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1
150. 총선 (2)
다음날, 지훈은 아침 일찍 당의 선거상황실로 출근해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을 살피고 있었다.
‘김장표가 여기서 숙였으면 좋았을 텐데 떳떳하게 기다리겠다니······.’
지훈은 자신이 한 발언에 대해 쉽게 사과하지 않는 김장표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한편으로는 혼탁해질 선거 상황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애초에 쉽게 사과할 것 같은 인물이면 그런 발언도 하지 않았겠지.”
지훈은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는데 박주미가 종이컵을 건네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일찍 출근했네. 이거 마셔 커피야.”
“고맙습니다.”
“떳떳하다는 발언 보고 고민하고 있었지?”
“네. 차라리 입이라도 다물고 있었으면 어찌어찌 수습해볼 텐데. 지금 태도는 윤리위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깽판을 칠 것 같아서요.”
“저런 양반이 이번 공천 때는 왜 걸러지지 못한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니 면접 때는 지금과 다른 태도였다고 합니다. 공관위원들도 지금 모습에 당황하고 있고요.”
“하기야, 면접 때 가면 안 쓰는 인간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야?”
“고민 중입니다. 시선을 김장표에서 대표님으로 돌려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방법이······.”
“우리 잘하는 거 있잖아.”
박주미의 말에 지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주미를 바라보았다.
“정공법!”
“정공법이요?”
“그래, 정면돌파 말이야. 지금 제일 상처 받은 사람들이 누구겠어? 호남 지역민들이야. 기사 못 봤어? 김장표가 호남 인사만 등용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아닌 거로 나왔잖아.”
박주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김장표 부산시 선대위 위원장은 ‘호남 인사만 중용하는 정부’라며 공격을 했지만, 실상을 살펴보니 장, 차관급 고위 공무원들은 지역별로 안배가 되어있었고, 그중에서도 영남 출신 인사들이 가장 많았었다.
김장표의 발언은 사실관계에서부터 틀렸기 때문에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아. 어떻게든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듯 정면돌파 하는 게 어때?”
박주미가 그렇게 말하자 지훈은 박주미가 준 힌트에서 답을 찾는 듯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박주미는 지훈이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듯 싱긋 웃으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지훈은 고민이 끝난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박주미를 향해 싱긋 웃으며 전화를 들어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중앙당 캠프 선거대책본부 1팀 부실장 김지훈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내일부터 대표님 일정을 모두 취소해주세요.”
-네? 대표님 유세 일정 모두 취소해달라는 말씀 맞으시죠?
지훈이 전화를 건 대상은 유세본부의 당직자였는데 잘못 들었나 싶어 지훈을 향해 되물었다.
“네. 모든 유세 일정 다 빼주세요. 그리고 호남지역에서 대표님 지원 유세 요청 들어온 게 있습니까?”
-잠시만요.
지훈의 물음에 당직자는 자료를 찾는 듯 수화기 너머에서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광주 광산, 전남 여수, 전북 군산에서 요청이 들어와 있었는데 거절했습니다. 아무래도 수도권 지역에······.
“다시 그분들께 연락해서 필요한지 물어봐 주시고, 다른 지역구에도 전화 돌려 대표님 지원 유세가 필요한지 물어봐 주십시오. 그리고 요청이 있다면 대표님 일정은 당분간 호남지역으로 정해주십시오.”
-괜찮을까요? 저희도 나름대로 수도권 지역에서 대표님 지지율이 높아 수도권 험지로 유세 일정을······.
“고민 많이 하신 유세 일정인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수습해야 다른 지역 선거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아 판단한 일입니다. 일단 그렇게 일정을 잡아주십시오. 대표님과 상의 후 확정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번에 일정이 취소된 지역은 일정을 다시 잡아주겠다고 각 캠프에 전해주세요. 선거가 끝나기 전 꼭 지원 유세 가겠다고 말씀해주시고요. 그럼 수고하세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지훈은 전화를 끊고, 의자에 걸린 재킷을 걸쳐 입으며 박주미를 바라보았다.
“거봐. 빙 둘러갈 생각하지 말고 직진으로 가려고 하니 답이 나오지?”
“네. 박 비서관님 덕분입니다. 저는 이번 일을 어떻게 풀어야 다른 지역 선거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만 생각했어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주미는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가?”
“대표님께 다녀오겠습니다.”
“전화로 하면 되지 않아? 잠시만, 대표님 오늘 일정이······.”
정현석의 일정을 확인한 박주미는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그 먼 곳까지 가려······.”
