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16
다수와 개인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유현은 모험가들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을 헤집고 다녔다. 동료와 동료 사이를 지나치며 시선을 어지럽히는 유현에게 고블린 마법사들과 궁수들은 허무하게 무력해졌다.
혹시라도 동료가 맞을 까봐 공격을 망설이는 사이에 유현은 고블린 전사들을 죽였다. 뒤늦게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동료의 피해를 무릅쓰고 공격을 했지만 유현의 검기에 가로막혀 공격은 닿지 못했다. 유현의 검기는 마법과 활, 검 모든 것을 베어냈다.
그건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그 모든 것을 베어낼 수 있는 엄청난 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이 아닌, 꿈과 같은 알 수 없는 미지를 가리킬 때 쓰여지는 단어.
-끄아아아아악!
무너진다.
양쪽에서 달려들어도 팔, 다리, 신체 부위의 모든 것들이 잘려나간다. 고블린 전사들이 들고 있던 검과 방패들이 허공을 떠돌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 뒤늦게 그들의 몸이 바닥을 구른다.
그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키릭. 어째서..!”
팔을 잃은 고블린들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를 지른다. 전의를 되찾으려는 행동의 몸짓은 아니었다. 단지 신체 부위가 잘린 고통을 못 이겨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있다.
울컥쿨컥 피를 쏟아내면서도 팔이 잘린 고블린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포션을 뿌렸다. 치지직, 하고 살이 재생된다. 이윽고 피는 멈추고 재생의 격통을 못 이겨 고블린은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비록 신체의 부위를 잃어 앞으로 제대로 된 모험가 활동을 할 수 없겠지만 살아있다.
그것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블린 마법사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일부러 살려두고 있다….?”
이상함을 눈치채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블린 마법사는 눈앞에서 벌여지는 싸움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빠르게 눈치챘다.
아까부터 목숨을 잃는 고블린은 없었다.
단지 앞으로도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을 만큼 전투불능이 되는 고블린들만이 있을 뿐.
그건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역시 소문은 사실이다. 저건 악마다.
일부러 이쪽을 조롱하듯 살려둔 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다. 죽일 수 있음에도 일부러 죽이지 않고 그 고통을 즐긴다. 피를 토해내듯 지르는 비명을 저 인간은 즐기고 있다.
죽지 않는 동료를 보며 안심하는 고블린들은 없었다. 상대가 이쪽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고블린들은 없었다. 그걸 모두가 눈치채며-.
끝내 싸우던 고블린들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공포가 그들을 지배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안 시점에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도…도망쳐!”
누가 먼저 소리를 지른 건지, 등을 돌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쉽게 무너진다. 싸우고자 하는 전의가 완전히 꺾이자 그 의지가 모두에게 전염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고블린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지만 고블린 모험가들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뛴다.
몰려들어 양쪽에서 숫자의 강세를 이용해 달려들던 싸움이 끝난다.
유현은 멀어지는 고블린의 등을 보며 피식 웃었다.
도망치는 저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가 아니다.
유현이 웃고 있는 건 단지 계속해서 가슴 안쪽에서 치솟는 힘 때문이었다.
‘재미있군.’
저들이 공포를 느낄수록, 그 감정이 뚜렷하게 유현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그들 사이로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그 거대한 거무스름한 기운을 유현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이것도 능력의 힘이라는 걸까. 거무스름한 기운은 분명 고블린들의 공포였다.
그러한 감정들이 유형화 되어 눈에 들어온다.
두려움, 공포, 절망.
그 모든 것들이 유현의 눈에는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커질수록 유현의 가슴 안팎에서 피어오르던 힘 또한 강대해졌다.
그게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저들이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때마다 유현에게 힘이 된다.
그걸 눈치 챈 유현은 고블린들의 공포를 최대한 자극했다. 애초에 죽이지 않고 남겨둘 생각이었지만. 이들은 이곳에 남아 모험가들의 짐덩어리가 되어 주어야 했다.
고블린들이 멀어진다. 살기 위해 도망친다. 정작 이쪽은 죽일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다.
멀어지는 고블린들의 등을 지그시 쳐다보던 유현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현은 저들을 도망치게 둘 생각은 없었다.
*
“괜찮겠는가?”
동료 드워프의 물음에 가이낙스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가 말이지?”
