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47
결국 예상대로 일행은 전부 술에 취해 뻗어버렸다.
어떻게든 류트와 힘을 합쳐 일행을 전부 방 안에 집어 놓는 데는 성공했다.
그걸로 진이 빠진 건지 류트는 피곤한 얼굴로 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현도 류트를 따라 그대로 잘까, 생각했지만 잠시 밤바람 좀 쐬기로 했다.
술기운이 바로 목밑까지 올라와 있어, 이대로 잠을 잔다면 내일 아침을 고생할 거 같았다.
로베리아의 밤은 로렐라이보다 쌀쌀했다.
그 차가움에 온 몸에 녹아들어 있던 술기운이 점점 풀리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자. 저희끼리 2차전을 시작해볼까요.”
아직 잠을 자지 않은 건지, 여관 주인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그의 손에 술병이 하나 쥐어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블루 스카이였다.
블루스카이로 유혹해오는 여관 주인의 말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다른 술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거절했겠지만, 하필이면 그가 들고 온 건 블루스카이였다.
유현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뒤늦게 말하는 거지만 무사히 생환하셔서 다행입니다.”
여관 주인은 술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잔에 차오르는 청아한 하늘색을 보며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그가 건배를 하자고 손짓하고 있었다.
서로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서 한 번에 모두 들이킨다. 도수가 강한 탓인지 목안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강했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시원한 청량감이 감돌았다.
유현과 여관 주인은 말없이 술잔만 나누었다.
그 묘한 침묵을 찢은 건 여관 주인 쪽이었다.
“로렐라이에 있을 때 검은 강철들과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후후. 류트에게 들었습니다.”
그다지 숨길 이야기는 아니기에 유현은 조용히 술잔만 움직였다. 드워프의 존재는 로렐라이에 있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굳이 류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
“로렐라이에서 있었던 일은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믿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 거랍니다. 비록 여러분들에게는 꽤나 늦었다고 느껴지겠지만.”
깊게 가라앉은 눈빛을 내리깔며 여관 주인은 말한다.
그는 지금 사죄를 하고 있는 걸까. 유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째서 여관 주인이 사과를 하는 겁니까?”
“저도 한 때 원정군에 있던 몸이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관계는 있고.”
여관 주인이 원정군과 관계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여관 주인의 행동과 능력을 생각하면 모를 수가 없다. 초창기, 유현은 여관 주인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었다.
유현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건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의 시작은 로렐라이의 생각지 못한 죽음이었고, 설마 네임드 몬스터가 그렇게 공격해 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결국 이건 사고라고 봐야 했다.
로베리아가 늦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로렐라이 사태에서 로베리아의 잘못이 뭐가 있냐고 논하면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운이 없었을 뿐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마수가 던전을 공격해 온다는 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다.
유현도 그러한 사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일로 통해 1기 플레이어분들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습니다. 게이트웨이에서 넘어올 때 그들이 보여준 분위기와 얼굴은 기존의 제 기억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던 것이더군요.”
여관주인의 이야기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이 바뀌었습니다. 로렐라이에서 고립된 시간 동안 우리는 바뀌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사실상 우리는 전쟁을 한 거나 다름없죠.”
그것은 전쟁이었다. 이종족과의 전쟁.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누가 살아남느냐였다.
수백의 고블린들이 한 밤중에 기습을 해왔을 때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무기를 들고 고블린들과 싸웠다. 다행히 능력 좋은 지휘관이 있었다.
아란스, 그 남자의 지휘는 훌륭했다.
“…플레이어 분들은 강해졌군요. 그것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속도는 제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릅니다.”
미안함과 감탄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번 일로 1기 플레이어들과 2기 플레이어들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려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로베리아로 돌아왔을 때 보여주던 그 섬뜩한 눈빛은 오싹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생환한 1기 플레이어들의 분위기에 모여 있던 수천의 관중에 압도당했다.
여관 주인은 생각한다.
