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2
62화 No.388 깃털뱀 제단 (1)
‘뭐 이런 걸 주냐.’
큼지막한 루비가 내 손 위에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루비 마탑의 고유한 마력이 깃든 정수.
거래를 한다면 무조건 금화 단위고, 아이템의 제작이나 업그레이드에 써도 높은 등급이 보장된다.
고작 리플레이를 비공개로 돌려 주는 대가로는 과한 감이 있었다.
기실 비공개 정도는 같은 팀원끼리 도의적인 측면에서 그냥 해 줄 수도 있고, 뭘 주더라도 가볍게 간식이나 커피 정도로 해결을 보는 편이다.
해서 홍연화가 루비를 내밀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고.
그랬더니 훨씬 더 큰 루비가 튀어나온다.
또 거절했다간 다음에는 뭐가 나올지 몰라서 일단은 받았지만, 마냥 횡재했다고 좋아할 건 아니다.
이건 그냥 낼름 집어삼키면 체할 가능성이 높다.
‘나중에 루비 쪽에 가져가 보고,’
그쪽 부장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루비 마탑에도 찾아가 볼 일이 있을 테니.
루비를 가져가는데 손님 대접 정도는 해 주지 않을까.
문득 시간을 확인해 보니 던전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빨리 끝나긴 했네.’
분명 이번 소탕 공략전의 취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살피며 관찰력을 길러 보라는 것이었을 텐데,
나와 홍연화 듀오는 무슨 타임 어택 하듯이 던전을 순식간에 주파해 버렸다.
‘홍연화가 잘해 줬어.’
낭비를 줄이기 위해 극도로 효율적인 동선을 짜서 움직인 결과라 하겠지만, 홍연화가 그 동선을 잘 따라와 주어서 더욱 수월했다.
내가 금방금방 몬스터를 찾아내더라도, 처치하는 데 오래 걸리거나 놓치기라도 하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반면 홍연화는 몇 마리가 튀어나오건 순식간에 불살라 버리는 시원시원함을 보였다.
‘보스 상대로도 괜찮게 싸웠고.’
쌍둥이 트롤을 상대로도 제법 분전했다.
사실 이 쌍둥이는 무작위로 정해지는 여러 보스 중에서도 뽑기운이 정말 나쁘면 나오는 놈들로, [강적] 딱지가 붙은 참수자 고블린보다 강하다.
그걸 혼자서 상대하면서 30%가량 체력을 깎았으니, 얘도 유망주 이름값은 하는구나 싶었다.
막바지 즈음에는 힘에 부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세했지만, 그때까지 필요한 만큼은 봤다.
복사할 만한 스킬을 정할 때까지는.
▷복사-스킬[2/2]
1. 오버히트(D)
2. 도둑걸음(B)
오버히트.
완성된 화염 스킬 하나를 흡수하고, 지속시간 동안 흡수한 스킬의 위력에 준하는 육체 능력을 얻는 스킬이다.
작은 화염 폭발을 일으키는 [컴버스천]보다는, 큼지막한 화염구를 만드는 [플레임 오브]를 흡수했을 때 능력치가 더 많이 증가한다는 뜻.
나에게 화염 계열 스킬은 단 하나뿐이다.
대신 아주 무지막지한 놈으로.
‘인페르노 피스트.’
위력이 위력이라 흡수할 시 육체 능력도 대폭 증가하리라 예상한다.
인페르노 피스트는 금지 스킬인 만큼 상황을 많이 봐가면서 써야 하는데, 이제 리플레이가 돌아가는 중에도 오버히트 제물로는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증가한 육체 능력과 B랭크 도둑걸음, 그리고 서예인에게 받은 신발까지 더해지면…….
‘3학년과도 술래잡기 정도는 가능하겠지.’
기동성에서는 당분간 눈을 돌려도 무방할 것이다.
[서브 퀘스트:4주 차 공략전](완료)▷목표:공략전 던전 클리어
▷완성도 100/100%
▷보상:[복사-특성] 슬롯+1
복사-특성[1/2]
1. 원소 저항(S)
2. (없음)
100% 소탕 보상은 [복사-특성] 슬롯 추가.
이제 [원소 저항]을 덮어씌우지 않고도 새로운 특성을 복사할 수 있게 되었다.
특성은 스킬과는 달리 발동하는 전조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보유 여부를 파악하기가 더 까다로운 편이다.
랭크를 가늠하는 건 더 까다롭고.
