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No.490 윈터할트 (2)
이 순간에도 적들은 꾸준히 거리를 좁혀 오는 중이었다.
그것을 보고 홍연화가 곧바로 랭크 부스트를 사용했다.
마법 스크롤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몸에 깃든다.
[‘랭크 부스트’를 사용합니다.] [스킬과 특성의 성장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아마 대충 이런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겠지.
나는 조금 있다가 쓸 생각이다.
내 스킬들은 비교적 사거리가 짧은 편이라, 어차피 적들이 성벽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다시 거대 불사조를 소환하는 홍연화.
불꽃 깃털이 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져 내리고, 작은 화염들이 무수히 피어오른다.
– 화르르륵!
그럴 때마다 아이스 몬스터 군단은 수백씩 뭉텅이로 불타 사라지곤 했다.
숫자가 워낙 많아서 전체를 놓고 보면 별로 줄어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계속 가자.”
“응.”
그렇다고 멈출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맞서 싸울 적인데, 이왕이면 본격적으로 수성전이 벌어지기 전에 숫자를 줄여 두는 게 낫지 않겠는가.
홍연화 역시 랭크 부스트가 지속되는 동안 최대한 알차게 활용하고 싶을 테고.
– 화르르륵!
그렇게 일방적으로 마법을 퍼붓는데 적들이 우리를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얼음 마녀도 마찬가지.
한참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시선이 정확히 우리에게 꽂히는 게 느껴진다.
아이스 몬스터 군단이 진군하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이윽고 우리가 사거리에 들어왔다고 판단했는지, 오크 주술사들과 얼음 마녀가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
홍연화는 적진에서 마나의 파동을 감지하고 즉각 대응했다.
막 캐스팅하던 대단위 마법을 끊고 방어 마법을 연계한다.
[역류막] [작열 갑옷]– 화르르륵.
화염이 한 겹은 둥그런 구체, 다른 하나는 갑옷의 형태를 띠고 그녀를 둘러쌌다.
홍연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 번째 술식까지 발현했다.
[블레이즈 실드]불타는 방패가 허공에 떠올라 이글거렸다.
‘새로 배웠나 보네.’
내 조언을 적극 반영해서 이제 방어 마법이 세 겹이나 된다.
이대로 서예인과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총사 쪽이 비교적 유리하기는 하겠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어느 쪽이 100% 이긴다 확신은 못 하겠다.
그래도 당장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이러면 절대 못 뚫지.’
– 쐐쐐쐐쐐—!!
아이스 오크 주술사들이 얼음 송곳들을, 얼음 마녀는 거대한 얼음 창을 쏘아 보냈다.
우리가 자리한 성벽 자체를 부숴버릴 기세로.
그러나 홍연화는 불타는 방패를 앞세운 채, 오만한 눈으로 그것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다음 순간 쏟아져 오는 얼음 마법들이 방패에 닿자,
– 솨아아아—
방패에 흠집조차 못 내고 사르르 증발해 버렸다.
“흥.”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홍연화.
아마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을 거다.
북궁한설과의 대인전에서도 그녀의 절기를 가볍게 무력화했었으니까.
아쿠아플레임과 빙결 속성의 상성은 그만큼 절대적이다.
얼음 마법들이 몇 번 더 쏟아졌으나, 홍연화는 블레이즈 실드를 유지하는 걸로 충분하다 판단한 듯했다.
다시 공세로 전환하여 불사조를 소환하는 데에 집중한다.
– 화르르륵!
한동안 그렇게 마법을 반복해서 퍼붓다 보니 홍연화의 얼굴에 약간의 피로감이 떠올랐다.
대강 상태를 알 만했기에 내가 물었다.
“마나 다 썼냐.”
“응, 거의…….”
대단위 마법을 수십 번씩 난사했으니 마나가 바닥을 보일 수밖에.
적들이 거의 성벽에 다다랐지만 지금은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홍연화의 발밑에 푸른 마법진 몇 개가 떠올랐다.
