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유출 사고
김한식은 점심을 먹은 후, 한국 방송국의 담당 피디에게 예고편 영상을 메일로 전송했다.
그리고 이은석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에 다녀왔다.
사우나에서 돌아온 것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였다.
바로 퇴근해도 좋다는 이은석의 말이 있었지만, 김한식은 그래도 부장으로서 퇴근하는 기자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우우웅 – 우우웅 –
사무실의 자리에 앉는데, 스마트폰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어? 치우가 이 시간에?”
화면에는 한치우의 이름이 떠 있었다.
아무래도 예고편 영상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어! 그래! 걱정하지 마라. 잘 편집해서 보냈으니까.”
“하하! 부장님. 역시 빠르시네요. 예고편은 한국 시각으로 아홉 시 전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나요?”
“그래도 방송국에서도 확인하고, 조정할 시간은 줘야지.”
“부장님. 그런데요, 죄송한 말을 하려고 전화 드렸어요.”
“응? 또 무슨 일이 있어?”
“혹시 예고편 방송 날짜를 하루만 더 늦출 수 있을까요?”
“아니! 왜? 확실히 편집했어. 내가 지금 바로 예고편 편집 영상을 보내 줄게.”
“하하! 부장님께서 걱정하시는 장면 때문인 것은 맞는데, 제가 지금 휴 실버 구단주와 함께 있어요. 그리고 구단주는 자신이 나오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고 있어요. 물론 예고편에서 말이죠.”
“흠, 영상은 이미 방송국 담당 피디에게 보내 버렸는데…….”
“한번 얘기해 보시는 건 어려운 일인가요? 웨스트햄의 구단주가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보통 나오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아?”
“지금 실버 형제가 원하는 것은 이슈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저 때문에 피곤한 자리가 많은 모양인데, 그들의 눈과 귀를 가려 줄 루머가 생산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아! 어떤 그림을 원하는지 알겠어!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다. 웨스트햄의 구단주 형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일까지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죠. 부장님 이해하셨다니 부탁할게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아! 알았어! 내가 꼭 예쁜 그림을 완성해서 내일 새로 나갈 수 있게 해 볼게.”
“예. 통화가 끝나면, 바로 메일을 전송할 거예요. 그 영상에는 실버 형제의 인사가 짧게 담겨 있으니 아마 방송국과 협회에서도 좋아할 일이 되겠죠. 협회를 도와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장님의 일이기도 하니까요. 내일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김한식은 한치우와의 통화를 마치고 얼른 김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피디! 미안한데, 예고편 영상을 다시 편집해야겠어! 그래, 그래.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웨스트햄의 실버 형제가 원하는 일이 생겼어. 금방 런던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고, 그것도 한치우 선수가 실버 구단주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이야. 알지? 이거 조금이라도 잘못 나가면, 다큐멘터리 전체가 엎어질 수도 있어.”
김한식은 노련하게 실버 형제의 이름과 한치우의 이름을 팔며 상황을 몰아갔다.
그런데 담당 피디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일정을 늦춰 달라는 말에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반응이 섞여 있었다.
“부장님. 그런데 저…… 혹시 예고편 영상이 잘못 나가게 되면, 영국에서 소송을 걸어올까요?”
김한식은 화를 내다가 갑자기 소송까지 말하는 김 피디가 소심해 보였다.
물론 실버 형제가 거물이기는 했지만, 일단 방송을 하기로 한 마당이었고, 자신이 편집한 영상에는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한식은 김 피디의 반응을 이용하기로 했다.
“소송은 몰라도 다큐멘터리 본방송에 영향은 미치겠지. 걱정하지 말게. 내가 문제가 되지 않게 잘 편집하고 있으니까. 자네도 내가 보낸 영상을 확인했을 것이 아닌가.”
“예, 예. 저도 확인했습니다. 아주 편집을 잘하셨더라고요. 구단주, 아, 아닙니다. 그런데 축구 협회에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지? 잘못 들었나?’
“협회장에게는 당연히 내가 얘기할 거야. 국장님께도 내가 말씀드리지. 이렇게 돼서 미안하지만, 장담하는데 방송국의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새로 보내는 영상이 더 도움 될 거야. 실버 구단주의 인터뷰 영상을 추가할 거니까.”
