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1
130. 무게 (5)
다음 날, 정현석은 평소보다 일찍 국회로 향했다.
국회 본관에 있는 당 대표실에서 당 사무총장과 당 대표 비서실장에게 당무에 관해 보고를 받은 후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의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김 보좌관님, 정 대표님 무슨 바람이 분 겁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지훈은 정현석에게로 이동하다 자신을 붙잡고 물어오는 정현석의 마크맨 기자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아니, 정 대표님 말입니다. 분위기 봐서는 재신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무를 중지하실 것 같더니 갑자기 출근하셔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당무를 보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 일 없지 않나요?”
“네?”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패배한 것도 아닌데 대표께서 칩거하셔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원께 이번 지선의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셨고요.”
“정 대표님 생각도 그런 거예요?”
“예. 대표님께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윤 기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선거전에 온 언론에서 진보당 압승을 떠들어댔어요. 고려일보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지훈의 말에 고려일보 소속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우리 회사도 그렇게 논조를 가지고 가긴 했죠.”
“또, 대표님께서 집중적으로 지원한 곳은 이번에 다 당선되신 거 아시죠?”
“알죠. 특히 제주는 골든크로스(Golden Cross, 지지율 2위가 1위를 역전)까지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질 것으로 봤는데 말이죠.”
“네. 제주도 그렇고 또 최근 경기도 지역에서 진보 1번지라는 수원시장과 경기도지사도 우리 당이 가져 왔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기자는 열심히 수첩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익명입니다.”
“네?”
“기사 쓰실 거잖아요.”
“하하, 거참 알겠습니다. 익명의 관계자로 처리하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참, 진보당 원 대표 오늘 사퇴 발표한답니다.”
기자의 말에 지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한가요?”
“예, 오늘 오후에 기자회견 일정 잡았고 몇몇 기자들에게 엠바고로 거취를 말했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윤 기자님 우리 대표님에 관한 기사 좀 잘 부탁드려요. 다음에 뵐게요.”
지훈은 기자에게 부탁한 이후 빠르게 정현석이 있는 당 대표실로 향했다.
“어, 왔어?”
“네. 오늘 오후 일정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좀 앉자.”
지훈이 자리에 앉자 정현석은 굳은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원 대표 사퇴한다더라.”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냐?”
“오는 길에 고려일보 윤 기자한테 들었습니다.”
“그래? 정식 발표가 났나 보네?”
“아직은 알음알음 아는 사람만 아는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조금 전에 전화 왔어. 나보곤 버티라고 하시더라고, 이상한 양반이야 그러면서 자기는 그만둬버리고 말이야.”
정현석은 비록 다른 정당의 대표이지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지 매우 안타깝다는 듯 말해오고 있었다.
“어떨 거 같아?”
“네?”
“여론조사 결과 말이야, 내심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느라 고생했네.”
정현석은 괜스레 농담하며 지훈에게 물어왔다.
“잘 모르겠습니다. 당원들의 마음을 제가 알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속으로는 잘 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말을 원했어. 네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 잘 될 테니까.”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작은 미소로 답했다.
“자,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가볼까. 같이 갈 거지?”
“네.”
**
사흘 후, 진보당의 원용희 사퇴 이후 모든 언론의 시선은 이제 보수당을 향해 있었고, 지난 주말 전 당원을 상대로 ARS 여론조사를 시행한 보수당은 결과 발표만을 앞두고 있었다.
당 대표 재신임과 관련된 여론조사였기 때문에, 여론조사 감독위원으로는 당내의 중립 성향의 의원들이 참여해 당 지도부 또한 결과를 알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모두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내대표 이영식은 의원총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또, 참석해주신 기자 여러분도 감사드리며 질문은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오늘 보수당의 의원총회는 당 대표 재신임 여론조사에 대한 발표를 겸하고 있었고, 공개 의원총회로 국회 기자단에서 뽑은 기자들도 참석하고 있었다.
“앞서 당 대표께서 발표하셨듯이 지난 주말 양일간 전 당원을 상대로 당 대표 재신임과 지방선거 평가에 대한 ARS 여론조사를 당 정책 연구원에서 시행하였으며 당 지도부는 엄정중립의 자세로 여론조사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감독위원분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합니다.”
이영식 말이 계속될수록 구석에 서서 지켜보는 지훈의 속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여론조사 문항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첫 번째 문항으로는 이번 지방선거 만족도에 관해 물었으며 답변은 만족, 불만족, 잘 모르겠다 세 가지로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문항으로는 현재 당 대표인 정현석 대표를 신임하시는지를 물었으며 답변은 신임, 불신임, 잘 모르겠다 세 가지입니다.”
정현석은 두 눈을 감은 채로 이영식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 당원 292만 920명 중 94만 7726명이 여론조사에 답해주셨으며 응답률은 32%입니다.”
