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친구
“아니! 그냥 싫다는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한치우 선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국민 맞습니다. 자유권이 보장되어 있는 국민이죠.”
“아, 아니. 제 말은…….”
“몇 번을 말씀하셔도 제 대답은 No입니다. 돌아가시죠?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명유안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오늘 못 만난다면, 내일이라도 당연히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줄 알았다.
“아! 한 가지 말씀드리는데, 저를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엮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미래의 국가대표 선수가 될 사람들입니다. 은퇴한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명유안의 얼굴이 붉다 못해 새빨개졌다.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미 광고 촬영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기요? 리처드 씨. 조건이 좋지 않은 것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광고 계약 조건은 찾아볼 수가 없는 조건입니다.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 겁니까! 리처드 씨, 한치우 선수 설득 좀 해 봐요. 가만히 듣지만 마시고요!”
“아까 당신이 그랬지 않습니까? 결정은 한치우가 하는 것이라고.”
“하, 한국말을 할 줄 아십니까?”
“어느 정도 들을 수는 있습니다. 고객의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에이전트의 능력이죠.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명유안은 완전히 농락당하는 기분이었다.
한치우를 처음 만나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러 곳을 통해 어떤 사람인지 들을 수 있었다.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소속 클럽에 먼저 문의하기보다 존에게 연락한 것도, 한치우가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오라는 한치우의 말에 택시 안에서 내일 관광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혀 아니야!’
“하실 말씀이 그것뿐이라면, 저희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주말에 꽤 중요한 경기가 있거든요. 지금 제게는 그 경기가 지상 최대의 과제입니다.”
한치우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서려 하자, 명유안의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졌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혹시…….”
“혹시, 만약, 이라는 건 없습니다.”
“예!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명유안은 자신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최후의 자존심이라는 표정으로 카페를 나갔다.
한치우가 그래도 예의상 일어서서 나가는 문까지는 배웅해 주고 돌아와 앉았다.
“왜?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아? 좋은 취지인 것 같은데.”
“놀리는 거지?”
존이 한치우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네가 아까 얘기했지. 내게서 커맨더의 냄새를 지우고 싶다고.”
“맞아.”
“비슷한 거야. 대한민국의 심장은 더는 남아 있어선 안 돼.”
한치우가 잉글리시 티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템스강에 시선을 주었다.
“존. 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 선수는 거의 국가대표로 올라가. 불행한 일만 없다면 말이지. 그리고 지금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은 너도 아는 내 친구 녀석이고. 내 이름, 내 존재가 그들의 이름 앞에 오르내려서는 안 돼. 그리고 국가대표와 연결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서도 안 되고.”
“그건 동감이야. 대한민국의 FA라면 나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그래.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애국심? 그런 광고의 모델이라면, 돈을 얘기하지 말았어야지. 그 돈을 더 좋은 일에 쓰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먼저 헤아려야 했어.”
“네 친구는? 대한민국의 골키퍼가 이 얘기를 듣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녀석이 내 진정한 친구라면,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거야. 만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게 친구는 런던에만 남아 있게 되겠지.”
존은 한치우의 마지막 말이 싫지가 않았다.
“그럼 나온 김에 아까 함께 보던 광고 얘기나 해 볼까?”
그리고 보류할 만한 광고가 있는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 * *
명유안은 사전에 예약한, 런던의 중심인 시티 오브 런던에 있는 힐튼 호텔로 들어갔다.
씻기 전에 부장에게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간략하게 보냈다.
그 후 막 옷을 벗으려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셨구나!’
“예! 부장님! 명 과장입니다!”
“예!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면…… 한치우 그 새끼, 소문과는 완전 달랐습니다! 버릇없고, 거만한 놈이에요. 예! 금액이요? 아니! 부장님! 우리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좋은 취지에 선수들과 국민께 힘을 보태겠다는 것인데, 예. 예! 바로 비행기 알아보고 최대한 빨리 들어가겠습니다. 가망이 없다니까요! 차라리 이번에 뜨고 있는 걸그룹…….”
명유안은 한치우와의 만남을 과장과 자신의 판단을 섞어서 부장에게 보고했다.