마법진에서부터 가느다란 실선이 뻗어 나와 그녀에게 연결된다.
일대의 마나를 흡수, 정제하여 술자에게 공급하는 마나 회복 마법이다.
“……?”
그 상태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홍연화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간이 의자에 세상 편하게 기대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옆에 세워 놓은 빈 의자를 권했다.
“너도 앉아서 쉬어.”
“어, 응. 고마워.”
홍연화는 조금 머뭇거리면서도 순순히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연신 옆으로 눈알을 굴리는데, 그곳에 놓인 캠핑용 화로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앉아 있는 간이 의자들과 한 세트로, 당규영한테 빌려 왔다.
– 빌려 가서 어따 쓰게?
– 세계 평화를 지켜야 돼요.
– 어휴, 그래. 가져가라, 가져가!
세계 평화와 졸업 200번은 만능 치트키였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
화로가 꺼져 있는 걸 보고 홍연화가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불을 붙였다.
– 화르륵!
막 부탁하려던 참이었는데 알아서 해 주는군.
덕분에 한결 따뜻해졌다.
화로에 찻주전자를 올리자 금세 물이 끓었다.
참고로 찻잔 세트는 신병철한테 빌려 왔다.
나는 [금영상단 찻잔(E)]에 뜨거운 물을 붓고 홍연화에게 건넸다.
“커피?”
“……마실게.”
상황이 상황이라 거창하게 뭘 해 먹진 못하지만, 잠깐 쉬는 동안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
뜨거운 물에 커피믹스 한 봉을 풀어 넣자 즉석 커피가 완성되었다.
이어서 홍연화에게도 커피믹스를 한 움큼 내민다.
“너도 넣어, 원하는 만큼.”
“응…….”
홍연화의 태도는 소심했지만 씀씀이는 대범했다.
커피믹스 한 움큼을 다 받아 가서 몽땅 제 컵에 들이부은 것이다.
‘거의 원액 수준인데.’
그러고 보면 매점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도 샷을 잔뜩 추가하곤 했었다.
카페인이 과해 보이지만 본인 취향이 그렇다니 별말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는 간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본다.
“랭크 오른 거 있냐.”
“응, 일단 피닉스 플러터 올랐고…….”
던전에 들어와서 줄창 그것만 써 댔으니 안 오르는 게 이상했다.
또 홍연화가 둥둥 떠 있는 블레이즈 실드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것도…….”
적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 버린 탓에, 이 순간에도 빙결 마법들이 끊임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든든하게도 저 화염 방패가 그것들을 전부 막아 주고 있었고, 랭크도 방금 E에서 D로 올랐단다.
홍연화에게는 다양한 화염 마법을 연마하기에 최적의 환경.
거기다 랭크 부스트까지 더해졌으니 단기간에 스킬 두 개를 올리는 것도 당연했다.
“잘하고 있어. 너무 방심만 하지 말고, 이대로만 하자.”
“응, 그럴게.”
우리는 거의 동시에 커피를 마무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사이 아이스 몬스터 군단은 드디어 성벽까지 당도했고, 본격적으로 수성전이 막을 열었다.
– 발사—!!!
지휘관의 외침에 성벽 위에서 화살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아이스 오크들이 화살에 맞고 픽픽 쓰러졌으나, 아이스 트롤과 골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성벽 위로 커다란 얼음덩이를 집어던지거나 정문을 뚫으려 모여든다.
“……!”
재빨리 전황을 파악한 홍연화가 화염 마법을 퍼부었다.
여태까지는 불꽃 깃털을 넓은 범위에 흩뿌렸다면, 지금부터는 주요 요충지에 화력을 집중해 보호하는 방식으로.
곳곳에 붉은 마법진이 새겨지고 불기둥이 치솟는다.
– 콰아아아—!
‘나도 랭크작 좀 해야지.’
[‘랭크 부스트’를 사용합니다.] [스킬과 특성의 성장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나는 홍연화 곁에 서서 뿌리깊은 묘목을 바닥에 꽂았다.
