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70
유현의 말에 랑샤셴은 숨을 삼켰다.
뇌리에 재생되는 어둠침침한 그 광경이 그녀를 떨게 만들었다.
장막에 가려져 제대로 된 영상은 아니었지만 그건 분명 위험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게 정의를 위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악의가 담긴 행동인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유현은 이미 먼 미래의 일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단순히 고립된 상황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그가 내다보는 미래가 얼마나 먼 일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에 그녀는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그는 진정 플레이어인가. 그녀는 이 때 만큼은 진심으로 미래시의 힘을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함과 달리 미래시는 발동되지 않는다. 미래시가 힘을 발휘하는 건 언제나 갑작스럽다. 지금과 같이 필요할 때 미래시는 응답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겠지.
“……유현은 뭘 바라고 있는 겁니까?”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묻지 않는 게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묻는다.
“네가 그걸 알아서 뭘 할 거지?”
“…저도 이제는 당신의 파티원이 되었으니까요.”
어딘가 힘이 약한 대답이라는 걸 그녀는 말하면서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답에 유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별 거 없는 일이야. 나는 미궁의 제일 깊숙한 곳까지 가고 싶어.”
“제일.. 깊숙한 곳?”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유현은 아득한 무언가를 바라보듯 흐릿한 시선을 했다. 랑샤셴은 멍하니 유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미궁에는 심계라는 곳이 있지. 우리가 돌아다니는 일반적인 계층과는 전혀 다른 곳.”
심계. 랑샤셴은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훈련소에서도 그런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직 우리로서는 조금 먼 이야기야. 거기는 정말로 위험한 곳이거든. 아마 훈련소에서도 배운 적이 없겠지. 애초에 거기에 갈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어째서 유현은 그런 곳에 가려고 하는 거죠?”
“거기에 내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거 하나 뿐.”
랑샤셴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유현은 더 이상 말할 게 없다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
랑샤셴의 능력을 확인할 겸 호흡을 맞추기 위한 에이리어 탐사는 무난하게 끝났다.
총 5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 이상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오고서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유현은 일행을 모아 이야기를 꺼냈다.
유현이 꺼낼 이야기는 신전에서 부탁 받았던 모험가 토벌이었다.
“이틀 후에 우리는 미궁으로 나갈 거야.”
유현의 말에 모두들 의아한 얼굴을 했다. 최근 들어 플레이어들은 미궁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굳이 나갈 이유가 없을뿐더러 탐사를 해도 보상이 없다.
게다가 거주민들도 너무 플레이어들이 마을을 비우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저번 일은 결국 토벌을 위해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자리를 비운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요즘 플레이어들이 하고 있는 건 식량 사정에 도움이 될 만한 몬스터 사냥이었다.
실제로 지금 당장 유현의 일행만 해도 지난 5일 동안 잡은 몬스터는 대부분 먹을 수 있는 그런 종류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사냥한 것들을 일행이 전부 들고 오는 건 불가능했기에 대략적인 위치만 표시하고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의뢰를 올린 상태였다.
올라온 의뢰를 보고서 비전투 플레이어 같은 이들이 일행이 사냥한 사냥감을 회수하러 가는 것이다. 요즘 게시판에 올라오는 것들은 대부분 이런 것들뿐이었다.
“갑자기 미궁에 나갈 이유가 있는 건가요?”
송가연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물었다.
“신전에서 우리에게 의뢰를 해온 게 하나가 있어.”
“신전에서 우리한테 의뢰를?”
생각해 보니까 며칠 전에 유현이 신전에 불려갔던 게 생각난다. 그 때 받은 건가, 하고 송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 내용은 간단해. 로렐라이를 위협할 정도로 가까이 온 모험가들을 배제하는 것.”
“모험가들을 배제…”
유현의 말에 모두들 숨을 삼켰다. 몬스터가 아닌 모험가들을 배제한다는 것 곧.
“…단어 그대로의 의미겠죠? 그럼 이번에는 모험가들과 싸우겠군요.”
“그렇게 되겠지. 운이 좋다면 안 싸울 수도 있어. 녀석들이 일정 거리 안으로만 들어오지 않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건 힘들겠지. 애초에 애매했다. 일정 거리라고 해도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유현이 정해야만 했다. 그런 면에서 유현은 보이는 대로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전은 저희한테만 의뢰를 했나요? 다른 플레이어들은요?”
송가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궁에 나갈 준비를 하는 플레이어들은 그다지 못 봤다. 유현이 의뢰를 받은 건 조금 시간이 되었으니 다른 이들도 같은 의뢰를 받았으면 미궁에 나가는 이들이 몇몇은 보여야 했다.
송가연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없어. 아마 우리끼리 움직이게 되겠지.”
“…저희 혼자 모험가들을 배제한다고요?”
그 말에 유현의 일행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미궁은 넓고, 그 만큼이나 흘러들어올 모험가들의 숫자는 상당할 테니까.
