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사천련(四川聯)
마도(魔道), 마교(魔敎). 그 이름이 드디어 나왔다.
알음알음 알려지고, 혹자는 의심하기는 하였지만,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만인 앞에서, 당가주가 한 말이었다.
침묵이 무겁게 고였다.
숨죽이고서, 당가주를 보고, 또 아미와 청성의 두 장문인을 향해서 혼란한 눈을 던졌다. 두 고인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중원에서도 마도가 발호하여서 곳곳에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천에서는 홍천교의 일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또한 결국 마도의 주구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당혹과 두려움은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사천 무림의 자존심에 그만 불길이 치솟았다.
“마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붉은 얼굴로 들떴던 젊은 문주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옳소! 옳은 말이오!”
“가주, 그리고 두 장문인께서도 직접 나선 마당이오. 우리 또한 사천무림의 한 사람. 어찌 마다할까!”
“당장, 세를 모아. 마도를 쳐야 합니다!”
홍천교의 만행에 치를 떨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마도의 수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것은 분노가 되어서 뜨거운 열기로 몰아쳤다.
* * *
바짝 말라버린 얼굴이 검게 타들어 갔다. 숨소리는 힘겹게라도 이어지고 있었다.
죽은 자는 아니었지만, 죽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한때에 사천 제일 기남(奇男)이라고까지 하였던 풍양자였다. 항시 웃는 낯으로 도사치고는 과하게 잘생긴 얼굴이 이렇게나 상해 버렸다.
흐으, 흐으…… 고통이 뒤섞인 신음이 간신히 흘렀다.
약곡전(藥谷殿), 당가의 의당이다. 그중에서도 따로 마련한 격리실에 풍양자를 비롯한 여러 환자가 드러누워 있었다.
이들을 격리한 것은 용태가 원체 위태하기도 하였지만, 밖으로 알려지기에는 아직 시기가 일렀기 때문이다.
풍양자의 검은 얼굴에 송글송글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하얀 면포로 코와 입을 가린 당진령이 다가와서 그 얼굴을 조심스럽게 찍어냈다.
당진령의 얼굴에 수심이 역력했다.
“상태가 어떠하냐?”
물끄러미 지켜보던 당민이 물었다. 당진령은 후우, 한숨과 함께 허리를 세웠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풍양자의 땀을 닦은 수건을 바로 버렸다. 독이 배어 나와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묻어버리든가, 태워버려야 했다.
당진령은 그리고 당민 옆에 섰다. 당민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녹피로 만든 머릿수건으로 머리를 가렸고, 입 주변은 굵은 면포로 가렸다. 녹피 앞치마에, 녹피장갑까지. 단단히 채비를 갖춘 모습이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내공이 약한 자는 아예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독과 마기에 동시에 당하였어요. 독은 어찌 해독했지만, 남은 잔독을 어찌하지는 못하지요. 그리고…… 마기가 문제인데.”
당진령은 고개를 잠시 기울였다. 면포 아래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답답한 속내가 절로 드러났다. 다른 약이나, 외부의 조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풍양자께서는 청성공력으로 마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요.”
“독을 전부 해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말이냐?”
“네.”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묻고 답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팔짱을 끼고서, 풍양자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퍼뜩 의아하여서 당진령을 돌아보았다.
“무슨 독에 당하였다는 게냐?”
“그게…….”
당진령은 잠시 얼버무렸다. 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당민의 한쪽 눈썹이 바짝 솟구쳤다.
“당가의 독이더냐?”
아무리 사연이 있어도, 당가의 독에 청성의 대사형이 당하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당진령은 눈을 한 번 데굴 굴렸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황영접분.”
“이런.”
당민은 쯧, 혀를 찼다. 놀라서 당황했지만, 황영접분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물건이 아니었다. 대단한 극독이라서가 아니었다.
희귀하기 때문이었다.
황영접, 노란 날개를 지닌 나비였다. 본래에는 다른 독을 지닌 나비가 아니었고, 쉽게 볼 수 있는 나비도 아니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황영접을 기를 수 있는 곳도, 그것으로 독을 만들 수 있는 곳도 오직 당가뿐이었다.
