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39
39. 파급효과(2)
정말 도윤에게는 별일 아니었다.
심지어 커피를 준 건 도윤이 그저 마실까 말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한 행동.
그런데 그게-
기사화까지 될 줄이야.
[최도윤, 영화 촬영 현장에서 훈훈한 미담……] [‘힘들 때 위로 건넨’ 최도윤, 인성도 바른 스타!] [최도윤, 과거 현장 스태프가 쓴 미담 글 재조명…… ‘예의 바른 신인’]물론.
도윤이 평소 촬영장에서 도윤이 보여줬던 착실하고 친절한 모습들이 아니었으면 이런 미담은 애초에 올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미담이 기사화되자.
과거 촬영팀 스태프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까지 팬들이 발굴해 낼 지경.
-알고 있는가 촬영할 때도 미담 천지였네
-서태주…의문의 재평가…알고보니 더 쓰레기…
-이러니 내가 반하지..
그리고.
“선배님, 대단하시지 말입니다.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아마 유준에게서 ‘존경’이라는 단어를 백 번도 더 넘게 들은 것 같은데, 이제는 천 단위로 넘어가게 생겼다.
사실 다들 배우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진 않다.
“최 배우. 미담 떴던데? 이제 막내 스태프까지 챙기는 거야?”
“혼자 그렇게 다 하면 우리는 뭐 하라고. 너무하네.”
“어이, 도윤이 요새 좋더라? 덕분에 영화 홍보도 하고. 혹시 큰 그림, 뭐 그런 건 아니지?”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과거까지 발굴됐다.
“형, 이 사람 형 대학 동기라는데요. 대학 시절 이야기도 올라왔어요. 술 취해서 다 같이 중앙광장에서 잠들었…… 형 야밤에 무대에서 노래도 불렀어요? 쌩목으로? 그것도 를?”
“그거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노랜데. 오빠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성호야. 동영상 찾아봐.”
“현상금 걸어야겠다. 동영상 제보하면 상금!”
이제는 까마득하기만 한 대학 시절, 술과 관련된 약간의 흑역사.
“나 노래 잘해. 들으면 깜짝 놀란다.”
도윤은 흑역사를 포장해 보려 애를 썼지만.
“그래도 는 아니죠. 에이, 그건 저도 아는데.”
졸지에 성호보다 못한 녀석이 되어버렸다.
도윤은 결국 치미는 부끄러움에 그만 둘의 수다를 외면해 버렸다.
여하튼.
미디어는 지금 떠오르는 신인 배우, 최도윤에 대한 미담을 집중보도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인성도 미쳤네;;;
-잘생김+연기 잘함+인성도 좋음=이게 나라냐?
-팬카페 홍보합니다! 링크 누르고 들어오세요! 너만 오면 3천 명 돌파!
-영화도 기대된다 ㅋㅋㅋ 이창욱 전작 성적 괜찮지 않았음?
-ㅇㅇ 으로 500만 찍었음. 신인인데 500만 찍었으니까 차기작은 더 잘 될 수도 있지.
이런 인기 속.
“찍자. 도윤아.”
“……꼭 해야 돼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지금 도라떼 판매량 급증한다잖아! 커피앤탑에서 난리도 아니야!”
“팀장님…….”
“커피앤탑 얘네 일 잘한다. 그치? 시류를 읽을 줄 안다니까. 그럼, 그럼.”
시류를 너무 잘 읽어서 문제다.
도윤은 울먹거리며 결국 수철의 제안을 수락했다.
바로 커피앤탑 쪽에서 신규 광고 촬영 요청이 들어온 것.
물론 메인은 도라떼.
미담이 널리 퍼지면서 그 미담 속에 등장한 커피가 바로 도라떼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덩달아 도라떼 판매량도 다시 늘기 시작한 것.
‘이제 끝물인 줄 알았는데.’
원래 유행이라는 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안 그래도 끈질기게 버티던 도라떼.
그러다 이제야 좀 인기가 시들해지나 싶어 안도했었는데.
무슨 잡초도 아니고 이렇게 뜬금없이 살아날 줄이야.
‘그때 커피 주는 게 아니었어.’
후회해 봤자 너무 늦은 상황.
이래서야 도라떼 싫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도윤은 촬영장을 찾은 리포터와 인터뷰까지 하며 인기를 제대로 실감해 버렸다.
“부럽다, 부러워. 도윤 형 요새 진짜 라이징이네요.”
“너도 배우 해. 중국 가라니까? 너 정도면 중국에서 먹혀. 거기는 다양성을 존중해 줄지도 몰라.”
“누나, 요새 저 많이 멕이시네요. 억하심정 있어요?”
“미안. 그냥 놀리고 싶어서.”
