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24
잠시 예쁘다는 칭찬들에 흐뭇해하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분은 요즘 태화의 액션을 도와주시는 홍위환 감독님이세요.”
[화장하러 안감? 이태화는 화장 안하면 안 되는데?]태화가 화장빨이 심한 건 남자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인지라 그들은 두터운 매트가 깔린 배경과 시간을 떠올리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레드 카펫에서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할 텐데, 그러려면 체육관이 아니라 미용실과 같은 장소에 있어야 했다.
“그러게요. 오늘 같은 날은 빨리 마사지 받고 광내서 레드 카펫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여러분 을이 이렇게 서러운 거예요.”
그녀도 억울했다. 아티스트의 자존심이 있지 태화와 같은 최고급 소재를 화려한 레드 카펫 앞에 선보일 수 있는 날,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 날을 위해 나래는 밀라노에서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보냈으며 피부는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해주는 숍에 예약을 잡았었다.
그리고 운이 따라 밀라노에서 신성(新星) 소리를 듣는 디자이너 루이 생로랑에게 적당한 양복을 건네받았고 항상 예약이 밀린다는 숍과도 이야기가 잘 돼 일정표에 이름을 올렸다.
······그랬는데, 그런 중요한 날이 오기 바로 사흘 전, 태화는 드디어 성공했다며 홍위환 감독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 기술을 선보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소년같이 맹하게 웃는 고용주의 얼굴은 너무 해맑아서, 나래는 숍을 이미 예약해 뒀고 그런 걸 보여줄 시간 따윈 없다는 소릴 할 수 없었다.
‘태화 피부가 평균 수준이었어도 말려들지 않았을 텐데······.’
그녀가 볼 때 태화의 피부는 범상치 않았다. 비누 스킨 로션 삼 세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아기 피부처럼 고왔다.
햇볕에 그을린 얼룩도 없었으며 흔히 있을만한 여드름 흉터, 기미 또한 전혀 없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마저 촉촉한 것이, 평생 관리 받았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그 반짝이는 눈을 외면할 수 없어서 99를 100으로 채우지 못하다니, 프로 실격이야.’
결국 나래는 3시간 코스를 취소한 뒤, 미용실에 가는 정도로 준비 일정을 다시 짜야했다.
똑 부러지는 그녀도 어딘지 어린 동생 같은 고용주에겐 물러졌다.
“나래야.”
생각에 잠겨있던 나래는 현규의 불안 섞인 나직한 부름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간 뚱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화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창룡제 참석하기 전에 짧은 여흥거리가 생겼는데 저희만 보긴 아쉬워서 방송을 켰답니다.”
[뭐지? 홍위환 감독이랑 관련 있는 건가?] [도대체 홍위환이 누구에요?] [영화 속에 뜨면 최종보스인 분. 이 분 액션보고 있으면 와 소리가 절로 나와요.] [무술감독임. 이번에 태화 찍는 영화 액션도 진두 지휘한다고 들음]화면이 무언가를 준비 중인 태화를 비추자 활발하던 채팅창의 지방방송이 천천히 사그라졌다.
그들의 시선이 모인 그 순간.
몸을 풀던 태화가 매트 위를 달려 나갔다.
그는 정말 가볍게 발을 구르고 한 바퀴를 돈 뒤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간 그의 몸이 정확히 두 바퀴를 회전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작 공중제비에 불과한데도 어딘지 우아한 맛이 있어, 그의 움직임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지금 잠시 허공에 멈추지 않았어?”
“와오······.”
“저 사람 몇 번 연습한 게 전부라며? 저게 가능해?”
구경하던 트레커들이 웅성거렸다.
10대라면 훌턴(Full Twist)을 배우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몸이 유연하고 겁이 적으니까.
그러나 이미 근육이 굳은 성인에겐 상당한 연습이 필요했다. 게다가 두 바퀴 이상부터는 겉핥기로 배운 일반인들이 함부로 따라 해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태화는 그리 오래 배운 것도 아니었다.
홍위환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토 나올 정도로 배우고 합을 맞추던 중, 조금 아쉬워하던 위환이 화려함을 가미하기 위해 트릭킹을 참고해보라며 몇 가지 요령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순발력과 유연성, 균형감각까지 갖춘 태화는 공중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동작을 꽤나 자유롭게 펼쳤다.
게다가 축복 속에서 한껏 가벼워진 몸으로 동작을 더하고, 그렇게 얻은 감각을 현실에 적용했다.
그러한 노력은 대본 속에서의 동기화 정도를 끌어올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화가 현실에서도 조금 더 우아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전투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합을 맞추면서 친해진 유상호가 한 ‘볼거리 하나는 확실히 제공하니 감독들이 널 격하게 사랑할 것이다’란 말도 과장되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화 찍으라니까 왜 초인이 되고 앉아있냐] [미쳤네. 태릉촌 가야할 듯] [어이상실ㅋㅋㅋㅋ저걸로 태릉이면 개나소나 다간다] [예술점수 10 기술점수 10드리겠습니다]잠시 조용했던 채팅창은 시간을 만회하듯 빠르게 올라갔다.
