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번화가 장터 (1)
다음 날 오전.
번화가행 셔틀버스 정류장 앞.
예상외로 가장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사람은 서예인이었다.
가만히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데, 워낙 미모가 빛나서인지 그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
서예인은 내가 다가가자 곧바로 알아채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네가 제일 빨리 왔냐.”
“일찍 일어났어.”
“어제 일찍 들어가긴 하더라. 얼마나 잤는데?”
“많이 잤어.”
“배터리 몇 퍼센트?”
“……80?”
서예인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답했다.
그렇게 자고 80%면 연비가 많이 나쁜 거 아닌가 싶지만, 지금 안 졸린 게 중요하니 넘어가기로 했다.
“김 형, 서 소저.”
“어, 왔냐.”
뒤이어 고현우도 인사를 건네며 다가오다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본인이 제일 늦었구려.”
“우리 중에는. 근데 늦은 건 아니지.”
아직도 약속 시간까지 5분이나 남았거든.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셔틀버스 두 대가 연이어 정차했다.
우리는 대기하던 다른 학생들과 함께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 웅성웅성…….
몇 주 전에는 버스에 탄 학생의 수가 겨우 열 명 안팎으로 휑했고, 그나마도 나와 서예인 말고는 전부 2, 3학년이었다.
반면 지금은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바글바글한데다, 1학년의 숫자도 제법 많다.
아마 이들 대부분은 고현우처럼 오늘 처음 번화가에 가 보는 것이리라.
옆자리 대화가 넘어온다.
– 제과점 딱 대. 빵 다 죽었다 오늘.
– 돼지 같은 놈. 빵 먹으러 가냐?
– 그럼 먹으러 가지, 뭐 하러 가?
– 중간고사 준비 안 해?
– 뭔 줄 알고 준비를 해.
– 몰라도 스펙업은 해 둬야지.
이렇듯 학생들 절반은 놀고먹고 휴식을 취하는 게 목표, 나머지 반은 스펙업이 목표다.
우리 목표는 후자에 더 가깝지만, 고현우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조금 솔깃해진 모양이었다.
“과연, 모처럼 식도락을 즐길 기회이기도 하군.”
서예인도 내 소매를 슬슬 잡아당긴다.
“게임 센터.”
“일단 두 분 다 진정하시고.”
뭘 할지는 가서 천천히 생각합시다.
잠시 후 번화가에 도착하니, 셔틀버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고현우가 쓴웃음을 흘렸다.
“기왕이면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걷고 싶었건만, 그럴 틈도 없어 보이는구려.”
“어쩔 수 없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일단 장터부터 돌자.”
“알겠소. 갑시다.”
고현우가 선두에 서고 내가 바로 뒤에서 방향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서예인은 내 팔뚝 부근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졸졸 따라왔다.
“어디부터 가는 거요?”
“일단 가까운 데부터.”
학사 측에서 장터를 열도록 허용해 준 장소는 두 곳.
하나는 2, 3학년과 동아리들이 매대를 세우는 상급생 판매 구역,
다른 하나는 졸업생들이 모이는 졸업생 판매 구역이다.
그리고 그중 가까운 곳은,
“상급생 쪽이지.”
우리는 인파를 뚫고 2, 3학년 판매 구역까지 이동했다.
상가 같은 넓고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거의 그 건물 앞까지 다다랐을 무렵, 앞장서던 고현우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으음.”
“줄이 길지?”
지렁이처럼 길고 구불구불하게 늘어선 줄.
물건을 살 장소는 두 곳뿐이고 학생들은 수백 명이니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렁이 꼬리에 붙으며 고현우가 말했다.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보오.”
“일찍 와도 똑같았을걸.”
아침 일찍, 개장시간 전부터 대기했어도 줄은 섰을 거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리고 일찍 온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야.”
“그건 어째서 그렇소?”
“파는 사람이 물건을 안 내놓으면 어차피 못 사거든.”
“으음, 그것도 일리가 있군.”
