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6
155. 출항 (2)
2016년 5월 말.
지훈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국회를 나온 지 어언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훈은 당분간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긴 휴가를 마친 후 오늘은 새로 산 양복을 차려입고 집 현관에 서서 거울을 통해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지훈아! 나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봐.”
지훈은 큰소리로 집안일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인사를 했고,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훈을 불러세웠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어머니는 잰걸음으로 현관으로 걸어 나오셨는데 손에는 테이프 클리너가 들려 있었다.
“제가 할게요.”
“가만히 있어 봐. 엄마가 할게. 뒤돌아서!”
어머니 정혜는 자신이 직접 하겠다는 지훈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재킷 위에 쌓인 먼지들과 보풀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리 지훈이 언제 이렇게 컸지? 등을 두드려 줘야 잠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엄마 손에 등이 다 들어오지도 않네.”
“엄마, 남들이 들으면 욕해요.”
“욕하라지!”
지훈은 그런 어머니의 엄포에 웃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 아들, 오늘 새 직장으로 첫 출근인데 기분이 어때?”
“상사가 그대로인데 새 직장은 무슨······ 그냥 무덤덤해요.”
“그래도 가서 잘해야 해. 대표님이 너를 믿고 맡기신 자리니까 알았지?”
지훈은 어머니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뒤돌아서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셔. 아들이 능력이 좋아서 대표님께서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맡기신 자리니까.”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 정혜는 웃으며 지훈의 팔뚝을 한 대 내리쳤다.
“이놈아, 너무 자만하지 말고.”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늦을 수도 있으니 너무 기다리지 마시고요!”
지훈은 어머니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는 집을 벗어나 새로운 사무실로 향했다.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마포의 한 빌딩, 지훈은 고갤 들어 건물을 돌려다 보았다. 올려다본 빌딩에는 어떤 간판이나 현수막도 달리지 않았지만,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일의 연장선일 뿐인데······ 일하는 곳이 바뀌어서 그런가? 기분이 괜히 들뜨네.’
지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왜? 기분이 새삼스러워?”
그때, 자신의 귓전을 때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지훈은 고개를 돌렸고,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정현석과 최준호가 지훈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준호, 오랜만이야.”
지훈이 그렇게 인사를 건네자 최준호는 고개를 숙여 지훈을 향해 인사를 했고, 정현석은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왜 내 말에 대답을 안 해? 기분이 새삼스럽냐니까?”
“예······ 뭐······ 대표님 처음 찾아간 날이 떠오르고 그렇습니다.”
“새끼, 청승은······ 올라가자.”
정현석은 피식 웃고는 빌딩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지훈과 최준호는 그런 정현석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지 얼마 지나지 않자 7층에 다다랐고,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 건물로 들어갔다.
“자! 소개합니다. 여기가 곧 출범 할 정현석 호의 사무실입니다.”
정현석은 한때 텔레비전 쇼 프로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을 입으로 소리 내며 과장된 말투로 지훈을 향해 사무실을 소개했고, 그 모습에 지훈은 그런 정현석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원래 대기업 TF팀 사무실로 쓰였다더라고, 인테리어는 따로 손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사무기구들이랑 집기들만 채워 넣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사무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는 내가 임기 마치면 와서 쓸 사무실이니까 눈독 들이지 말고.”
정현석은 사무실 안쪽의 따로 독립된 공간을 소개하며 지훈을 향해 실없는 농담을 던졌고, 지훈은 피식 웃었다.
“자, 여기 옆방은 이 사무실에서 단 네 개뿐인 독립공간 중 하나인데······ 우리 김 팀장님의 사무실이야.”
어느새 지훈을 향한 칭호도 김 팀장으로 바꾼 정현석은 엄청나게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향해 말했다.
“대표님, 저는 밖에서······.”
“어허! 그래도 나름대로 대선 준비팀의 팀장 직함을 달았는데 독립된 사무실 하나는 있어야지. 나도 네 자리는 밖에 빼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준호가 너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니 공간을 따로 내주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뭐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웃으며 최준호를 바라보았고, 최준호는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때?”
“사무실이 전반적으로 생각보다 꽤 큽니다.”
“나도 더 작은 곳으로 하고 싶었는데 급하게 임대할 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더라고, 찾더라도 일 년만 임대하자고 하니까 건물주들이 다 싫어해. 이곳만 유일하게 오케이고.”
정현석의 설명을 들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건물주 입장에서는 단기 임대를 꺼렸으니까.
“그래도 사무실이 크니까 좋지 않냐? 이곳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이곳 팀장인 네 소관이니까 잘 부탁합니다. 김 팀장.”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과장된 몸짓으로 기도하는 듯 두 손을 모으고는 지훈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해왔고, 지훈 또한 그런 정현석을 바라보고 덩달아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준호야.”
고개를 든 정현석은 뒤쪽에 서 있는 최준호를 불렀고, 최준호는 정현석의 신호에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지훈을 향해 건넸다.
지훈은 이게 무엇이냐는 듯 눈빛으로 물었지만, 정현석과 최준호 두 사람 모두 직접 열어보라는 듯 눈치만 줄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봤는데, 그곳에는 하얀 바탕에 지훈의 이름이 적힌 명함으로 보이는 것과 자동차 키 하나가 들어있었다.
