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66)
카스미 선배가 그리워지는 기분이다.
내 말을 들은 사오리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그녀가 양손을 번쩍 들며 폴짝폴짝 뛴다.
“오오오오! 덕성쨩한테 욕 들었어! 히히 버킷 리스트 체크체크. 덕성쨩한테 매도당하기!”
원래부터 4차원 매드 사이언티스트 캐릭터라는 건 알았지만, 직접 보니 상태가 심각하다.
욕을 들어먹고도 좋아할 줄은 몰랐다.
더 상대하다가는 나까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으니, 본론부터 말해야겠다.
“됐고. 얘 몸이나 좀 봐줘.”
마코토를 손으로 가리킨다.
사오리의 시선이 그제야 마코토를 향한다.
사오리가 마코토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응? 아. 여기 옆에 있는 사람이 그, 덕성쨩이 말한 아픈 친구? 맞지?”
흥미 없는 대상에 철저할 정도로 무관심한 성격이라는 설정인 그녀다운 태도다.
“그래.”
“덕성쨩의 친구는 뭐가 문제야?”
“얘 몸 안에 나노 머신 폭탄이 있어. 그걸 제거하거나, 제거가 어렵다면 억제하는 방법이라도 찾아줬으면 좋겠는데.”
“나노 머신 폭탄······. 좋아. 덕성쨩의 친구한테 조금 흥미가 가기 시작했어. 히히히.”
사오리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덕성쨩이라도 일을 공짜로 해줄 수는 없는걸?”
“뭘 원하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준비해줄 수 있는데.”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다.
굳이 한국 정부에서 지급해준 한도 없는 블랙 카드가 아니더라도, 국뽕 너튜브 초상권 수익만 하더라도 매달 억 단위의 돈이 입금되고 있다.
그녀가 얼마의 돈을 요구하던 전부 내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건······.”
사오리가 얼굴을 붉힌다.
그녀가 품속에서 부스럭대며 포토 카드 한 장과 검은 매직펜을 꺼낸다.
“여기······. 덕성쨩 한정 포토 카드에 사인해 줘! 사진! 사진도 같이 찍을래!”
한숨이 나온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아니, 이미 굿즈 팔아먹고 있는 걸 보면 한국에서는 완전 아이돌 취급 같은데.
귀국하면 이런 미친 짓을 계속 해야하는 거란 말인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오싹한 기분을 느끼면서, 사오리가 내민 포토카드에 사인을 휘갈기고, 그녀와 셀카를 찍어준다.
“히히히히히히. 좋아. 대가 지불 완료! 나머지는 사오리쨩한테 맡겨줘! 아, 덕성쨩이라면 특별히 사오리쨩을 사오리쨩이라고 불러줘도 좋아!”
“됐으니까 빨리 얘 문제나 좀 해결해.”
차라리 돈을 달라는 게 낫지.
그럼 비즈니스 관계잖아.
이건 뭐 비즈니스 관계도 아니고 피곤하다
사생팬에게 시달리는 한류 스타의 기분 같은 건 평생 느껴볼 일 없을 것 같았는데, 그걸 여기서 느끼네.
“덕성쨩의 매도 너무 좋아!! 알았어! 나노 머신 친구 문제는 이 사오리쨩이 꼭 해결할게! 덕성쨩이 좋아하는 콜라 냉장고에 잔뜩 채워놨으니까 마셔도 좋아!!”
마지막까지 어지러운 멘트를 남기면서 사오리가 마코토를 데리고 실험실 안쪽으로 사라진다.
쟤 진짜 변태 아니냐?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남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
마코토의 진단과 처방은 금방 끝났다.
“남장여자 군의 나노 머신 폭탄은 과학과 마술,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최신형이야. 그래서 한 번에 제거하는 건 불가능해. 대신 폭탄의 기폭을 억제하는 억제제를 제조해 줄 수는 있어.”
원작 8권과 정확히 같은 멘트를 읊조리면서 사오리는 마코토에게 알약을 처방했다.
“이걸 먹으면 체내 나노 머신 활동이 멈출 거야. 지금 복용한 상태고, 남장여자 군 몸 상태 스캔한 모습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중계 중인데, 보이지? 이 나노 머신 활동 멈춘 거. 물론 일시적이고 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야 하기는 하지만, 사오리 쨩이 반드시 제거 방법을 찾아낼게.”
“고마워. 이시하라 양.”
“사오리쨩 말고 덕성쨩한테 고마워해. 덕성쨩 아니었으면 당신 몸 봐줄 일도 없었을 테니까.”
“······고, 고마워. 김 군.”
떨리는 눈동자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마코토.
털썩.
그녀가 무릎을 꿇는다.