황영접분이 비록 조금만 흡입해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의 극독은 아니었다. 인지를 흐리게 하고 다른 독과 같이 썼을 때에는 아예 인성을 파괴할 수도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독이라고 하기보다는 환각제에 가깝다.
당가에서 엄중하게 관리하는 물건인데.
“그럼 바로 조사는 했겠지?”
“조사하고, 말고가 없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독고(毒庫) 하나가 고스란히 털렸어요.”
당진령은 시무룩하여서 대꾸했다. 당민의 얼굴은 더욱 볼만해졌다. 눈을 크게 뜨는 것은 물론이고, 입도 절로 벌어졌다.
“허, 허허.”
헛웃음이 툭툭 끊어지듯이 터졌다.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독고가 털렸다니. 그것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한쪽 팔을 잃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민은 더 묻지 못했다.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오한인지, 당민은 등줄기를 타고서 섬뜩한 기운이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골이 절로 송연했다.
“상황이 사실은 그러해요.”
“…….”
당진령은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본가를 제외하고서, 오방(五方)의 다섯 곳으로 구분하여 둔 독고. 당진령은 그중에서 사천 북방에 있는 현무고(玄武庫)를 잃었다는 것이다.
당민은 내내 말이 없었다. 아미의 반도가 어쩌고 하더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가의 독고가 털렸다니. 실로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당민은 격리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진령은 눈치가 보여서는 입술을 지그시 말아 물고서 머뭇거렸다.
아무리 해맑고, 성격 좋은 당진령이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녹면옥수에게 말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당민이 홱 고개를 돌렸다.
“전서구는 아직도 별원에 있나?”
“네, 별원에서…….”
당민은 답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바로 격리실을 박차면서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서두르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당진령은 쿵쾅거리는 소리에 어깨를 잠시 움찔거렸다.
“아이, 깜짝이야.”
여기 일을 도와줄까 싶었더니.
당진령은 입술을 잠시 삐죽거렸다. 하지만 곧 한숨을 삼켰다. 마냥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앓는 이들의 상태를 더욱 상세하게 살펴야 했다.
당민은 내외당에서도 따로 둔 별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독문당가에서 벌이는 모든 사업에 대해서 관장했다. 재정이나, 운수 등등을 관리하고 감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따로 전서구를 두기도 했다.
전서부, 규모가 상당한 창고에 걸려 있는 문패는 볼품없을 정도로 작았다.
당민은 그곳으로 왈칵 들이닥쳤다. 서두르는 서슬에 놀라서였는지, 창고에 가득 놓인 새장에서 홰치는 소리가 한 번 울렸다.
구구구구!
구구구!
당민은 문가에서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 전서부의 담당자가 깃털을 잔뜩 뒤집어쓴 모습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서구를 쓸 일이면 먼저 별원부에 말씀을 하셔야.”
“갑종 전서응을.”
당민은 절차를 말하는 담당자에게 다른 소리를 했다. 뜬금없다고 할 소리였지만, 담당자의 얼굴이 바로 돌변했다.
“시급한 일입니까?”
“급하오.”
“이쪽으로 오시지요.”
담당자는 들고 있던 비둘기를 바로 내려놓고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민은 바로 뒤따라갔다.
“을종도 아니고, 갑종 전서응이라니. 멀리까지 가야 할 모양입니다.”
“하남으로 보내야 하오. 개봉부.”
“개방 총타입니까? 다행히 보낼 놈이 있긴 하군요.”
안쪽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밖과는 달리 어둑하고 조용했다. 눈가리개를 한 여러 마리의 매가 횃대에 앉아 있었다.
전서구를 쓰기 위해서는 몇몇 절차가 필요했다. 그보다 귀한 전서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갑종 전서응은 얘기가 전혀 달랐다.
실로 큰일이 벌어졌을 때에 서둘러 보내는 것으로, 가문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없었고, 아는 사람은 그것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하게도 당민은 그중 한 명이었다.
당민은 빠르게 몇 줄을 남기고서 담당자에게 건네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말아서, 매의 다리에 달았다. 윤기가 주르륵 흐르고, 사뭇 힘이 넘치는 모습의 젊은 매였다.
“이 녀석이 이전에 개봉을 한 번 다녀왔었지요.”
