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2
151. 총선 (3)
다음 날 아침, 정현석은 밤늦은 시간에 광주에 도착해 근처 숙소에서 묵은 후 아침 일찍 보수당 광주시당 선거상황실로 향했다.
정현석이 시당으로 들어서자 연락을 받고 일찍 나온 듯한 남자가 다가와 정현석과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어서 오시지요. 광주시당 당협위원장 박진수입니다.”
정현석은 박진수의 인사에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아침 일찍 나오시게 해서 송구스럽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선거철이라 항상 이 시간에 나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당 지도부와 함께 방문하신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하하, 제가 성격이 급해서 먼저 내려왔습니다. 현장으로 바로 합류하실 겁니다. 일단 앉아서 상황에 대해 좀 듣고 싶습니다.”
“아이고, 제정신 좀······.”
정현석과 지훈은 박진수의 안내를 받아 시당 한쪽에 마련된 회의 테이블에 자리했다. 정현석은 자리에 앉자마자 박진수를 향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딱히 얘기를 안 드려도 제 말뜻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아실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박진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부산에서 발언 이후 지역의 민심을 물으시는 것이겠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반반입니다.”
정현석은 의외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박진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반이요? 그렇다면 제가 잘 내려왔네요.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받아주실 분들이······.”
“하하, 대표님 그런 뜻의 반반이 아닙니다. 보수당 사람이 보수당 사람 다운 발언을 했다는 의견 반, 화내는 사람 반입니다.”
박진수의 설명에 정현석은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고, 박진수는 정현석을 바라보며 무언가 해탈한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호남에서 우리 당을 보는 시선입니다. 너무 당혹스러워하지 마시지요. 지원 유세를 나오셨으니 유세하시다가 실망하지 마시라고 미리 예방주사 놔드리는 겁니다.”
“박 위원장님의 말을 들어보면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것 같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박진수는 뜨끔하며 자신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대표님께 괜스레 삐딱하게 말해봤습니다. 당이 너무 미워서 말입니다.”
“…”
“진보당에서 영남에 출마하면 다들 지역감정을 허물기 위한 도전이라는 타이틀을 씌워주지요. 우리 당의 호남 후보들도 진보당 후보들보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똑같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정현석은 자신을 향해 하소연하는 듯 말하는 박진수를 바라보았다.
“바로 당의 존재입니다. 진보당은 영남에 후보를 내면 당의 지원도 아끼지 않을뿐더러 만약 지원하지 못하게 되면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지 않도록 당에서 중점적으로 관리를 해줍니다. 우리 당은 어떻습니까? 물론 대표님 취임 이후 지방선거 때부터 호남 후보에 대한 지원이 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관리요? 이번처럼 말실수라도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남들은 이번 선거에서 다 당선을 꿈꾸고 출마한다는데 우리는 아닙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비용 보전받아 다음에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면 언젠간 당선되지 않을까 싶어서 출마하는 거지요.”
박진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들을 쏟아내고는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이런 의견들을 좀 더 빨리 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정현석이 진심으로 사과하자, 박진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말씀드렸듯 대표님 이후에 지원이 늘어 한결 편해졌습니다. 한데 이번 일과 같은 실수가 터지면서 힘이 빠져 대표님께 하소연 한번 해봤습니다.”
“예. 더 하셔도 됩니다. 그런 말씀 들으러 내려온 거니까요.”
“하하, 더할 게 있겠습니까? 그저 대표님께서 괜한 발걸음을 했다고 느끼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줄곧 지켜보던 지훈은 자신이 말해도 될 타이밍이라는 걸 느끼고는 박진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정무 보좌관 김지훈입니다.”
지훈이 인사를 하자 박진수는 반갑다는 듯 지훈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지훈은 박진수의 손을 맞잡고 인사를 했다.
“그래요. 내려오시기 전에 전화하신 분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박 위원장님께 말씀을 전해 듣는 것보다 대표께서 직접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일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지훈의 말에 박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캠프의 직원을 불렀고, 다가온 직원의 손에는 일정표로 보이는 문서가 들려있었다.
박진수가 손짓하자 직원은 지훈과 정현석 앞에 일정표를 내려놓았고, 두 사람을 일정표를 읽어 내려갔다. 정현석은 일정표를 읽어내려가다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박진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전 일정밖에 없습니까?”
“예. 저희는 보통 오전에만 선거 유세단을 대동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진수의 말에 정현석의 표정은 순간 굳어갔고, 정현석의 표정을 확인한 지훈은 자신이 나서야 할 타이밍이라 느끼고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선거자금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박진수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의 말을 받아 얘기를 이어나갔다.
“이 지역 후보들은 후원금도 기대할 수 없고, 당의 지원이 있긴 하지만 사실 총선을 완주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출을 받는다거나 친지에게 빌려서 선거에 뛰다 보니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부터 줄이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력이고요.”
“오전에만 선거 유세원들을 투입한 유세를 하신다는 말씀이군요?”
