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2
131. 직진 (1)
2014년 8월.
지방선거 이후, 각 당은 당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수당은 당 대표 재신임 여론조사 이후 힘을 받은 정현석과 당 지도부가 당을 수습한 이후 9월 정기국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진보당은 원용희 대표의 사퇴 이후 당을 장악한 원내대표 한정수에 의해 당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또, 정부 인사들의 비리가 터지며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 또한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와대가 많이 불편해합니다.”
“불편해하라지. 지금 대통령 지지율 매주 떨어지는 거 안 보이나?”
한정수는 원내대표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받고는 자신도 불쾌하다는 듯 톡 쏘아댔다.
“형님, 지금 청와대랑 척을 지면······.”
“오히려 지금이 청와대랑 척을 지어야 할 타이밍이야 이 친구 정치 일, 이년 했어?”
“무슨 말씀입니까?”
“대통령이랑 청와대가 지금 임기 초 지지율 믿고 여당을 향해 겁박을 해왔지 않은가? 지금은 지지율도 떨어지고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청와대에 돌리기 딱 좋은 타이밍이야.”
“그게 어떻게 겁박입니까? 당연히 여당은 임기 초에 협조해야죠.”
“협조를 바란 사람들의 태도가 어땠냔 말이야. 잊은 건 아니겠지? 원용희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을 장관으로 쓰겠다고 강행통과 시켜버린 거?”
“거야······ 원 대표는 대통령의 후견인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비서실장은 한정수의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이 적기란 말일세.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반대하는 청와대의 연정 욕심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졌다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또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겠지.”
“어떤 방식을 생각하시는지······.”
“개각.”
한정수의 말에 비서실장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정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인사 문제로 인한 지방선거 패배니 청와대에서 결자해지하라고 전하는 걸세.”
“명분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야. 지금 보수당 당원들은 지방선거 결과에 만족하고 정현석이 재신임까지 해줬어. 그건 저쪽에서 승리했다고 받아들인다는 거 아니겠나?”
“그렇지요.”
“그러니 지금 개각을 요구해서 청와대에서 받아들인다면 내가 제안하고 받아들인 거니 당내에서 내 영향력이 커질 거야. 비대위를 하루빨리 세우라고 떠드는 것들 입을 다물게 할 적기란 말일세.”
“만약에 청와대에서 거절한다면요?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
“설마······.”
비서실장의 물음에 한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임건의안을 상정할 거야.”
“형님,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명분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한정수는 씩 웃으며 비서실장을 향해 자신이 보던 신문을 건넸다. 신문 기사에는 허훈의 SNS를 각색해 보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왜?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장관인데 자신이 친한 인물이 이번 지선에서 승리했다고 좋아해서 되나.”
“형님, 장관이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 축하의 인사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면 오히려 우리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 누가 우리가 한다고 했어? 대안당 김민수 대표와 약속 잡아.”
“대안당에 넘기시겠다는 겁니까? 형님, 보수당과의 연정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졌다고 청와대를 압박하자고 하시면서 대안당과 손잡으시겠다는 것은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거참, 이 친구 아까부터 왜 이렇게 답답해? 당연히 물밑에서 협상해야지 누가 대놓고 한대!”
한정수가 큰소리를 치자 비서실장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대안당도 허훈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을 테니 일단 본회의가 열릴 수 있는 성원부터 충족해놓자고.”
“보수당과 사민당이 자기네들 당적인 장관 자르는 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정기국회가 안 열릴 수도 있습니다.”
“정기국회 합의 때는 이 안을 빼고 열리면 상정할 거야. 우리가 이번에 원용희 몰아낼 때 확보한 우리 당 의원들이랑 대안당 의원이면 통과가 가능할 걸세.”
“하지만,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질문에 한정수는 크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 이 친구 무슨 걱정이야?”
“네?”
“지금까지 국회에서 넘어간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던 대통령들을 못 봤나?”
비서실장은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한정수를 바라보았고, 한정수는 여전히 웃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불통 이미지만 강해진다고, 여당이 건의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국은 급속도로 냉각될 거고 청와대는 앞으로 우리 당에 명령이 아닌 야당처럼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해임을 건의한 허훈이가 그 협조를 구하러 오면 누가 받아들이겠나?”
한정수의 말에 비서실장 또한 좋은 수라는 듯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수입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청와대는 우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네요.”
“눈치뿐이겠나? 이제 당은 내가 접수하는 거야. 대통령 계파 의원들도 나를 보고 협조를 부탁하겠지.”
“그럼 건의는 어떤 방식으로 하실 예정이신지?”
“곧 허훈이 올 거야.”
“형님, 허 장관에게 직접 본인 해임건의를 하시겠단 말입니까?”
“그래. 이참에 허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고 말이야. 또 본인이 짐이 된다면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할 테고 대통령이 그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나?”
한정수는 오랜만에 만족스럽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고 비서실장 또한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정수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한정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는 비서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곧 허훈이 올 거야. 자네는 나가 봐.”
“예. 알겠습니다. 형님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두 시간 후에 점심이나 같이하지.”
