경악한 한국의 테러 대응! 전 세계 최악의 범죄자, 위험도 EX랭크 빌런 소울 리퍼! 성웅 김덕성님의 손에 쓰러지다! 성웅 김덕성님의 활약에 전 세계가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진 이유!] [“앞으로 한국과 한국인은 건드리지 마라. 한국을 건드리면 우리는 끝이다.” 한국에서 죽은 EX랭크 빌런 소울 리퍼에 전 세계 빌런들도 경악! 빌런들이 한국을 건드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성웅 김덕성님이 무섭기 때문? 미국과 일본도 무서워하지 않는 빌런들이 유일하게 공포를 느끼는 성웅 김덕성님의 위엄!] [성웅 김덕성이 한국과 세계를 구했다! 세계 최악의 범죄자 EX랭크 빌런 디에고 모랄레스를 토벌한 사람은 한국인?! 전 세계가 한국과 성웅 김덕성님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내는 진짜 이유!]빌어먹을 국뽕 너튜브였다.
화려한 썸네일로 도배된 국뽕 영상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얘네는 질리지도 않나?
[캬 오늘도 빛덕성님 뽕에 취한다~] [빛덕성은 동어반복 아니냐?] [신.jpg] [(김덕성 사진)] [- 눈부셔서 앞이 안 보이는데 ㅋㅋㅋ] [- 낮부터 섬광탄 ㄷㄷㄷ] [- 김덕성 나의 빛, 나의 소금] [- 김덕성님이 니 친구냐? 성웅이라고 불러라;;]커뮤니티는 더 가관이었다.
낯 뜨거운 찬양 게시물과 댓글들은 여기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의심케 했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청와대 “강 대통령 내일 오전 중대 사항에 관한 대국민 담화 발표 예정”]마지막으로 눈에 띈 건 짧은 뉴스.
중대 사항에 대한 대국민 담화?
그게 뭐지?
설마 메사이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일단 언론, 너튜브를 통해 대외적으로 전파된 정보 중에는 메사이어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내가 싸워 이긴 상대는 디에고 모랄레스로 알려져 있었고, 메사이어는커녕 리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한 글자도 없었다.
‘정보 은폐인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국정원에서 메사이어의 존재를 은폐했다는 것.
[지금 시점에서 굳이 놈의 정보를 공표해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흑태자가 의외로 오랜만에 쓸 만한 조언을 내놓는다.
사실 최종 결전이 임박한 지금 상황에서 메사이어의 존재와 목적을 공표해봤자 가중되는 건 혼란밖에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메사이어가 원하는 바이다.
원작에서도 그런 놈의 성향 때문에 일부러 각국 정부에서 놈의 존재를 극비로 숨긴 것이다.
그러니까 메사이어 놈 좋은 일을 굳이 해줄 필요는 없다.
‘그런 거겠군.’
어쨌거나 잘 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포옹을 풀었다.
올리비아, 린, 에리.
세 명의 미소녀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알고 지낸 지가 얼만데 이제 와서 괜히 부끄럽다.
“어, 그······.”
괜히 시선 마주치기가 좀 그렇다.
나는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고맙다. 간호해줘서.”
“흥. 저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당신의 전속 시녀! 간호 또한 전속 시녀인 이 저의 의무! 당연한 일에 감사를 받을 이유는 없어요!”
내 말에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올리비아.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척하고 올리면서 입술을 씰룩거린다.
“주인님! 에리링은 주인님이 정신을 차린 것만 해도 엄청 기뻐. 그리고 에리링은 주인님의 노예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
“흠. 나도 마찬가지다. 덕성. 나는 네 미래의 아내이고,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건 당연한 일. 감사할 일이 전혀 아니다.”
에리와 린이 거의 동시에 말한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랬다.
올리비아, 린, 에리.
초기에 만난 히로인 3인방뿐만 아니라, 슈오우 학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전부 기본적으로 착했다.
대가 없는 선의를 베푸는 데 익숙한 사람들.
호구 잡히기 딱 좋은 성격들이다.
[파트너. 그래서 언제 밝힐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나는 그의 말에 뭘 밝힐 거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흑태자는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숨기고 있는 이세계인이라는 비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그녀들의 마음.
그런 걸 언제 밝힐 거냐고.
이 빌어먹을 세상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저지른 일과 그에 따라오는 결과를 외면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내일 밝혀야지.’
어차피 곧 결전이다.
이기건 지건, 1달 남짓 지나면 전부 끝난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외면할 필요는 없다.
대가를 책임질 시간이 다가왔다.
빙의자라는 사실까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그걸 제외한 전부를 알려주고, 그녀들에게 선택지를 줘야 했다.
나와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내 곁을 떠날 것인지.
“······.”
입을 다문다.
올리비아, 린, 에리.
3인방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당신,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죠? 뭐 잘못 먹은 건 아닌가요?”
“덕성. 안색이 별로군. 혹시 무리하게 일어난 건 아니지?”
“주인님. 어디 아파? 에리링이 에리링 손은 약손 해줄까?”
올리비아, 린, 에리의 걱정 섞인 표정이 보였다.
그녀들의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색이 안 좋다.
그런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유지에게 히로인들이 하렘 엔딩을 제안했지만, 유지는 거부했다.
그 말을 뒤집어본다면, 내가 그녀들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녀들이 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시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사는 이 현실은 라노벨 세상이지만 동시에 캐릭터가 아닌 인물이 살아 숨쉬는 진짜 세계이기도 하다.