이번 일로 인해 성장한 그들의 모습을 과연 좋아 해야만 하는 걸까.
플레이어의 성장이 목적인 이상 단순하게 보면 기뻐할 일이지만-.
‘이번일로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서로 힘을 합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로렐라이 사태를 통해 모래알처럼 뭉치지 않던 이들이 살기 위해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서,
여관 주인은 플레이어들의 변화가 한 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관 주인은 몇 번이나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취하지 않는다. 마력을 이용해 술기운을 몰아내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유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단지 유현만이 몇 분 동안 술잔을 잡지 않고 여관 주인을 쳐다보았다.
“한 가지 물어봐도 좋겠습니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여관 주인의 눈은 서늘했다.
유현이 괜찮다고, 말하자 여관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당겼다.
“헤이라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를 죽인 건 유현님입니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이 담긴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현이 죽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분명 유현은 길드장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렇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꽤나 치명상을 입혔다고 생각은 하지만, 과연 그게 죽을 정도였을까?
실제로 길드장을 놓쳤을 때 유현은 길드장이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길드장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많이 놀랐었다.
“아란스가 말하더군요. 자신이 손을 쓰기 전에 이미 누군가 길드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고. 그는 길드장을 죽인 건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게 저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것도 류트에게 물어본 이야기일까. 만약 그랬다면 류트에게 잔소리 좀 할지도 모르겠다.
유현의 얼굴에서 생각을 읽은 건지 여관주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류트에게 물어본 게 아닙니다. 단지 당신이라고 느껴졌을 뿐이지요. 아란스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유현님이 생각났습니다.”
아란스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길드장과 싸워 이긴 사람이 있다면.
그런 인간은 유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힘은 정체불명이다. 그가 가진 검술도, 마력도, 능력도 전부.
실제로 아이리스가 유현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신기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요정이 한 사람만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옆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여관주인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여관 주인장의 태도에 유현은 숨길 수가 없다고 느꼈다. 아니라고 해도 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그냥 인정해 주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죽였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일이군요. 제가 한 일은 길드장을 빈사 상태까지 몰아 붙인 것뿐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그 대답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있는 남자가 플레이어들 중에서 제일 강하다는 게 증명이 된다.
미궁 도시의 길드를 책임지는 자리는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니다.
모두에게 인정 받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 최소 조건이 뭔지 알고 있는 여관 주인으로서는 유현의 대답이 약간 소름 돋기까지 했다.
여관 주인은 예전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누구였을까. 한 병사가 요정에게 물었었다.
이세계인들의 성장이 자신들의 손에서 벗어날 정도로 빨라서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당시 여관 주인은 내심 그런 걱정이 쓸데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곳에서 평생을 힘을 쌓아온 자신들이 몇 년 안 된 이들을 제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적어도 예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번 로렐라이 사태에서 보여준 성장 속도는 본래 요정들과 원정군 간부들이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흘린 피만큼이나 그들은 성장했다.
“최근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나직이 여관주인은 말을 꺼냈다.
유현은 관심을 보이며 여관주인을 쳐다봤다.
“이번에 돌아온 플레이어 분들이 클랜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는 로렐라이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있었을 텐데요?”
“네. 하지만 그 때는 실질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클랜은 하나에서 두 개 정도 뿐이었죠.”
과연, 그런 건가. 유현은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여관 주인은 걱정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클랜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하고.
클랜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정에게 받은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한다. 퀘스트 내용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업적은 만드는 것, 이번 로렐라이 사태는 이를 만족하기에 충분했다.
“아마, 며칠 후면 아무리 못해 10개가 넘는 클랜들이 생겨날 겁니다.”
“많군요.”
유현은 순수하게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10개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로렐라이에서 그룹을 이루던 숫자는 7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라비락 토벌 때도 퀘스트 창설을 위해 나섰던 이들이 여섯명 아니었던가. 그 여섯 명 말고도 다른 사람들 또한 클랜 창설 퀘스트를 받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유현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이라면?”
“유현도 클랜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