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혼탁한 창룡장(蒼龍莊)
유등의 심지를 조심스레 돋우어서 불을 새로 밝혔다. 불빛은 한결 밝았다. 창밖을 보니, 날은 아직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감위당 부당주, 상관전소는 굳은 얼굴을 어찌하지 못했다.
‘이 사나운 운수라니.’
아니, 사나운 정도가 아니라 봉변에 가깝다. 그러나 내내 운수를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실내는 조용했다. 수하들을 모두 물린 참이었다.
이곳 감위당은 본래 창룡장의 수비와 허창 일대의 치안에 일익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무력은 몰라도 속한 인원만큼은 등용문에서 제일 큰 곳이 감위당이었다.
지금 일이 크게 터지는 통에 주력들이 허창 곳곳으로 빠져나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상관전소는 일그러지려는 미간을 애써 붙잡고는 흘깃 고개를 들었다.
유등의 건너편에서 소명과 위지백이 그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 젠장!’
상관전소는 둘의 눈길이 부담스러워서는 욕지거리를 한 번 짓씹었다. 그는 두 사람 앞에서 어떻게 말을 시작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을 주저했다.
일문의 흉사(凶事)라, 꺼내기 쉬운 말이 아니다.
소명은 딱히 재촉하지 않았고, 위지백은 그저 지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둘의 눈길은 상관전소를 점점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내뱉듯이 말을 꺼냈다.
“아, 암습이 있었소. 사흘 전의 일이오.”
소명과 위지백은 앞뒤 없이 내뱉은 말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진 상관전소의 설명에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문주의 후계자가 암습을 당하였으며, 또한 문주의 여식이 납거를 당하였단다. 그런 흉한 일이 있었다니, 전시를 앞에 둔 것인 양 긴장하고 있는 등용문의 모습을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소명은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짓을 벌인 흉수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호충인이란다. 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그 고지식한 인사가 암습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호충인이 했느냐, 안 했느냐를 떠나 과연 그런 짓을 할 만한 주변머리가 있던가. 암습씩이나 생각할 머리가 있었다면 등용문의 구도는 바뀌어도 진즉에 바뀌었을 터였다.
소명은 내심 쓴웃음을 머금었다.
문득 옆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큭,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위지백이 싸늘하게 반응했다. 짐짓 지루해하던 표정은 간데없었다. 일순 낯빛을 돌변하여 상관전소를 직시했다. 그렇지 않아도 좌불안석인 판인데, 위지백의 서슬 퍼런 눈길에 그는 체통이고 뭐고 다 잊고 움츠러들었다.
“왜, 왜 그러시오?”
“이봐, 부당주 나리. 주먹과 칼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법이야. 거짓을 담는 것은 오직 입뿐이란 말이지.”
목소리는 평소처럼 가벼운 어조이나, 그의 눈빛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상관전소는 위지백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눈빛에 짓눌려서는 입만 뻐끔거렸다.
소명은 내심 쓰게 웃었다. 그는 위지백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주먹과 칼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짧은 겨룸일지언정, 위지백은 호충인과 손속을 겨룬 바가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호충인은 결코 소인배가 아니다.
종종 잊게 만들고는 하지만, 이 사내는 칼 한 자루로써 서장 일 만여 리를 제패한 사내였다. 불편한 심사를 기세로써 드러내니, 그것만으로도 성관전소는 크게 움츠러들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아, 아니. 그리 말해도.’
그는 울상을 한 채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증인이 있고, 증좌가 있는 판국이다.
칼과 주먹이 어쩌고 하는 말은 그의 입장에서 보기에 억지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왜 엄한 사람에게 성질이란 말인가. 상관전소는 억울할 따름이다. 그러나 위지백의 눈이 무서워 불만을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때, 소명은 눈을 감고 조용했다.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곳은 후영각, 규수의 처소로 기억에 있는 곳이었다.
그곳 후원에서 연못을 조성하는 일을 거들지 않았던가. 그곳으로 호충인이 들어섰다. 그가 후영각을 찾을 이유는 너무도 자명했다.
기원원, 백의선영이라 불리는 그녀.
호충인의 연인이며 또한 등용문의 공녀 문혜선의 스승이자 수신호위이기도 했다.
소명은 퍼뜩 눈을 떴다. 그는 바로 상관전소를 직시했다.
“뭐, 뭡니까…… 요?”
한층 깊어진 그의 눈길에 상관전소는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래 놓고는 스스로 이상하게 여겼다.
위지백처럼 기세를 드러낸 것도 아니건만 그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이토록 움츠러들다니. 떠듬거리며 눈치를 보는데, 소명이 물었다.
“기 선고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기, 기 선고? 그분을 아시오?”
상관전소는 의아해 되물었다. 그녀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소명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만나야겠소.”
“예에? 하, 하지만.”
상관전소는 돌연한 요구에 화들짝 놀랐다. 백의선영을 만나야겠다니,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라던가. 놀라 말을 잃을 새, 소명은 상관전소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길이 천근의 무게로 짓눌러 왔다. 겁박을 하여도 이렇게 당당하게 겁박을 하다니.