낮은 확률이라도 그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어쩌면 나는 두려울지도 몰랐다.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부른다.
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이미 예전부터 각오한 일이다.
모두를 책임지겠다고.
이제 와서 물러설 일은 없다.
“올리비아, 린, 에리.”
나는 그녀들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셨나요? 역시 제가 첫 번째로군요.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
“덕성, 불렀나? 후후. 나는 두 번째라도 상관없다.”
“에리링은 마지막이니까, 주인님의 마지막은 역시 에리링의 자리라는 거지?”
내 말에 제각기 의미 부여를 하는 올리비아와 린, 에리.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말했다.
“내일 내 집에 겨울 스키 여행 인원 전원을 소집해. 할 말이 있으니까.”
내 말에 세 미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빙의자로서 쾌락을 누렸으니, 이제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시간이었다.
*
다음 날 오전.
잠에서 깨어난 나는 간단한 검사 몇 가지만 마치고 곧바로 퇴원했다.
일어난 내 곁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 내가 린, 올리비아, 에리의 3인방에게 말한 대로 스키 여행 인원 전원 소집 명령 때문에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양.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내가 들른 곳은 병원 입구가 아닌 옥상.
서울 시가지가 보이는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는 태극기가 커다랗게 그려진 헬기가 한 대 착륙해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덕성 님.”
헬기 앞에는 조종사와 함께 회색 단발의 정장 미녀.
한서진이 있었다.
“어, 그래.”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대로 인원 전원 김덕성 님의 사저 회의실에 집합해놓았습니다. 이제 김덕성 님만 오시면 됩니다.”
사저 회의실.
잠깐 회의실?
사저에 왜 그딴 게 있는데?
살짝 어이가 없어졌지만, 일단 모인 건 맞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출발하자고.”
“모시겠습니다.”
“충! 성!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김덕성 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숙이는 한서진과 군기 바짝 든 자세로 거수 경례를 붙이는 헬기 조종사.
그들을 뒤로 한 채로 헬기에 탑승한다.
투타타타타타타타.
거친 기계음과 함께 헬기가 날아오른다.
서울 상공을 가로지르는 헬기 아래로 러시아워에 시달리는 서울 도로와 하늘 높이 솟아오른 마천루가 그리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성웅 김덕성 님 환영합니다.] [성웅 김덕성 님 만세!] [민족과 겨레의 영웅인 성웅 김덕성 님의 쾌유를 바랍니다.]그리고 하늘에는 각종 에드벌룬과 비행선이 떠 있었다.
더 나아가 빌딩 옥상에 태극기와 내 응원 문구가 쓰인 대형 플랜카드가 걸린 모습도 보인다.
빌딩 곳곳에 걸려 있는 태극기는 이제 기본 사항이다.
아무리 봐도 이 빌어먹을 광기의 국뽕은 적응이 안 된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착륙하겠습니다. 김덕성 님.”
조종사의 말과 함께 더럽게 넓은, 서울에 있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대저택 옥상 헬리포트에 헬기가 착륙한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한서진의 안내를 받은 나는 곧바로 본채로 향했다.
한옥으로 지어진 별채와는 달리 본채는 양옥.
뉴스나 드라마에나 나오던 재벌 회장의 사저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고급 주택의 모습이었다.
저번 여름방학 때는 본채가 아닌 한옥 별채를 써서 들어가 본 적 없는 건물.
내부로 들어간 건 오늘이 처음이다.
저택 안에 입장한 내 눈앞에 할리우드 영화에나 볼 법한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인테리어가 펼쳐졌다.
“이쪽입니다.”
대저택 복도를 걷자 사용인들이 내게 인사한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나는 마침내 한서진의 안내를 따라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지잉.
회의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내부 풍경이 보인다.
대기업 본사 회의장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에 그녀들이 앉아 있었다.
올리비아, 린, 에리, 마코토, 카스미, 세이라, 아리스, 언더테이커, 베아트리체, 에반젤린.
마지막으로 쿠로사와 유지와 쿠로사와 하루 남매까지.
일본에 있을 마유즈미 선생님과 이시하라 다이키를 제외한, 내가 이 세상에서 깊게 인연을 맺은 거의 모든 사람이 여기 있었다.
지잉, 탁.
자동문이 닫혔다.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평소라면 시끄러웠겠지만, 회의장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뛴다.
긴장된다.
메사이어를 만났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긴장된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파트너. 힘내라고.]머릿속에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조금 진정된다.
그래, 뭐 이게 대수라고.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다.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단상 위에 섰다.
툭툭.
마이크를 건드리자 노이즈가 흘러나온다.
“다들 오랜만이군. 내가 이렇게 여러분을 불러 모은 이유는······.”
내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회의장 안에 울린다.
뭔가 쪽팔리는데.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지. 이제 일도 다 마무리됐으니까 밝히겠다. 난 눈치 없는 병신 고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의 마음을 진작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만 선택할 생각도 없어.”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시선을 피해서도 안 된다.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계속해서 똑바로 모두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를 전부 책임지겠다. 무슨 수를 써서도. 물론 내 해결책이 싫다면 강요는 하지 않겠어. 불만 있으면 말하고 여기서 나가. 지금 당장.”
내가 문을 가리킨 순간.
한서진의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한 호선이 그려진다.
잠깐 웃음?
한서진이 웃는다고? 하필 이 타이밍에?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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