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80
80화 5주 차 멘토링, 대인전 (3)
홍연화와 함께 순간이동 마법진에 올랐다.
원형 투기장은 배치 고사에도 등장했고 앞으로도 꽤 자주 보게 될 지형이다.
다만 이번 원형 투기장은 대인전을 세 사람이 치른다는 점을 감안해서, 전체적인 면적이 훨씬 넓다.
멀찍이 맞은편에 당규영이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곽지철과 송천혜의 상태를 보면 짧은 시간이나마 제법 격렬하게 싸운 걸로 짐작되는데, 당규영에게서는 그런 격전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티커는 물론이고 옷차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하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난다는 뜻.
당규영이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준비하고, 아무 때나 들어와.”
“…….”
시작하기에 앞서 홍연화가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무슨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도 봤던 표정이라 속뜻을 짐작하기는 쉬웠다.
이왕이면 같이 싸워 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요구하자니 내가 부담스럽고,
부탁을 안 하고 혼자서 싸우자니 상대가 3학년이라 너무 어려워 보이고.
이도 저도 못 하고 머뭇거리길래 내가 방향키를 잡기로 했다.
“일단 싸워 봐라.”
“……나 혼자?”
“…….”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홍연화의 표정이 또다시 다채롭게 변화했다.
– 이걸 나 혼자 하라고? 진짜로?
울상이 되었다가,
– 에휴, 저 인간이 그럼 그렇지…….
체념했다가,
– 그래도 저번처럼 위험해지면 도와주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홍연화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첫 도전은 소극적으로 임할 생각이다.
‘쟤도 뭘 배우긴 해야지.’
아무리 퀘스트가 걸려 있더라도 나 혼자서 덜컥 다 해결해 버리면 홍연화가 얻어 가는 게 없다.
기껏 멘토링을 신청해 놓고 시간 낭비만 하는 격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고인물이라면 뉴비의 성장을 배려해야 하는 법.
공략전에서 쌍둥이 트롤을 상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팀워크를 맞추는 건 홍연화가 직접 부딪히고 깨져 본 다음의 일이 될 거다.
그런 면에서 홍연화는 배울 자세가 된 뉴비였다.
내가 도와주든 말든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먹은 듯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 번쩍!
완드에 박힌 루비가 붉게 빛났다.
화염 마법이 활활 타오르더니, 홍연화의 온몸으로 흡수되고 퍼져 나가며 에너지를 공급했다.
[오버히트]육체 능력이 대폭 강화되었으나 그렇다고 당장 접근전을 걸 자신까지는 없나 보다.
완드가 또다시 붉은빛을 발하고, 끄트머리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용암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용암은 바닥에 웅덩이가 되어 고이는 대신 완드와 연결된 채 뱀이 똬리를 틀듯 바닥에 늘어졌다.
홍연화가 완드를 슬쩍 휘젓자 그것을 따라 채찍처럼 움직인다.
[라바 윕]“…….”
당규영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 소환했는지 자그마한 그림자 나비 두 마리가 손등과 어깨 부근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당규영이 고개를 까딱이는 것을 신호로,
“와 봐.”
“!”
홍연화가 곧바로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상대를 사정거리 내에 두는 즉시 힘껏 채찍을 휘두른다.
얼핏 당규영의 몸통을 노리는 것 같지만, 아마 진짜 목표는 스티커 셋 중 하나.
– 휘리리릭!
그러나 마지막 순간 당규영이 팔을 척 들어 올리자 채찍이 거기에 감겨들었다.
용암 속에 팔을 담근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규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홍연화가 그 상태에서 추가로 화염 마법을 흘려보내려 했으나, 당규영의 발밑에서 솟아오른 그림자 손이 할퀴듯 용암 채찍을 찢어발겼다.
“…….”
홍연화는 기대도 안 했다는 기색으로 자연스럽게 채찍을 회수했다.
반으로 줄어들었던 용암 채찍을 바닥에 가볍게 휘두르자 길이가 원상 복구되었다.
– 휘리릭!
재차 당규영을 공격해 들어간다.
당규영은 두 번은 안 통한다는 듯 마력을 그러모은 손으로 탁 쳐 냈다.
홍연화가 세 번째로 공격하기 전에 그림자 나비의 역공이 들어왔다.
힘없이 팔랑거리는 모습과 곡선을 그리는 동선을 보고 착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속도가 엄청나다.
지금처럼 아차 하는 순간 코앞까지 날아오고 만다.
“윽……!”
홍연화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채찍으로 그림자 나비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나비는 이리저리 잘도 팔랑거리며 유유히 채찍을 피해 냈다.
홍연화는 가느다란 채찍으로는 어렵겠다 싶었는지 재빨리 다음 주문으로 넘어갔다.
보다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쪽으로.
