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46
처음부터 엄청난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각 파티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 모여 있는 탓일까.
회의는 평탄하게 흘러가지 못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내세우고 있으니 유현이 느끼기에는 소란스럽기만 했다.
그 동안 눈에 띄는 진전 같은 게 없이 한 지점에 멈춰 있는 상황이었다.
‘개판이로군.’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느 정도 흐름 같은 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의견들이 나오고 있었다.
유현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유현의 눈에 들어오는 건 세 사람 정도뿐이었다.
첫 번째는 이번 토벌을 계획한 레날드였으며.
두 번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뱀 같은 눈빛을 한 남자.
세 번째는 이 상황을 즐기듯 키득키득 웃고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지금 상황에 따분함을 느끼며 하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 너도 왔구나. 안 오는가 싶었는데 마지막에 등장하더라?”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살포시 양 어깨 위로 손을 얹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여인의 달콤한 숨소리를 바로 얼굴 옆에서 느끼며 유현은 입을 열었다.
“시노하라 료코인가.”
“정답. 다행히 잊지 않았나 보네.”
쿡쿡, 웃으며 칭찬 하듯 말하는 료코에게 유현은 아무렇지 무시하며 다시 광장에서 벌어지는 흐름을 눈에 담는다.
아무래도 시노하라 료코도 이번 토벌에 참가하는 듯 싶었다.
“꽤나 재미있는 상황인거 같지?”
어느새 바로 옆에 서며 료코가 말한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눈앞의 상황을 보고서 그녀는 붉은 입술을 비틀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 상황이 즐거웠다.
플레이어들끼리 서로 의견이 화합되지 않는 건 나름대로 큰 이유가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그녀로써는 시작부터 삐거덕 거리는 모습들이 웃기기만 했다.
힐끗 유현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던 료코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레날드 하고는 친한가봐? 여기에 올 때 그 남자랑 같이 들어오던데.”
“어느 정도 친분은 있지. 하지만 친하다고 하면 조금 애매한 걸.”
레날드는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말과 달리 료코는 그다지 믿는 듯한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 더 길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료코는 이런 일로 괜히 유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생각은 없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그런데 나한테 뭔가 묻고 싶은 건 없는 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공짜로 알려줄 게.”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지는 말다툼을 보고서 료코는 유현에게 물었다.
뭔가 생각지 못한 료코의 호의에 유현은 피식 웃었다.
“너도 슬슬 지금 상황이 답답한가 보네. 말 상대를 할 사람을 찾을 정도면.”
“뭐, 그렇지. 게다가 여기서 편하게 대화를 할 사람은 너 뿐이니까.”
어딘가 자신의 머리 안을 들여다본 것만 같은 유현의 말에 료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의 말대로 료코는 지금 상황을 답답하게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서로의 욕망을 위해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젠 지겹게만 느껴졌다.
솔직히 그녀도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토벌에 대한 회의가 시작부터 이렇게 삐거덕거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 토벌을 위해 누가 대장을 맡을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던 것이다.
확실히 이야기가 길어질 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상당한 인원이 움직일 것인데 서로 따로따로 움직이면 토벌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토벌의 대장을 맡을 누군가가 필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대장을 해야 할지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그 결과 벌써 점심시간에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료코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유현이 묻는다.
“보아하니 이번 작전에서 이상할 정도로 대장을 맡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이유가 있는 건가? 단순히 명예나 퀘스트 보상 때문에 그런 건 아닐 테고.”
이번 토벌에서 대장을 맡으면 한 동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큰 인상이 남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기여도를 높일 수 있으니 퀘스트 보상이 늘어날 것이고.
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질질 끌 정도로 가치가 있을지가 의문이다.
“뭐 확실히 중요한 이유가 있기는 있어.”
료코가 흐음, 하고 가느다랗게 웃는다.
“사실 여기에 있는 이들이 단순히 라비락을 잡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다른 이유로 이번 토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몇몇이 있지.”
뭔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유현이 곧 바로 흥미를 보였다.
“다른 이유로? 라비락을 토벌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료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있어. 역시 모르고 있었나 보네. 하기야 당연한 건가.”
그녀가 이 이야기를 알아낸 것도 사실 하루 밖에 안 되었다.
어딘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상한 움직임 같은 게 느껴져 조사하다보니 운 좋게 알아낼 수 있던 것이었다. 어디를 가나 여자에 약한 녀석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어서 대답을 하라듯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유현의 모습에 료코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나름 고급 정보야.”
“돈이라도 줘야하는 건가?”
“···돈? 음. 돈도 좋지만, 뭐 됐어. 애초에 처음부터 공짜로 알려주겠다고 했었고. 나중에 꼬맹이들 데리고 우리 가게로 한 번 와. 사실 너네 파티원들이 어떤 녀석들인지 궁금했거든.”