한정수의 말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원내대표실을 벗어났고, 잠시 후 원내대표실에는 정무장관인 허훈이 찾아와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허 장관께서 국회에 나오신 걸 보니 대통령의 명령이 또 있나 봅니다.”
자신을 향해 묘한 적대감이 낀 말투로 얘기해오는 한정수의 얼굴을 바라본 허훈은 웃는 표정을 지었다.
“명령이라니요. 하하, 여당에 협조를 구하러······.”
“지금까지 협조를 구했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습니다. 그래, 본론부터 말합시다.”
자신이 먼저 숙였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해오는 한정수를 향해 허훈 또한 웃는 표정을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서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지방자치법과 한 대표께서 원하셨던 국정원법 등 장기 계류 중인 개혁 법안들이 통과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허훈의 말에 한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훈을 바라보았다.
“그 법안들은 이미 우리 당에서도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되도록 노력하기 위해 중점법안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허훈은 갑작스레 호의적으로 변한 한정수의 말에 기쁜 듯 웃으며 한정수를 바라보았다.
“단, 우리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정부에서 처리해달라며 내리꽂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 대표님, 일방적이라니요? 여당과 정부는······.”
“아아, 원론적인 얘기를 하실 거라면 자리에서 일어나시지요.”
종잡을 수 없는 한정수의 말에 허훈은 표정을 굳히고는 한정수를 바라보았다.
“대통령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요구사항을 말씀해주시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나오셨어야지요. 하하.”
한정수는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크게 웃으며 허훈을 바라보았다.
“개각을 요구하려고 합니다.”
“개각이라니요?”
“이번 지방선거 패배를 전부 여당의 몫으로 돌리시려는 건 아니지요? 정부 또한 실책이 있으니 같이 짐을 나눠서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훈의 미간은 시시각각 찌푸려져 갔다.
“그래서 말인데 정부에서도 지금 개각을 하는 게 맞지 싶어요.”
“개각의 방향은······.”
“비리에 얽혔다는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는 경제 부총리와 복지부 장관, 그리고 정무 장관직 교체를 건의하려고 합니다.”
허훈은 한참 언론을 통해 시끄러운 얘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경제 부총리의 교체는 이해했다. 다만, 자신을 교체대상으로 생각한다는 한정수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신과 사민당 당적의 복지부 장관을 노리고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을 돌아보면 경제가 힘들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 하시는데 경제 부총리는 정권이 취임한 이후로 뭔가 개선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측근 비리에 연루까지 되다니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갈아야 합니다.”
허훈은 한정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또, 복지전문가라는 복지부 장관은 어떻습니까? 국회의원일 적에는 정부에게 강한 복지정책을 요구하시더니 본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답니까?”
“…”
“본인을 앞에 두고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허 장관님 또한 당정청의 거리를 좁혀주시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느끼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우리 당내에서 나오는 소리는 늘 한결같습니다. 청와대가 여당을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내리찍는다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적어도 매달 국회로 나와 각 당의 대표님들을 찾아뵙고······.”
“왜 대표를 뵙고 그냥 가셨습니까? 원내에서 처리하는 것은 원내대표인 제 몫인데요. 원 대표가 대통령 계파라 편해서 찾아간 것 아닙니까? 정무장관이 그런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 말해오는 한정수의 말에 허훈은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당 내부의 싸움은 전적으로 청와대와 허 장관님의 탓이에요.”
한정수는 허훈이 입을 다물고 있자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허훈을 향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드렸으면 본인도 느끼시는 게 있으실 테니 잘 생각해보시지요. 제가 요청한 것이 선행된다면 두 달 후 정기국회에서 대통령께서 원하신 법안 제가 직접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는 허훈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한정수는 턱을 매만지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한정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아는 기자 좀 있지? 어, 그래 거기가 좋겠네. 허훈이 딴생각 못 하도록 먼저 언론에 좀 흘리지. 잔말 말고 이번엔 내가 시키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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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장관님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재신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께서도 축하드린다고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정현석은 정기국회를 대비해 국회를 찾아온 허훈과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자자, 앉으시지요.”
정현석의 안내에 자리에 앉은 허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고, 허 장관님 그래도 정부의 일원인데 좋아하셔도 됩니까?”
“하하, 그렇지 않아도 선거 다음 날 국무회의 때 고생했습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정현석의 농담에 허훈 또한 농담으로 받으며 두 사람의 독대는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그래, 저는 여당 대표만 만나고 가신다길래 살짝 서운해 질 뻔했습니다.”
허훈의 국회방문일정은 여당 대표와의 만남으로 한정되어있었고 정현석은 농담 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젠 여당 의원들이 더 편합니다.”
“허 장관님도 참······ 그래, 갑작스레 저를 찾으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정현석은 허훈의 농담에 피식 웃고는 허훈을 향해 본론을 물었고, 허훈 또한 방금까지 있었던 웃음기는 싹 지우고 정현석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장관직에서 내려와 이제 당으로 복귀할까 합니다.”
허훈의 폭탄선언과도 같은 말에 정현석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허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