“예!? 지, 진짜로요!?”
“하하! 그래. 그러니까 하루만 보류해 줘. 지금 시간이 좀 있으니까. 결제받기에는 충분할 거야. 난 전화를 할 곳이 많아 이만 끊어야겠어.”
“네, 일단 알겠습니다.”
김한식은 바로 안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안염지는 바쁜 일이 있는지 몇 번을 다시 걸어도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예고편 영상을 하루만 늦추기로 합의했다고만 메시지로 보내 버렸다.
‘지금 예고편을 내보내는 것도 네 억지나 마찬가지니까. 나도 억지 좀 부린다.’
그리고 김한식은 바로 한국 방송국의 제작국장에게 전화를 걸며 편집실로 다시 올라갔다.
사우나에서 풀고 온 피로가 다시 쌓이는 느낌이었지만, 김한식의 목소리는 밝았다.
“어? 강 부장. 퇴근 안 했어?”
7층으로 올라간 김한식은 편집부에서 나오는 야구부의 강만춘 부장을 만났다.
“자네가 편집실을 일주일 동안이나 독차지하고 앉아 있으니까, 내가 이 시간까지 남아서 일을 하게 된 거지! 뭐야!? 또 편집실을 쓰려고 올라왔나?”
“어? 그, 그래 미안해. 이제 거의 마무리했어. 본방송부터는 방송국에서 하기로 했으니까 자네가 조금만 이해해 줘. 동기끼리 너무 그러지 말고.”
“흥! 그런데 다 끝난 것이 아니었어? 낮에 예고편 영상을 보냈잖아.”
“어? 자네가 그것은 어떻게 알고?”
“다 알지! 자네가 편집실에서 나와 사우나에 다녀올 정도라면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거 아냐?”
“그렇지. 흠, 흠.”
김한식은 근무 시간에 사우나에 다녀왔다는 것이 미안해서 강만춘의 날 선 태도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아주 요즘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다고, 팔자가 편해졌어!”
“에이. 너무 그러지 마. 아무튼, 편집실은 진짜 오늘 밤만 쓰면 이제 내가 쓸 일은 없으니까 좀 이해해 주고. 그런데 오늘 프로 야구 경기도 없는 날인데 편집실을 쓸 일이 있었나?”
“대한민국에 야구가 프로 야구밖에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경 써 주는 척은.”
“알았어. 진짜 제대로 짜증이 난 모양인데, 어서 들어가라고.”
김한식도 강만춘의 신경질을 더 들어 줄 수가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내가 스포츠 티브이의 해설을 맡고 난 다음부터는 대놓고 나를 견제한단 말이야. 나는 편집국장 자리에는 관심도 없는데 말이야.’
김한식은 강만춘이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스포츠 내일의 편집국장인 유 국장이 올해까지만 일하고, 퇴직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내년에는 편집국장의 자리가 비게 생겼다.
가장 인기가 많은 야구와 축구의 두 부장이 강력한 후보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김한식은 편집국장의 자리에 앉게 되면 지금같이 축구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자리 욕심이 많은 강만춘은 아니었다.
그리고 김한식의 칼럼이 조회 수가 늘어나고, 프리미어 리그의 중계 때문에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자, 입사 동기였던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닫히는 문과 함께 강만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김한식은 얼른 편집실로 들어갔다.
편집실의 보안 키는 부장급 이상이면 아무나 열 수 있었다.
* * *
휴 실버와 대화를 끝낸 한치우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파트의 주차장에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새로 나온 것이 분명한 SUV와 함께 한치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많이 늦지 않았죠?”
한치우가 존의 레인지로버에서 내리며 영업 사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부탁한 것은 저인데요. 뭘,”
“말씀하신 대로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어도 같은 등급의 모델로 인도받을 수 있게 조처를 했습니다. 그리고 리옹에 계신 동생분도 오늘 오후면 역시 최고 사양의 모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 감사해요. 그런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괜찮아요? 제 동생의 차는 제가 결제해도 되는데요.”
“오! 아닙니다. 한이 우리 회사의 모델이 되어 주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막대한 영업 수익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리옹에 계신 이모님의 차도 준비해 드리고 싶었는데, 끝까지 거절하셔서 동생분의 차밖에 드릴 수 없는 저희가 미안합니다.”