박주미는 하던 말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지훈은 이미 사무실 문 앞에서 자신을 향해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휴, 못 말려.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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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당의 일꾼, 더 나아가 강릉의 일꾼 임건식 후보를 소개해야 하는데 제가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출퇴근길 유동인구가 많은 사거리에서 퇴근 시간을 맞아 지원 유세 중인 정현석은 유세차에 올라타 마이크를 잡고 안타깝다는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거리 맞은편에는 보수당과 임건식의 지지자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일반 시민들이 유세차에 올라탄 정현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정현석입니다.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꽤 곤란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자리가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려서라도 저와 우리 당의 진심을 전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여러분 앞에 사죄의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최근 우리 당의 부산시 선대위원장직을 맡은 후보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에 대해 당 대표로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유세차 단상 옆으로 벗어나 고개를 깊이 숙였다.
“우리 당은 이번 선거 전까지 변화를 위한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인적으로도 또 정책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저 혼자 자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언의 경위를 떠나 정치인으로서 국민통합을 분열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정현석은 반대편에서 자신의 말을 집중하고 있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나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또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릴 수도 또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번 일은 당 대표인 저부터 부족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께 사과드리겠습니다.”
정현석은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옆에서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임건식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우리 주인공을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분위기를 바꾸는 정현석의 말이 있자 임건식은 양손을 높이 들어 올려 팔을 흔들었고 맞은 편에서는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임건식의 이름을 연호했다.
“여러분 우리 임건식 후보에게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임건식 후보는 우리 당에서 큰일을 할 인물입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지입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임건식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며 크게 입을 열었다.
“임건식 후보는 계속해서 정치를 해야 할 인물입니다. 깨끗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정책이 준비된! 강릉과 우리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인물! 임건식을 선택해주십시오!”
정현석이 큰 소리로 임건식을 향한 지지를 호소하자 맞은 편에서는 임건식의 이름을 크게 연호하였고,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임건식은 지역 정책들을 발표하며 그렇게 퇴근길 유세를 끝냈다.
잠시 후, 유세차량에서 내려온 정현석은 힘이 드는 듯 옷 소매로 땀을 훔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눈앞으로 손수건이 건네져 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귀신을 보고 있나? 어쩐 일이야?”
정현석은 손수건을 건네받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지훈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준호에게 대표님을 찾아오겠다고 연락을 했는데 유세가 길어져 따로 말씀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이번 일에 대한 대응책에 대해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내일 서울에서 하면 되지 뭐가 급해서 그래?”
“당장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내려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죄송은 무슨 일단 차에 타서 듣자.”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서서 임건식과 손을 맞잡았다.
“중앙의 일로도 신경 쓰실 곳이 많으실 텐데 이렇게 지원 유세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당직을 맡고 있는데 제 선거에 집중해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하, 무슨 소립니까? 임 의원은 당선되는 게 당을 도와주는 일이에요. 당의 일은 나와 여기 지훈이한테 맡기고 선거에서 이길 생각만 하세요.”
정현석의 말에 임건식은 고맙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인사를 마친 정현석과 지훈은 차에 올라탔다.
“자, 무슨 일이길래 여기까지 내려온 것인지 한번 들어볼까?”
정현석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고, 지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호남지역을 직접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훈이 말을 던지자 정현석은 나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고민하고 있었어. 다만, 내가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상처받은 지역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오히려 보기 싫은 놈이 자꾸 와서 사과한다고 깔짝대면 더 미워 보이잖아.”
“그것 또한 대표님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꼴도 보기 싫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진심 어린 사과를 대표님의 입으로 듣고 싶어 하는 분들도 분명 있으실 겁니다.”
지훈의 말을 듣던 정현석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김장표 후보의 입이 언제 또 열릴지 모릅니다. 윤리위에 부쳐진 이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대표님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언제부터?”
“일단 지금은 자택으로 가셔서 쉬시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내일 오전에 움직이면 오후나 돼서야 호남에 도착하겠네. 늦어. 준호야 차 이대로 광주로 돌려.”
정현석의 말에 최준호는 놀란 듯 룸미러를 통해 정현석을 바라보았고, 지훈 또한 놀란 듯한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네 말마따나 상처가 곪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야. 우리가 여기서 지역 사정을 왈가왈부해 봤자 답이 나오겠어? 가서 지역 상황을 들어보고 한번 부딪혀 보자고. 내일 아침부터 움직이자고, 갈 길이 꽤 머니 나는 먼저 쉰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좌석에 몸을 파묻고는 눈을 감았고,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최준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