“알레톤, 가우란, 그 둘에게만 모든 작업을 부탁해도 괜찮은 건가?”
파우덴의 말에 가이낙스는 약간 고심하는 표정을 했다.
“괜찮을 걸세.”
“여기에 드워프들이 셋이나 빠졌네. 게다가 상당한 숫자의 고블린들도 데리고 나왔지. 작업이 느려질 수도 있어.”
“…느려는 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게다가 아직 거기에는 많은 고블린들이 있으니 작업의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지는 것도 아니야.”
문제는 고블린들의 작업을 감독할 존재들이 줄었다는 것이다. 단 둘이서 뿔을 자르고, 고블린들의 작업을 확인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 될 터.
하지만 둘은 해낼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하며 가이낙스는 등을 돌렸다.
“그 망할 놈의 인간은 반드시 잡아야 해.”
앞으로 걸어가며 가이낙스가 힘을 담아 말한다.
“녀석은 우리를 조롱하고 있네. 노골적으로 이렇게 흔적만 봐도 확실한 부분이지.”
미궁의 악마를 쫓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너무 쉬워서 문제였다. 대놓고 흔적을 남기고 간 탓에 함정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주변에 인간들의 던전이 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길목으로 끌어오고서 다수의 인간이 공격해 올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숫자로 밀고 들어오면 위험했다.
그래서 가이낙스는 미궁의 악마를 쫓기 위해 고블린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10개의 파티를 동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무리 상대의 숫자가 많아도 검은 강철 드워프 세 명이 있으니 오버드 웨폰을 이용해 형세를 역전할 수 있다. 오버드 웨폰은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이낙스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몇 번이나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일 때였다.
그 발걸음은 갑자기 멈추었다.
진득한 피 냄새. 그리고-.
“이 자식…!”
바닥에 널려 있는 고블린들의 시체.
여기서 싸움이 있어나 보다. 보아하니 그렇게 길지는 않다.
시체에는 아직까지도 생기가 있다. 피는 굳지 않고 붉은 웅덩이를 이루어-.
거기서 가이낙스의 생각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존자가 있다?”
시체뿐인 줄 알았는데 시체들 사이에서 아직 죽지 않은 고블린들이 다수 있었다. 오히려 죽은 고블린들은 소수였다. 해봤자 7명 정도.
가이낙스의 중얼거림이 뒤에서 따라오던 고블린들에게 닿기가 무섭게, 따라오던 고블린들이 가이낙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키..키릭!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살아있는 고블린은 더 없는 건가!?”
그 모습을 가이낙스는 하염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비릿한 혈향 속에 가이낙스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기분 나쁜 무언가가 목을 조여 오는 듯한 감각.
마치 끈적끈적한 늪 속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고 있는 중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녀석이 죽이지 않고 그냥 갔다고?’
가이낙스는 살아있는 고블린들을 관찰했다.
대부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다리가 잘렸거나, 팔이 잘렸거나, 여기서 살아 돌아가도 그 후로는 제대로 된 모험가 활동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한지 의문이다.
가이낙스가 느끼는 의문을 다른 드워프들이 못 느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너무 냄새가 나는 광경이었다.
“가이낙스. 이건 뭔가 이상해.”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중이네.”
“녀석은 일부러 고블린들을 살려놨어. 그것도 일부러 팔과 다리를 잘라 놓은 채.”
“………”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가이낙스는 주먹을 꽈악 쥐며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저게 무슨 소리인지 자네는 분명 눈치 챘겠지?”
깊게 가라앉는 파우덴의 목소리. 가이낙스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우리가 모험가인 이상 이들을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겠지. 더욱이 여기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차라리 고블린들을 데리고 오지 말 걸 그랬다. 가이낙스는 뒤늦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모험가들에게는 모험가들만의 룰이 있다.
죽이지 말아라.
훔치지 말아라.
그리고 마지막.
버리지 말아라.
….만약 여기서 부상을 입은 고블린들을 그냥 두고 가게 될 경우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해도 이번 일에 대한 일을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크게 공론화 할 수가 있었다.
고블린 과 드워프.
둘의 종족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종족이 달라도 결국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모험가들이었다.
검은 강철이 아무리 모험가답지 않다고 하더라도 모험가의 룰은 지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