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71
미궁으로 나가기로 한 날 유현의 일행은 새벽부터 움직였다. 아침 이슬이 완전히 사그라지기도 전에 움직여서 그럴까. 유현의 일행을 보며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이 당황했다.
“벌써부터 나가십니까?”
“일이 있어서요.”
거주민 경비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유현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지나쳤다.
등 뒤로 무사히 돌아오라는 경비병의 소리를 들으며 일행은 마을에서 나왔다.
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움직이고서 유현은 일행의 몸 상태가 최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미궁 탐사를 위해 몸 관리를 해놓으라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유현은 에이리어 안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에이리어의 몬스터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테니 조금 무리를 하서라도 미궁에 빠르게 나갈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쉬지 않고 움직일 거야. 모두들 긴장하고 잘 따라와.”
예전에는 일행의 속도에 일부러 맞춰준 느낌이 적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직업을 얻고서 모두들 빠르게 성장했다. 조금 신경 쓰이는 건 역시 랑샤센이었지만 그래도 지난 번 에이리어 탐사에서 체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확인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유현은 말과 동시에 산책하듯 산보하던 걸음의 속도를 순식간에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흙과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의 주기가 배로 빨라졌다.
일행의 숨소리도 조금씩 커져만 간다. 하지만 유현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했다. 앞으로 이런 식의 행군을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중간중간에 몬스터들이 위협하듯 모습을 드러냈지만 굳이 덤벼오지 않으면 싸우지는 않았다. 몬스터들과 싸울 시간도 아까울뿐더러 엄한 곳에다가 힘을 쓰기가 싫었다.
“으으으으…”
그런 유현의 행동에 아쉬워하는 건 일행들이었다.
반쯤 뛰다시피 움직이니 차라리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 더 체력적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행의 생각은 가볍게 무시한 채 유현은 움직였다.
그렇게 새벽의 시간에서 점심시간쯤 될 때 유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때 마침 주변에서 물소리가 났다. 희미하게 흘러들어오는 물소리에 유현은 송가연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녀는 유현의 생각을 빠르게 눈치 채고는 물의 정령을 소환해 물소리의 진원을 찾아냈다. 유현은 냇가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정령의 안내를 따라 깨끗한 냇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행은 곧 바로 그곳에 달려가 땀을 식혔다. 얼굴에 질질 흐르던 땀방울들을 씻겨내며 차가운 냇물에 발을 담근다.
유현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처럼 느껴지던 하늘이 어느새 밝은 푸른색으로 바뀌어져 있다.
‘지금 이 속도면 문제없이 내일 미궁에 나가겠는데.’
잘하면 오늘 하루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봤자 의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나가도 미궁의 미정령들이 빛을 잃고 밤을 유지하고 있다면 움직일 수는 없다.
에이리어 안이라면 밤에 움직여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미궁은 다르다. 현재 미궁이 어떤 상황인지는 유현도 쉽게 짐작할 수가 없었다.
미샤에게 어느 정도 정보는 받았지만 결국 그것도 1주일 전 이야기였다.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 군요. 역시 목표는 내일까지 미궁에 나가는 건가요?”
문득 미궁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랑샤셴이 말을 걸어왔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따라오기 힘들어?”
“…아니요.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랑샤셴은 유현의 물음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때 다리 쪽에서 희미하게 경련이 느껴졌지만 그걸 눈치 챈 이서연의 도움으로 문제는 사라졌다.
사제의 힘은 엄청났다. 마을에서 나오기 전의 상태로 돌려놨으니까.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제일 연약해 보이는 이서연 마저도 체력이 강하자 랑샤셴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미궁에는 얼마나 있을 생각입니까?”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 정도. 최대한 오래 있을 생각이야.”
랑샤셴의 물음에 유현은 전날에 생각했던 걸 말했다. 유현의 물음에 랑샤셴은 역시, 하고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챙긴 물건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상당히 오래 있군요. 제가 미궁에 제일 오래 머문 시간은 고작 1주일 정도가 최대였습니다.”
랑샤셴의 말에 유현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랑샤셴은 자신이 무언가 이상한 말을 했나 고민했다. 유현이 웃은 건 랑샤셴이 이상한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도 대충 그 정도 될 거야. 2주 넘게 미궁에 있던 적은 없지.”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행도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군요.”
