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7
나도 꽤나 피로에 젖은 듯했다. 이 목소리를 계속해서 못 듣고 있었다니. 어쩌면 방심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나름 신뢰를 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
조금은 믿어도 된다는 생각에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여성의 소리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송가연도 내 뒤에서 졸졸 따라온다.
아이들의 뒤에 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 소리는 언제부터 들려온 거야.”
“그렇게 오래는 안됐어요. 한 10분 정도?”
“···10분? 왜 이렇게 늦게 깨운 거지.”
“너무 깊게 자고 있어서···. 지금도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겠어요?”
이서연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나는 쓴 웃음을 짓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녀석들에게 그렇게 보였는가. 실제로 이서연의 말대로 아직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 자고 있으면 우습게 된다. 그런면으로 송가연이 나를 깨운 건 확실히 잘한 일이었다.
···살려주세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무척이나 애달픈 목소리. 듣고 있던 나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울리게 하는 소리였다. 나한테도 이런 감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렇기에 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 소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연기는 진짜라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이질적으로 느끼게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여기서 저렇게 울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우스운 일이다. 깊게 고민할 것도 없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소리의 방향 쪽을 노려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보이는 건 없다. 하지만 목소리의 크기로 대충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소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묘한 마력이 깃든 목소리였다. 메아리치는 듯한 소리였기 때문일까. 여성의 목소리는 가깝게만 느껴진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말없이 목소리만 듣고 있자 송가연이 물었다. 어느새 장전한 석궁을 품속에 껴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공격을 해올 것이지 이런 식으로 홀리려고 하는건 더욱 경계하게 된다.
송가연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방향은 간단히 보면 두 가지다. 피하거나 죽이러 가거나.
피하는 건 간단하다. 자리를 옮기면 될 뿐이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곧 바로 배낭에서 지도를 꺼내와 위치를 확인했다.
‘쯧.’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일치하다. 방향을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그다지 추천 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잘못하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지도를 보며 움직일 때는 주변의 지형을 확인하며 움직인다. 겉으로 보면 숲에는 플레이어를 위한 길 따윈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은 존재했다. 지도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지형들이 그 예였다.
그런 길에서 벗어 난다는 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리게 될지 모른다는 거다.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은채 나는 고개를 들고서 혀를 찼다. 그런 내 소리를 들었는지 이서연이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랑 일치해.”
“그게 무슨?”
“녀석을 피해 가야 한다면 우리가 꽤 길을 돌아서 가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위험한 녀석일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소리의 주인이 어떤 녀석일지 감이 안 잡힌다. 어쩌면 처음 보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위험하지 않은 녀석이면?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면으로 생각하는 게 더욱 편하다. 헛된 희망에 잠겨 방심하는 순간 죽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녀석은 우리를 타깃으로 삼은게 분명했다.
저쪽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괜히 피해서 가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꺼놨던 횃불에 다시 불을 붙였다. 잘못하면 거미들의 시선을 끌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모두들 준비는 되어 있네.”
“지금 처리하시게요? 그런데 굳이 싸워야 할까요?”
“녀석은 우리를 겨냥한채 저런 소리를 내고 있는 거야. 도발인지 유혹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를 노리는 게 분명하지. 모두들 괜찮겠지?”
횃불을 휘저으며 앞을 밝혀본다. 숲속에 칠흑같이 내려앉은 어둠을 떨쳐내기에는 횃불론 부족하다. 누군가 광속성 마법이라도 시전해주면 고맙겠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일.
직업이라는 건 나중에 얻게 되는 귀중한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마법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다양한 마법을 익힐 수 있는 뛰어난 마법사는 무척이나 편리하다.
모두들 배낭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끝내자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일 거다. 이렇게 한밤중에 움직이는 건 말이다. 그 탓인지 평소보다 긴장감을 잡아 당긴채 우리는 움직였다.
언제라도 튀어나올지 모를 적에 조심한채 나는 걸음 속도를 높였다. 20여분 정도를 걸었음에도 소리는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들렸다. 가까우면서도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없는.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분명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지 않다는 거니까.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으니 마치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살려주세요.
다시 소리가 반복 된다. 그 쯤 되서는 나도 슬슬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우리를 놀리는 것처럼 녀석은 틈만 나면 여성의 목소리를 내었다.