그냥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영업 사원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한치우를 모델로 쓰려는 경쟁 업체가 얼마나 많았는가?
다행인 것은 한치우의 별명이 묠니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스웨덴의 볼보는 토르의 망치가 헤드램프로 들어간 디자인을 어필하며 한치우를 모델로 섭외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고, 한치우 역시 볼보의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존은 확실하게 한치우의 운전기사의 자리에서 은퇴하는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와! 진짜 튼튼하게 보이는데? 이렇게 커다란 덩치를 전기로 움직인다고?”
존이 레인지로버를 주차하고 나와 한치우의 커다란 SUV를 둘러봤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언제나 고객님의 안전과 지구의 미래를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원하신다면, 미스터 리처드의 차량도 언제든지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하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과 계약을 한 거라서요. 제가 이 친구를 레인지로버의 모델로 보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그쪽 업계에서도 유명한 사실이 아닙니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묠니르는 저희와 어울리는 것이 맞습니다.”
“존.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 오늘부터 바로 타고 다녀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등록까지 완벽하게 된 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신 점이 생기시면 시간, 장소에 상관없이 바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감사해요. 잘 쓸게요.”
“예. 미스터 한께서 이 차량을 애용해 주시는 것이 최고의 광고 효과입니다. 저희의 성의가 고맙다면 늘 이 차의 운전대를 잡아 주시면 됩니다.”
“역시 그렇군요. 이거 운전에는 취미가 없는데, 자주 이용해야겠어요. 지금 바로 훈련장으로 가는 것부터 시작하죠.”
“저희 차량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업 사원이 건네는 악수를 한치우는 사양하지 않고 맞잡았다.
“아슈르가 많이 서운하겠어. 그런데 오늘 훈련 쉬는 날인데도 가려고?”
“뭐, 차도 나왔는데, 나도 계속 아쉬를 기사 부리듯이 할 수는 없지. 데이브의 재활 훈련을 좀 도와주려고. 한스 박사님께서 부탁하셨거든 제발 좀 말려 달라고 말이야.”
“오! 오늘 나온다고 한 게 이거였구나!”
그때, 박용우와 최재영이 주차장으로 나왔다.
“시간 맞춰서 나오셨네요. 재영이 형 오늘은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찍어. 그렇게 긴장하고 촬영하면 오히려 우리가 신경 쓰인다고, 아! 맞다. 박사님 금방 구단주를 만나고 왔는데, 라커룸에서 찍은 영상을 계속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요.”
한치우는 실버 형제의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이, 이십만 파운드!?”
그리고 둘은 한치우의 계약 얘기를 듣고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그, 그런데 치우야! 계약 내용을 막 이야기해도 되는 거야!?”
“상관없어요. 부장님께 전송한 영상에는 제 새로운 계약 내용도 포함돼 있으니까요. 이제 어떤 루머가 생산되고, 제 몸값이 어느 정도 오를지 구경하는 일만 남았어요. 하하하!”
‘치우가 변했구나. 예전과는 달라졌어.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자신의 가치가 오르는 일을 즐기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족쇄가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을 꽁꽁 묶어 놨던 것이겠지. 치우의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박용우는 한치우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한치우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며느리와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에게 한치우를 부탁하던 한용운의 늙은 주름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자! 박사님, 형. 타세요. 제가 귀찮아서 그렇지 운전을 못 하는 편은 아니니까요.”
최재영이 왼쪽의 조수석으로 올라탔고, 박용우 박사가 뒷자리에 탔다.
“치우야. 이것도 찍을게. 볼보에서 좋아하겠어.”
“그래 주면 고맙지. 내가 볼보의 모델이니까 상관없을 거야. 받은 게 많아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것도 좋은 홍보가 되겠어. 본방송을 하기 전에 형이 한번 알아봐 줘. 혹시 볼보의 로고가 나가도 괜찮은지 말이야.”
“그래.”
“존! 집 잘 지키고 있어.”
“내가 제일 바쁘다!”
그래도 존은 한치우가 다시 운전대를 잡은 것이 너무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 * *
“이십만 파운드!”