– 휘이잉—
정문 쪽으로 걸어가던 아이스 트롤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불어갔다.
오크들이 덩달아 거기에 끌려 들어가고,
– 펑!
압축된 바람이 폭발했다.
내친김에 문어발도 시험해 본다.
때마침 홍연화가 두 군데에 파이어 필라 마법진을 새기는 중이었기에, 나도 두 군데에 마법을 시전했다.
[지선] [문어발] [나선폭발] [나선폭발]– 휘이잉—
회오리바람 둘이 동시에 생성되며 몬스터들을 끌어당겼다.
곧 마법진에서 불기둥이 회오리치며 솟아올랐고,
– 퍼엉—!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며 더욱 커다란 화염 폭발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범위 내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삭제되었다.
‘역시 시너지가 좋구만.’
나선폭발과 파이어 필라의 조합.
화염에 바람이 뒤섞이니 위력이 한층 배가된다.
“……!”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홍연화가 화색이 되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자꾸 눈치를 살피길래, 내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맞출 테니까 하던 대로 해.”
“……응, 그럴게.”
홍연화는 은근히 시야가 넓고 대국적으로 운영을 할 줄 알아서, 내가 달리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
성벽 곳곳을 살피다가, 방어가 취약해진 곳을 골라 파이어 필라를 시전한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나선폭발을 더하는 식.
– 콰아아아—!
그 짓을 한참 하다가 마나가 바닥나면 캠핑 의자에 앉아서 쉬고, 또 전장에 복귀하기를 반복한다.
“——!”
그러다 보면 종종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그 출처는 바로 얼음 마녀였다.
웬 연놈 둘이서 제 군단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으니 분통이 안 터질 리가 있나.
홍연화가 나에게 물었지만,
“저거…… 괜찮아……?”
“어. 그냥 놔둬.”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얼음 마녀는 지휘관 계통 개체로, 본신의 무력은 썩 대단하지 않다.
당장 날려 보내는 얼음 마법들도 죄다 홍연화에게 막히는 중이고.
이미 전력 차가 압도적인 만큼 무시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건드리면 손해야.”
때려잡으면 바로 던전이 닫혀 버리니까.
오래오래 살려두고 랭크작을 하다가, 나갈 때쯤 출구 개방 스위치 누르는 느낌으로 잡으면 된다.
홍연화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끊겼던 화염 마법을 이어 갔다.
또다시 곳곳에서 불기둥이 피어올랐다.
– 콰아아아—!
* * *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기계적으로 마법을 연계했다.
홍연화는 몇 가지 화염 마법을 골고루, 나는 나선폭발 위주로.
이만하면 랭크작에도 상당히 진전이 있었을 거다.
‘슬슬 끝내도 될 것 같은데.’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둘 중 하나다.
일정 시간 수성에 성공하거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체감상 곧 ‘일정 시간’이 되고 던전이 저절로 닫힐 텐데, 그전에 얼음 마녀를 잡아야 랜덤박스를 하나 더 획득할 수 있다.
‘얘도 좀 피곤해 보이고.’
홍연화 역시 내색은 안 하려 했지만, 여러 번 마나가 고갈되고 회복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피로가 제법 누적된 듯했다.
해서 내가 이만 끝내자고 지시를 내리려던 찰나,
‘……!’
전장 뒤편에 이 던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은 썩은 오물처럼 새까맣고 걸쭉한 액체였는데, 살아 있는 생물처럼 꾸물거렸다.
바닥을 흐르듯 움직이며 얼음 마녀를 향해 접근해 간다.
‘저게 여기서 나오네.’
시기상 조만간이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게 이 던전일 줄이야.
홍연화 역시 그것을 발견하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내 쪽으로 불안한 눈길을 보냈다.
나는 이 던전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가 되어 말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기억하지?”
“응.”
“그때랑 비슷한 상황이야. 지금부터 집중해.”
“……!”
홍연화의 표정이 조금 더 경직되었다.
동시에 내 시야 한 켠에는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고 있었다.
[메인 퀘스트 2-1]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