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94)
#392
거부권은 없어
내 시선이 빌헬미나를 향했다.
유세라와 한서진이 내 저택에 있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두 사람은 한국인이고, 한서진은 졸업 이후에도 내 비서를 자처하고 있으니 집을 관리할 겸 들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빌헬미나는 대체 왜?
물론 빌헬미나가 내 집, 통칭 김덕성 사저의 출입 권한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건 그녀 역시 열여섯, 아니 이제는 열일곱이 된 내 하렘의 구성원이었으니까.
문제는 빌헬미나는 베아트리체, 사오리와 함께 양방향 게이트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연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원래는 양방향 게이트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 이세계연구소에 있어야 정상인데.
한국에 와 있을 줄은 몰랐다.
“넌 왜 여기 있냐? 휴가라도 냈냐?”
내가 빌헬미나에게 말하자, 빌헬미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빌헬미나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아이보리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우······. 그, 그건······.”
아니 그냥 말 건 건데 왜 울먹이고 난리야.
하필 외형도 15세 미소녀라서 내가 왠지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때.
“제가 불렀어요! 김덕성 님!”
유세라가 손을 번쩍 들고 내게 말했다.
그녀의 코토리 베이지 머리카락이 바람을 받아 나부꼈다.
“응······. 맞아······. 유세라가······. 불렀어······.”
유세라의 말에 빌헬미나가 거든다.
유세라가?
대체 왜?
내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유세라가 흠흠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알았거든요. 서진이가 불임이라는 사실.”
흠칫.
유세라의 말에 그녀 옆에 서 있던 한서진의 몸이 살짝 떨렸다.
둘이 자매 같은 소꿉친구라더니, 불임이라는 사실도 안 알려줬었나?
어쨌건 방금 유세라의 말로 나는 빌헬미나가 왜 한국, 그것도 내 집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아 그래서 부른 거냐? 치료해주려고?”
빌헬미나가 보유 중인 유물인 임모탈 하트.
하루에 한 번, 그 어떤 부상 또는 질병이건 전부 치료해주는 그 유물로 한서진을 치료하기 위해 유세라가 빌헬미나를 부른 것이다.
“네! 서진이가 어찌나 고집이 센지. 자기는 정부(情夫)에 불과하니까, 다른 언니들보다 먼저 김덕성 님의 아이를 가질 수는 없다면서······.”
“야, 유세라······. 무슨 쓸데없는 말을······.”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한서진이 유세라의 입을 막았다.
아니 그런 이유였어?
사실 한서진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안 뒤, 빌헬미나를 통해 그녀를 치료하려고 했었다.
빌헬미나로부터 그녀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고 마력이 깃든 상처도 존재해서 사흘 정도 걸리겠지만, 불임이 완치 가능하다는 확답도 받았었고.
하지만 한서진 본인이 거부했었다.
빌헬미나는 양방향 게이트 개발의 핵심 연구자이기 때문에, 양방향 게이트 개발이 끝나기 전까지 그녀의 시간을 자신이 빼앗을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불임 치료보다 내 고향으로 통하는 양방향 게이트가 훨씬 더 급한 사항이니, 치료는 개발이 끝난 다음에 해도 된다는 대답.
어차피 치료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물론 한 번에 설득당하지는 않았고, 재차 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한서진이 계속 거절해서 사실상 포기했었는데.
사실 양방향 게이트가 급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니.
그 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아닙니다. 김덕성 님. 저는 결단코 그런······. 이유를······.”
한서진이 당황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런 시답잖은 이유였다니.
첩실 같은 건 없다고 3년 전에 그렇게 말했거늘.
나는 한숨을 쉬면서 빌헬미나에게 손짓했다.
“빌헬미나. 그냥 한서진 치료해.”
“······응.”
빌헬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됩니다. 김덕성 님. 빌헬미나 씨는 양방향 게이트 프로젝트의 중책을 맡은······.”
한서진이 예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다시 늘어놓았다.