그리고 한치우의 재계약 내용을 얘기하는 휴 실버의 영상을 확인한 김한식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 이것을 다 내보내도 된다고? 진짜 예고편 영상만으로도 대박 나겠는데! 이 정도면 방송국도 축구 협회에서도 절대 불만을 얘기할 수가 없지!”
탁! 탁!
영상을 편집하는 김한식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일주일 동안 날마다 반복했던 일이었다.
새로운 영상과 라커룸의 장면을 편집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휴 실버가 선수들에게 보너스와 주급 인상을 약속하는 장면이 오버랩이 되며 자연스럽게 휴 실버의 개인 영상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한국의 축구 팬들에게 “웨스트햄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한 휴 실버는 한치우는 웨스트햄의 보물이며 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급 20만 파운드에 맞춘 새로운 계약을 갱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클럽의 구단주가 이런 영상을 단독으로 촬영하는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축구 협회에 좋은 일을 해 주는 거 같아서 좀 짜증 나네.’
새로 편집한 영상이 마음에 들면 들수록 짜증이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최 기자에게 영상을 바로바로 전달받아 내용을 확인하면서 본방송을 준비해야겠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바로 대응하려면 내가 내용을 빨리 숙지하고 있어야 해.”
김한식은 마지막으로 영상을 확인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대충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 우우웅 –
디지털시계는 밤 열한 시를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구지? 어, 국장님?”
한국 방송국의 제작국장이었다.
아까 저녁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걱정하지 말라며 새로 받을 영상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셨군.’
“예. 국장님. 이제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십 분 정도만 기다려.”
“이 사람아! 빨리 포털사이트 열어 봐! 도대체 영상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예!?”
“나한테 묻지 말고, 빨리 포털사이트 열라고!”
국장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다면, 바로 김한식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김한식은 얼른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창을 띄웠다.
“어, 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휴 실버, 웨스트햄 주급 인상, 한치우 다큐멘터리, 라커룸 등의 순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무거나 하나 골라 클릭하자, 화면이 넘어가며 김한식이 편집한 예고편 영상이 시작되었다.
“이, 이게 도대체!”
“이거 어쩔 거야! 어!? 도대체 영상 자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자네가 오늘 낮에 보낸 영상은 나도 확인했어! 그런데 지금 인터넷에 유출된 영상은 거의 칠 분짜리야. 라커룸에서 웨스트햄의 구단주가 얘기하는 장면은 도대체 뭐인가!?”
“구단주…….”
탁, 탁 –
김한식이 국장의 얘기에 얼른 영상을 뒤로 당겼다.
거기에는 휴 실버가 선수들에게 리그 컵 우승 보너스와 주급 인상이 약속된 연봉 협상을 말하는 장면이 편집을 거치지 않은 원본 영상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누가 편집실에서 내 파일을 만졌구나!’
김한식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눈치를 챘다.
절대 최재영은 아니었다.
만일 그쪽에서 유출된 것이라면, 김한식이 편집한 영상을 함께 내보낼 수가 없었다.
“국장님! 저희가 수습하겠습니다! 수습해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런던 쪽도 걱정하지 마세요!”
“후! 알았네. 빨리 연락해 주게. 야! 김 피디! 왜 그리 쫄아 있어! 이거 어떻게 유출됐는지 빨리 알아봐!”
국장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지 담당 피디에게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지만, 김한식은 얼른 전화를 끊고 이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렇지 않아도 가는 길이야. 통화 중이던데?”
“예. 제작국장에게 바로 전화가 왔었습니다. 선배님, 이거 아무래도 저희 쪽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우리가 낮에 함께 확인했던 영상이 무편집본과 함께 그대로 나가고 있으니 말이야. 후! 젠장! 한식아, 내가 사람들을 너무 믿었나?”
“일단 오세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제 잘못이 가장 크니까요.”
김한식은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심증이 가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돌아다니는 영상을 모두 삭제할 능력이 김한식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미 유출된 영상을 100% 삭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출한 사람을 잡아내고, 제대로 된 예고편 영상을 빨리 내보내 이것을 덮어야 해. 그러면 방송국도 협회도 손해를 입을 일은 없어. 어차피 중요한 것은 본방송이고, 그런데 왜 협회장은 아무 연락도 없는 거야?’
