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5
154. 출항 (1)
“선배, 오랜만이에요.”
“어이 김 보좌관 왔어?”
2016년 5월 초, 한 호프집으로 지훈이 들어서자 대학 동기인 장영수와 후배 이소정이 지훈을 향해 알은 채를 해왔다.
“소정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지훈은 이소정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고, 지훈이 앉는 것을 바라보던 장영수는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마 만에 휴가야?”
“글쎄, 세어보지 않아서······ 한 2년 만에 쉬나? 쉬는 날 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온종일 누워있었는데 연락 해줘서 고맙다.”
지훈은 오랜만의 휴가를 보내는 와중에 장영수가 먼저 연락을 해와 집 근처 호프집으로 나온 상태였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보수당의 정현석 대표는 오랜만의 휴식을 가지며 이후 정국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수당 내부에서는 오랜만의 선거 승리에 당분간은 정현석 대세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여당인 진보당은 총선 패배에 의한 진통이 오래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청와대는 총선 패배의 영향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 수석 등이 사직서를 제출하며 여당에도 인적 개혁을 요구하는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지훈은 호프집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영수는 지훈의 눈앞에서 큰소리로 손뼉을 쳤다.
“아, 미안하다. 직업병이야.”
“직업병 한번 요란하네. 쉬는 날에도 뉴스에서 눈을 못 떼?”
“말했잖아. 뭐해야 할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면 되나 당장 이번 달에 너희 영감님 국회의원 임기 끝나잖아.”
장영수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이달 말에 끝나며 정현석은 다음 달 말에 열리는 전당대회 이후에는 당 대표직마저 내려놓게 된다.
“앞으로 푹 쉴 텐데 이제 잘 노는 방법도 알아야지.”
“푹 쉬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벌써 준비하려고? 내년 대선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대선이 어디 쉬운 싸움인가? 사람부터 모아야지.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어.”
“생각해둔 인물들은 있고?”
“있긴 한데. 모르겠다. 사람 마음 얻는 게 제일 힘들어.”
“야야,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 지금 정현석 본인 이외에도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선 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 한 트럭이다. 여의도에 그 소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지훈은 장영수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최근 국회의원, 학계를 통해 정현석의 대선 캠프가 만들어지면 합류하고 싶다고 말해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세론이라는 바람을 등에 업고 있으니 사람이 알아서 몰리는 형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대표님은 사람 만나러 다니느라 바쁘셔.”
“아무나 받을 수도 없는 거 아니냐?”
“그러니 대표께서 직접 만나고 다니시는 거지 뭐······.”
지훈은 장영수의 말에 씩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야, 너는 잘 쉬라고 말하면서 이런 날까지 일 얘기냐?”
“걱정돼서 그렇지. 대선까지 일 년 밖에 안 남아서 정현석이 대세라고 말하지만, 대선 주자들 대선 한두 달 앞두고도 훅 가는 거 한두 번 봤어야지.”
“얼씨구, 네가 그걸 왜 걱정해? 네가 보좌관해라.”
“인마, 내가 정현석 걱정하냐? 네 걱정하지.”
장영수는 지훈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다 옆에 앉은 이소정이 등을 한 대 치자 정신을 차리고는 가방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 지훈에게 건넸다.
“이거야?”
지훈은 장영수가 건넨 예쁘게 포장된 봉투를 열었다.
“청첩장 잘 나왔네.”
지훈의 칭찬에 장영수는 이소정을 바라보며 웃었고, 이소정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요것들이 언제 눈 맞아서 결혼한다고 말이야.”
지훈이 농담 섞인 말투로 얘기를 건네자 장영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올 수 있어?”
“상황을 봐야겠는데······. 별일 없으면 당연히 가야지 누구 결혼인데. 소정아 결혼 축하한다.”
“선배, 무리하지 마세요. 선배 바쁜 거 다 아는데······ 그리고 저랑 영수 오빠 잘된 거 다 선배 덕이에요.”
“내가 한 게 있나.”
“저도 그렇고 영수 오빠도 그렇고 인턴 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인데요. 다 선배 덕이지.”
“나도 덕 봤는데 뭘.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선배는 결혼 생각 없어요?”