EX급 환생 퀘스트의 여파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교체된 지금, 다른 학생이나 교직원들의 특성을 알아내려면 다소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 이건 조금 미뤄 두고, 확실하게 내가 알고 있는 대상을 노린다.
지하층 던전에 자리하고 있을 보스 몬스터들을.
* * *
“김 형.”
저녁.
약속 시각에 맞춰 던전동으로 향하는 길, 고현우를 마주쳤다.
나란히 걸으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공략 다 외웠냐.”
“물론이오. 지시한 대로 토씨 하나 빼먹지 않았다오.”
“똑같이 따라 할수록 좋고, 실수로 몇 개 틀리는 것까진 괜찮아. 너무 헤매지만 마라.”
“결코 김 형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소.”
“믿는다.”
던전동 입구에 다다르니, 기다리던 신병철이 우리를 보고 씩 웃으며 반겼다.
“왔구만. 준비들 되셨나?”
“그럼.”
“좋아요, 좋아. 우선 이것들 받으시고.”
신병철이 준비해 온 물건들을 하나씩 건넸다.
하나는 넥타이에 꽂는 은색 핀.
2학년 핀이다.
현시점에서 1학년은 지하로 내려갈 수조차 없는데, 넥타이핀이 흰색이다?
그 자리에서 선도부실행이다.
그런 불상사를 피하려면 2학년 핀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
넥타이핀 교체는 교칙 위반이며 잡히면 가중 처벌을 받지만, 안 잡히면 그만 아니겠는가.
두 번째 아이템은 사람 얼굴 모양의 뱃지였는데, 이목구비 대신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아무개 뱃지]뱃지를 앞주머니에 달고 다른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고현우도 나와 신병철을 번갈아 보고 감탄사를 흘린다.
“오, 이래서 아무개로군.”
두 사람의 얼굴이 흐릿한 것 같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일종의 인식 방해 마법이 걸린 아이템으로, 사람 얼굴을 최대한 평범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다만 마나를 눈에 집중하면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눈에 확 띄는 데다, 예리한 사람은 금방 위화감을 눈치채기도 한다.
여러모로 허술한 아이템이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얼굴로 보이니 그냥 지나치게 되고 얼굴도 기억에 안 남는다.
위와 합쳐서 허술하지만 의외로 잘 통하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이 아무개 뱃지 역시 불순한 의도로 많이 쓰이다 보니, 소지 금지 아이템 리스트에 올라 있다.
종합하면 던전동 지하층 무단출입, 학년별 핀 교체, 소지 금지 아이템 착용까지, 교칙 위반 항목이 벌써 3개다.
학생이 이렇게 교칙을 줄줄이 어겨도 되냐고?
‘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교칙을 안 어기면 히든 피스를 못 얻고,
히든 피스를 못 얻으면 성장이 늦어지고,
성장이 늦으면 추후 만날 강적들에게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세계가 멸망한다.
EX급 퀘스트가 그렇다니까 아마 맞을 거다.
신병철은 자신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듯, 비열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자, 그럼 내려가 보실까?”
“그럽시다.”
우리는 신병철의 안내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지하실 계단 같던 것이, 점차 폭이 넓어지며 커다란 원형 계단으로 바뀌었다.
난간 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원형 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불이 제법 환하게 밝혀져 있음에도 저 깊은 아래는 어두컴컴하게 보일 정도.
한참이나 원형 계단을 밟으며 내려가다 보니 분기점이 나왔다.
이대로 계속 내려가거나, 오른쪽 통로를 통해 벗어나거나.
앞장서는 신병철이 손짓한다.
“오른쪽.”
오른쪽으로 조금 가니 또 내려가는 계단.
처음 내려가던 원형 계단에 비교하면 다소 폭이 좁지만, 아래로 향한다는 점은 같다.
그렇게 한참 내려가면 다시 분기점.
두 갈래 길도 있고 세 갈래 길도 있고.
그럴 때마다 신병철은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쪽.”
“거기 말고.”
“이쪽으로.”
다만 일부러 외진 곳만 골라서 가는 느낌이라, 궁금증이 동했는지 고현우가 물었다.
“신 형, 하나 물어봐도 괜찮소?”
“엉, 물어보셔.”
“그냥 내려가는 것과 신 형처럼 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거요?”
그냥 처음 밟았던 원형 계단만 타고 내려가면 넓고 쾌적한데, 굳이 복잡하게 미로를 만들면서 갈 필요가 있냐는 뜻이다.