나래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문장들을 살폈다.
대단하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그 중에는 ‘부상 위험도 높은 부분을 왜 직접 하려 드느냐?’라는 걱정도 상당 수 섞여있었다.
그 심정이 딱 자신의 것과 같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몸이 재산인데 왜 저런 위험한 동작을 직접 연습하는지 모르겠어요.”
위험한 장면을 대신해줄 이는 많은데, 태화는 굳이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펼쳤다.
눈을 땔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래는 ‘그래도······.’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태화 영화에 칼 갈고 있나봄.] [얘 얼굴부터 재능충인데, 능력도 재능충 세상 불공평하네.] [ㄴㄴ얼굴은 화장이죠. 마리스 보니까 흔남이던데] [화장도 재능. 니들은 줄긋는다고 수박 될 거 같냐? 그리고 흔남이 아니라 훈남이겠지. 그 정도면 니들하고 있을 때 까마귀랑 백로 수준의 차이다. 어디서 비교하고 있어?]태화가 화면에서 사라지자 채팅창은 서로의 의견차이로 싸우기 시작했다.
속으로 싸워라 싸워라를 외치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던 나래는 순식간에 100자 가까이 되는 댓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태화 지인들 사이에선 노력가로 소문남. 솔까 어떤 배우가 영화 찍는다고 몇 달째 다른 활동 다 접고 스턴트만 연습함? 그 시간에 광고 찍었으면 억을 벌었겠다] [억은 에반데 꽤 벌긴 했을 듯. 근데 이렇게 확 뜨면 나대다 사고치는 애들이 많은데 얜 신인같지 않아서 좋음] [ㅇㅇ맞음. 연극계 출신이라 해도 그리 오래 활동하지 않았고, 데뷔하고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케이스인데 애가 참함.] [신부감임ㅋㅋㅋ?뭐가 참햌ㅋㅋㅋㅋ?]“일단, 방송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제 진짜 창룡제 준비하러 가야하거든요. 정식 방송에서 뵐게요.”
현규는 몇 마디 더 립 서비스를 해주길 원하는 것 같았으나 거기까지 할 의리는 없었다.
아우성치는 댓글창을 냉정하게 무시하며 그녀는 방송을 종료했다.
“곧 촬영이 시작될 거니 위험한 동작은 자제하랬지! 왜 이렇게 애 같아!”
“아니 그게······.”
“난 또 중요한 날 입국하자마자 보고 싶다고 하기에 문제라도 생겼나 싶었더니······!”
“죄송합니다······.”
멋지게 성공하고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태화는 시무룩한 얼굴로 홍위환의 걱정 어린 꾸중을 들었다.
그 모습이 꽤 속 시원했던지라 나래는 말리고 싶어 하는 현규를 붙잡았다.
그녀는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어슬렁대며 둘에게로 다가갔다.
***
태화는 비율도 비율이지만 몸이 상당히 좋은 배우였다.
근육이 골고루 발달해 균형미 있었고 과하지 않아 양복도 잘 어울렸다.
그런 그의 몸을 쪽빛의 천이 휘감았다.
착 달라 붙어 역삼각의 허리선과 넓은 어깨를 그대로 드러낸 상의는 어딘지 야해보였다.
살짝 드러난 발목 또한 입을 마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양복을 휘감은 남자의 외모는 지적이고 세련된 맛이 있어 함부로 다가서기 힘들게 만들었다.
레드 카펫에 입장하기 위한, 태화의 준비가 마무리 된 순간이었다.
끝
ⓒ 마늘소금
하얀 불빛들이 마치 꽃을 연상하듯 피고 짐을 반복한다.
그 눈부신 개화(開花) 아랜 수많은 쌍의 눈들이 태양을 향하는 풀잎처럼 카펫 위에 발을 디디는 이를 쫓았다.
‘사람 많네.’
차 문이 열리고 붉은 카펫 위에 내려선 태화는 목덜미로 향하려는 손을 내렸다.
나비 모양의 짧은 보타이는 흐트러진 형태가 넥타이보다 심하게 드러났다. 답답하다고 건드렸다가 모양이 망가진다면 내일 나래에게 서러움을 가장한 비난을 들을 게 뻔했다.
“멋있어요! 연예중계입니다! 이쪽 좀 봐주세요!”
과거 효신에게 무안을 당했던 추성원이 밝디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태화를 불렀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뻔뻔함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던 소문과 딱 일치하는 행동이었다.
남우주연상 후보로서 토막으로나마 ‘연예중계’ 방송 화면에 등장할 것은 기정 된 사실이었기에, 태화는 그를 무시하고 포토존으로 향하는 대신 성원이 가리키는 카메라를 응시하곤 가볍게 웃었다.