“이 자식이···. 우리랑 장난하자는 건가.”
끝내 남궁민이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건 우리 쪽이기에 체력 소모는 우리가 더 심했다.
적이 언제 튀어나와도 대응할 준비가 끝난 우리지만 그 만큼이나 심력의 소모가 컸다. 지금은 좋을지라도 나중에 가면 틈이 생길지도 모른다.
부스럭.
잠시 우리가 주춤거리며 발을 멈추고 있을 때였다. 수풀 저편으로 느껴진 미약한 인기척에 송가연이 재빨리 석궁을 쏘아 보냈다.
갑작스러운 파공음에 아이들이 화들짝 놀란 듯 급히 무기를 쳐들며 몸을 틀었다.
“명중인가.”
수풀 저편으로 무언가 살육에 박혀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모두가 들었는지 슬그머니 서로 거리를 벌려 진형을 만들어낸다. 싸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송가연이 석궁을 장전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취하는 동안 나는 횃불을 앞으로 뻗어 보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둠에 숨어 있을 녀석은 누굴까.
이윽고, 녀석의 모습이 드러나자 아이들이 화들짝 놀란채 뒷걸음쳤다.
“뭐··· 뭐야!”
“미, 미친!”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은 존재. 등줄기로 뒤로 날개 마냥 뻗어 나와 있는 그건 분명 거미의 다리였다.
게다가 입이 기괴할 정도로 길게 째져 있고, 여러 쌍의 눈들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척이나 기괴한 모습인지라 나 또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거미와 인간이 합쳐진 듯한 모습. 송가연이 쏜 석궁에 맞은 건지 녀석의 가슴팍에 볼트가 박혀있다. 그것이 괴로운 건지 입 밖으로 피를 토해내고 있다.
키에엑!
“도망친다! 쫓아!”
녀석에 놀라 아이들이 당황한 틈에 녀석은 곧 바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녀석을 놓치지 않기 위해 횃불을 바싹 든 채 녀석의 뒤를 따라 붙었다. 움직임이 상당히 빠르다.
자신이 무슨 스파이더맨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지 입으로 실을 뿜어내 나뭇가지에 매달고는 믿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빨라!’
그걸 쫓기 위해 결국 나 또한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를 쫓아오지 못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뒤쳐진 건 송가연과 이서연이었다.
“오, 오빠! 너무 빨라요!”
등 뒤로 길유미가 소리친다. 그것에 나는 신음하며 고민에 빠졌다. 녀석은 분명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자리에서 처리하는 게 편하다. 나라면 녀석을 잡을 수 있다.
‘무슨?’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만 더 도전 해보자고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녀석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너무나도 한 순식간인지라 순간 내 감각을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것에 미간을 찌푸리며 서서히 다리를 멈추었다. 나는 어느새 녀석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 허무함에 검을 쥐던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고 있었다.
‘대충 이쪽이었던 거 같은데.’
횃불을 들며 주위를 비추어보지만 특별한건 없었다.
“하악, 하악···. 인간적으로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사람이 아니야.”
1분 정도가 지나자 아이들이 간신히 내 뒤를 따라 붙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남궁민마저도 겨우 따라 온 건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 길을 잃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 떨어지면 귀찮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주위를 부지런히 살펴보자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이 된 듯했다.
“놓쳤나요?”
지친 듯한 목소리로 송가연이 묻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놓친 듯했다. 인기척은 완전히 사라졌고, 하늘에 붕 뜬 것처럼 녀석의 흔적도 없다.
···하지만 그 때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던 이서연의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저건 뭔가요?”
처음에는 뭘 가리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헛것을 본 것 같지는 않았기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녀가 무엇을 본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질 한 그곳에는 토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도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닌 누군가 만든 것 마냥 인공적으로 구성된 토굴이.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원래부터 눈이 좋은 건가.’
잘도 저걸 발견했다. 위치도 위치고, 횃불을 들고 있어도 불빛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걸 어떻게 발견했나 싶을 정도다.
“음?”
토굴의 입구를 살피던 중 나는 뭔가 뇌를 툭툭 건드리는 듯한 이상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토굴이다. 그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기억을 되새기던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