파는 입장에서 보면 장터가 하루 내내 열리는데, 꼭 시간대를 아침으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
느긋하게 오후쯤 올라오는 매물도 부지기수.
따라서 빨리 오든 늦게 오든 좋은 아이템을 찾아내는 건 오로지 운에 달렸다.
“어쨌든 별 수 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하겠구려.”
“그렇겠지.”
어디 거대 동아리에 연줄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은.
그런데 그때,
“또 보네요.”
뒤쪽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검술 동아리 차장, 제갈소소가 서 있었다.
부채를 든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하길래 나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장터 구경하러 왔나요?”
“그렇습니다.”
제갈소소가 빙그레 미소짓더니 등을 돌렸다.
“따라오세요.”
나는 즉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고, 어리둥절한 고현우와 서예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내 우리 셋은 줄을 벗어나 제갈소소를 뒤따랐다.
“같이 온 친구 두 명도 소개해 줄래요?”
“얘는 고현우, 얘는 서예인이에요.”
제갈소소가 흥미롭게 둘을 번갈아 보다가 시선이 고현우에게 머물렀다.
나에게 소개해 달라고 말은 했지만, 검술 동아리 차장의 정보력으로 고현우쯤 되는 실력자를 모를 리가 없다.
“소문 많이 들었어요. 놀라운 검기를 가지고 있다더군요.”
“과찬이십니다.”
“언제든 시간이 날때 검술 동아리를 한번 방문해 줬으면 좋겠어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곧 제갈소소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상급생 판매 구역으로 통하는 다른 출입구였다.
그러곤 문을 열어 주면서 짧게 설명한다.
“동아리 권한이에요. 쉽게 말하면 초대장 같은 거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한테 쓰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줄을 무시하고 판매 구역에 사람을 들이는 것은 제작 VIP 티켓이나 던전 우선 입찰권과 같은 동아리의 권한.
아무리 검술 동아리 차장이라도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같은 동아리나 평소에 친분이 있는 후배들한테 돌아가야 맞는데, 그걸 선뜻 우리 셋에게 쓴다?
의구심을 가져 볼 만한 부분이었다.
제갈소소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까, 미리 점수를 따 두고 싶어서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되리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당장 장보도 조각 B가 걸려 있기도 하고, 검술 동아리와 거래할 것도 꽤 많으니까.
“그런데 점수를 따 두신다는 말씀은……?”
“…….”
제갈소소는 뜻모를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든 후 등을 돌린다.
“그럼 둘러들 봐요.”
“감사합니다.”
멀어져 가는 제갈소소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하고, 고현우가 나를 보며 감탄했다.
“거대 동아리에 연줄이 있었구려.”
“그러게.”
어쩌다 보니 연줄이 생겨 버렸다.
무슨 속내를 숨기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장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상급생 판매 구역은 상가 크기의 건물을 전부 사용하는 만큼 매우 넓었다.
2, 3학년들이 세운 매대들이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다.
이걸 언제 다 돌아보나 싶지만, 머리 위로 시선을 들어올려 보면 팻말들이 둥둥 떠다니며 각기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
판매 구역 내부도 카테고리 별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안 그래도 아이템들이 잔뜩 풀려 정신이 없으니, 이렇게 최소한의 정리라도 안 하면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한참 헤메고 다녀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편의성을 봐주려는 거다.
전사 계열인 고현우, 마법사 계열인 나, 원거리 계열인 서예인이 살펴 볼 곳은 각기 다르다.
해서 고현우가 물었다.
“흩어져서 찾는 게 어떻소?”
“그냥 같이 다니자. 시간 많잖아.”
제갈소소 덕분에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건너 뛰었으니까.
꽤 여유가 생긴 만큼 같이 다니는 편이 낫다.
서로 아이템을 고르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고.
해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궁수 구획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선배 여럿이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자 잠시 대화를 끊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남학생 하나, 여학생 하나가 다가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 찾는 거 있니?”
