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57
156. 출항 (3)
다음 날, 지훈은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 중이었다.
정현석이 따로 독립된 공간을 지훈의 사무실로 내주었지만, 사무실에 자신 외의 사람이 없는 터라 지훈은 사무실 중앙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업무를 해나갔다.
한창 조간신문들의 헤드라인을 확인 후 지훈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익숙한 이름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에서는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회 떠나서 밖에서 일하니까 기분은 어때?
“어떻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랑 똑같은데 뭐.”
목소리의 상대는 지훈의 대학 동기인 한성경제신문 기자 장영수였다.
“인터뷰하자.”
-대뜸 인터뷰는 무슨······ 아! 정현석 대표 퇴임 인터뷰 우리 주는 거야?
“단독은 아니야. 한 세 곳이랑 할 건데 경제지는 너네 줄게.”
-경제지는 우리 준다는 거 보니까 보수지, 진보지, 경제지 이렇게 골랐나 보네.
“그래,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그냥 깔끔하게 우리 단독 줘.
“하하, 안 돼 인마. 당 대표 취임 이후 인터뷰 한성경제 단독으로 줬다가 다른 곳에서 앓는 소리를 얼마나 해대는지 이번엔 네가 양보해.”
-알았어. 친구 잘 둬서 대권 주자 인터뷰 따가는 거에서 만족해야지. 생각해줘서 고맙다. 질문지 따로 줘야 하냐?
“이번엔 질문지 오픈 없이.”
-괜찮겠어?
“괜찮아. 실수 잘하시는 분도 아니고, 대표께서 직접 원하시는 거니까.”
-보자······ 다음 주 어때?
“좋아. 다음 주에 국회가 아니라 여기 사무실에서 따로 하는 거로.”
-사무실 공개하려고? 잘 생각했어. 우리도 다음 주부터 대선 TF 만드는데, 너희 영감님한테도 마크맨 붙을 거야. 그거 생각하면 미리 까고 가는 게 맞겠지.
“뭔 벌써 마크맨을 붙여?”
-야, 우리는 늦는 거야. 고려 일보는 벌써 대선 기획단 출범했어.
“벌써?”
-보수당이야 너희 영감님이 워낙 길을 잘 닦아놔서 그런데 진보당 봐라. 군소 후보들 쳐낼 일인자가 없으니까 다들 대선 나가겠다고 하잖아. 두고 봐 선거판 앞으로 재밌어질 거야.
“인마, 훈수 두는 입장에서는 재미있겠지.”
-하하, 어쨌든 나 이제 사무실에 올라가 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통화하고 다음 주중으로 인터뷰 잊지 말고! 일정 잡히면 연락해줘 우리는 언제나 오케이야.
“그래. 대표님이랑 상의하고 연락할게. 수고해.”
장영수와 전화를 끝낸 지훈은 사무실 구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혼자 고민하던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쪽에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가져왔고, 그곳에 조직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맨 위에는 정현석의 이름이 들어갔고, 그 밑으로 정책팀과 정무팀을 나눈 지훈은 각 팀의 밑에도 필요한 부서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조직도를 정리한 지훈은 자신이 그린 조직도를 보고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겠다고는 했지만, 막막하네. 보자······ 우선은 정무팀부터 채워야 한다.’
다음 주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정현석을 위해 정무팀 조직부터 채워나가기로 한 지훈은 의원실 보좌진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기존의 멤버들의 이름을 적을 만큼 정무팀은 중요했다. 정현석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들을 총 관리하고, 긴 시간 동안 정현석의 정치적 행보를 기획해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본 의원실 식구들은 당연히 정무팀에 소속되어야 했다.
‘일단, 나를 포함한 기존 보좌진들이 그대로 대표님을 보좌하고······ 선거 전문가도 한 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무팀 아래 선거 전문가라고 적고 옆에다 물음표를 적었다.
‘정무적인 판단은 내가 내릴 수 있지만,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도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지훈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대선 준비 기간 정현석이 참여할 행사들이나 지금의 정현석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성향의 유권자들을 파악하고 대비책을 기획해줄 선거 전문가가 누구보다 절실하다 느꼈다.
지훈이 한참 조직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찰나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맹렬히 진동을 토해냈고, 지훈은 집중을 깬 후 잰걸음으로 휴대전화를 향해 다가갔다.
“양진호?”
걸려온 전화의 발신인은 양진호였는데 지훈은 의외라는 듯 통화버튼을 눌렀다.
“양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어! 그래. 김 보좌관도 잘 지냈지?
“예. 의원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하,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양진호는 사람 좋은 목소리로 지훈을 향해 말해왔고,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며 전통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참! 바쁜 사람을 잡고 내가 이런 얘기나 할 때가 아닌데. 요즘 방송에 나가다 보니 쓸데없이 말이 늘었어.
“하하, 원래 말재주가 좋으셨지 않습니까?”
지훈의 칭찬에 양진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고, 대표께 여쭤보니 자네가 대선 준비팀을 총괄하고 있다며?
“네. 그렇습니다.”
-사람 하나만 써줘.
양진호의 얘기에 지훈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던 웃음기는 오 간에 없이 사라지고, 순간 표정이 굳어갔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하하하, 정 대표께서 자네가 그렇게 나올 거라고 말씀하시더니 진짜구만! 걱정하지 말게 사람을 밀어 넣는 게 아니라 너무 유능한 친구라 나도 소개하는 거야.