마코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암살의 기재, 그에 맞지 않는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
그래서 카미야 일문의 문주는 그녀에게 나노 머신 폭탄을 심었고, 남장을 강요했다.
그녀, 카미야 마코토를 본인 입맛에 맞게 통제하기 위해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어린 시절부터 억지로 암살 기술을 익히고, 강제로 명령에 따랐다.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처음부터 순종적인 노예는 아니었다.
한때는 반항해본 적도 있었다.
[문주님, 저는 사람을 죽이는 기술은 배우기 싫습니다.] [배우기 싫다고? 니 지금 니 목숨이 누구 손에 달려있는지 아직도 모르나?] [끄아아아아아아아악!]그녀의 몸에 심어진 나노 머신은 폭탄 역할만 하지 않았다.
문주는 나노 머신을 조작해 마코토가 반항할 때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가했다.
[니는 절대 일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데이. 마코토. 죽기 싫고 아프기 싫으면, 얌전히 일문의 노예로 살아가면 되는 기라. 그러면 밥은 멕여줄테니까 말이제.]계속되는 고문과 학대 속에서 마코토는 저항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체념했다.
그녀에게 있어 세계란 카미야 일문이 전부.
인간관계는 그녀를 고문하는 문주와 냉혹한 암살자들밖에 없었다.
본인의 성별마저 부정당하는 삶.
그것이 지금까지 카미야 마코토가 살아온 세상이었다.
심지어 마코토는 자살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죽으려고? 니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한데이.]10번의 자살 시도가 실패하고 감히 멋대로 자살하려 했다며 끔찍한 고문을 받은 뒤에야, 마코토는 모든 걸 포기했다.
그래서 김덕성에게 암살 계획이 발각됐을 때, 마코토는 체념했다.
‘어차피 내게 삶은 고통뿐이었으니,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드디어 죽을 수 있구나.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 폭탄. 내가 제거해주지. 그 대신······. 폭탄이 사라진다면 그때부터는 문주 대신 나를 섬겨야 한다. 그게 내 조건이야. 카미야 마코토.]그렇기에 김덕성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승낙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그를 섬기겠다고 답한 건 진심이었다.
만일 신과 같은 문주의 금제를 그가 풀어낸다면.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남은 인생 정도는 전부 바쳐도 괜찮겠지.’
마코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억제제를 투여받고 나노 머신이 정지된 순간.
카미야 마코토가 알던 세계가 무너졌다.
지금까지 신처럼 여겨왔던 문주와 카미야 일문, 그녀를 통제하던 구속구가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게 풀린 것이다.
그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흑, 흐윽······.”
마코토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나, 약속대로 너를 주군으로 섬길게. 나 같은 거라도 좋다면 너의 검이 될게.”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맹세한다.
‘나만의 주군님.’
마코토는 뒷말을 삼키며 미소 지었다.
이건 우정이 아니에요(삽화 有)
전학생이 온 지 사흘째.
올리비아는 요즘 기분이 부쩍 좋지 않았다.
니시자와, 그 도둑고양이의 복학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이나, 린이 지겹도록 그의 곁을 노리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전학생이다.
“김 군. 가방 내가 들어줄게.”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자신의 역할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
올리비아가 입술을 삐죽댄다.
“으으으······.”
올리비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의 시야에 초록 머리의 귀공자 미소년, 마코토의 얼굴이 보인다.
“꺄악! 카미야 군이다!”
“카미야 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빛나는 것 같아.”
“옆에는 검은 귀축?”
“카미야 군. 김 군이랑 무슨 사이야?”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를 지닌 마코토 주변으로 여생도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김 군이랑? 으응······.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한 친구······. 일까나?”
마코토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답한다.
마코토의 팔뚝이 김덕성의 어깨에 닿는다.
김덕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마코토의 반응에 여생도들이 자지러진다.
“꺄아아아악!”
“검은 귀축이 카미야 군마저 노리고 있는 거야? 성별마저 가리지 않는다니, 진짜 귀축.”
“김 군. 지금 보면 몸은 꽤 괜찮지 않아?”
“카미야 군이랑 김 군, 은근 잘 어울릴지도?”
여생도들이 웅성댄다.
“아하하하하······.”
마코토가 얼굴을 상기시킨 채 뺨을 긁적인다.
“그런데 카미야 군. 피부 엄청 좋다.”
“무슨 화장품 써?”
“남자인데 여자인 나보다 피부가 더 좋은걸. 부럽다.”
마코토를 둘러싼 여생도들이 뺨을 붉히며 재잘댄다.
그 모습을 본 김덕성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진 순간.
“이봐요! 여기 무슨 구경났어요?”
탁.