어딘가 안심한 듯 랑샤셴이 안도한다. 유현은 그녀가 걱정했던 게 무엇인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미궁에 관한 경험에서도 부족할 게 있을까 그녀는 걱정 하고 있었다.
“너무 걱정은 하지마. 미궁 탐사에 대한 경험은 네가 부족할 건 없을 테니까.”
“네.”
랑샤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서 유현은 고개를 돌렸다.
휴식은 충분히 했다. 길유미가 이서연에게 물장난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손바닥 가득히 물을 쥔 채 이서연에게 흩뿌리는 그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어차피 한 동안 고생을 할 거라는 걸 알기에 지금은 저렇게 놔두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10분 정도 더 지나고서 유현은 다시 행군을 반복한다고 알렸다.
*
로렐라이의 죽음 이후 혼란을 느끼는 건 로베리아의 요정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그들은 로렐라이의 죽음을 확신하지는 않고 있지만 무언가 일이 일어났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직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나요?”
여러 명의 요정이 모여 있는 가운데 아이리스가 말한다. 그러자 요정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렐라이와의 연락이 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주었다.
끝내 아이리스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하군요. 로렐라이, 그녀가 갑작스럽게 우리를 배신할 리는 없을 테니까.”
게이트웨이라도 파괴가 된 걸까.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면 그녀의 던전에 무언가 큰 일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게이트웨이는 던전의 핵심 시설이었다. 그것이 파괴될 정도의 공격을 받았다면 로렐라이의 생사도 멀쩡하다고 확신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상 괴멸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모험가들의 공격이라도 받은 걸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로베리아에서 조직된 원정군이 로렐라이를 위협할지 모를 네임드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게이트 연결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특히 거기에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2기 플레이어들이 소환된 지금 상황에서 1기 플레이어들에게 큰 일이 생긴다면 상당히 곤란했다. 1기 플레이어들은 2기 플레이어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안 그래도 훈련소에서 2기 플레이어들이 나올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기 플레이어들이 나왔을 때 1기 플레이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면 2기 플레이어들은 요정들에게 큰 반항심을 가지게 될 터.
게이트웨이 연결이 되지가 않는다면 결국 직접 가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렐라이와 연락이 끊기고서 이틀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 아이리스는 이미 병사들에게 로렐라이의 현황을 알아오라고 명령한 상태였다.
다행히 로렐라이의 좌표를 가지고 있는 미궁의 나침반은 소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예전에 구해놨던 것이다.
아무래도 여러 계층을 넘어가야 하니 원정군들이 로렐라이에 도달하는 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리 베테랑 원정군들이라 하더라도 미궁의 구조상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미궁은 언제나 변화한다. 소변동이라 불리는 미궁의 구조 변화는 빠르면 한 주 늦으면 1달 마다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기존에 이미 길을 터득해 놔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의미 없는 결과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미궁에서는 지도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명령은 수행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들어왔다.
소식을 가지고 온 건 이번 로베리아의 원정군 대장인 아란스 디페로우이었다.
“현재 6계층에 새로 생겨난 네임드 몬스터 때문에 모험가들 사이에서 거대한 움직임이 생긴 상태입니다. 모험가들이 이 구역의 6계층을 차지한 네임드 몬스터를 토벌하기 전까지는 로렐라이의 상황을 확인하는 건 상당히 힘들 겁니다.”
“…그러면 모험가들을 피해 다른 길로 돌아서 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요?”
아이리스의 물음에 아란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른 통로로 가게 될 경우 로렐라이에 확실히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알다시피 각 계층의 통로마다 이어지는 좌표가 많이 틀리니까요. 아예 길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궁은 수많은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구조에 어울리게 다음 계층으로 갈 수 있는 길들이 있었는데 문제는 비슷한 위치에 있는 길도 서로 다른 구역의 미궁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궁의 뒤틀림이 일어날 경우 다음 계층과 이어지는 길의 위치도 항상 바뀌어 왔다.
6계층을 무사히 지나도 5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통로를 찾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계층 다음인 4계층도.
그런점에서 로렐라이는 3계층에 있는 던전이었고-.
로베리아가 7계층에 있는 던전임을 생각할 때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아이리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물었다.
“그러면 로렐라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략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까?”
“…6계층에 몰려든 모험가들을 피해 움직인다고 판단할 경우 아무리 못해도 1달 정도는 걸릴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참담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란스의 목소리에 아이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