양진호는 지훈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크게 웃었고, 지훈은 양진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들어보니 대선 준비팀에서 낙선한 의원 보좌진들을 상대로 관심 있으면 오라고 했다며? 이 친구도 처음에 안 가려고 하는 거 내가 사정사정해서 보낸 거야.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지훈은 일단 들어봐야겠다는 듯 양진호를 향해 물었다.
-정치컨설팅 업체에서 있던 친구인데 지난 19대 총선 때 내 선거를 담당했던 친구야.
“정치컨설턴트인가요?”
-그래, 나도 지난 선거 때는 큰일을 해볼까 싶어 그 친구를 사정사정해서 내 보좌진으로 데리고 왔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친구한테 미안해지더라고,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유능한 친구라서 대표님 대선 준비팀에서 쓰면 정말 좋을 거야. 그 친구 빅 데이터 전문가야.
양진호의 말에 지훈은 흥미로운 듯 양진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도 뭐 설명을 듣고는 금방 잊어버려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 수는 없는데, 빅 데이터 알지? 그 왜 SNS랑 인터넷에서 정보를 가져와서 분석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 자네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나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그 친구가 하자는 유세방법대로 하니까 우리 당이나 나한테 별 호재가 없었는데도 득표율이 지난 18대 선거 때보다 8%나 늘었어.
“8%나 늘었습니까?”
지훈은 놀랍다는 듯 양진호를 향해 되물었다. 양진호의 지역구는 보수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당선은 쉬웠겠지만,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을 늘렸다는 얘기는 달랐다.
지난 선거에서 양진호를 찍지 않은 사람들이 양진호를 찍게 했다거나, 적극 투표층이 아닌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는 얘기니까.
-그렇다니까! 아마 오늘 중으로 자네 찾아갈 거야. 자세한 건 그 친구한테 듣고 보자······ 시간이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됐는데······.
양진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실 입구가 열렸고, 입구를 반쯤 연 채로 한 여자가 문에다 대고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지훈은 전화기를 손으로 막고는 입구에 서 있는 여자를 안으로 불러들였고, 다시 수화기 너머의 양진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친구도 양반은 못 되겠네. 어쨌든 잘 좀 부탁해.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다시 돌려보내도 되네.
“알겠습니다. 양 의원님 감사합니다.”
지훈은 양진호와 짧은 인사를 끝마치고는 전화를 끊고,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는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김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윤도경이에요.”
“자리에 앉으실까요?”
지훈은 윤도경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로 안내했고, 윤도경이 자리에 앉자 지훈은 입을 열었다.
“대접하고 싶은데 어제 오픈한 사무실이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괜찮아요.”
“양진호 의원님 의원실에 계신 분 맞으시죠?”
지훈의 말에 윤도경은 짧은 미소로 답하며 가방에서 이력서로 보이는 서류와 자신의 명함을 꺼내 지훈의 앞에 건넸다.
지훈은 이력서를 한참 읽어 내려가다 테이블 위에 이력서를 내려놓고는 윤도경을 바라보았다.
“흥미롭네요. 공학박사 과정을 끝내신 분께서 정치 컨설팅 업체로 간 것도 흥미롭고,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들어온 것도 흥미롭습니다.”
지훈은 윤도경을 향해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런 반응 예상했어요. 국회에 들어가고 제일 먼저 받은 반응들이 그거였거든요. 왜 보좌진으로 들어왔냐고 말이에요. 컨설턴트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계셨고······.”
“아,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말씀드렸듯 그저 흥미로울 뿐입니다. 정치 자문 업체는 보통 국회 보좌진 출신들이 많이 가지 역으로 컨설턴트가 국회로 들어오는 건 못 봤거든요.”
윤도경이 오해할까 봐 지훈이 설명을 늘어놓자 윤도경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설명해 드리자면 꽤 긴데······ 짧게 얘기하자면 대학원 시절에 정치 컨설팅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내 손에서 나온 데이터가 후보의 선거에 활용되고 그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해야 할까요? 희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그때 이 길로 가야겠다고 느꼈어요. 사실 운이 좋았던 거죠. 마침 정치에도 빅 데이터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국회에는······.”
“우리 영감님이 말씀을 좀 잘하시잖아요. 거기에 넘어간 거죠.”
윤도경의 말에 지훈은 어떤 뜻인지 알겠다는 듯 웃었다.
“그렇죠. 양 의원님께서 말씀을 참 잘하시죠.”
“대선을 꿈꾼다. 도와달라 하셔서 들어왔는데 의원직을 던져버리시곤 저보고 여기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좋습니다. 재미있네요. 그럼 윤도경 비서관께서······.”
“그냥 씨라고 불러주세요.”
“네?”
“어제 사표 냈어요.”
“하하, 알겠습니다. 윤도경 씨께서 선거 때 도입하셨다는 빅 데이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지훈은 능력을 보여달라는 듯 윤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윤도경은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지훈의 앞으로 건넸다.
서류 뭉치를 본 지훈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윤도경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제가 설명할 테니까요. 이건 제 설명에 대한 보강 자료라고 보시면 돼요.”
윤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편에 있는 화이트보드를 지훈의 앞으로 끌고 왔다.
“조직도 멋지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아직 미완성입니다.”
지훈이 적어둔 조직도를 보고 윤도경이 칭찬하자 지훈은 크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화이트보드를 뒷면으로 넘긴 윤도경은 그곳에다가 영어 단어를 적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스윙보터?”
지훈의 물음에 윤도경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지훈을 돌아보았고, 지훈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