같은 방향에 있는 카메라들도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어 그는 조금씩 시선을 바꿔가며 몸을 돌렸다.
“여기도 부탁합니다!”
창룡영화상 공식 송출 방송인 SBC의 마크를 보고 태화는 조금 더 표정에 신경 썼다.
다른 영상은 그래도 편집 후 방송되겠지만 SBC의 중계는 생방송이었다. 최대한 매력적으로 찍히는 것이 중요했다.
입구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태화는 곧 푸른색 로고가 가득한 포토존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 너무 가까이 다가갔었나?’
밝은 빛이 연속적으로 눈앞을 반짝였던 터라 안 그래도 어둑한 주변이 더 어둡게 느껴져, 발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여배우들이 가끔 치맛자락에 넘어지는 이유가 있었네······.’
붉은 천이 깔린 곳만은 환하게 밝아 멀쩡하게 걷는 것이지 눈의 채도가 엉망이었다.
태화는 포토존에 도착해서야 서서히 돌아오는 시각을 느끼며 그림자 아래 숨어 있던 팬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주변이 어둡고 입구에 기자들만 있어서 백종 때와 다른 줄 알았는데,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창룡영화상 또한 수많은 일반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사진 찍는 이들을 향해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 포토존의 카메라들에게 다시 한번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워낙 밝은 곳인지라 아까처럼 시각의 점멸이 일어나진 않았다.
가장자리에서 관중들을 제어하고 있던 경호원 하나가 길을 가리키는 것을 확인하고 태화는 몸을 틀어 입구로 향했다.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에 서 있는 팬들이 환호해주는 것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나와,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 시상식장으로 들어갔다.
***
“진짜 다 가졌네······.”
커다란 대포 카메라를 들고 카펫 위를 겨냥하던 사진 기자가 저도 모르게 탄성 어린 푸념을 내뱉었다.
검은 밴에서 내린 남자는 곧은 자세 때문인지 상당한 장신으로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키가 컸다.
187이란 키가 평균이 되려면 한국이 거인국으로 바뀌어야 할 테니까.
단순히 키만 큰 사람이었다면 그는 평소처럼 묵묵히 제 일을 수행했으리라.
그러나 지금 등장한 남자는 정말 세상의 불공평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데뷔 1년 만에 두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라.’
한창 카메라 세례를 받는 남자는 5월에 있던 백종예술상에도 참가해 수상한 경력이 있었다.
그것도 백종상 최초로 드라마 부문과 영화 부문을 동시 수상한 대단한 경력이었다.
물론 창룡영화상이 열리기 한 달 전 있었던 또 다른 3대 영화상, 대금상영화제에는 초대를 받지 못했으나 그 부분은 모두가 예상했던 일인지라 문제가 되진 못했다.
그가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 ‘괴물: 가면을 쓴 뱀’의 감독 최지환은 대금상의 심사위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고 대금상은 그런 부분에서 꽤 공정하지 못한 단체였다.
그 편파성 탓에 이인자 자리조차 백종상에게 빼앗겼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저번이 신인상이었는데 이번엔 주연상이지.’
남우주연상 후보 이태화.
데뷔한 지 2년도 되지 않은 신예이면서 등장하는 작품마다 성공해 결국 대한민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 시상식, 창룡영화상의 주연상까지 넘보게 된 인물.
화장하지 않은 얼굴은 의견이 갈리는 편이지만, 화면에서 그를 볼 때면 그 누구도 그런 사실 따윈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태화의 연기는 역할 그 자체였고, 일부 성급한 기자들은 그의 연기를 ‘메소드 연기’라 포장하기도 했다.
자신을 잊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연기라는 의미였다.
그런 의견에, 태화는 ‘역할의 기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때 부위를 알코올로 먼저 소독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배움이다. 역할 자체가 되기엔 하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연기를 그런 식으로 한정 짓지 말라는 에두른 부정이었으며 그 때문에 칭찬 반, 입에 발린 말 반으로 말을 꺼냈던 기자는 자존심에 타격을 입고 주변인들에게 악평을 쏟았다.
‘그러고 보면 초반엔 기자들하고 그리 친하지 못했는데······.’
이태화는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관해선 소신이 뚜렷한 배우였다.
누군가 오해 섞인 발언을 하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아니오’라 반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런 태도는 라이징스타의 인터뷰를 마치고 한창 주가가 올라 인터뷰가 쇄도했을 때도 여전했다.
당연히 콧대 높고 신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 연예부 기자들은 ‘건방진’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신인답게 칭찬하면 칭찬으로 받고 혹평하면 쩔쩔맬 것이지 어디서 콧대를 세우느냐는 뜻이었다.
일방적인 적의를 받으면서도 태화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 개가 짖나’ 정도의 관심도 없었으며 그런 태도는 일부 기자들을 자극했다.
‘······그런데도 악의적인 기사나 사고 하나 없었다는 게 역으로 대단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