성호와 민주가 주거니 받거니 투닥대는 사이 인터뷰가 마무리되었고.
“감사합니다, 최도윤 배우님. 실물로 뵈니 더 잘생기신 것 같아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터뷰하러 오기까지 해주시고.”
“뭘요. 솔직히 오케이하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데요! 그래서 저, 괜찮으시면…… 이거.”
인터뷰를 마치고 리포터가 선물을 건넸다.
“아! 별건 아니구요. 저희 로고 박힌 쿠션이에요. 인터뷰하는 연예인분들에게 다 드리는 거니까 부담 없이 받아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네, 그럼…… 참! 저도 팬카페 가입했어요! 카페 자주 들러주실 거죠?”
“그럼요.”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리포터.
도윤은 그런 리포터를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고.
‘진짜…… 너무 멋있잖아.’
리포터의 머릿속에서 펑! 폭발이 일어나 버렸다.
이를 보던 민주가 물었다.
“근데 오빠는 연애 안 하나.”
“형은 그냥 대본만 봐요.”
“안 들키면 그만인데.”
“대본만 본다니까요. 하루 종일. 제가 오죽하면 저처럼 게임 좀 하라고 그러겠어요.”
혀를 차던 성호는 곧 자신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저보단 낫죠. 다가오는 사람이라도 있으니…….”
“짚신도 다 짝이 있다더라.”
전혀 기운이 나지 않는 멘트였다.
“저게 뭐야? 커피 트럭이네?”
“누가 보낸 거야?”
그때 촬영장으로 커피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커피 트럭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달려간 배우는…….
“하하, 별건 아니지만 많이들 드세요. 제가 요새 좀 소홀했던 것 같아서 소속사에 부탁 좀 했습니다.”
바로 주형진이었다.
물론 시선은 썩 좋지 못했다.
형진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평소 NG를 자주 내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스태프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공공연한 비밀과 스탠바이 직전까지 차에 있다가 나오는 모습 덕분인지.
“뭐, 주는 거니 고맙게 먹지만…….”
“솔직히 좀 속 보이지 않아요?”
스태프들 사이에서 좋은 말이 나올 턱이 없었다.
그나마도 받아가는 스태프들도 각 부의 장들이 배우 체면을 고려하라고 말한 덕에 가져가는 것 같았다.
뭐, 사실.
이렇게 한다고 도윤이 아는 형진의 미래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촬영 초반부터 중후반에 다다른 지금까지 내내 욕만 먹고 있었으니.
그나마 비슷하게 촬영장에서 말썽을 피우던 서태주와 다른 점이라면-
최소한의 눈치는 있다는 거?
적어도 감독한테 “잘 좀 찍어주시든가요”라는 미친 발언은 하지 않으니까.
물론 이런 건 어디까지나 서태주와 비교했을 때지만…….
형진은 이미 충분히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지금까지 한 게 있는데, 커피차 하나 쏜다고 달라질 리 없는 것이다.
덕분에.
“……내가 뭐 잘못했냐?”
“잘 모르겠는데요.”
형진은 준비한 재료를 절반도 소진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커피 트럭을 보며 울상을 지어야 했고.
“컷! 다시 갑니다. 주 배우. 무슨 문제 있어요? 같은 씬에서 각각 다르게 네 번이나 NG를 내면 어쩝니까?”
커피 트럭을 쏜 게 무색하게도 형진의 NG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주 배우. 일단 오늘 씬 촬영 중단합니다. 다시 대본 숙지하고 오세요.”
“가, 감독님. 그게 저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요리가 아직 익숙지가 않아서…….”
같잖은 변명에 창욱의 눈에서 스파크가 터졌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전문가까지 모시고 이렇게 촬영하는데 자꾸 이러면 어떻게 합니까. 주 배우. 프로답게 합시다. 프로답게. 내일 다시 슛 들어갈 테니까 내일까지는 숙지해 오세요. 알았습니까?”
“네, 네엡.”
황급히 고개를 숙인 형진.
이미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NG를 냈다는 건, 스태프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
특히, 형진이 몇 번이나 틀리는 동안 단 한 번의 NG 없이 긴 대사를 막힘없이 소화해 낸 도윤.
때문에 형진은 슬며시 도윤에게 다가가 수습하려 했지만.
“아, 선배님. 괜찮습니다.”
괜찮다고는 하는데, 이전과는 묘하게 다른 도윤의 분위기에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이제는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든 느낌?
형진은 그때야 깨달았다.
너무 늦었다는 걸.
* * *
다음날.
촬영이 재개된 가운데.