상관전소는 어이없는 눈으로 소명과 위지백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눈길이 묵직한 것은 알겠지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 있지 않은가.
“저, 이보시오. 그, 그것은.”
상관전소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그의 말문을 막았다.
턱, 턱, 턱.
위지백이 다탁의 모서리를 툭툭 때리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의 손이 스칠 때마다 나무 조각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맨손으로 오동의 목재를 깎아 내는 것이다. 위지백은 그러면서 심드렁한 눈으로 상관전소를 바라보았다.
상관전소는 막 하려던 말을 꼴깍 삼키고, 다시 말했다.
“아, 알겠소.”
내당의 심처 후영각. 기원원이 있는 곳이었다. 여인의 규방이니, 외인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건만, 소명은 거리낌 없이 그곳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인사불성의 상태로 기식이 엄엄한 까닭이었다.
후영각의 후미진 곳에 자리한 규방, 소명은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단 휘장을 길게 드리운 침상에 그녀가 누워 있었다.
백의선영 기원원.
흐린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걸친 백의보다 창백했다. 방 안에는 온갖 약재와 옅은 피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듣기로 정신을 잃은 것이 벌써 오 주야라 하였다.
내상이 가볍지 않은데, 허창의 이름 높은 의원들은 물론이거니와 등용문의 내놓으라 하는 고수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녀의 내공은 독특한 것이라 등용문의 기반이 되는 소림파의 강맹한 내공기력으로는 그녀의 내상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아니, 악화시키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결국 지금에는 일체의 손을 놓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소명의 눈길은 어두웠다.
그 무위가 절정에 이른 기원원이다. 누가 있어 그녀를 이런 빈사지경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등용문 사람들은 호충인의 짓이라 말하나, 소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아니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호충인 또한 절정의 고수임은 분명하나, 기원원을 이렇게 상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호충인의 친구이기에 내린 판단이 아니었다. 지금의 소명은 어느 때보다 냉철한 눈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원원을 상하게 한 것은 소림파의 공력이 아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명은 기원원의 모습을 흘깃 보고는 다른 말없이 자리를 피했다. 비록 그녀의 깬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호충인의 결백을 확인하였으니, 당장은 충분했다.
소리 없이 후영각의 후원으로 나왔다. 정원 담장에 위지백이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소명의 모습을 보고는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뭔가 우스운 꼴을 보기라도 한 듯 묘한 웃음이었다. 소명은 그 모습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한쪽 눈가를 찡그리는데, 다른 의미가 있는 눈치라. 위지백은 당장 알아보고는 짦은 웃음을 머금었다.
‘하긴, 저놈이 모를 리 없지.’
같이 넘겨 온 수라장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에 감시의 눈길들이 참 알차게도 숨어 있다.
후영각을 보는 눈길을 총 열다섯, 개중 서넛은 자질이 떨어지는지,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나머지 열두엇은 나름 숨기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소명과 위지백에게는 그저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데, 소명은 새삼스레 눈가에 날을 세웠다.
어찌하여 열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후영각에 은신하고 있단 말인가. 대공녀의 납거로 인해 주인 없는 후영각이다. 인사불성의 기원원과 몇몇 시비들이 전부일진대. 결국 목적은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명은 다른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위지백 역시 묘한 얼굴을 한 채 그 뒤를 따랐다.
후영각 뒷문, 상관전소가 불안한 모습으로 있었다. 언제쯤 두 사람이 나올지 몰라 기웃거리는데, 차마 들어설 간담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당의 부당주라는 사람이 보일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전소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감위당의 부당주는 모두 다섯이었고 상관전소는 그들 중 말석을 겨우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감위당의 정무사들은 고사하고, 외곽 위사들이나 겨우 통솔하는 것이 그의 처지였다.
지금만 하여도 감위당의 모든 인원이 허창을 통제한다고 자리를 비운 판국이다. 이때에 부당주라는 인사가 혼자 남아 빈집을 지키고 있으니.
이름만 겨우 부당주인 그가 소명과 위지백, 두 사람을 내전 심처까지 들인 것은 실로 큰 부담을 무릅쓴 일이라. 가슴 졸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나오니, 상관전소는 그제야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고,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의 고생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관 부당주.”
“예.”
“미안하지만, 좀 더 신세를 져야겠소.”
“예에에?”
소명이 태연하게 말하니, 상관전소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속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웃으면서 빤히 보는 소명과 위지백의 눈길에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크게 벌린 입술이 꿈틀거리며 경련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못해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 그럼, 가시지…… 요.”
입매는 웃는데, 눈은 울고 있다. 고생길은 이제 시작이었다.
상관전소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방을 마련했다.
‘아니, 무슨 요구사항이 그리도 많은지.’
마련하면서도 절로 불평이 나오는 것이, 너무 넓어도 아니 되고, 좁아도 아니 되며, 눈에 띄지 않는 곳이란다. 그냥 무사들의 처소 하나 내주면 좋을 것을.
찾다 찾다 결국 감위당에 딸린 창고 방을 하나 비웠다. 먼지를 치우고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영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소명이나, 위지백이나 딱히 개의치 않아 했다.