이틀 뒤, 명유안의 보고는 부장의 손에서 더 부풀려지며 전략혁신팀장으로 가는 결재서류가 되었다.
대삼 그룹의 홍보팀은 전략혁신팀에서 내려온 지시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같은 팀이라도 전략혁신팀은 대삼 그룹의 컨트롤 타워 같은 곳이다. 그 안에 있는 홍보부가 홍보팀보다 파워가 셀 만큼.
그날 오후부터 대삼 그룹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한치우의 아시안게임 홍보 광고 거절과 관련한 뉴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심장은 어디에 있나!?] [한치우, 대삼 그룹이 기획한 광고 제안 거절!]「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웨스트햄에서 뛰는 한치우 선수를 모델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응원 영상을 제작한다는 대삼 그룹의 광고는 한치우 선수가 거절 의사를 밝히며
……
이에 대삼 그룹은 다른 모델을 알아보는 한편, 한치우 선수가 부디 대한민국의 심장으로서 국민께 힘이 되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주기를……」
“야! 이거 뭐야? 또 한치우야?”
“어디, 어디?”
“와, 대박! 내일모레가 아시안게임 개막인데, 정말 너무하네!”
“대삼이면 우리나라 재계 1위 기업이잖아. 분명 좋은 조건이었을 텐데?”
“야! 조건을 떠나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위하고 국민에게 힘을 주자는 취지라는데, 당연히 찍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니냐?”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내일모레 토트넘하고 경기가 있는데 무슨 광고를 찍는다고. 그 경기에서 이기면 리그 1위로 올라간다고! 이 축알못들아!”
“맞아. 축협도 모자라 이제는 재벌들이 난리를 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스물여섯에 국대 은퇴한 것도 이상해 죽겠는데.”
→ 광고 출연료만 10억 넘게 불렀는데 거절했다는 팩트 알려 줌. 우리 아빠 대삼 직원임.
→ 참나! 나나 주지. 나 응원 ㅈㄴ 잘함!
→ ↑ 대삼에서 싫어합니다.
→ 한치우 선수를 이제 그만 좀 놔두시죠. 지금 보도되는 내용이 전부는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지금 생각해 보니, 한치우 선수가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았고, 국가대표 은퇴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맞아요, 맞아! 한치우 선수 응원합니다! 요즘 프리미어 리그 볼 맛이 나요!
→ 도대체 런던까지 왜 간 거야!? 비행기 표가 아깝다! 난 낮에 자고, 새벽에 웨스트햄 경기 볼 거다!!!
→ 그런데 그때는 너무 화가 났는데, 한치우 월드컵에서 제일 잘하지 않았음?
→ 지금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1티어급 아니냐?
대한민국의 반응은 대삼 그룹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치우를 옹호하는 여론이 비난을 덮어 가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언론 보도는 런던까지 전달되었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왜 있는 거야?”
“한의 선택이 당연한 거 아니야?”
“도대체가 뭐 하는지 모를 나라야. 한의 기사가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봤더니만!”
“5라운드 관련 기사는 어디 있는 거야!?”
런던 시민은 대한민국의 얘기보다 한치우가 런던에서 뭘 하는지, 프리미어 리그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아시안게임은 적어도 런던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리처드의 생각은 달랐다.
‘이 자식들!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겠어!’
존의 눈에서 분노가 뿜어졌다.
* * *
“예. 다음 소식입니다. 대삼 그룹에서 추진 중인 아시안게임 광고와 관련하여 한치우 선수의 에이전트인 존 리처드 씨가 런던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국에서 쏟아지는 언론 보도에 반박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런던의 뉴스 화면 보시겠습니다.”
뉴스의 화면이 바뀌며 존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송출되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삼 그룹의 직원이라는 분이 런던에 와 있다고 한과 만나기를 강력히 희망했지요. 한은 그와 미팅 약속을 잡았고, 우리는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대삼 그룹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요?”
“예. 원래는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웨스트햄에서도 모르는 일이었지요. 한은 모처럼 훈련을 쉬는 날이라 휴식이 필요했지만, 런던까지 날아와 준 그를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마 파파라치들의 최근 SNS를 통해 많이 유포되었을 겁니다.”