그런 일행의 의아함을 유현은 이해하기에 상세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즉 많은 수의 플레이어를 고용할 만큼 신전의 사정이 좋지 않을뿐더러 신전에서는 일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소수의 플레이어들을 원하는 거군요.”
설명이 끝나자 어딘가 납득했다는 것처럼 송가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누군가 모험가들을 살려 보내서는 곤란하니까. 싸우게 된다면 무조건 녀석들을 죽여야 해. 놓칠 것 같으면 싸움을 피해야 하고.”
혹시라도 살아남아 모험가 길드에 소식을 알리면 상당히 귀찮아 진다.
물론 그렇다고 로렐라이의 위치를 단번에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미궁은 넓고, 그 넓은 미궁에서 플레이어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위기의식을 줄 수가 있다.
게다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더 많은 모험가들이 몰려들면 처음에 계획했던 것들이 전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의뢰는 모험가들을 놓치지 않고 사냥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미궁에서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몸 관리 잘 해놓고 있어.”
유현은 그런 말과 함께 일행을 해산시켰다.
*
미궁에 나갈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하기에 유현은 일행을 해산시키고서 마을의 가게들을 들렀다. 미궁에 나가는 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길거리는 한적한 편이었다.
“저번보다 가격이 더 올랐군요.”
“미안하구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여러 가지로 공급 문제에 차질이 생겼거든. 저번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말이야. 이해 좀 해줘.”
가게 주인의 말에 유현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렐라이의 죽음 이후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날 같은 평온을 유지하는 건 힘들었다. 지금 같은 가격 상승은 오히려 당연했다.
특히 로베리아에서 주로 보급을 받던 물건들은 더욱 심했다.
포션 같은 것들이 주로 로베리아에서 공급이 되어 왔다. 로렐라이에서 포션을 제작하는 연금술사들의 숫자는 워낙 적은 편이며, 그 질도 낮다.
그런 탓일까. 하루가 지날 때마다 가격이 눈에 뛸 정도로 오르고 있다.
유현의 일행이야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쌓아둔 돈은 많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당분 간 무언가 목표로 할 정도로 돈을 모아 둘 이유는 없을뿐더러 유현은 애초에 미궁 탐사를 위한 비용에 돈을 아끼는 타입이 아니었다.
지금의 문제는 하위권 계층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제일 크게 느껴질 문제였다.
굳이 미궁 탐사가 아니더라도 에이리어를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서 포션 같은 건 무척이나 필수적인 존재였다.
실제로 결국 이런 문제로 몇 번 싸움이 생겼다고 들었다.
전날에 비해 갑자기 물건 가격이 오르니 사기를 치는 거냐고 한 플레이어가 항의를 한 것이다. 다행히 주위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잘 만류한 덕분에 큰 싸움 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이미 플레이어들과 거주민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시작이 어려울 뿐, 한 번 진행된 균열은 앞으로도 더욱 쉽게 벌어질 터.
‘이리샤의 일이 더 늘어만 가네.’
유현은 신전에서 창백하게 지린 얼굴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부담은 그녀에게 쏠리는 것과 같았다.
‘생각보다 지출이 크겠군.’
미궁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소모되는 비용이 컸다.
미궁 탐사를 끝내고 돌아오고도 그 비용을 메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석을 구매해줄 존재가 없는게 제일 컸다. 마석을 가공하여 던전에 필요한 에너지로 변환하는 건 요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신전의 사제들은 요정의 편의를 위한 존재.
무사히 끝내고 돌아와도 손해가 있을 수 있지만 유현이 그들의 의뢰를 받아들인 건 연민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모험가들이 로렐라이의 근처로 접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유현에게도 나름 민감한 이야기였다. 초기에 배제할 수 있는 위험은 할 수 있을 때 배제하는 게 좋다.
모험가들이 한 번 작정하고 덤벼들면 유현도 상대하기 까다롭다.
어쨌든 대략 가격만 알아볼 생각이었기에 유현은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가게에서 나왔다.
그러자 등 뒤로 가게 주인이 어딘가 아쉬운 소리를 흘리는 게 들렸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들도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최근 소극적으로 움직이니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온갖 것들을 집어보던 유현은 기대되던 손님이었다.
‘다행히 로베리아에서 가져온 것들은 충분히 있고.’
본래라면 다음 계층으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였지만 어쩔 수 없이 이번 일에 써야 할 듯 싶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음 계층으로 내려가는 건 무리였다.
한 동안 미궁에 오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정확히 잴 수 없겠지만 아무리 못해 2주는 될 것이고 길면 1달이 될 수도 있다.
모험가들을 사냥할 때 좋은 점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들을 약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궁을 탐사하기 위한 준비는 모험가들도 철저하게 한다.
비록 수준이 낮은 하급 모험가들이라도 포션이나 비상식량 같은 건 들고 다닌다.
그것들만 잘 회수하고 다녀도 미궁에서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실제로 던전에서 쫓겨난 방랑자들이 이런 식으로 미궁에서 버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