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129
130화
순순히 ‘진리회의 보물 창고’의 위치를 털어놓은 안데르손은 내게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빌기 시작했다. 제발 약속을 지켜달라고. 딸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나는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또다시 약속했다. 그는 내게 감사하다고 말 한 뒤, 허리춤에 맨 총을 꺼냈다. 그리고 총구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가로막지 않고, 조용히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그가 설령 선인으로 돌아섰다 한들, 그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반 진리회 일도 그렇고 이미 가까워지기엔 너무나 평행선을 달려온 우리였다.
“시현, 거짓말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사람을 뭐로 보고.”
“그, 보다 보니까 안타깝더라고요. 저런 악인이라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구나.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뭐랄까.”
횡설수설하는 쯔쉬안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그의 딸인 릴리는 시나리오 4의 지역에 있습니다.”
시나리오 3의 진리회나 황야의 방랑자와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4의 지역에도 중립 세력이 있다. 바로 카시오페아(Cassiopeia) 군수 기업이 바로 그들이다.
릴리는 군수 기업의 실험실에서 좀비를 대상으로 실험을 벌이고 있다.
그 안데르손의 딸답게 천재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그녀는 꽤나 다양한 업적을 이뤄냈다.
가령 좀비 바이러스가 외계에서 온 바이러스, 외계인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던가 둥둥.
하지만 시나리오 4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는 좀비들의 습격을 받아 죽는다.
팀 아포칼립스가 나온 초창기에는 그녀가 구할 수 없는, 시나리오상 필연적으로 죽는 NPC라고 여겨졌시나리오 4가 시작되자마자 즉시 실험실로 향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무조건 죽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플레이어들은 해답을 찾아냈다.
‘바로 실험실로 향하는 게 아니라 방송국으로 가서 좀비들을 끌어모으 면 된다.’
방송국에 설치된 고품질의 오디오 들을 이용해, 큰소리를 내서 좀비 들을 끌어모으면 된다. 그러면 실험실을 습격하던 좀비들이 방송국에 몰리게 되니 그녀를 살릴 수 있다.
물론 방송국으로 몰린 좀비들을 처 치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 뭐, 우리 쉘터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진리회의 보물 창고가 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국회 의사당 옆에 위치한 구원교 지부였다. 아마 구원교 놈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구원교 지부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워런 존스가 도망칠 때, 함께 도망치거나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비어있는 구원교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 위에 붙어 있던 변종 좀비 한 마리가 내게 떨어져 내렸다. 나는 초보자용 플라즈마 건을 들고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세 발만에 좀비는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좀비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내부에 있는 변종 좀비들이 거뭇거 뭇한 그림자와 함께 등장했다.
“다굴은 너무하지 않냐?”
그것도, 메카닉을 상대로 말이야.
물론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그들은 울음소리를 흘리다가, 내게 달려 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별안간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와 함께 내 머리카락 한 을, 한 올, 쭈뼛 서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파동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변종 좀비들은 깔끔하게절단됐다.
블레이더의 40레벨 스킬. 검기 방출. 말 그대로 강력한 검기를 날리는 스킬이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드숀이 중세시대의 기사마냥 검을 멋지게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블레이더 개사기네.”
“네가 할 말이냐?”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바라봤다.
쯔쉬안, 알리샤뿐만 아니라 거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다굴에는 맞다굴이 답이지.
구원교 지부를 소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말한 대로 비밀 장치를 열었다. 땅속 깊이 숨겨 놓은 계기판들을 조작하자…
덜컹.
땅이 꺼지며 지하실 문이 드러난다. 지하실 문은 단단한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연하게도 내게 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손을 가져다 대자 미스릴은 구겨지고,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한 통로가 생겼다. 나는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진리회의 보물 창고 안에는 좀비가 없겠지만 설령 좀비가 있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쯔쉬안의 보호막이 걸려 있는데다, 플라즈마 쉴드가 켜진 초 파워 슈트까지 걸치고 있다. 뒤에서 서포트할 이들도 많으니 이만하면 죽는 게 신기할 정도일 것이다.
보물 창고 내부는 몹시 어두웠기에 나는 배낭에서 특수 제작한 조명을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은 후, 0N 버튼을 눌렀다.
환하게밝혀진 보물 창고의 첫 번째 칸.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축 늘어져 있는 안드로이드 로봇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일반적인 안드로이드 로봇보다 머리 두 개는 큰 안드로이드 로봇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나는 곧 그 로봇이, 골리앗의 일종 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투용 안드로이드 로봇 세 개를 합쳐 만든 헤라클레스, 전투용 안드로이드 로봇 두 개와 작업용 안드로이드 로봇 한 개를 합쳐 만든 테세우스와 달리.
작업용 안드로이드 로봇 세 개를 합쳐 만든 데메테르. 기존 작업용 안드로이드 로봇에 비해 몇 배 이상의 효율을 자랑하는 골리앗이다.
시작부터 괜찮은 수확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두 번째 칸에는 상자가 잔뜩 놓여있었다. 상자 안에는 금과 미스릴 주괴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상자 가장 깊숙한 곳에 USB가 하나.
번쩍이는 걸 보면 평범한 물건은 아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보를 확인해 봤지만.
「정체 모를 USB」
내구도 : 5/5
설명 : 진리회의 보물 창고에서 나온 정체 모를 USB.
단순히 설명만 보면 별거 없다. 뭐, 혹시 중요한 정보라도 담겨 있을까 싶어 나는 배낭에 넣었다. 다음 세 번째 칸에는 술이 잔뜩 담겨 있었다.