“재미있군요. 그래서요?”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시안게임을 위해 제작하는 광고의 모델로 한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보도대로, 애국심과 선수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내용은 맞습니다. 조건도 좋았고요.”
“그런데 한은 왜 거절했습니까? 아, 저는 알 것도 같지만, 이런 자리까지 마련했으니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흠, 흠! 예. 다들 아시겠지만, 내일이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 경기입니다. 그리고 한은 이제 올림픽 대표 선수도, 국가대표 선수도 아니지요. 그는 웨스트햄 소속의 선수입니다. 그의 에이전트로서가 아니라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요청하자면, 제발 더는 그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굴레를 더는 씌우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한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는 얘기는 입이 아플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기업까지 그에게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자신과 한국의 올림픽 대표 선수들을 엮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들의 미래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존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삼 그룹의 직원은 한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며 카페에서 화를 냈습니다. 한이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그리고 이 얘기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은 그가 나가고 제게 좋은 일을 하면서 조건을 먼저 얘기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 돈이면, 더 좋은 일에 쓰여야 한다는 거죠. 한은 이제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이제 겨우 부활의 날갯짓을 하려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합니다.”
“음, 그러니까 정리하면, 한국에서 대기업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기업 대삼 그룹의 직원이 절차를 무시하고 런던으로 찾아와 기업과 나라의 이름을 앞세워 한치우 선수를 곤란하게 했다는 것이군요?”
“정확합니다.”
“한은 분명히 거절했고요. 아까 미스터 리처드의 발언대로 말이죠.”
“예.”
“그런데 왜 런던의 시민이 이해하고 있는 걸 한국의 국민은 모르고 있을까요?”
“한이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2001년에 태어난 한은 A매치를 98경기 뛰었을 만큼 한국의…….”
존의 인터뷰 영상은 일본에 있던 한 남자의 가슴에도 불을 질러 버렸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일본에서 훈련 중이던 강병석은 자신의 SNS에 글을 게시했다.
[복귀에 성공한 한치우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나 역시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것이다!]대한민국은 뒤집어졌다.
한치우는 국가대표에서도 은퇴했고, 소속팀도 영국에 있었지만, 강병석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조국에 금메달을 안겨 줄 목적으로 일본에 있는 상태였다.
국민의 비난이 전부 대삼 그룹을 향했고, 결국 대삼 그룹은 절차를 무시한 직원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는 사과의 보도 자료를 내보냈다.
아시안게임 후원 광고는 전면 취소가 되었고, 한치우의 광고 출연료로 책정된 10억 원을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다시 나왔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대삼 그룹의 회장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고, 아시안게임 개막과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 일정에 맞물려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 * *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대한민국과는 상관없이, 프리미어 리그 5라운드가 시작되는 날이 밝았다.
런던은 긴장 상태였다.
서런던의 패자인 첼시는 북서쪽의 리버풀로 원정을 떠났고, 아스날은 그래도 비교적 쉬운 상대인 선덜랜드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맞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태풍의 중심인 웨스트햄이 가까운 런던의 북쪽 토트넘으로 떠난다.
토트넘 홋스퍼 FC(이하 토트넘)은 현재 순위표에서 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웨스트햄과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순위표의 순서를 바꿀 수 있는 경기가 오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런던 더비로!
토트넘은 주전 선수 대부분이 잉글랜드의 국가대표로 뛰고 있거나, 뛴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번 월드컵 4강의 주인공들이 월드컵의 분위기를 그대로 팀으로 가져와, 4라운드까지 전승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골 득실에선 웨스트햄을 앞서며 순위표에서는 더 위에 있었지만,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승점이 바뀐다면, 토트넘은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토트넘이 이번 시즌 4라운드까지 보여 준 놀라운 공격력은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였다.
아스날이 가지고 있던 런던 맹주의 자리를 이번 시즌에 반드시 뺏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경기 내내 보여 주고 있었다.
