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10
510화 폐부 위기 (2)
송천기가 조각상 관련 절차들을 밟기 위해 떠나고.
나는 당규영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해서 여기까지 준비가 됐습니다.”
“이제 재료를 모은단 말이지. 우리가 뭘 어떻게 해 주면 되는데?”
“홍보죠.”
도둑 동아리라면 어떤 소문이든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을 터.
나는 옆에 앉은 조각사 부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이번 대형 조각상 제작이 첫 대외적 프로젝트거든요.”
“그럼 두 번째, 세 번째도 있겠네?”
반짝 눈을 빛내는 당규영.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그렇게 될 겁니다.”
“의뢰만 열어 주면 맡길 사람은 많지. 부실에 조각상 좀 두면 좋거든.”
학사 측에서는 유효 옵션이 붙은 조각상만 실적으로 친다지만, 동아리들 입장에서는 그외 다양한 생활 계열 효과에도 관심이 있을 거다.
가령 실내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한다거나,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거나.
이런 이유로 안 그래도 의뢰를 맡기려는 동아리들이 많은데, 첫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을 증명하고 나면 거의 쏟아지다시피 할 거라 짐작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 받을 수는 없죠. 부원이 한 명이니.”
“응응, 차등을 둬야겠지?”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반면 조각사 부장은 아직 이해를 못 한 기색이라, 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야 실적 때문에 하는 거라고 쳐도, 남들 입장에서는 공익성이 강한 프로젝트잖아요.”
“그건 맞지.”
범위를 넓게 설정한 만큼, 트레이닝 센터를 이용하는 학생 모두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터.
“다들 좋자고 만드는 건데 꼭 우리만 부담을 떠안을 필요는 없죠. 후원을 받을 겁니다.”
“그 얘기였구나.”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조각사 부장.
랭크 부스트에 준하는 버프를 졸업할 때까지 누릴 수 있다면, 재료 조금 내는 게 아까울까?
얼마 뒤 졸업하는 3학년들조차도 나쁘지 않은 투자라고 여길 거다.
“차등을 둔다는 것도 무슨 소린지 알 것 같아.”
“후원 순위대로 의뢰를 받으시면 되겠죠.”
요약하면 동아리들은 후원을 통해 두 가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공익에 기여했다는 명예, 그리고 [제작 VIP 티켓]에 준하는 의뢰 우선권.
조각사 부장의 안색은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게 밝았다.
“그럼 재료 문제도 해결된 거네?”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100% 까지는 아니라도 90% 이상은 된다.
당규영이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건 파는 것만 남았어. 열심히 홍보 돌릴 테니까 준비해 두고, 나중에 우리도 하나 만들어 주면 고맙고.”
“예, 선배님.”
“그럼 대충 정리된 거 같으니까 얘 데려간다. 수고해.”
꾸벅 고개를 숙이는 조각사 부장을 뒤로 하며, 우리는 함께 자리를 나섰다.
걸음을 옮기던 도중, 당규영이 내쪽을 쳐다보더니 서서히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왜 또 추궁하는 뀨뀨입니까.”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어떤 생각이었지요?”
당규영이 조각사 동아리 쪽에 대고 턱짓했다.
“쟤랑 너랑 이거…… 암만 봐도 클리셰란 말이야.”
나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위기에 처한 히로인.
고민을 들어 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주인공.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는 두 사람.
둘 사이에는 점차 유대가 깊어져 가고…….
“듣고 보니 말 되네요.”
“또 여자가 늘어나는 것이야? 쓰레기 군주 가는 거야?”
당규영이 두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더니, 천천히 제 입가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대답 여하에 따라 사정없이 깨물어 버리겠다는 뜻.
이에 나는 인자한 대협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그것은 오해입니다.”
“확실해? 오해?”
“제가 쓰레기 군주는 맞는데, 여자면 다 들이대고 보는 건 아니거든요.”
“아니었어?”
“아니죠, 그렇게 보시면 섭섭하거든요.”
당규영은 얼마간 내 눈을 들여다보며 속내를 가늠하려는 듯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네가 그렇다니 믿어야지.”
“고맙습니다. 이제 팔은 놔 주십쇼.”
그에 당규영이 내 팔을 내려다보더니 덥석 깨물었다.
“앙.”
“믿는다면서 왜 깨물어요.”
“그냥 재밌어서. 앙.”
“이거 완전 짐승이네.”
* * *
쓰레기 군주 의혹과는 별개로, 당규영은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소문이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간 것이다.
– 트레이닝 센터에 조각상 만든다던데?
– 갑자기? 왜?
– 내가 어떻게 알아. 자리 만들고 있더라.
– 효과는 뭔데?
– 랭크 부스트 비슷한 거라던데, 아무튼 좋대.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버프가 늘어나니 잘 됐다는 반응.
