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01
“이번에는 클랜인가.”
송가연의 입 밖으로 나온 숫자에 유현이 말했다. 숫자의 크기로 볼 때 파티 단위가 아닌 클랜 단위로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걸까.
클랜이 움직일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는 거겠지만, 그래도 조금 의문이 든다.
현상금이 꽤나 달려 있다고 하더라도 클랜이 움직여서 이득을 볼 수 있는 크기일까. 어쩌면 단순히 명성 하나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길게 생각을 할 것도 없다.
이미 이쪽을 쫓고 있으니 뭘 상상하든 의미 없는 짓이었다. 상대가 움직이고 있다면 이쪽도 빠르게 움직여줘야 한다.
유현은 일행의 반응을 확인했다.
모두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숫자가 너무 많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만약 여기서 싸우자고 하면 과연 싸울까?
우습게도 그 순간 유현은 그런 상상을 해버렸다. 겁을 먹은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긴장감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그 얼굴들이 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잠시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어느새 냉정함을 되찾은 송가연이 그 침묵을 찢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그녀의 물음에 유현은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일단 피해야겠지. 숫자가 너무 많아.”
유현이라고 그대로 부딪칠 생각은 없었다. 피할 싸움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 이미 어느 정도 충분히 악명을 떨쳤을 뿐더러 굳이 클랜까지 사냥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송가연의 말 대로면 숫자 차이가 너무 심했다. 2배 정도 되어도 많다고 느낄 판인데 그 이상이면 무리다.
세이브 포인트에 있던 고블린들을 학살 할 때와도 상황이 다르다. 그 때는 기습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이쪽을 쫓아오는 입장이었다. 기습이 가능 할리도 없다.
“모두들 일어나.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녀석들에게서 도망친다.”
“네!”
유현의 말에 일행은 전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떠날 준비를 했다. 위기를 느껴서 인지 그 움직임들이 평소보다 재빨랐다. 아니면 활력 포션을 마셔서 인가.
“그러면 제가 길을 안내 할 게요.”
평상시와 다르게 유현을 대신 해서 송가연이 앞 장 섰다.
그녀의 주위로 물의 정령이 소환되더니 앞으로 쭈욱 날아가기 시작했다. 뒤로는 바람의 정령으로 따라오는 클랜을 감지하고, 앞에서는 물의 정령으로 길을 찾으려고 하는 듯하다.
명백하게 평소보다 무리하는 그녀의 행동에 유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이 정도는.”
그녀는 의연한 얼굴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믿을 만한 소녀다. 송가연의 얼굴을 보고서 유현은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호오? 이 녀석들 꽤나 재미난 놈들이군. 클클.”
드워프는 주위의 흔적을 살피고는 유쾌하게 웃었다.
이쪽보다 먼저 상대가 도망쳤음에도 기분이 좋다는 것처럼 웃는 드워프의 모습에 보고 있던 카를란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지금 이게 좋아할 일인가.
카를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 드워프를 이해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고블린의 시점에서 보기에 오솔로프라는 이름을 가진 드워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과 행동 패턴은 고블린의 머리로는 심히 짐작 할 수가 없다. 특히 오솔로프는 다른 드워프들 보다도 더 괴팍하게 느껴졌다.
카를란이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이 녀석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우리의 접근을 눈치 챈 걸까? 상당히 급하게 움직였군. 그것도 우리와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말이야.”
바닥에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오솔로프는 확실하다는 것처럼 결론을 했다. 똑같이 주위를 확인한 카를란 입장에서는 그런 오솔로프가 신기하기만 했다.
방금 전까지 여기서 인간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것처럼 말에 힘이 담겨 있다.
“키릭. 녀석들이 우리의 추적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오솔로프가 굽히고 있던 다리를 폈다. 그의 키는 고블린들과 비교할 때 조금 더 큰 정도였지만 잘 단련된 근육과 야성 때문인지 그의 몸은 강철처럼 느껴졌다.
몸을 피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달라진다.
정말 검으로 찔러보면 피 대신 철가루를 흘리지도 모를 양반이다. 카를란은 자신이 입고 있는 갑옷보다도 더 튼튼해 보이는 오솔로프의 근육이 조금 부러워졌다.
이것도 종족의 한계라고 해야 하는 걸까. 자신이 앞으로 수련을 계속해도 오솔로프 같은 근육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녀석들을 계속 쫓는다. 혹시 지친 놈들 있나?”
인간들이 도망친 방향을 응시한 채 오솔로프가 말했다. 그의 말에 카를란의 클랜원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뭘 당연한 걸 묻느냐 듯이.
벌써 쉬지 않고 몇 시간 째 미궁을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모두들 쌩쌩해 보였다. 그걸 알기에 오솔로프는 고블린들의 상태를 확인해 볼 겸 물은 것인데 반응이 좋다.