이영식은 정면을 바라보며 봉투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 봉투 안에 여론조사 결과가 들어있으며 봉인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영식이 봉투를 들어 올리자 사진 촬영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럼 지금부터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지방선거 평가 및 당 대표 신임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식은 봉인이 되어있는 봉투를 개봉하고 결과를 확인한 후 정면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문항인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만족도 답변입니다. 만족 48.7%, 불만족 31.6%, 잘 모르겠다 19.7%.”
이영식은 어떠한 사족도 달지 않은 채 여론조사 결과만 발표하고 있었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과 기자들 또한 숨을 죽이고 다음 문항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두 번째 문항인 당 대표 재신임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영식은 정면을 바라보았고 카메라에서 터져 나온 불빛이 그의 얼굴을 밝혔다.
“신임 69.4%, 불신임 21.1%, 잘 모르겠다 9.5%.”
순간 회의실은 환호와 탄성이 교차했고, 기자들은 급보로 기사를 송고하는 듯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 자판을 연신 두드렸다.
결과가 들려오자 지훈은 주먹을 꽉 쥐었고, 정현석 또한 두 손을 포개고 무언가에 감사한다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이로써 지난 주말 시행한 전 당원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이영식은 단상 옆으로 빠져나와 고개를 숙이고는 정현석을 향해 단상으로 향하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정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영식과 악수를 한 후 단상에 서서 재킷 안쪽 주머니에 있는 소감문을 꺼냈다.
“제 재킷 안쪽 주머니에는 두 가지의 소감문이 있었습니다. 재신임 결과에 따라 발표할 소감문이었습니다.”
정현석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더 꺼내 찢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하나의 소감문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제가 이 소감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몇몇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고 지훈 또한 멀찍이 서서 작게나마 박수를 보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며칠 간은 힘들었습니다. 당 안팎으로 저를 향한 질타는 두려웠습니다. 저의 당 운영방식에 대해 확신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절대 틀린 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정현석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저를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당원 여러분이 있는 이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당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지지를 바탕으로 당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이 정면을 바라보자 기자들은 그의 표정을 담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당원 여러분께 새로운 약속을 하고자 합니다. 앞서 진행해오던 당의 개혁 작업의 속도를 더욱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완급 조절을 해왔던 개혁의 속도를 올려 다음 총선에서는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고 한 템포 쉬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고 몇몇 의원들은 불편하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저의 당 운영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제대로 청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당내에 옴부즈만(Ombudsman) 제도를 도입해 당원 여러분의 불만 사항을 청취하고 당의 모든 결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정현석은 소감문을 접고는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당 국회의원 동료 여러분께도 부탁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저의 당 운영방식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 의원실과 당 대표실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저에게 직접 말씀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의견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훈은 정현석의 말에 구윤서 계파 의원들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들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당원께서 이번 우리 당의 분열을 막아주셨습니다. 더는 우리는 분열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부터 우리는 다시 총선 승리를 향해서 하나가 되어 달려야 합니다. 다시는 당 대표와 지도부를 흔드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 한번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정현석은 단상 옆으로 벗어나 고개를 숙였고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몇몇 의원들은 정현석이 고개를 들 때까지 힘찬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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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의원실 식구들이 모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지훈과 정현석이 의원실로 돌아오자 정현석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축하는 무슨, 누가 보면 감옥에서 출소한 줄 알겠어. 다들 여기 서서 뭐 하는 거야?”
정현석은 자신을 향해 박수를 보내오는 것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희가 진짜 그동안 내색도 못 하고 말도 못 했지만 요 며칠 의원실 분위기가 정말 말도 아니었어요.”
박주미가 신이 난 듯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들 아침에 출근해서 인사를 하고 나면 업무 얘기 빼고는 한 마디도 안 했다구요. 특히 지훈 씨.”
박주미의 말에 정현석은 뒤에 서서 있는 지훈을 돌아보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냐?”
지훈은 정현석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박주미가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말도 마세요. 진짜 대표님은 국회에 출근 안 하시지 지훈 씨는 혼자서 온종일 멍 때리면서 고민하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니까요.”
박주미의 고발에 지훈은 불편하다는 듯 계속해서 헛기침하며 박주미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김지훈 보좌관 나한테 와서는 냉정한 척 말해오더니 너도 힘들었구나.”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대표님의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한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 그랬습니다. 하려고 했지? 아이고, 예 됐습니다.”
정현석이 지훈의 말투를 따라 하자 의원실 식구들은 재밌다는 듯 크게 웃었고 지훈 또한 며칠간의 고생과 고민을 털어버리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우리 의원실 식구한테도 약속하겠습니다. 다들 그동안 고생했어.”
정현석이 모두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의원실 식구들은 괜찮다며 정현석을 위로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