용암 채찍이 커다란 화염으로 변해 전방을 불태우고, 동시에 그림자 나비에서 한 움큼의 그림자가 뿜어져 나와 충돌했다.
– 펑!
그러나 당규영이 소환했던 그림자 나비는 두 마리.
두 번째 나비는 여전히 바짝 따라붙는 중이다.
게다가 언제 소환했는지 한 마리가 뒤따라오고 있어 날아다니는 나비의 수는 여전히 둘.
나는 연신 뒷걸음질 치는 홍연화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완전히 말려들었는데.’
홍연화가 눈앞의 나비를 피하는 데만 급급해서 잊고 있는 사실.
그림자 술사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가장 쉬운 대상은?
바로 그림자다.
그렇다면 그림자 술사를 상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곳은?
‘발밑이지.’
“……!”
홍연화가 멈칫하더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래에서 솟아오른 그림자 손이 다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힘주어 떨쳐 내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사이 시시각각 접근해 오는 나비 두 마리.
홍연화가 다급히 불덩이를 쏘아 냈다.
– 펑!
한 마리는 어떻게 태워 버렸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커다란 그림자 주먹으로 변해서 홍연화를 강타했다.
– 퍼억!
둔탁한 소리와는 달리, 홍연화의 몸이 부드럽게 뒤로 날아가 사뿐 내려앉았다.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낸다.
굳이 따지자면 고마운 쪽에 가까웠는데, 얻어맞는 순간 [윈드포스]로 충격을 줄여 줘서 그렇다.
나는 계속해 보라는 의미로 턱을 까딱였다.
“…….”
홍연화는 계속 고마워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자세를 잡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쯤 외우다 말고 땅을 걷어차 자리를 벗어난다.
다음 순간 그림자 손아귀가 빈 곳을 잡아챈다.
한번 당하고 난 뒤로는 발밑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핵심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놀리는 것.
‘여기까지는 좋고.’
그렇게 계속 기동성을 유지하면서 홍연화가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플레임 애로우]– 화르륵!
완드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활 모양을 형성했다.
쫓아오는 나비와 발목을 잡아채려는 손아귀들을 피해 달리며, 당규영을 조준하고 시위를 놓았다.
– 피잉!
당규영은 계속 그 자리에 팔짱을 낀 상태.
대신 근처를 날아다니던 그림자 나비가 열심히 팔랑거리며 불화살 앞으로 날아들었다.
– 펑!
제법 커다란 화염 폭발이 일었다.
폭발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쇄도했다.
이것 역시 그림자 나비가 몸으로 막았지만, 또 세 번째가 날아온다.
‘이런 거 보면 유망주가 맞기는 해.’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화살 하나 만들 때마다 한참씩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홍연화는 거의 활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에 다음 불화살이 완성된다.
그림자 나비가 보충되는 속도보다 화살을 연사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결국 몇몇 개가 방어를 뚫고 당규영에게 직접 쏘아져 들어왔고, 마침내 당규영은 팔짱을 풀더니 귀찮다는 것처럼 팔을 휘저어 불화살을 걷어 냈다.
홍연화는 일정 거리를 두고 원 모양으로 겉돌면서 계속 불화살을 쏘아 보냈다.
‘의도는 알 것 같은데…….’
아마 원거리 견제를 하다가 틈이 보이면 들어가려는 심산일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두 사람의 역량 차이가 너무 커서 좀처럼 빈틈이 나오질 않는다는 점.
당규영은 또 불화살 하나를 걷어 내고,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하는지 홍연화에게 물었다.
“언제 들어올 거야?”
기껏 핸디캡도 여럿 걸어 줬는데, 떼라는 스티커는 안 떼고 멀찍이서 마법만 쏘고 있으니.
그럼에도 홍연화가 가까이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자, 당규영이 처음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안 오면 내가 간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빠르면서도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도둑걸음에 그림자 술사 특유의 보법이 더해진 결과다.
랭크는 팔찌의 제한을 받았어도 둘 다 C급.
홍연화 역시 오버히트로 육체 능력을 강화하기는 했으나 C급 이동기술 둘에 비하면 손색이 있어서,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 버렸다.
그림자 술사의 특징 하나 더.
가까운 그림자일수록 영향을 더 빠르고, 강하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홍연화가 멀찍이서 도망 다닐 때야 손아귀로 잡는 게 한 박자 느렸지만, 지금은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
당규영이 허공에 주먹을 뻗자, 발밑의 그림자가 불쑥 커다란 주먹을 만들어 홍연화를 강타했다.
홍연화가 황급히 불로 장벽을 만들어 막아 냈으나, 뒤이어 커다란 발이 재차 장벽을 뻥 걷어찼다.
장벽이 흩어지고 충격을 입은 홍연화가 비틀거렸다.