“크크크. 좋아! 너희들은 제법 쓸만한 놈들이다!”
카를란의 클랜원들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처럼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오솔로프는 인간들의 흔적을 쫓았다. 가볍게 뛴 것처럼 움직인 그였지만 고블린들은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
*
얼마나 움직였을까. 3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렸음에도 일행은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목을 조여 오는 듯한 급박함이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모험가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거리는?”
다리를 멈추지 않고 달리면서 유현은 송가연에게 물었다.
지금 안 건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변해 있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니 체온이 뜨거워진 것이다. 땀으로는 그녀의 체온을 식힐 수가 없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송가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저희 속도로 하면 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어요.”
“5분 정도인가 상당히 빠르군.”
아까 전에는 10분이라고 했던 것이 어느새 벌써 5분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실력이 엄청난 놈들인데.’
이쯤되면 유현도 내심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그냥 도망치는 입장이지만 저쪽은 흔적을 쫓아 추적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하아..하아.. 젠장! 뭐야, 저 녀석들! 지치지도 않는 건가!?”
놓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모험가들의 추적이 짜증나는 건지 남궁민이 소리쳤다.
이어지는 전투에 체력 손실이 컸던 탓일까. 유난히 그의 다리와 몸이 무거워 보였다.
유현은 남궁민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일행도 살폈다.
다른 일행도 남궁민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특히 체력이 약한 이서연은 이를 악물며 겨우 따라오고 있는 정도였다. 체력이 약한 그녀를 위해 배낭도 유현이 대신 매고 있었다.
‘이거 힘들겠는데.’
유현은 슬슬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이미 몸에 피로가 가득한 상태에서 3시간을 넘게 달린 것만으로도 애들은 충분히 노력했다고 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거듭된 전투로 지친 일행과 달리 상대는 기운이 넘치는 놈들이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때 마침 송가연에게서 좋은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모험가들이 멈춘 거 같아요.”
이쪽이 지치는 만큼 저쪽도 지치는 건 당연한 일. 끝내 저쪽이 먼저 다리를 멈추자 일행은 전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을 조여 오는 듯한 급박함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유현은 일행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자고 말했다.
저쪽이 멈췄으니 이쪽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하악…하악..”
몸을 멈추자마자 이서연이 쓰러질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닥에 손을 짚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롭다.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들.
유현은 그녀에게 물주머니를 내밀며 수문을 섭취하도록 했다.
많이 목이 탔던 건지 턱 선을 따라 물줄기가 생길 정도로 그녀는 물을 들이켰다. 워낙 급하게 마셔서 그런 걸까. 마시다가 그녀는 콜록, 거리며 거친 기침을 했다.
옆에 있던 랑샤셴이 그녀의 등을 두들겨주는 사이 유현은 지금 상황에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싸움 직후에 쫓아오더니. 정말로 최악의 상황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미샤의 파티와 헤어지고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 걸까.
이제 밤이 찾아오려고 한다.
밤이 찾아오면 상대도 어떻게 쫓아올 수가 없다. 설령 쫓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엄청난 속도로 추적을 해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어둠속에서 흔적을 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조금만 더 도망치면 된다.
시간은 이쪽의 편이다. 밤이 찾아오면 상대를 따돌릴 수 있다.
그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유현은 송가연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계속 정령을 유지했던 그녀니 마력 소모가 엄청났을 거다. 덕분에 길을 찾던 물의 정령도 소환을 해지한 상태.
지금도 그녀는 정령으로 모험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상대가 움직이면 이쪽도 움직여야 한다. 그녀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5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체력을 회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무언가 감지한 걸까.
“어째서..?”
송가연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표정 변화와 동시에 일행도 긴장했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한 동안 뭔가 생각하던 그녀가 유현에게 말했다.
“…갑자기 모험가들 중 하나가 혼자서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혼자서?”
“네.. 그..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믿기 어려운 걸 본 것처럼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험가들이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어딘가 망연한 얼굴로 왔던 길을 쳐다보던 송가연이 나직이 말했다.
“…놓쳤어요.”
“…꽤나 빠른가 보네.”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가연의 정령이 따라 붙지 못할 정도로 빠르면 꽤나 강한 놈이겠지. 그래도 혼자서 움직인다면 환영이다. 유현은 류트에게 눈짓했다.
“일행 좀 지키고 있어. 내가 혼자서 상대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유현은 류트에게 일행을 부탁하고는 혼자 떨어져 나왔다.
그대로 걷기 시작한지 30초도 안되어 유현의 감지에 무언가 걸렸다. 확실히 송가연의 정령으로는 따라 붙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이윽고 유현의 시야에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상대를 확인한 유현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음?”
모습을 드러낸 건 드워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