김한식은 생각을 정리하다가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는 확인한 것 같은데 연락도 없는 안염지가 신경 쓰였다.
‘영상을 확인하고 있겠지.’
탁 – 탁 –
김한식은 다시 아까 확인하려던 영상 확인을 마저 했다.
일은 일대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내 사무실로 들어와. 송 기자 자네도.”
그 사이 이은석이 편집부의 송 기자와 함께 도착해서 사장실로 둘을 불렀다.
“우리 셋은 함께 봐야 할 이유가 있지. 한식이가 오늘 편집을 하다가 자리를 비운 것은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그때밖에 없어. 그리고 편집실 입구의 CCTV는 나와 편집국장만이 확인할 수 있지. 그리고 알겠지만, 편집국장은 지금 휴가 중이라 용의자에서 제외되지.”
이은석이 빠르게 말하며 자신의 컴퓨터 전원을 켰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바로 CCTV의 영상을 확인했다.
“모두 볼 필요는 없겠지? 오늘부터 앞으로 넘어가자. 김 부장이 편집실 안에 있을 때는 빠르게 넘겨도 되니까.”
영상을 확인하는 그들의 눈빛이 어두웠다.
모두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용의자는 금방 나타났다.
“흠,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 다음, 만춘이가 들어왔다?”
“사장님. 혹시 모르니 한번 싹 훑어봐요.”
김한식의 말에 이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주일 분량의 녹화 영상을 빠르게 돌려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한식이 편집실을 독차지했던 일주일 동안 편집실에 들어간 것은 이은석과 옆에 있는 송 기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송 기자가 가끔 들어간 이유는 김한식에게 커피를 갖다 주기 위해서였다.
“왜. 만춘이가 이런 짓을 벌여야 했을까? 담당도 야구부인 놈이. 그리고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아! 이 새끼, 그래서 내일 출장 신청을 미리 했구나! 어쩐지 평소에 야구장에는 가지도 않는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내일 일찍부터 잠실로 가겠다고 설친 이유를 알겠어!”
“만춘이가 맞는 것 같네요. 아까 퇴근 전에 편집실에 들른 이유는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겠죠. 자신의 짓이란 것이 밝혀질 것이 뻔한데도 일을 벌였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았을까요?”
“그게 중요해!? 빨리 수습하자. 나는 만춘이 잡을 테니까. 넌 빨리 런던에 연락해. 거기도 지금쯤이면 다 알고 있을 테니까. 송 기자는 이만 들어가 봐!”
“아! 아닙니다! 사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송 기자! 그럼, 자네는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성명문을 작성하도록 해. 이번 일은 내부 직원의 고의적인 유출 사고이며 정식 예고편 영상이 내일 방송되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
김한식이 송 기자가 남겠다고 하자, 얼른 할 일을 일러 주었다.
지금 이은석과 자신은 여기저기 전화만 걸어도 밤을 지세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역시! 만춘이 새끼, 전화를 받지 않아!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후배들을 좀 동원해야겠어.”
“송 기자!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가자.”
“예.”
이은석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흐르자, 김한식이 얼른 송 기자를 데리고 나갔다.
송 기자는 편집부로 들어갔고, 김한식은 편집실에서 박용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부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역시 이제 런던에도 다 알려진 것 같았다.
김한식은 현재 상황을 빠르게 설명하며 수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부장님. 치우입니다.”
그때, 한치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박사님과 함께 있었구나. 미안해 일이 이렇게 돼 버려서.”
“구단주 쪽에서도 지금 출처를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휴 실버는 지금 상황도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편집이 제대로 안 된 영상이 짜깁기가 되어서 벌써 온갖 루머가 쏟아지고 있거든요.”
“그, 그래? 후! 하지만 우리는 즐길 입장이 되지 못해. 내가 관리를 잘못한 책임도 크고.”
“일단 자료를 유출한 사람을 빨리 찾는 것이 좋겠어요. 아직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곤란한 일이 자꾸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확실한 경고가 필요할 것 같아요.”
김한식은 한치우의 입에서 경고란 말을 듣게 되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런 말을 한치우에게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