“김무길 대표님께 여쭤보니까 보통 대선준비팀 팀장은 사람 만나고 다니는 일이 반이라고 하시더라고······ 뭐 차는 내가 타던 차인데 나야 뭐 준호가 운전해주니까 당분간 네가 타고 다니고! 운전자 변경도 해놨으니까 보험 걱정하지 말고! 대신 안전하게 타고 다녀! 그리고 명함은 딱히 박힐 회사 이름이나 직위가 없어서 그냥 네 이름이랑 전화번호만 박았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지훈의 표정을 살폈고, 감동한듯한 지훈의 표정이 만족스러운지 뿌듯한 표정으로 코를 훔쳤다.
“감사합니다.”
지훈은 정현석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쭈? 웬일이야. 우리 김지훈 씨께서 내가 준 선물을 넙죽 받고 말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이 정도는 제가 대표님께 받아야 할 것에 새 발의 피도 안됩니다.”
지훈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정현석은 다시 한번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무섭네! 무서워.”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고, 세 사람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일하는데 너만 덩그러니 이 큰 사무실에 데려다 놨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팀을 꾸리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훈의 말에 집중했다.
“크게 정책팀과 정무팀으로 나눌 겁니다. 이미 신영효 교수님께서 대표님의 대선 정책을 위한 싱크탱크를 맡아 주기로 하셨으니 신 교수님을 비롯한 학계의 정책을 중간에서 캠프와 조율하는 일을 정책팀에서 맡을 겁니다. 그리고 정무팀은 대선주자로서 대표님의 메시지, 그리고 이슈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실 때 대표님을 보좌할 것입니다.”
“뭐 어려운 것 없이 지금 의원실의 사이즈를 키우는 거네?”
“네. 그렇습니다.”
“좋아, 사이즈를 키우는 건 키우는 건데 사람은 어떻게 채울 거야?”
“일단 실무를 맡을 인원부터 채우려고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실 보좌진들 위주로요. 그리고 당분간은 그 인원 그대로 가다가 대선 4~5개월 남겨둔 시점부터 규모를 키울 겁니다. 일단은 대선 캠프를 준비하는 팀이자 대표님의 개인 사무실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노파심에 묻는 건데 낙선한 의원실에서 사람을 끌어오는 거면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받는 거 아냐?”
정현석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향해 물었고,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에겐 좋은 카드가 있습니다. 김용일 수석께서 우리 당의 보좌진 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계시는 게 바로 그 카드입니다.”
“그게?”
“네. 평소 우리 당 여러 보좌진과 왕래가 잦으셨던 만큼 일 잘하는 보좌진들을 위주로 우리 사무실을 소개하셨다고 합니다.”
“근데 일 잘하는 애들은 초선이라던지 다른 의원실에서 데려가려고 할 텐데······.”
정현석은 걱정이 가시지 않는 듯 지훈을 향해 되물었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을 보며 씩 웃었다.
“정현석 대세론을 믿으시죠.”
“대세론?”
“네.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남을 것인지 유망한 대선주자의 캠프에 들어와 청와대까지 같이 입성할 것인지. 저라면 후자를 택할 것 같습니다.”
“하하, 누구 보좌진인지 말 한번 똑 부러지게 잘하네. 네 말은 결국 사람이 알아서 모일 거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저는 믿어 의심치 않고 있고요.”
“좋아. 그럼 면접은 언제야?”
“면접 일정은 따로 잡지 않았습니다. 제의를 받고 갑작스레 면접 일정을 공지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질 테니까요. 일단 자리가 잡히기 전까지는 언제든 편하게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말해놨습니다.”
“좋아. 나는 너한테 전권을 다 맡겼으니까 사람을 뽑는 일은 네가 알아서 잘해봐.”
무한대로 보이는 정현석의 믿음과 지지에 지훈은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또 보고할 게 남았나?”
“제일 중요한 한 가지 사무실을 오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픈하다니?”
“이 사무실의 존재에 대해 모두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대선이 일 년이나 남았는데, 다들 내가 설레발 친다고 욕하지 않겠어?”
“말씀드렸듯 아직 대선 캠프가 아니라 대표님의 개인 사무실입니다. 그런 규모로만 설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런 방향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유는 뭐야?”
“인재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사무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알아서 찾아온 다라······.”
“네. 규모가 커진다면 정현석 대세론에 힘을 싣게 될 겁니다. 물론 대표님 말씀처럼 어중이떠중이들을 잘 쳐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몰려온 인재들을 요소에 투입해 정책을 잘 조율해 긴 대선준비 기간 완벽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을 바라보며 얘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한 가지 더 비선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비선?”
“네. 공식 캠프가 꾸려지기 전 준비팀은 언론의 입맛에 따라 비선 조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저 대선을 준비하는 사무실을 꾸렸을 뿐이지만 어떤 논조로 기사를 쓰냐에 따라 이 사무실의 평가는 뒤바뀔 수 있으니까요. 언론에서 따로 취재해 공개하는 것 보다 대표님의 입으로 미리 공개하고 정현석은 확고한 대선 주자로서 준비해나간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런 점이라면 나도 찬성이야. 그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그렇지 않아도 제 동기가 대표님 퇴임 이전에 퇴임 인터뷰를 한번 했으면 한다고 제의 해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풀어나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출항하는 정현석 호의 선장은 나지만, 지훈이 너를 이 배의 부선장으로 임명한 선택은 옳았던 것 같다. 내가 퇴임하고 돌아올 때까지 이 배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잘 지휘해줘. 부탁할게.”
“대표님께서 믿고 맡겨 주신 만큼 제가 가진 온 힘을 다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대표님의 발목을 잡지 않는 부선장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먼 길을 떠나는 배가 출항하는 시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