“야야, 안 그래도 요즘 그런 소리 너무 많이 들어서 힘들다. 이 좋은 자리에서까지 그런 소리 들어야겠어?”
지훈의 말이 장영수는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어머니도 그렇고, 뭐 여기저기서.”
“너는 어때 생각 없고?”
“없어. 지금 그럴 시기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그래 뭐, 네가 싫다니까 더 할 얘기는 없다만, 네 인생도 좀 챙겨.”
“충분히 자알 챙기고 있습니다.”
지훈이 농담하듯 얘기하자 장영수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당내에 경쟁자들은 어때?”
“글쎄, 이제는 딱히 경쟁자라고 부를 인물이 없는 거 같다. 구윤서는 이번 총선 때 계파 싹 물갈이돼서 구윤서 본인만 살아남은 상태라 뭘 할 수 있겠냐.”
“TK 찍어낸 거 그래서 그런 거냐?”
“하하, 그럴 리가 있나. 중진이라 불리는 양반들이 다 TK에 몰려있다 보니 자동으로 물갈이된 거지.”
“그런 거 치고는 조용히 넘어갔네.”
“그 점에 대해서는 대표님 인복이 좋은 거지······ 양진호 의원이랑 이승호 의원 덕을 크게 봤다.”
“내가 이 바닥에 있다 보니 느끼는 게 있는데 될 사람들은 다 그렇더라. 주변에서 알아서 돕더라고 어디 혼자서 큰일 할 수 있겠어?”
장영수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근 들어 ‘정치는 사람장사’라는 말에 크게 공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 영감님이 너한테 말했다던거 어쩔거야? 마음 정했어?”
장영수는 지훈을 향해 조심스레 물어왔고,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르겠어. 고민 중이야.”
“야! 그걸 왜 고민해? 얼마나 좋은 기횐데.”
“그렇긴한데 내가 나서는 게 맞나 싶어서 그래.”
“너 말고 누가한다고.”
장영수의 말에 지훈은 피식 웃으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일 얘기 그만하고 한잔하자.”
“김지훈…..”
“야야, 나중에 마음 정하면 너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 테니까 아직은 아니야. 기사 쓰지마.”
지훈의 말에 장영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잔을 들어올렸다.
“우리 김지훈의 앞날을 위해.”
장영수가 그렇게 운을 떼자 지훈은 장영수와 이소정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장영수와 이소정의 앞날을 위해.”
지훈이 그렇게 화답하자 세 사람은 잔을 부딪히고는 웃었고, 지훈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만끽했다.
**
일주일 후, 휴가가 끝난 정현석 의원실은 아침부터 회의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정현석도 회의에 참여해 남은 임기동안의 의사 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20대 국회로 넘어가기전에 계류중인 법안들 처리가 급급합니다. 원내 대표께서는 본인에게 일임을 바라시는 눈치입니다.”
김용일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늘 오후에 만나서 얘기를 할 것 같은데 이영식 대표에게 일임해도 되지 않겠어?”
정현석은 김용일을 향해 되물었고, 김용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쟁점 법안도 없는 상황이고, 협상의 주체가 원내대표이니 맡기시면 알아서 잘 하길 겁니다.”
“그래, 그럼 그 부분은 원내대표에게 일임을 하도록 하고.”
“다음 주부터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이 있습니다.”
지훈이 정현석을 향해 보고를 하자 정현석은 흥미롭다는 듯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 중앙당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준비 중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대표님께서 원하시는 부분이 있는지 문의도 해왔고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생각에 빠진 듯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잠시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초선일 때 말이야. 당선인 워크숍에서 중진들이 나와서 이것저것 알려주는 게 도움이 하나도 안되더라고······ 이런 말 해도 되나?”
“아무래도 보수연이 초선 아니면 중진뿐인 당이라······ 그리고 중진분들도 보수당에서 밀려났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래 뭐, 국회의원들끼리 당을 떠나 잘 지내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그런 게 와닿지 않더라고, 당직에 대해서 배우지도 못했고, 정책에 대해 배우지도 못했고 말이야.”
“그럼 방식을 좀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게 좋을까?”