이번에는 홍연화의 양옆에서 곧게 편 그림자 손바닥이 하나씩 솟아오르더니 손뼉을 치듯 마주쳐 가까워져 갔다.
– 짝!
“악!”
홍연화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그림자 박수에 끼기 직전 내가 윈드포스로 확 잡아당긴 탓이다.
상황이 급박했던 만큼 거칠게 잡아당겼기에 바닥을 여러 번 데굴데굴 구르고서야 멈추었다.
홍연화는 순간 성질이 뻗쳤는지 일어나면서 내 쪽으로 왁! 소리를 지르다가,
“살!!! ……살살 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다시 머리가 차갑게 식는지 급격히 볼륨을 줄였다.
내가 방금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을까 연신 눈알을 굴리지만,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러면 끝난 것 같은데.’
이번 도전에서 홍연화가 스티커를 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면 될 것 같다.
그럼 이왕 불가능한 김에.
“근접전 해 봐.”
“……?”
홍연화의 낯빛이 불가사의하게 물들었다.
여태까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는데 근접전을 하라고?
반면 당규영은 내 제안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좋은 생각이야. 질 땐 지더라도 시도는 해 봐야지.”
이제 홍연화는 조금 억울해 보였다.
표정을 해석해 보면 대충 이렇다.
– 여태까지 피 터지게 싸운 건 난데 왜 쟤가 칭찬을 받아?
그러나 이내 뭐 어쩌랴 싶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고, 마음을 다잡고 투지로 눈빛을 번뜩인다.
이번에는 홍연화가 마법을 시전하는 시간이 길었다.
캐스팅 속도로는 여태까지 봐 온 마법사 중 제일 빠른 홍연화가 저렇게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제법 고위 마법일 것이다.
[오버히트]로 증가하는 육체 능력은 흡수하는 화염 마법의 위력에 비례한다.그러니 최대한 강력한 것을 흡수해 육체 능력을 배가시키겠다는 의도다.
이내 홍연화의 온몸에서 선명한 불길이 타올랐다.
후, 하고 심호흡을 하곤, 곧장 땅을 박찼다.
당규영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홍연화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바로 앞까지 근접한 홍연화가 주먹을 휘두르는 척하더니, 당규영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이 대인전에서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스티커를 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다.
‘당규영의 근접 공격을 막거나 흘리면서’라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홍연화의 공격은 오버히트로 강화되어 분명 엄청나게 빨라졌다.
다만 여전히 아쉽게도, 동선이 단순해서 예측하기 쉬웠다.
산전수전 다 겪은 3학년이 그걸 예측하지 못할까.
당규영이 홍연화의 손목을 붙잡고 확 잡아당기자 균형이 흐트러졌다.
빠르게 자세를 고치고 다시 손을 뻗는다.
스티커에 겨우 닿나 싶은 순간, 당규영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홍연화의 등 뒤로 이동했다.
툭 밀자 볼썽사납게 바닥에 엎어지는 홍연화.
“헉.”
짜증 날 틈도 없었다.
홍연화가 기함하더니 급하게 몸을 옆으로 데굴 굴렸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몇 바퀴를 추가로 구른다.
그 자리를 커다란 그림자 주먹이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 쿵! 쿵! 쿵!
겨우 몸을 일으켰더니 코앞에 당규영이 쇄도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는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웠다.
‘쟤도 갈 길이 멀구만.’
나는 신나게 뻥뻥 걷어차는 당규영과 공이 되어 굴러다니는 홍연화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다.
저렇게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하는 상태로 정신없이 얻어터지기만 하면, 배우기는커녕 트라우마만 깊어질 테니까.
두 사람에게 다가간 다음, 사이에 쏙 끼어들며 손을 내밀었다.
당규영이 탁 쳐 내려는 순간 손이 휙 뒤집히며 당규영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당규영은 굳이 빼려고 들지 않고 오히려 가까이 붙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반대쪽 손에 윈드포스를 그러모아 응수했다.
주먹과 손바닥이 충돌하고,
– 팡!
바람 터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서로 일정 거리 떨어졌다.
그사이 홍연화는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추스른 상태였다.
홍연화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하지.”
그러면서 순간이동 마법진으로 가볍게 눈짓했다.
나가 있으라는 뜻.
홍연화가 소심하게 반항해 봤지만,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홍연화 본인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규영을 상대로 갖은 수단을 써 봤지만 상대도 안 됐고, 그마저도 내가 위급한 상황에 세 번이나 도와준 덕에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거니까.
2인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홍연화가 두 명으로 늘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힘을 합쳤으면 가능이야 했겠지만, 결국 자신은 짐만 됐으리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알았어…….”
결국 홍연화가 터덜터덜 경기장 밖으로 나가고, 당규영과 나 둘만이 남았다.
당규영이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우리 후배님 실력 좀 볼까?”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