“예. 그리고 선거 유세에 아무리 돈을 쓰고 크게 한다고 하더라도 혼자 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다 보니 대규모 유세는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정현석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박진수를 향해 되물었고, 박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후 시간대는 아예 선거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오후는 후보 본인과 가족들이 지역구를 누비며 명함 한 장이라도 더 돌리는 거지요. 선거비용 보전이라도 받겠다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대출을 좀 더 끌어올 텐데 그것도 아니니 그저 지출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박진수의 말을 들은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았다.
“당 지원이 좀 더 나오는 건 불가능한가?”
“중앙당도 총선 예산을 미리 짜고 집행도 한 터라 힘들 것 같습니다. 예비비가 있어 일회성으로 지원은 가능하지만, 선거비용 추가지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지역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느낀 정현석은 지훈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정표를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진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말로 지역 분위기를 전해 듣는 것은 여기까지 하고 직접 발로 한번 뛰어봅시다.”
정현석의 말에 박진수와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현석은 앞장서서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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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저희가 좀 늦었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오전 유세 현장에 도착하자 당 지도부 중 참여 의사를 밝힌 최고위원 두 명과 이영식 원내 대표가 정현석을 맞이 해왔다. 정현석은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유세 장소로 걸어서 이동했다.
“저기 계신 분들이 전부 제 연설을 들으러 오신 분들입니까?”
광주의 한 기차역, KTX가 오가고, 주변에 큰 공장들이 많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박진수의 유세차 앞에는 꽤 많은 시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들었던 것과는 다른 모습에 정현석은 놀란 듯 박진수를 향해 물었고, 박진수는 싱긋 웃으며 정현석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대표님 오신다고 하시니 지역구 주민분들과 광주에 사시는 우리 당 지지자분들이 달려와 주신 겁니다.”
박진수의 말에 정현석은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유세차를 향해 걸었고, 박진수와 함께 유세 트럭에 올라탔다. 박진수가 먼저 마이크를 잡아 정현석을 소개하고 있었고, 지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 많은 기자가 광주를 방문한 정현석을 찍기 위해 자리 잡고 있었고,
유세차량 앞에는 3, 40명쯤으로 보이는 숫자의 시민이 모여 있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정말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정현석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현석입니다.”
정현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지지자들은 정현석의 이름을 연호했다. 적은 숫자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현석의 이름이 크게 연호 되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우리 박진수 후보를 제대로 소개해야 하는데 저를 보러 와주셨다는 여러분들을 뵈니 머릿속이 새하얘져 준비한 연설문을 다 까먹고 말았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지지자들은 크게 웃기 시작했고, 정현석은 마이크를 잡고는 즉흥적인 연설을 시작했다.
“광주에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늦어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정현석의 말에 지지자들은 조용히 정현석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상대의 마음을 얻길 원한다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 한 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정현석은 단상에서 마이크를 뽑아 들고 옆으로 나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광주에 오기 전에 이전 우리 당 대표들이 이곳에 와서 유세했을 때 한 발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도움이 될 것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왜 광주에서 우리 당이 선택 못 받는지 알 것 같더군요. 싫어하는 것들만 골라서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큰소리로 맞다며 맞장구를 치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나 같이 ‘지역통합’, ‘국민통합’을 얘기하며 광주에 우리 당을 찍어 달라며 광주가 변해야 한다는 말들을 입에 담았습니다. 정작 우리 당은 바뀌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우리 당 후보가 저지른 지역 차별 발언 또한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 대표로서 부끄러워 이곳에 계신 지지자분들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잘하겠다! 믿어달라! 말해야 하는데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기차역 광장에 정현석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길을 지나가던 일반 시민들도 자리를 멈춰 정현석의 유세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현석은 격앙되었던 감정을 추스르는 듯 한참을 지지자들을 바라보다 호흡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뼈저리게 반성하겠습니다. 호남이 변해야 하는 것 이전에 우리 당이 먼저 변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건방졌습니다.”
그렇게 말한 정현석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고, 당 지도부와 박진수 또한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은 그 모습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 당이 먼저 변하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정치인 정현석의 이름으로 약속하겠습니다. 우리 당내에 아직도 구태 세력이 있다면 그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여러분께 송구스럽지만 염치 불고하고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힘을 주십시오. 제가 그들을 설득하고 이겨낼 힘을 주십시오. 여기 계신 박진수 후보에서 15% 아니, 10%의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이분들이 지역에서 그들을 상대로 싸울 힘을 보태주십시오. 저 또한 중앙에서 더는 지역감정에 매몰된 사람들 입에 이 지역이 오르내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약속드리겠습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자 지지자들은 정현석과 박진수의 이름을 연호했다.
지훈은 한쪽 편에 서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정현석의 연설이 끝나자 그냥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한쪽 편에 서서 작게나마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도 보였다.
‘됐어. 이제 시작이니까. 욕심부릴 필요는 없어.’
겨우 이 정도의 연설로 박진수가 당선될 일은 없겠지만, 정현석의 이 움직임이 적어도 다음 또 다음을 위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고, 정현석이 말한 대로 10%의 득표율만 얻을 수 있다면 박진수와 같은 후보들 또한 지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현석이 진심을 보이고 변화를 주도한다면 상처받아 닫혔던 마음 또한 열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정현석이 내디딘 발걸음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