런던의 경찰도 비상을 선언하며 서포터즈의 충돌을 강력하게 막겠다는 발표를 했고, 예고대로 홋스퍼 스타디움 주위에는 많은 경찰 인력이 아침부터 동원되어 치안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토트넘으로 넘어가는 웨스트햄의 구단 버스 안에서, 해머스의 선수들이 한치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치우는 필립 모리스와 함께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괜찮아?”
“응? 뭘?”
나는 필립의 동그란 갈색 눈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 어제 리처드 씨가 방송에 나왔길래.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존도 오버한 거야. 그냥 놔둬도 될 일이었는데.”
“그래도 찾아보니까. 사람들이 엄청나게 욕하고 있었던데, 뭘. 리처드 씨가 잘한 거지.”
“그런 거 볼 시간에 공이라도 더 만지겠다. 뭐야!”
나는 얼굴 위로 그늘이 드리워지자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흠, 흠!”
다른 동료 모두 우리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하하! 궁금하면 그냥 물어봐. 설마 아직도 내가 미운 건 아니지?”
한치우는 이제 동료의 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하하!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 한이 괜찮으면, 괜찮은 게 맞아!”
쓸데없이 유쾌한 데릭은 삼국지의 장비 같은 녀석이다.
덩치도 덩치지만, 목소리가 크고 자신만만한 성격이 무척이나 닮았다.
물론 그렇다고 얼굴 가득 수염을 달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이제 잠이나 좀 자자.”
헤드폰을 목에 건 데이비드는 데릭이 장비라면, 관우 같은 느낌?
신중했고, 주장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턱밑으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것은 아니었다.
이 둘은 서로 자주 부딪히기도 했지만,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웨스트햄 유스에 들어와 지금까지 절친한 사이로 해머스의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 토트넘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마이크다.
흑인이지만, 그 좋은 근육을 가지고도 몸싸움을 싫어하는 유별난 녀석이다.
그래도 왼발로 감아 차는 크로스는 일품이어서 길게 연결하는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전담한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단 키커에서 제외되었고, 대신 빠르고 짧게 연결할 때는 내 발에서 시작된다.
“뭘 걱정부터 하고 있어? 일단 내가 다 막아 줄게!”
“그래. 나도 오늘은 꼭 골을 넣을게!”
데릭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은 골키퍼인 헤르만, 그리고 지난 경기에서 아쉽게 골을 성공하지 못한 무어는 모두 독일에서 온 녀석들이다.
나와 함께 주전으로 뛰는 선수 중 외국 출신은 우리 셋이 전부였다.
외국 출신 선수가 많은 아스날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필립! 시작부터 기죽지 마. 알았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신경질적으로 들리겠지만, 데이비드와 함께 센터백을 보는 로빈의 말투는 평소에도 저랬다.
나도 처음에는 말을 쉽게 섞기가 힘들었으니까.
“이번 시즌은 한이 있어! 전 시즌과는 다르다고!”
내 옆에서 소리치는 필립.
귀여운 녀석.
나는 점점 이들 속으로 녹아들어 가며 대한민국의 심장, 리오네의 지휘자, 거너스의 사령관의 모습을 잊었다.
망치들이 내 몸에 묻어 있던 때와 잔재들을 벗겨 주고 있었기에.
나는 웃으며 허리를 편하게 기대어 반쯤 누웠다.
“오늘도 걸릴까?”
“뭐?”
팀 주전 선수 중에 가장 어린 릴이 다시 말을 꺼냈다.
“한의 배너! 정말 멋지던데!”
“아, 맞다! 3라운드 홈경기 때 걸렸었지!? 그런데 오늘은 원정이라서 힘들지 않을까? 번리 원정에서도 보지 못했어.”
“난 그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 완벽한 배너였다고!”
누가 좌우 풀백 아니랄까 봐, 폴과 피치가 동시에 떠들어댔다.
나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입에 미소가 걸렸다.
3라운드 리즈와의 경기에서 런던 스타디움에는 새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배너가 걸렸다.
웨스트햄의 색깔인 클라레 앤드 블루(Claret and Blue)로 칠한 천 위에…….
[MJOLNIR OF THE HAMMERS! HAN CHIWOO]나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나는 이제 해머스의 묠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