한편 여러 동아리들은 소문을 듣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후원 폭탄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 결과 부실 한쪽에는 주괴들이 천장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또 한쪽에는 보석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조각사 부장은 조금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너무 많이 들어온 거 아니야?”
“더 들어올 겁니다. 이제 첫날이잖아요.”
“야야, 나 이러면 감당 못 해.”
“감당할 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후원인데.”
‘선불로 주는 거니까 나중에 다 갚아!’가 아니라,
‘조각사 동아리를 응원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용!’하는 뜻이 담겨 있다.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거 외엔 전부 동아리 자산이죠.”
“나도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남는다 싶어서.”
“정 그러면 남는 걸로 착한 후배 한두 개 만들어 주시지요.”
그제야 조각사 부장은 무언가 눈치챈 듯했다.
“너, 이러려고 후원 받은 거지.”
“노린 건 아니고요, 부수적인 소득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저도 나름 A랭크를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래.”
부장은 반박하지 못했다.
조각상에서 추출한 핵심 재료가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순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또 뭐라 말하려는 찰나, 갑작스레 메시지가 날아왔다.
내용을 확인하고 나는 눈가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이 타이밍에 여기서?’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는지 조각사 부장이 물었다.
“왜, 누군데?”
“교장 선생님이요.”
“교…… 장 선생님?”
“얘기가 거기까지 흘러 들어갔나 봅니다.”
도둑 동아리가 일을 지나치게 잘해 주기는 했다.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한데 학사 측에서 모르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겠지.
게다가 대형 조각상을 설치하는 드문 프로젝트이기도 하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도 했다.
내가 연관되었다는 사실까지 파악한 건 다소 의외였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아주 비밀스러운 일은 아니었고.
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메시지 내용을 전달했다.
“잠깐 오라고 하시네요.”
“……괜찮은 거 맞아, 이거?”
“적어도 엎으라곤 안 할 겁니다. 오히려 좋은 쪽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다소 미심쩍어하는 조각사 부장과 함께 부실을 나섰다.
* * *
교장실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처음 보게 된 것은 완전 무장한 교장 선생님이었다.
전신 갑옷에 투구까지 썼으며, 금빛 대검을 역수로 쥔 채 창밖을 응시하는 중이다.
‘고갈의 마녀랑 싸울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교감 선생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꼴볼견이라는 기색이 얼굴 가득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즈를 취하다가, 뒤늦게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왔냐.”
“안녕하십니까.”
“송천기 학생한테 들었어. 좋은 일 하는 거 같으니까 금방 승인 날 거다.”
“감사합니다.”
학생회장에 교장까지 힘을 보태 준다면 트레이닝 센터에 자리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다만 본론은 이제 시작인 듯했다.
교장은 어려운 말을 꺼내려는 듯 ‘끙…….’하고 침음성을 흘렸고, 그 모습을 교감이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표정을 읽어 보면 대강 이런 뜻으로 짐작된다.
‘좀 안 하면 안 되나?’
그럼에도 교장은 끝끝내 밀어붙이려는지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 조각상 말인데.”
“예.”
“모델은 정했나?”
A랭크 조각상에서 추출한 아이템은 ‘영웅’의 용맹한 기상.
꼭 ‘오크 영웅’을 다시 만들지 않아도 유효 옵션을 붙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만드는 사람 몫이라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조각사 부장이 떨떠름한 어조로 답했다.
“아직은…… 구상 단계입니다.”
“크흐흠! 그럼 전대 용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
왜 난데없이 풀세팅을 하셨나 했더니, 자신을 모델로 써 달라는 뜻이었나 보다.
평소의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으로는 가능성이 더 낮았을 테니까.
물론 갑옷 차림 역시 주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교감 선생님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곤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철 좀 드십시오…….”
“아니, 나도 교장인데, 임기 동안 학교에 뭐 좀 남기면 좋잖아.”
“저는 안 남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안 되는데?”
“볼 때마다 저까지 부끄러울 것 같아요.”
평소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하면 교장 선생님도 못 이기는 척 물러나곤 했으나, 지금 만큼은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듯했다.
두 어른의 실랑이를 지켜보다가 나는 조각사 부장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진짜 하고 싶으신가 본데요, 모델.”
“그러게, 원래 저런 분이셨어?”
“평소에도 나잇값을 좀 못하시긴 합니다.”
“…….”
“따로 정해 두신 거 없으시면 전대 용사도 괜찮지 않을까요. 소원 성취해 드리는 셈 치고.”
“그래, 그렇게 하자.”
굉장히 마지 못해 승낙하는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승낙.
해서 나는 아직도 언쟁 중인 두 어른에게 말했다.
“가능은 할 것 같은데요.”
“정말?”
그놈의 조각상이 뭐라고 벌써부터 헤벌쭉해지는 교장 선생님.
나는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조건을 좀 붙이고 싶습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