진리회의 과학자들 중에 민경욱이라는 한국 출신 과학자 NPC가 있다.
주당 중의 주당인 그는 고급술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진리 회의 보물 창고에 그의 컬렉션을 담은 술 창고를 만들었다…라는 설정이다.
솔직히 꽝이지만, 은은한 술향을 맡고 있으니 아주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쉘터에서도 술은 소비되는 물자 중 하나지만.
그것은 대개 중류주 정도. 당연히 이런 고급술과는 거리가 멀다. 쉘터에 술 창고를 만들어서, 이 술들을 고스란히 옮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쉘터로 돌아가면 쯔쉬안과 가볍게 한잔할까. 그녀도 술을 좋아하는 주 당이었으니- 정작 자신은 극구 부인했지만- 아마 좋아라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상자를 매만 지다가, 다음 칸으로 들어갔다. 보물 창고의 마지막 칸에는 무기들이 들어 있었다.
초보자용 플라즈마 건 다수와, 일 명 명품에 해당하는 무기들.
「악운의 샷건」
내구도 : 35/35
공격력 : 3~540
설명 : 카시오페아 사에서 만들어 진 명품, ‘악운’ 시리즈. 운이 좋다 면 엄청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지만, 운이 나쁘다면 평범한 스턴 건 의 화력도 내지 못할 것이다.
제한 : 없음
분명 최대 공격력만큼은 플라즈마 건에 맞먹을 정도이지만, 최소 공격력이 너무 낮다. 한마디로 ‘운’이라는 요소에 의지하는 무기다.
물론 나는 악운의 샷건을 챙겼다. 가끔 한 번씩, 포춘쿠키처럼 그날의 운을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 다음은…’ 나는 눈길을 돌려 유리관 안에 담긴 세련된 갑옷을 바라봤다.
「수호자의 흉갑」
내구도 : 150/150
방어력 : 150(+30)
근력 +8, 민첩 +8, 인지력 +4, 방어력 +30설명 : 진리회의 과학자들이 함께 만든 파워 슈트. 기존의 파워 슈트 보다 월등한 내구도와 방어력을 자랑한다.
제한 : 소유주(Unique)
과연 시나리오 3의 유니크 아이템 이라 그런지, 내가 전에 사용하던 아이기스, 쯔쉬안에게 만들어줬던 적룡철갑(黃龍鐵甲)보다도 성능이 뛰어났다.
뭐, 그 이름처럼 방어력에 치중돼있긴 하지만. 이건 근접전투를 하는 드숀에게 주면 딱 좋을 것 같다. 그가 걸치고 있는 파워 슈트는 아직 렙틸리안 파워 슈트니까.
‘또 다음은…’
「천사의 옷」
내구도 : 30/30
방어력 : 30
지능 +20, 모든 스킬 레벨 +1설명 : 외계 종족, 엔젤(Ang사)의 깃털을 짜서 만든 옷. 그 외양도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힐러가 걸친다 면 그 능력을 크게 증대시켜준다.
제한 : 소유주(Unique), 힐러(Hea1er)
‘이건 진짜 대박인데.’ 악운의 샷건이 소박, 수호자의 흉 갑이 중박이었다면, 이 천사의 옷은 진짜 대박이다.
헤일로와 더불어 팀 아포칼립스에 몇 안 되는 힐러 전용 아이템.
사실은 최신 버전에 삭제됐던 아이템이다. 게임의 밸런스를 해친다는 이유로… 어쨌거나 그런 만큼 그 성능은 몹시 뛰어났다.
지능이 무려 20이나 붙었고, 모든 스킬 레벨까지 올려준다. 이미 스킬을 마스터한 그녀가 이 천사의 옷을 걸친다면 11레벨 힐링과 보호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다만…’
쯔쉬안이 천사의 옷을 걸친 모습을 상상해봤다. 확실히 아름답긴 할 텐데… 노출이 너무 많다. 나만 보면 좋겠지만, 능력을 사용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보게 될 텐데…
한번 디자인을 바꿔봐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사의 옷을 곱게 접어, 상자 안에 집어넣은 후 무르시엘라고에 실었다. 나머지는 쓸만한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주시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보물 창고를 빠져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라고.
다시 무르시엘라고를 타고 쉘터 아포칼립스로 돌아왔는데, 버니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원체 소심스러운 그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입니까?”
“저기… 한 가지 부탁이 있네.”
그의 뒤에는 황금 갑주를 걸친 디아블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서있었다.
황혼의 투기장에서 벌어지는 대전 은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방식은 인간과 좀비의 대전. 주로 범죄자나 용병에게 간단한 파워 슈트를 입히고 좀비를 상대하게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방식이 바로 좀비 와 좀비의 대전.
피 튀기는 살육전은 대부분 전자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낙원인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것은 바로 후자인 ‘좀비’와 ‘좀비’의 대전이었다.
이것은 좀비와 좀비의 대전이 볼거리가 많아서도 있지만, 그보다도 귀족들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혼의 투기장이 열린다면, 모든 귀족들은 각자 한 마리 이상의 좀비를 투입해야 한다. 그것은 귀족 의 회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다.
그렇게 투입된 좀비들의 승패는, 대부분 귀족들의 명예를 판가름 짓 는다. 가령 지난 황혼의 투기장에서는 라인하르트 남작이 낙원상에게 구입했던 좀비가 우승했다.
그의 명예는 드높아졌지만, 반면 꼴찌를 했던 로제 백작의 명예는 땅을 쳤다.
이처럼 귀족들의 자존심이 걸린 만큼 좀비와 좀비 대전은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이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