중책이 뭐가 중요하지?
어차피 양방향 게이트 개발 프로젝트는 년 단위를 바라보는 장기 개발사업.
며칠 빼먹는다고 심각하게 문제가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게다가 빌헬미나가 핵심 연구진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며칠 공백 정도는 사오리가 메꿀 수 있었다.
최연소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라노벨 클리셰 중의 클리셰인 초 천재 미소녀 과학자 캐릭터가 사오리였으니까.
이제 진상을 알게 되었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한서진에게 말을 해도 안 들을 터.
그렇다면.
“명령이야. 빌헬미나. 한서진을 치료해.”
빌헬미나를 움직이는 수밖에.
내 말을 들은 빌헬미나의 시선이 한서진에게 향했다.
“······들었지? 명령······. 수행할 거야······.”
빌헬미나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아이보리색 마력이 피어올랐다.
파츠츠츠츳.
그녀의 아이보리색 단발에서 마력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빌헬미나의 어깨 근처에는 어느새 탁한 아이보리색 오브가 떠올라 빛을 뿌리고 있었다.
“······거부권은······. 없어······. 싫으면 강제로······. 연행 예정······.”
EX랭크 영웅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강자인 빌헬미나 앞에서는 한서진도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빌헬미나의 압박을 받은 한서진의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빌헬미나 님. 김덕성 님. 치료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한서진의 말이 끝난 뒤에야 빌헬미나는 마력을 거뒀다.
앓던 이가 쏙 빠진 기분이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그럼 따라와······.”
빌헬미나가 한서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김덕성 님······. 제가 부재 중인 동안에는 유세라가 저를 대리해서 김덕성 님을 보좌할 것입니다.”
한서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유세라가 그녀를 대리한다고?
한서진의 말을 들은 내 시야에 유세라가 보였다.
유세라가 싱긋 웃었다.
“······다녀올게. 나······. 네 명령······. 잘 듣는······. 착한 어른이니까······. 끝나면······. 포상······. 줘야 해.”
빌헬미나가 나를 바라보면서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포상?
대체 무슨 의미지?
내가 빌헬미나가 말한 포상의 의미를 곱씹는 동안, 한서진은 빌헬미나의 손에 이끌려 옥상에서 사라졌다.
이제 옥상에 남은 건 나와 유세라 둘뿐.
“들으셨죠? 김덕성 님.”
유세라가 내게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그녀의 코토리 베이지 머리카락이 바람을 맞아 흩날렸다.
“앞으로 이틀 동안 서진이 대신해서 제가 김덕성 님의 보좌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
말을 마친 유세라가 꺄르르 웃었다.
라노벨 히로인들과는 다르게, 유세라는 다른 의미로 대하기가 좀 난감하다.
아이돌, 아니 이제는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직업이지만, 무엇보다 연예인답게 유세라는 전생부터 가장 대하기 어려운 인싸 타입이다.
“어······. 그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어색하네요. 제가 아직도 그렇게 대하기 어려워요? 이거 서운한데······.”
내 말을 들은 유세라가 입술을 삐죽이면서 말했다.
“저, 이래 봬도 꽤 유능한 보좌관이라고요!”
유세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걸쳐 사업을 진행 중인 성웅 김덕성 재단의 이사장 업무를 유세라는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더불어 내 하렘 일원이라는 이유로 쓸데없이 인기가 높아진 건 덤이었다.
잠깐 여유가 나서 집에서 좀 쉬려고 들렀더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 잘하고 있어.”
나는 유세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유세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럴 때는 또 라노벨 히로인 같고.
아니, 3년 동안 다른 하렘 멤버랑 지내면서 설마 물든 건가?
내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덥석.
유세라가 손목을 잡았다.
“김덕성 님.”
그녀가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정말 그냥 재미없게 쉬기만 할 건 아니죠?”
“······.”
유세라의 말에 나는 침묵했다.
정말 그냥 쉬려고 했는데.
하루 정도는.