당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준 것이 이 녀석이었다. 담당자는 뒷문으로 나가서, 매의 눈가리개를 벗겼다.
쏟아지는 빛에 놀랐는지, 노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서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담당자를 돌아보았다. 빼액, 우는 소리가 날카롭다.
“자아, 자아, 이번에도 잘 부탁하마.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담당자는 애정을 담뿍 담아서 속삭이고는 주머니에서 시뻘건 살점을 하나 꺼내었다. 매는 노란 눈을 한 번 굴리더니, 살점을 당장 물어 삼켰다. 그러고는 바로 담당자의 어깨를 박차고서 훌쩍 날아올랐다.
매는 허공을 한 번 크게 맴돌았다가, 바로 날았다.
빼액!
매 울음소리가 한 번 높이 울렸다. 당민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매는 점이 되어서 사라져 버렸지만, 이후로도 당민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당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입술을 질끈 물었다.
상황이 급했다.
이청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부랴부랴 사천련의 움직임이 한층 분주해지는 참이었다. 따로 이청이 나설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외인은 분명하였고, 사천 사람이 아니니, 부외자라고도 할 수 있다.
아니, 그런 전후 사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천무림이 모두 바라보는 녹면옥수와 함께 왔다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였다. 쏘아보는 눈초리에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적의와 경계가 더욱 솔직하게 어려 있었다.
“흠.”
여러 손님을 모시고서, 그들을 위한 자리라고 마련한 전각, 그곳에서 이청은 혼자 동떨어진 채,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서는 주변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일부로 그러는 것처럼, 이청을 중심으로 자리가 제법 비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끼리 모여서 수군거렸다. 개중에는 사천 무림의 현 상황에 대해서 성토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도 있었지만, 이청에 대한 적의를 발하는 자가 대다수였다.
그중에는 여인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저자가 감히…….”
눈빛이 날카롭다. 녹면옥수를 아끼는 자들은 굳이 남녀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여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파가 짜릿하다고 할 정도였다.
다른 곳이라면 분명 사달이 일어났어도 단단히 일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가 독문당가였고, 모두가 당가의 손님이니 망정이다.
“크흠, 가시방석이 따로 없군.”
이청은 헛기침과 함께 나직이 속삭였다. 마련한 찻잔을 잠시 기울였다.
차도 차였지만, 물이 정말 좋다. 온기 속에서 고아한 차향을 잔뜩 머금었다. 이청은 차를 담담히 즐겼다. 여기서 이리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당민을 기다릴 뿐이었다.
당민은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훌쩍 나섰다.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싱긋 눈웃음을 내비쳤다. 장난스러운 기색이 실린 눈웃음이다.
이청은 문득 헛웃음이 흘렀다.
예나 지금이나.
이청은 문득 턱을 괴고서 난간 밖에서 차분하게 불어 드는 바람을 잠시 맞이했다.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화려하지 않으나, 백의면금으로 만든 장삼을 단정하게 걸치고서 앉아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눈을 끌었다.
절로 드러나는 기풍이랄까.
비록 적의가 역력한 와중이지만, 몇몇은 이청의 차림새에서 범상치 않은 점을 파악했다.
‘저기 저것은 소주금이 아니에요?’
‘그렇지? 한 단에 금 한 말이라고 하는……’
‘소주금으로 장삼을 지어 입다니. 대체 어디 출신인데.’
여인들은 불현듯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렸다. 그래도 안목이 있는 경우의 얘기였다. 한참 노려보던 차에 더 참지 못하겠는지, 급기야 한 무리의 여인이 쪼르르 이청 앞으로 달려왔다.
모두 다섯이 좌우로 늘어서서는 사뭇 성난 눈초리로 이청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청 공자라 하시었지요.”
“그렇습니다만, 여협들께서는……?”
이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선 이들을 잠시 둘러보았다. 여협이라고 하기에도 조금은 민망한 것이 다들 앳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한 명, 한 명이 사천 강호에서는 이름 난 문파의 제자이고 후계자들이다.
“우리는 녹면옥수 여협을 따르지요.”
“아하, 아민을. 그렇군요.”
“감히!”
“당 여협을 그리 편하게 부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