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in Another World Player RAW novel - Chapter 84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084화
나 홀로 이세계 플레이어 ― 84화
#헤이나의 노력
“하아… 하아…….”
뜨거운 숨을 내뱉은 헤이나가 질린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바르밀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피는 왼쪽 뺨을 적시고 있었다.
격한 호흡을 이어가던 헤이나가 두 손으로 양 무릎을 짚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머리칼은 산발이 되었다.
바르밀가는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호기롭게 나섰던 그의 수하들이 차가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물론 상대도 온전치 못했지만 자신과 수하들을 상대로 이 같은 전황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그러니 바르밀가로서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하다.”
바르밀가는 헤이나의 강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못했다.
자신은 곰 부족 최고의 전사. 그리고 이곳에 있는 곰 부족 전사들은 그런 바르밀가가 손수 키워낸 전사들이었다.
모두가 발을 딛고 설 수 있다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전투를 할 수 있는 강인한 전사들이었다.
쿵!
바르밀가가 대지를 밟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곰 부족 전사들도 다시 삼엄한 기세를 드러내며 그녀를 포위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함부로 그녀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아무리 지치고 상처가 늘었다곤 하나, 이미 헤이나의 실력을 눈앞에서 본 그들로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질척거리는 남자는 딱 질색인데.”
헤이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체를 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내색하진 않았다.
헤이나의 두 눈이 다시금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세가 달라지자 곰 부족 전사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헤이나와 바르밀가, 곰 부족 전사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그때 먼저 움직인 것은 곰 부족 전사들 쪽이었다. 그들은 헤이나의 양측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헤이나는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 그녀의 투기가 다시금 두 팔과 다리를 감싸 안았다.
파방! 파앙!!
양측에서 거의 동시에 타격음이 울렸다.
턱이 돌아간 곰 부족 전사가 힘없이 쓰러졌다. 가슴을 가격당한 곰 부족 전사는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그는 한껏 치켜든 돌도끼를 수직으로 내려쳤다. 헤이나는 빠른 움직임으로 그의 팔을 휘어잡았다.
휘릭―!
그녀는 곰 부족 전사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다른 방향으로 그를 날려버렸다.
“우어!”
“우루후!!”
곰 부족 전사들은 멈추지 않고 헤이나를 공격해 들어왔다.
퍼억! 퍼벙!!
헤이나의 주먹이 그들의 몸을 때릴 때마다 강렬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곰 부족 전사들은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 없었다.
파앙!
곰 부족 전사 중 한 명이 이마로 헤이나의 주먹을 막아버렸다.
그리곤 굳센 두 팔을 이용해 헤이나의 팔을 붙잡아버렸다.
“감히 어디에 손을 대?”
헤이나는 괴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내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덥썩.
그때 쓰러져 있던 곰 부족 전사도 헤이나의 발을 감싸 안았다.
헤이나가 그를 뿌리치려는 때 소름끼치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부우웅―!!!
대기를 찢어버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르밀가의 주먹이었다.
바르밀가는 곧바로 몸을 회전시켰다. 그의 양 팔에 선명한 핏줄이 솟아올랐다.
“우라아!!”
힘껏 고성을 내지른 바르밀가가 계속해서 이번엔 등주먹을 날렸다.
헤이나는 침착하게 바르밀가의 공격들을 피해내었다.
주먹 하나하나에 실린 힘은 헤이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강했다.
다행인 점은 헤이나가 보고 피할 수 있을 만큼 바르밀가의 공격은 빠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르밀가의 일격 하나 하나 모두 무섭도록 위협적이었다.
후웅!!
그때 헤이나를 향해 검이 날아들었다.
측면에서 이어진 공격에 헤이나도 순간 대처가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억지로 몸을 비틀며 검날을 피해내자 큼지막한 주먹이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드디어 잡았다.”
콰앙!!
헤이나는 빠르게 두 팔을 들어 올려 바르밀가의 큼지막한 주먹을 막았다.
강한 힘이 실린 일격 덕에 팔목에서 저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어 주먹을 한껏 당긴 바르밀가가 헤이나를 향해 힘껏 내질렀다.
헤이나도 이번엔 정공법을 선택했다.
후르릉―!!
거친 투기가 헤이나의 주먹을 감쌌다. 그녀도 바르밀가를 향해 주먹을 마주 내질렀다.
투쾅!!
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하자 강렬한 충격파가 일었다.
“쿡!”
“으윽……!”
바르밀가가 뒤틀린 팔을 부여잡았다.
헤이나는 입에서 피를 쏟고 말았다.
“너무 무리했나…….”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헤이나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리자 그들도 기회는 이때라고 여겼는지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그때 주변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저벅저벅.
“이건 좋지 않은데…….”
그녀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적들의 모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바르밀가도 여전한 살기를 드러내며 그녀의 앞에 섰다.
헤이나는 바르밀가와 곰 부족 전사들 뒤편으로 나타난 자들을 살폈다.