“제가 김덕성 님이랑 단둘이 되는 시간은 서진이랑 빌헬미나 언니는 치료 중인 지금밖에 없는데······.”
유세라가 말끝을 늘이면서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눈치를 줬다.
“저도 김덕성 님이랑 둘이서 같이 침대 위에서 시간······. 보내고 싶은데······.”
손가락으로 코토리 베이지 머리를 배배꼬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유세라.
그녀가 딴청을 피우면서 말했다.
“아이돌 의상도 준비해뒀는데······. 그래도 뭐! 김덕성 님이 쉬고 싶다면 어쩔 수 없죠! 저는 그냥 일반인이니까! 다른 언니들이랑 다르게······.”
유세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유세라의 손목을 잡았다.
“기, 김덕성 님?!”
화들짝 놀라는 유세라.
“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싶다고 말해.”
내 말에 유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네······. 네······.”
“하고 싶어?”
내 말에 유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첩실은 없다고 선언했고, 유세라 역시 다른 히로인들과 동등한 내 배우자니까.
하고 싶다면 해 줘야지.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나는 유세라의 손목을 잡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방학 때마다 저택을 들렀기 때문에, 이제 저택 내부 구조 정도는 알았다.
더불어서 내 침실이 어디 있는지도.
옥상에서 저택 본채로 들어온 나는 1층에 있는 내 침실을 향해서 유세라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자, 잠깐만요. 타임! 타임! 김덕성 님. 저 드레스룸 들러서 옷 좀 갈아입고······.”
유세라가 내게 말했다.
“그래.”
나는 유세라의 손을 놔줬다.
그 아이돌 의상인지 뭔지를 입겠다는 건가?
내 손에서 해방된 유세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금방 갈아입고 올게요!”
쪽.
그녀가 내 입술에 짧게 입맞추면서 속삭였다.
“······침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입맞춤을 끝낸 유세라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후다닥 드레스룸을 향해 뛰어갔나.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1층 침실 문을 열자 말이 침실이지 사실상 웬만한 가정집 거실보다 더 큰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름답게 조경된 푸른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통유리에서 쏟아지는 햇빛, 퀸사이즈보다 더 큰 초대형 침대, 벽걸이 TV와 컴퓨터, 콘솔 게임기, 침실에 딸린 욕실에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소파, 탁자와 야외 테라스까지.
뭐든지 쓸데없이 큰 이 빌어먹을 초호화 저택은 올 때마다 별로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집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자주 안 와서 그런가?
오히려 슈오우 영웅 학원 기숙사가 더 집 같다.
나는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뒤에 그대로 침대에 몸을 묻었다.
푹신한 최고급 매트리스가 내 등을 받친다.
그렇게 내가 눈을 감고 있던 그때.
삐빅.
전자음과 함께 침실 문이 열렸다.
“김덕성 니임.”
애교 섞인 비음이 귓가에 울렸다.
고개를 살짝 들자, 거기에는 일본 아이돌 게임에나 나올 법한, 교복 비슷한 제복을 입고 다리에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검은 롱부츠를 신은 유세라가 있었다.
베이지색 머리와 제복이 어우러진 눈앞의 유세라는 진짜 아이돌물에서 막 튀어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이돌 의상이라며.
한국 아이돌 의상 아니었어?
“후후. 서진이가 김덕성 님은 이런 코스튬 좋아할 거라고 해서요. 혹시 싫어요?”
스윽.
침대 위에 올라온 유세라가 누운 내 몸 위에 올라타서 손으로 내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아니.”
나는 부정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아이돌······. 따먹으실래요?”
유세라가 요염하게 웃으면서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들어 올렸다.
검은 롱부츠가 만들어낸 허벅지의 절대 영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렇게까지 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대로 그녀를 덮쳤다.
“아이잉. 김덕성니임······. 아흑!? 헉······. 흐윽······. 허억······♥”
곧이어 유세라의 뜨거운 교성이 넓은 침실 안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