올리비아가 씩씩대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친다.
“등굣길 방해하지 마시고 다들 사라지세요!”
올리비아의 외침에 여생도들이 곧바로 해산한다.
홀로 남은 올리비아가 씩씩댄다.
기분이 나쁘다.
마코토가 남자인 걸 아는데도, 계속해서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아무리 봐도 이건 우정이 아니에요.’
여자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마코토의 태도는 쿠로사와와 이시하라가 김덕성을 대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올리비아의 감각이 경종을 울린다.
등굣길이 계속 이런 식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시노자키 양이랑 니시자와 양과 함께 등교하던 때가 나았어요.’
두 도둑고양이는 시끄럽기는 해도, 이런 식으로 기분을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
‘불쾌해······.’
올리비아가 입술을 삐죽이던 그때.
“잘했어. 올리비아.”
그녀의 귓가에 김덕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올리비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무, 무슨 그런 당연한 칭찬을 들어도 저, 전혀 기쁘지 않거든요!! 딱히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봐요, 카미야 씨!”
착.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카미야 마코토를 노려본다.
두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무슨 일이야. 보나파르트 양?”
카미야 마코토가 왕자님 미소를 짓는다.
여자라면 누구나 반할 만한 살인 미소.
‘가증스러워······.’
하지만 올리비아에게는 가증스러운 비웃음으로만 느껴졌다.
“김덕성 씨의 가방을 드는 건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임무. 당장 가방 이리 내놓으시죠!”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마코토가 멋쩍게 웃었다.
“나는 김 군의 영혼의 단짝인걸. 보나파르트 양보다는 내가 드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시끄러워요!!”
“둘 다 입 닫아.”
김덕성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두 사람이 입을 닫는다.
“야, 마코토. 올리비아한테 내 가방 줘.”
“······아, 알았어. 김 군.”
“후훗. 당신이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선택할 줄 알았어요! 역시 당신은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군요!”
김덕성의 가방을 돌려받은 올리비아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뜬 그때.
올리비아의 시야에 마코토의 눈빛이 보인다.
마코토의 초록빛 눈동자 안에 들어간 건, 명백한 질투의 감정.
왕자님의 가면은 이미 깨진 지 오래.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문다.
‘역시 이 전학생······. 수상해요.’
대책이 필요하다.
*
전학생이 온 지 나흘째.
“흥, 흥흥. 흥흥흥흥♩”
니시자와 에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학원 복도를 걷는다.
어제 교내 봉사가 끝났다.
오늘이 바로 그녀의 복귀일.
“오늘은 에리링과 주인님이 다시 만나는 날♬”
니시자와 에리가 목에 걸린 개목걸이를 매만진다.
개목걸이에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두근.
그녀의 가슴이 뛴다.
“히히······.”
니시자와 에리의 얼굴에 웃음이 걸린다.
상냥한 주인님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뛰는 심장이 멈추질 않는다.
탁.
1학년 A반 교실 앞에 선다.
“주인님······.”
니시자와 에리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니시자와 에리의 자리는 김덕성의 바로 옆자리.
즉, 두 사람은 짝꿍이다.
‘주인님과 짝꿍인 생도는 황녀님도, 젖소도 아닌 나밖에 없어.’
히히히.
니시자와 에리가 웃음을 흘린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열어제낀다.
“주인님! 좋은 아침이야! 에리링 드디어 교내 봉사 끝내고 왔······. 어?”
니시자와 에리의 눈동자가 커진다.
언제나처럼 불만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덕성.
그의 옆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다.
초록 머리카락, 초록 눈동자를 지닌 미소년.
카미야 마코토였다.
“너 뭐야. 누군데 에리링의 자리에 멋대로 앉은 거야?”
니시자와 에리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녀의 얼굴을 본 마코토가 왕자님 웃음을 짓는다.
“아, 안녕. 니시자와······. 양? 카미야 마코토야. 얼마 전에 전학왔어. 카미야 군이라고 불러줘.”
마코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탄성이 쏟아진다.
“카미야 군 목소리 멋져!”
“니시자와 양이 도내 최고 미소녀면 카미야 군은 도내 최고 꽃미남이 아닐까?”
“얘는, 도내 최고가 뭐니. 은하 최고 꽃미남이지!”
“둘이 은근 잘 어울리는 거 같지 않아? 완전 선남선녀인데? 니시자와 양이 입만 좀 안 거칠었어도.”
“얘는, 카미야 군한테는 이미 김 군이 있는걸.”
“김 군, 설마 그런 취향?”
엑스트라들의 말을 듣던 김덕성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해. 묻는 말에나 대답해. 왜 너 같은 쓰레기가 감히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기분 나빠. 쓰레기.”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