다만, 한 가지.
위지백이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상관전소는 그 모습이 영 불편했다. 마치 방이 왜 이 모양이냐고 타박하는 듯하니. 그는 참다못해 물었다.
“저, 저 대체 왜 그리 두리번거리십니까?”
“응? 아아, 죽일 놈들이 자꾸 하루살이처럼 오가서 그러지.”
“주, 죽일 놈? 하루살이?”
상관전소로서는 모를 말이었다. 무슨 허튼 소리인가 싶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소명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알아 좋을 것 없는 말입니다.”
“엇, 그, 그렇습니까?”
차분한 소명의 말에는 기이한 무게가 있어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주춤하며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그, 그럼 쉬십시오.”
“감사하오, 상관 부당주.”
“아, 아닙니다. 그, 그저…….”
상관전소는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차마 말을 다하지 못하는 기색을 소명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아울러 결코 상관 부당주에게 폐가 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허, 허험. 예, 예.”
내심을 읽힌 것이 부끄러웠던지, 상관전소는 헛기침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하는데, 문득 위지백이 그를 멈춰 세웠다.
“잠깐.”
“끅!”
상관전소는 심장 내려앉는 소리를 내고는 겨우 눈동자를 굴렸다.
“어, 어인 일이신지.”
“거, 정문을 지키는 위사 중에 어린놈 하나 있지.”
“어린놈이요? 어린놈이라면.”
상관전소는 기억을 헤집는지 눈동자를 가만히 굴렸다. 보통 부당주 씩이나 되는 이가 정문 위사의 이름을 어찌 다 알까만,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영. 도기영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금년 나이가 열여덟인 자이지요.”
“그놈한테 내 칼 챙겨 들고 오라고 좀 전해 주게.”
“칼을요?”
“왜, 안 된다고 할 참인가?”
위지백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상관전소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마구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요. 당장 그리 전하겠습니다.”
“꼭 그놈이 혼자 해야 하네.”
“예, 예!”
칼 하나 챙기는 것이 무어 대수라고 강조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상관전소는 묻기보다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소명과 위지백, 이 둘에게서 한시라도 바삐 떨어지고 싶은 마음뿐이다.
문밖에서 우당탕하더니, 곧 아이고 앓는 소리가 들렸다. 엄벙덤벙하더니 고만 나자빠진 모양이다. 위지백은 피식 웃고는 냅다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누구 덕분에 하루가 아주 격하고만.”
한껏 사지를 쭉쭉 펼치는데, 소명이 말했다.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네놈이 칼을 다 맡기고.”
“응? 아아.”
소명의 말에 위지백은 싱글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정을 두기는 했지만, 칼을 놓치지 않더라고. 그 정도면 좀 두들겨 볼 만하잖냐.”
“네놈이 두들겨서 버티면 기연인데, 못 버티면 악연이니까 문제 아니냐.”
“그건 제 팔자고. 흐하하하.”
위지백은 냉큼 대꾸하고는 껄껄 웃었다. 소명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못 버티면 악연이라. 그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사정을 익히 아는 바라.
소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젊은 청춘이 잘 버텨 주기를 바랄 뿐이다. 확실히 버티면 기연인 까닭이다.
* * *
밤이 깊었다. 창고 안은 그냥 조용했다. 소명도 위지백도 말이 없었다. 그들은 각기 편한 모습으로 쉬고 있었다. 위지백은 팔베개를 한 채 드러누웠고, 소명은 좌정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밝힌 유등이 소리 없이 타들어 갔다. 흐린 불빛이 일렁이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벽에 남겼다.
문득 위지백이 눈 감은 채 말했다.
“하루살이 놈들이 죄 물러갔고만.”
후영각에서 따라붙은 눈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열다섯이었던 것들 중에서 서넛이 달라붙어 있다가 촌각 전에 모두 물러갔다. 소명과 위지백에게 다른 움직임이 없으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소명은 담담하게 말했다.
“다행이지, 괜히 손쓸 필요도 없으니.”
“사방으로 흩어지는 걸 보니, 한두 군데에서 보낸 게 아닌데.”
위지백은 부스럭 몸을 일으켜 앉았다. 슬쩍 눈살을 찌푸린 얼굴에 마땅찮은 기색이 고스란했다. 소명은 피식 웃으며 눈을 떴다. 그는 일전에 등용문을 찾았을 때를 기억했다. 그때에도 호충인을 감시하는 자들이 서넛 있었는데, 그들도 서로 계통이 다른 자들이었다.
소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동네가 좀 복잡하더라고.”
“콩가루 집안이구만. 이래서야 어디 일문이라고 할 수 있나.”
위지백은 구시렁거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소명도 다른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밖으로 나섰다. 밤하늘에 구름이 짙었다.
소명과 위지백은 서로 흘깃 보고는 다른 말없이 좌우로 흩어졌다. 소명은 소명대로, 위지백은 또 위지백대로. 두 사람은 따로 움직였다.
창룡장은 방대하기 그지없었지만 소명이나, 위지백이나 헤맬 사람들은 아니었다. 지표 하나 없는 대초원이나 사막에서도 잘만 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