“대표님께서는 도움이 안 되셨다고 하셨지만, 사실 중진 의원의 국회 생활 노하우 만큼 초선 당선인들에게 좋은 게 있겠습니까? 허훈 의원과 같은 당직을 많이 맡은 분이나, 임건식 의원 같은 전략통들을 내세워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더, 이틀 차에는 신영효 교수님 같은 학계 인물이나 시민 사회 활동가를 초청해서 20대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고, 지훈은 정현석의 반응을 보고는 메모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또한 정현석에게 보고할 것들을 보고하고 회의가 어느 정도 끝나가자 정현석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달 남은 임기 동안 열심히들 해줘요. 그리고 혹시나! 가고 싶은 방 있으면 얘기하고.”
“저희 버리시려고요?”
박주미가 정현석의 말에 놀란 듯 말하자,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방 식구들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는데 혹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라면 말하라는 거야.”
정현석의 말에 의원실 식구들 모두가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알았어. 자 그럼 더 보고할 거 없으면 회의 여기서 마칠까?”
정현석이 회의를 마치려고 하자 지훈은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의원실 식구들은 지훈이 꺼낸 봉투가 무엇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고, 놀란 듯 큰 소리로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직서?”
“지훈씨!”
지훈이 올려놓은 봉투 위에는 사직서라고 적혀 있었고, 박주미와 김용일이 놀란 듯 지훈을 바라보았다.
“마음 정했어?”
정현석은 지훈이 건넨 사직서를 넘겨 받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으며 지훈을 향해 되물었다.
“네. 마음 정했습니다.”
“아니, 무슨 마음을······ 그보다 의원님 왜 안 잡으시는 거예요······.”
박주미는 아직도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 된 듯 지훈과 정현석을 번갈아 보며 말을 했고, 그 모습을 본 정현석은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박 비서관 진정 좀 하지? 자, 다들 내 말 들어봅시다.”
정현석은 의원실 보좌진들을 향해서 할 말이 있다는 듯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김지훈 보좌관이 여러분과 저보다 먼저 국회를 떠날 겁니다.”
정현석이 못을 박자 여전히 박주미를 비롯한 보좌진들은 놀란 듯 지훈과 정현석을 번갈아 보았고, 정현석은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김지훈 보좌관은 따로 나가서 대선 준비팀을 꾸릴 예정입니다.”
정현석의 말에 보좌진들은 이제야 사직서의 뜻을 알겠다는 듯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야! 그런 거면 우리한테도 얘기 해주지!”
박주미는 지훈을 바라보며 나무랐고, 지훈은 그런 박주미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까지 고민했습니다. 대표님의 남은 임기 동안 제가 없어도 될까 고민했고, 또 제가 혼자서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를 않아서 미리 말씀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지훈의 말에 의원실 식구들은 지훈이 야속했지만, 지훈의 고민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고민은 끝난 건가? 확신이 섰어?”
정현석의 물음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해야하만 하는 일이고, 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석의 반응을 확인한 지훈은 고개를 돌려 의원실 식구들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이렇게 말씀드리게 돼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해야지.”
김용일은 지훈의 말에 농담을 던지며 씩 웃었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던진 농담인 것을 알아차린 지훈은 그런 김용일이 고마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식구들 때문입니다. 제가 없더라도 누구보다 대표님을 잘 보좌할 보좌진들이 있기에 선택을 내리기 쉬웠습니다. 먼저 가서 대표님 임기가 끝난 후 대표님과 우리 의원실 식구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 두겠습니다.”
“좀 서운해. 고민할 때부터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속으로는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면서도 혼자 고민하는데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박주미는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정현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자, 다들 김지훈 보좌관 말 들었지? 그저 우리보다 먼저 준비를 하러 나갈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도와 남은 임기를 잘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지훈 보좌관 한마디 해야지?”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모두를 바라보았다.
“저는 우리 의원실 식구들이 좋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대표님의 지지 덕분에 제가 많은 일을 해올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해준 우리 식구들의 지원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의원님의 꿈은 제 꿈이고 또 우리의 꿈입니다.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지훈의 말에 의원실 식구들은 감동한 듯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정현석과 자신들의 앞날에 무운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