“클래스가 뭐야?”
나는 서예인을 가리켰다.
“얘가 총사에요.”
“……쩝, 그렇구만.”
남학생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무리로 돌아갔다.
여학생이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쟤는 활잡이 아이템만 팔거든.”
총사인 서예인과는 아예 안 맞을 테니 일찌감치 손을 떼는 것.
이어서 여학생이 물었다.
“특별히 찾는 거 있니?”
“일단은 둘러보려고요.”
“그래,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여학생 역시 우리가 부담 갖지 않도록 조금 물러나 주었다.
나는 서예인에게 물었다.
“뭐부터 볼래?”
“…….”
서예인의 쇼핑 스타일은 2주 전 번화가에 왔을 때,
에서 대강 파악했다.
‘복잡하게 따지지 않는 스타일.’
이 아이템 저 아이템 손에 들려 줘도 마음에 안 차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음에 들면 고민하지 않고 집는다.
“…….”
예상대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던 서예인의 시선이 한 곳에 꽂히더니, 곧장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다양한 원거리 계열 스킬북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서예인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기라도 하는 듯 그곳을 거침없이 뒤적거리더니, 한참 구석에 처박혀 있던 스킬북 한 권을 끄집어냈다.
[랜덤 스킬북 – 원거리]‘저건 또 어떻게 봤대.’
잠시 물러나서 지켜보던 여학생이 서예인이 뭘 집어 든 걸 보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 랜덤 스킬북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 사려고?”
“네.”
여학생은 조금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나야 팔면 좋기는 한데, 그래도 선배니까 솔직하게 말해 줄게. 랜덤 스킬북은 추천 안 해.”
랜덤 스킬북.
사용 시 무작위 스킬 하나를 습득하게 해 준다.
이 경우 ‘원거리 계열’로 범위가 좁혀지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무수히 많은 원거리 스킬 중 하나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수히 많은 스킬들 중에는 서예인의 성향과 안 맞는, 쓸모없는 것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
매우 높은 확률로 엉뚱한 스킬을 배우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시세보다 낮게 넘길 수도 없어. 우리도 본전치기는 해야 하거든.”
아무리 랜덤이라도 스킬북인 만큼 그 가치가 높다.
또 지하층 던전에서 드랍된 아이템이라, 공략에 투자한 자원을 메꾸려면 제값을 받아야 한단다.
서예인이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얼마에요?”
“8천 포인트.”
고현우가 흠칫 놀랐다.
리플레이를 많이 판매해 나름 포인트가 넉넉한데도 우습게 볼 수 없는 금액이다.
1학년 대부분은 아예 엄두도 못 내겠지.
그런데 랜덤 스킬북에서 엉뚱한 것을 익힌다면?
그 8천 포인트가 공중분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학생이 말릴 만도 했다.
“차라리 다른 거 사는 게 나아. 진짜 확실해?”
“살게요.”
“나는 진짜 말렸다. 네가 산 거야.”
서예인은 주저없이 학생증을 꺼내 8천 포인트를 지불했다.
그리고 곧바로 랜덤 스킬북을 펼쳐 들었다.
여학생이 여전히 뒷맛이 찜찜한 표정을 짓다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익히려고?”
“네.”
– 파앗—
말릴 새도 없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하는 스킬북.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여학생은 안타까움 반, 체념 반이 되어 한숨을 푹 쉬었다.
곧 이 빛이 서예인에게 흡수되고 본인만 볼 수 있는 알림 메시지가 떠오를 거다.
새 스킬을 익혔다고.
– 파앗—
그런데, 스킬북이 발하는 빛은 서예인에게 흡수되는 대신 계속해서 더욱 강렬하고 환해져만 갔다.
은은하던 빛이 이제는 눈이 부셔서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야, 저거 뭐야?”
“쟤 뭐해?”
갑작스런 이상 현상에 주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스킬북의 광채는 계속해서 밝아지고 또 밝아지더니, 결국에는 장내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 파아아앗—!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