“자, 곧 슛 들어가겠습니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도윤은 집중력은 조금도 잃지 않은 채 감정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기적의 레시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재기를 위해 출연한 대결 프로그램에서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제자 ‘김도진’의 도움을 받아 환상의 메뉴를 만들어내고 끝내 ‘배종석’에게 승리하는 장면.
사실 의 스토리 라인은 누가 봐도 예상할 만큼 뻔하고, 적당한 신파고 들어간 흔히 볼 수 있는 한국형 영화.
그럼에도 도윤이 이토록 집중할 수 있는 건, 도윤이 단지 프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한 전개임에도 촘촘히 쌓아 올려가는 이야기의 얼개.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장면에서 터지는 카타르시스.
도윤은 카메라가 돌아가기 직전까지도 대본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고-
“레디…… 액션!”
마침내 사인이 떨어지고 촬영이 시작됐을 때는 완벽한 ‘오민석’이 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호흡을 앗아가 버렸다.
“아!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오민석 셰프, 어떻게 된 일인지 손을 놓았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반면 배종석 셰프는 승리를 예감한 듯 미소까지 짓네요!”
대결을 중계하는 MC의 재촉하는 듯한 외침에도 눈을 감고 침착한 표정을 짓는 ‘오민석’.
여기에 삽입되는 플래시백.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김두진’이 드디어 처음으로 요리를 만들어 자신 앞에 내놓고, 그 요리를 맛보고 순간 혀를 의심했던 순간들.
그리고 스타 셰프였던 시절,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던 게 무엇인지 깨달은 그 순간.
“아! 다시 눈을 뜬 오민석 셰프! 칼을 집고 빠르게 재료를 손질합니다. 아…… 그런데 이상하네요! 스테이크를 통째로 굽는 게 아니라…….”
MC의 놀라운 외침 속 거침없이 움직이는 칼.
카메라는 스튜디오의 웅성거리는 방청객들을 비추며 극적인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연신 ‘오민석’ 쪽을 힐끗대는 ‘배종석’의 표정은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라이벌의 요리에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 아니야. 준비는 완벽했어. 분명히, 분명히…… 내가 확실하게 이야기해뒀는데. 대결 막판에 고기를 분명히 바꾸라고.’
‘배종석’은 ‘오민석’이 주방에서 쫓겨나도록 만든 원흉.
그리고 그때처럼, 지금 역시 재료를 바꿔치기해서 손님의 컴플레인을 유도하고 매번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오민석’을 무너뜨려 버린 건데…….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오민석’은 달라져 있었다.
깐깐하고.
무조건 원칙만을 고수하던 모습과 달리.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지금 이 상황을 유연히 타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 오민석 셰프! 기존 대결에서 예고했던 스테이크 대신에 고기를 잘게 썰어 다른 요리를 준비하고 있네요! 왜 그런 걸까요! 하지만 요리는 아주 맛있게 준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 배종석 세프 쪽도 바쁜데요! 아, 배종석 셰프! 칼을 떨어뜨리네요! 이게 무슨 일인가요!”
반면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결을 이어가던 ‘오민석’의 모습에 칼을 떨어뜨린 ‘배종석’.
떵그렁.
바닥에 떨어진 칼을 클로즈업하며 이가 나간 장면이 카메라를 타고.
아까보다 더한 방청객의 웅성거림이 ‘배종석’의 귓가를 가른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급기야.
“새 칼 달라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옆에 있던 자신의 제자이자, 어쩔 수 없이 음모에 가담해야만 했던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장면이 생방송을 그대로 타버렸고.
‘이런 망할!’
급기야 다급했던 나머지 ‘배종석’은 팬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허둥대다 기어이 자멸해 버렸다.
“아…… 배종석 셰프.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요.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반면.
“오민석 셰프, 초반의 당황스러움은 완전히 잊고 이제는 요리를 거의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아,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서 걸쭉한 소스와 볶아내는군요! 연막 작전인가요! 멋집니다!”
‘오민석’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김두진’과 호흡을 맞추며 마침내 요리를 완성해냈고.
때앵!
요리를 완성했음을 알리는 벨을 누르는 그 순간.
“컷-! 오케이! 완벽합니다!”
이창욱 감독이 묵은 숨을 토해내며 감격의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이거지. 그래, 이거지.’
그리고 창욱은 떨고 있었다.
도윤의 연기 덕분에 느낀…….
강렬한 희열에.
“감독님. 우리 이거 진짜…… 러닝 개런티 장난 아니게 깨지게 생겼는데요?”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조연출의 말에 볼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바로 영화 시장이라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이 영화가 만약 성공한다면, 그 일등공신은 바로 최도윤일 거라고.
‘이제 얼마 안 남았군.’
막바지에 다다른 영화 촬영.
창욱은 머지않아 드러날 결과물에 기대하며 도윤을 지긋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