“하르스마이어의 부하들인가…….”
상황은 절망적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가니카스가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하르스마이어의 부하들이 설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그녀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이거이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이곳에 있었네?”
그들을 이끌고 온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내의 얼굴은 헤이나에게도 익숙했다.
“도그로나드?”
그는 다름 아닌 일전에 칼라반과 서열 전을 치렀던 도그로나드였다.
도그로나드는 곰 부족과의 치열한 전투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헤이나의 모습에 흡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라그나로크에서도 도도한 투사로 불리던 헤이나 네가 그런 꼴을 하고 있을 줄이야.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야.”
작금의 헤이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지쳐 보이는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곰 부족과의 전투로 부상까지 입었으니 이는 도그로나드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후후… 네 년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운이 좋았군. 이곳에서 너를 죽이고 하이데에게 돌아가겠다.”
“아유… 아무리 내가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하지만, 설마 너 따위를 못 이기겠어?”
그러나 말과 다르게 헤이나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곰 부족 전사들만으로도 벅찬데 도그로나드와 수하들의 등장은 크나큰 변수였다.
“하아… 이건 좀 미치겠네…….”
그녀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곰 부족 전사들과의 전투로 투기도 상당히 바닥나 있는 상태였다. 두 팔은 작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다리는 버티고 서 있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바르밀가가 다시금 살기를 드러내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 않나? 질척거리는 남자는 질색이라니까.”
헤이나가 다시 자세를 낮게 고쳐 잡았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바르밀가의 외침과 함께 곰 부족 전사들이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헤이나도 이를 악물고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 그들의 사이로 빠르게 난입했다.
그는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곰 부족 전사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곰 부족 전사들이 흘리는 붉은 핏물이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뭐…뭐야……?”
헤이나는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사내에 한시름 놓으면서도 휘둥그레진 눈을 했다.
은빛 머리칼의 사내를 본 바르밀가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지고 있었다.
“세키라드!!!!”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밀가가 잔뜩 흥분하여 세키라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곰 부족 전사들도 바르밀가를 따라 세키라드를 먼저 노렸다. 그들은 세키라드가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키라드는 한 마리의 늑대처럼 전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곰 부족 전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헤이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의 주인이 누군지는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찮나.”
“죽을래? 너무 늦었잖아!”
“미안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아아, 됐어. 어쨌건 무사했으니 다행이네. 네가 호수에 빨려 들어갔을 때는 나도 진…….”
스륵.
칼라반의 손이 헤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상처투성이가 된 헤이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만 봐도 그녀가 곰 부족 전사들을 상대로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짐작이 되었다.
“고생했다. 그리고 걱정시켜 미안하다.”
“야… 이건 반칙인데…….”
헤이나는 뜨거워지는 귓불을 매만지며 칼라반을 올려다보았다.
살짝 젖은 머리칼에 날렵한 턱선. 우뚝 솟은 콧날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갑자기 칼라반의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있으니 어딘가 바뀐 분위기였다.
‘조금 더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랄까… 아냐, 더 어두워져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뭐지……?’
잠시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헤이나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다시 나서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쉬고 있어라.”
“나도 그러고 싶은데, 보다시피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잖아?”
헤이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세키라드가 바르밀가와 곰 부족 전사들을 상대한다 해도, 도그로나드가 데려온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만 얼추 150명은 넘어보였다.
칼라반 혼자 저들을 모두 상대하는 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리를 해서라도 칼라반을 도우려 했다.
도그로나드도 갑자기 나타난 칼라반의 등장에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저 자식이 어떻게 여기에……!”
그는 칼라반에게 당했던 수모를 기억했다.
그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놓고 비웃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나 하이데의 눈 밖에 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이데는 그날 이후 도그로나드에 대한 기대를 일절 거두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일에도 자청해서 나섰던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하이데의 기대를 다시 돌리기 위한 도그로나드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칼라반을 만나게 되었다. 도그로나드는 이내 흘러나오는 미소를 어쩌지 못했다.
“하늘이 나를 저버리시진 않는가보구나. 나에게 다시 이런 기회를 주다니……!”
그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띠며 대지의 정령들을 소환했다.
칼라반은 그런 도그로나드와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하르스마이어의 수하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헤이나가 칼라반과 마주섰다.
“내가 절반 맡을 테니까, 나머지 절반 정도는 네가 맡아. 할 수 있겠지?”
“헤이나.”
“왜?”
칼라반과 헤이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헤이나는 괜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네게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뭐…뭐야…! 가…감동이라도 받은 거라면… 뭐냐, 지금은 그, 분위기가 조금 그러니까…….”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칼라반의 모습에 헤이나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녀를 뒤로하고 칼라반이 앞으로 나섰다. 헤이나는 시선에 칼라반의 널찍한 등이 보였다.
“나에 대해 궁금하다고 했지.”
“그…그랬지……?”
“지금부터 보여주마.”
칼라반이 슬쩍 고개를 돌려 헤이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헤이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헤이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돋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