다 이유가 있다며 신병철이 답했다.
“솔직히 우리가 떳떳하지는 않잖냐. 최대한 피해 다녀야지.”
당연한 얘기지만 지하층을 배회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공략전을 하는 2, 3학년은 기본이요, 선도부나 교직원들도 주기적으로 순찰을 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루트일수록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최대한 인적이 뜸한 길만 고르고 골라 내려가는 것이다.
신병철이 엄지로 본인을 척 가리키며 호언장담했다.
“걱정하지 말고 이 신병철만 믿고 따라오라! 쥐새끼 하나 마주치지 않게 해 드리지.”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5분도 안 돼서, 신병철이 움찔하곤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급하게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한다.
‘자연스럽게 지나가자. 자연스럽게.’
곧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며 2학년 한 파티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렬로 서서 한쪽으로 붙었고, 상대방도 반대쪽으로 붙었다.
“…….”
“…….”
스쳐 지나가는 순간 두어 명의 눈동자가 우리 쪽을 향했다.
마치 ‘우리 학년에 저런 애가 있었나?’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더 깊게 알아볼 필요까지는 못 느끼는지 곧 시선을 돌려 버렸다.
막 던전 공략을 끝낸 참이라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2학년들이 위쪽으로 사라지고,
고현우와 내가 말없이 신병철을 바라보았다.
쥐새끼 하나 마주치지 않게 해 준다며?
신병철이 즉시 변명한다.
“……방금은 운이 없었다. 나 믿지?”
“…….”
고현우는 격려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얼마나 왔소?”
“번호로 치면 700번대일걸.”
“700번대라 하면?”
“F급. D급은 한참 더 내려가야 돼.”
고현우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허어. 던전동이 광활하다고는 익히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D급까지 가는 데에만 이토록 오래 걸린다면 심층부라는 곳은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할지…….”
“괜히 심층부가 아니거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갑시다.”
사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느낌이 드는 건 우리가 지하층에 몰래 내려온 탓이 컸다.
걷는 게 귀찮거나 시간이 아까운 학생들을 배려하여, 지하층 곳곳에 승강기나 순간이동 마법진 등의 층간 이동 수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시설들을 이용하려면 기본적으로 학생증을 스캔해야 하고, 수정구가 설치되어 있어서 기록이 남는다.
조금 편하자고 기록을 남길 수는 없으니 보고도 무시하고 지나쳐야 했다.
가이드의 수준이 높으면 수정구를 속이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신병철은 우리와 같은 1학년이었다.
결국 부지런히 뚜벅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2학년을 두 팀이나 더 마주쳤다.
시간대도 나름 사람이 적은 저녁 시간대를 골랐고, 최대한 인적이 뜸한 루트를 탔는데도 이렇다.
“하하……. 이거 좀 미안하네.”
신병철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한 번쯤이야 운이 없다고 치부하고 넘길 수 있지만, 세 번이나 반복되면 그것도 염치가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쟤도 겨우 한 번 내려와 봤다니까.
다 이러면서 경험을 쌓는 거다.
“안 잡혔으면 됐지. 다음부터 운전 잘해.”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고객님. 이쪽으로 오시죠.”
지긋지긋한 계단을 벗어나 개미굴 같은 통로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곳저곳에 입을 벌리고 도전자를 기다리는 D급 던전들.
순간이동 포탈마다 생김새가 제각각이고, 안쪽에서 언뜻언뜻 비추는 풍경도 다 다르다.
[No.396] [대응표국] [No.394] [제7실험실]공통점이라면 인공 던전보다 몇 배는 흉흉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
우리는 그런 포탈들을 계속 지나치다가 한 곳에서 정지했다.
[No.388] [깃털뱀 제단]“잠깐 기다려 봐.”
입장하기에 앞서.
신병철이 인벤토리에서 몇몇 장치들을 꺼내더니 부산스레 돌아다니며 설치하기 시작했다.
일대를 감시하는 수정구를 잠시 교란시키고, 나중에 추적당할 여지를 안 남기기 위함이다.
이것 역시 도둑 동아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환이다.
빠르게 설치를 끝낸 신병철이 손을 탁탁 털었다.
“다 됐고. 얼마나 걸려?”
“금방 끝나.”
“오라잇.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거기까지 말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나는 고현우와 시선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례차례 포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시야가 급변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