“녀석들한테 술이라도 먹일 생각이야?”
유현이 눈살을 찌푸리자 료코는 황당한 듯 눈을 깜박였다.
“뭐, 어때. 여기가 지구도 아니고. 여기서는 16살 소년 소녀들도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신다고. 아직 고등학생이랬나? 그 정도면 충분히 어른이야. ”
“그건 이곳에서 성인 기준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여기서는 16살만 넘어도 성인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쯧 됐어. 싫으면 말던가.”
료코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자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술값이 상당히 나갈 거야.”
“흐음? 돈도 많을 녀석이 쪼잔 하네. 공짜로 줄 테니까 걱정 마.”
뭔가 생각지 못한 약속을 잡게 되었다.
어쨌든 그것보다 유현은 료코가 말하려고 하는 정보가 궁금했다.
“그래서 뭘 알아낸 거지?”
“여기에 있는 몇몇 이들이 클랜 창설 퀘스트를 진행중이야..”
“···클랜 창설?”
무언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유현은 눈을 번뜩였다.
그런 유현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처럼 료코는 요염한 미소를 흘렸다.
“퀘스트 내용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업적을 하나 만들어 올 것.”
“···어려운 미션이군.”
“그렇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난리인 거야.”
이번 토벌은 라비락들을 몰아내기 위해 중요한 작전이지만 동시에 클랜 창설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 토벌에서 뛰어난 결과를 남기면 그건 곧 하나의 업적이 된다.
단순히 미궁 탐사만을 진행해서는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 어려웠다.
네임드 몬스터라도 잡지 않는 이상.
“지금 녀석들은 이번 토벌에서 대장이 되고 싶은 거지. 클랜을 만들고 싶어서 말이야.”
료코는 복잡한 눈초리로 광장을 쳐다봤다.
운이 없었다면 어쩌면 자신도 저 사이에 껴들었을지도 모른다.
꽤나 어려운 퀘스트였다. 업적이라고 해봤자 도대체 뭘 해야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광장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이들도 지금이 아니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료코의 말을 듣고서 지금 같은 상황이 대략 이해가 된 유현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료코 너는 누가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
“누가 대장을 맡을지에 대해서?”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료코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광장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천천히 훑고는 미소 지었다.
“내가 볼 때 세 사람 정도.”
세 사람.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당연한 결과인 걸까.
때 마침 유현이 생각하던 숫자와 일치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레날드. 너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설명은 안하지만 능력 좋은 남자니까 대장으로 나름대로 어울려. 과연 그가 대장을 하려고 할지 의문이지만.”
료코가 손가락으로 레날드를 가리킨다. 현재 그는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차분한 눈으로 지금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뿐.
다시 료코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천천히 물 흐르듯 움직이는 료코의 손가락 끝을 따라 유현의 눈도 따라 움직였다.
“두 번째는 저기 뱀 같은 눈매를 가진 데이먼즈.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미국에서 군인을 하고 있었대. 그래서 그런지 지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실제로 파티를 지휘할 때 계급으로 부른다고 하던가. 그런 점에서는 조금 웃긴 양반이야.”
유현도 눈여겨보던 사내였다.
날카롭게 잘 세워진 분위기는 물론이고 균형감 있는 체격이 인상적이다. 레날드처럼 태산 같은 신체를 가진 사내는 아니었지만 밸런스 좋은 몸이었다.
다시 료코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으로 저기에 있는 랑샤오. 알다시피 우리랑 똑같은 동양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인 인거 같아. 조금 성격이 별나긴 한 대 생각 외로 능력이 좋은 듯해. 실제로 데이먼드나 레날드 못지않게 사람들이 모여 있고.”
료코의 설명이 유현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 이 회의에서 크게 호응을 받고 있는 사람이 레날드 말고도 저 두 명이 더 있다는 거군.”
“뭐, 그런 거지.”
료코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혼자서 팔짱을 꼈다.
그러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더욱 두드러진다. 주위로 다른 남성 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리지만 정작 신경 쓰지 않는 듯 표정은 여유롭다. 오히려 도도한 얼굴로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료코의 설명이 끝나고 5분 정도가 지난 그 때였다.
더 이상 지금 같은 상황을 방관 할 수 없는지 가만히 있던 레날드가 앞으로 나섰다.
“확실히 이번 토벌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가 대장을 할지 중요하겠지.”
말과 동시에 그가 시끄럽게 떠들던 플레이어들을 응시한다.
그의 무거운 눈길에 모두가 말문이 막힌 듯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을 찢고 레날드가 담담히 말을 꺼냈다.
“대장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